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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 부르르-
핸드폰 진동음이 찬 겨울 아침 시동을 걸지 못해 무지 애쓰는 오토바이 소리처럼 옆구리를 울리며 다급하게 전해왔다. 핸드폰 액정에 덕호 형이라는 익숙한 세 글자가 눈에 빨려 들어왔다.
“여보세요, 덕호 형.”
“소…… 송희가 갔어.”
“뭐, 뭐라고?”
어딘가 이미 예상한 일이었지만 급작스레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내년 봄에는 마당 앞에 꽃도 심고 뒷산에 가 산나물도 캐고 가을에는 송이버섯 뽑으러도 갈 수 있다고 좋아하던 송희, 몸조리를 잘하면 남들 다 가는 외국에 돈 벌러 갈 수도 있다며 기뻐하던 그녀의 피골이 상접하던 얼굴이 그대로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 문을 나섰다.
마래동까지 가는 버스가 몇 해 전에 이미 취소된 통에 주저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뒷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맡겼다.
덕호 형을 처음 알게 된 때는 송이산을 개인들에게 도급주기 시작하던 바로 몇 해 전 송이철의 어느 날 오후였다.
점심 때까지도 쟁쟁하고 청청하던 서쪽하늘에 시커먼 메지구름이 해를 가리면서 몰아오더니 소나기 소리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투덕투덕 수수알 같은 빗방울이 머리와 얼굴을 두드렸다. 빗방울은 점점 대줄기처럼 굵어지더니 마치 온 여름 내내 미루고 미루었던 비를 한꺼번에 퍼부을 기세로 장대비가 되어 억수로 쏟아졌다. 모진 가뭄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바위와 돌, 흙과 나무숲은 짙은 안개와 빗줄기에 휩싸여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눈앞도 분간키 어려웠다.
그때서야 나는 송이버섯이고 뭐고 조급하고 당황해나기 시작했다.
일본 놈 죽은 골 능선을 가로질러 오던 길이라고 돌아선지 이슥한 데도 가면 갈수록 골짜기가 낯설고 더 깊어졌다.
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 무조건 물소리를 따르면 된다고 하던데……
물소리를 찾으려고 제 방귀에 놀란 토끼처럼 두 귀를 한껏 살려도 원체 가뭄으로 마르다시피 되어 도란도란 흐르던 개울물소리가 들릴 수 없었다.
비가 그치나 싶으면서 어둠이 점차 짙어가는 산속은 무시무시하고 괴괴하였다.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사나운 짐승이 뛰어나와 목덜미를 덥석 물 것만 같았다.
나는 무작정 아래로만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발이 허공에 빠져 미끄러지는 감을 느끼며 나는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다. 비명소리가 절로 터졌다.
눈을 떴을 땐 이튿날 아침이었다.
후! 죽지 않고 살긴 살았구나.
온 몸이 쑤셔나고 저려나고 사지가 물러나는 것 같았다. 몸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큰 돌덩이를 달아맨 듯 턱없이 무거웠다.
나는 또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지고 안개가 자오록한 깊은 산속이었다. 한 덩어리로 뭉쳐 머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대며 무리교배를 즐기던 축구공 만 한 뱀 뭉치가 보였다. 그 중 한 마리가 스르르 풀려나와 나의 다리에 칭칭 감겼다.
아- 어- 사람 살려-
제소리에 놀라 깨보니 꿈이었다.
온몸은 땀으로 물참봉이 되었으나 머리는 훨씬 맑아졌고 정신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자신이 송이버섯 따는 사람들이 지은 귀틀막에 누워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막 한구석에 잘 다듬고 손때 묻은 송이막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밑에 이름 모를 약초뿌리를 담은 비닐 봉다리 몇 개가 줄줄이 놓여 있었다. 말리려고 찢어 놓은 송이버섯에서 향긋한 송이향이 다분히 풍겨나고 있었다.
정오의 따뜻한 가을 햇볕이 막 안을 빠금히 비춰주고 소낙비로 오랜만에 불어난 골물의 우렁차고 장쾌한 소리가 귓가에 차고 넘쳤다.
택시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솟은 선바위 밑을 지나고 달라재촌을 에돌아 오랑캐령의 올리막 길을 힘겹게 톺고 있었다.
오봉산 너머로 천불지산주봉이 멀리 바라보였다.
이 근처에서 해발이 제일 높고 기상천외하고 영험한 산은 천불지산﹙天佛指山﹚이다.
말 그대로 하늘 불이요, 부처님이 현신한 산이라고 하는 천불지산은 깊고도 수려한 골짜기와 티 없이 맑디맑은 시냇물과 기의하고 험한 바위 그리고 수백 년 우거진 무성한 나무숲과 진귀하고 명성 높은 야생동식물들로 꽉 들어차 산 자체가 불이고 부처님이고 말하자면《판도라의 궤》같은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여 딱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곳 사람들은 모든 것- 길일을 정하거나 이삿날을 받거나 부녀자들이 아이를 배지 못해도 몹쓸 고질병에 걸려도 이 산에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전부를 의탁하다시피 하였다.
해마다 입추가 지나 절절 끓던 삼복더위가 완전히 물러가고 가을바람이 한결 서늘해지고 청아한 하늘이 더욱더 높아지고 푸르러지면 송이버섯 철이 돌아온다.
모두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귀한 송이버섯은 그 특수한 성장환경과 맛과 향, 그리고 영양가치로 하여 가격이 어마어마한데 일본에서도 웬만한 사람은 맛보기 어렵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송이버섯을 가늘게 실오리를 쳐서 먹는데 그 정도도 안 되는 사람들은 송이가 수입되어 들어오는 공항이거나 항구로 송이 향을 맡으러 나간다는 아이러니한 말까지 돌고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인공재배를 할 수 없는 유일한 균종이 송이버섯이라고 하니 송이의 매력과 흡인력은 그야말로 천하일품이 아닐 수 없었다.
외국에 간다고 여기저기 수속을 찔러 넣었다가 속수무책으로 백수가 되어 우두커니 방안에 꿔온 메주자루처럼 들어박혀 끙끙거리다가 송이버섯이 목돈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산으로 송이버섯을 찾아 떠났다.
첫 해는 멋모르고 산 아무 곳에나 송이버섯이 돋는 줄 알고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눈 뿌리 빠지도록 소경 막대집기 식으로 온 산을 찾아 헤매다가 송이는 구경도 못하고 헛물만 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차차 시간이 가고 해마다 경험이 늘면서 송이란 놈은 나이 많은 소나무와 참나무는 기본이고 그 외에도 박달나무나 자작나무가 어간어간 들어서고 그 밑으로 가담가담 천지꽃 나무나 싸리나무가 무덕무덕 자라는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많이 자란다는 것을 터득할 수 있었다.
송이버섯은 갓송이와 갓이 피지 않은 동송이로 구분하는데 갓송이는 눈결에 잘 보이지만 동송이는 두 눈에 불을 켜고 땅을 핥듯이 서캐잡이를 해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그 값이 하늘과 땅 차이다. 하루에 동송이 몇 뿌리만 캐도 그날 벌이는 물론 그런 노다지판이 세상에 따로 없다. 동송이를 뽑은 자리에는 며칠 후면 또 송이가 자라 올라오는데 해분에 따라 두세 번 뽑을 수 있기에 자리를 잘 기억해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산이 저 산 같고 저 푹이 이 푹 같아 어지간히 미립이 트지 않고는 애를 썩어야 한다.
두툼하게 쌓인 솔검불 속이 아니면 푸른 잔디를 머리에 이고 총각의 튼실한 거시기처럼 삐죽이 솟아오른 잘 생긴 송이버섯을 처음 발견했을 때 심마니들처럼 놀란 함성이 절로 터졌다.
송이다.
그런데 급한 김에 허술한 송이막대기로 허둥대다 그만 송이 가운데를 찔러 끊어 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맹랑한 일이었다.
그제야 나는 사람들이 송이막대기를 잘 츨궈야 한다던 이유를 알게 되었고 따라서 단단하고 질긴 문푸레나무를 깎고 다듬고 보듬고 하여 송이막대기를 만들었고 점차 요령도 생겨났다.
천불지산을 우측으로 끼고 수많은 크고 작은 골짜기들과 산봉우리들이 무리 지은 바다표범처럼 들어앉았는데 그 가운데서 제일 큰 골짜기가 바로 마래동이다.
마래동 어귀에서 어른 걸음으로 한나절, 제일 막바지에 문바위골, 남패골, 일본 놈 죽은 골이 차례로 들어앉아 있었는데 능선을 타고 이어진 좌우측 삼림 속에는 송이버섯이 꽤 잘 돋았다.
그러나 퍽이나 동떨어져 있는 깊은 산중이고 이름만 들어도 불길하고 으스스하다며 웬만해서는 장정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까지 호락호락 송이버섯 뽑으러 가려 하지 않았다.
사람이 적게 다닌 만큼 수입은 톡톡하였다. 대여섯 곳은 송이가 기막히게 잘 올라왔는데 한 번도 헛 탕을 친 적이 없었다.
어느 핸가는 무덕송이를 만나 한 곳에서 동송이 28꼭지를 뽑은 적도 있었는데 그날 하루 수입이 천 위안하고도 꼬리가 달렸으니 세상에 그런 금전판이 따로 없었다. 금인들 어디 그리 흔할까?
발동기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지더니 택시는 오랑캐령의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송이고향이라고 둥굴소머리만큼 큰 글자를 깊이 음각하고 세운 집채만큼한 돌비석에 스쳐지나갔다.
산골짜기의 저녁 해는 노루꼬리 반 만큼도 안 되었다. 터벅터벅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막발이 들리면서 키가 작달막한 사나이가 막 안에 불쑥 들어섰다. 막 주인이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듯하였다.
짙은 눈썹과 서양 사람들처럼 우묵하게 패인 두 눈, 그리고 예리하게 솟은 콧날은 첫 인상에 어딘가는 다부져 보였다. 거뭇한 얼굴은 구레수염으로 뒤덮였고 입가와 목 줄기에는 세월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금방 후쳐 놓은 고추밭이랑처럼 깊이 패어있었다.
그는 송이버섯 배낭을 벗어 막 구석에 놓으며 어눌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디 살아났수?”
“예, 엊저녁에 정말 고마웠습니다.”
“고맙긴, 다행이지, 아무렴 천불지산에서 산다는 사람이 굴러 쓰러진 사람을 산 속에 그대로 둘 수 있나. 그래 좀 괜찮은가?”
“예. 덕분에.”
“조금 참게, 이제 쌀알이 들어가면 힘이 날 거야.”
그는 비록 거쿨지고 두툼하지만 익숙한 손놀림으로 감자 두 알은 썩둑썩둑, 파란 고추와 파는 송송 채썰어 넣고 구석에 말리려던 젖은 송이를 한 줌 듬뿍 집어넣고는 된장과 함께 물을 부었다.
향기롭고 더없이 구수한 송이버섯 장국냄새가 작은 막 안에 차고 넘치며 굶주렸던 나의 위를 재촉했다.
절인 고추며 산도라지 무침이며 마른 송이볶음이 진수성찬 못지않게 입맛을 당겼다.
“자네, 죽으려고 작정을 했더구만, 그곳이 어디라고…… 하여간 담이 커. 그나저나 마누라는 뭘 하는데? 한국 갔어?”
“예? 마누라요? 허허, 저 아직 장가 전인데요.”
“뭐? 그럼 아직도 까불까불한 총각이네. 자네 무슨 큰일을 하려고 서방도 안 가고 이 나이에 호래비 신세야.”
“그게 어디 마땅한 여자가 나져야 말이지요. 모두 한국이다 뭐다, 없는 놈은 어디 서러워 살겠어요. 그런데 형님은?”
“형님은 무슨 놈의 형님, 그냥 덕호라고 부르게.”
나는 그제야 막주인의 이름이 덕호라는 것을 알았다.
다 같이 집을 떠나 외진 산골짜기에서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마주 앉았지만 서글서글하고 보기보다는 후더운 덕호 형이 믿음직스러웠고 은근히 마음이 끌렸다.
“그런데 형님은 왜 이 고생이시우, 남들 다 가는 외국도 안 가구.”
“후- 다 말해 뭘하겠나만, 글치 않아도 집사람 병 나으면 외국으로 간다고 야단이야, 그게 세상 일이 어디 생각처럼 쉽나, 원.”
“그야 그렇지요, 헌데 무슨 병인데요?”
나의 물음에 대답 대신 푸푸 황소숨만 내쉬는 덕호 형을 보자 알지 말아야 할 일을 공연히 물은 것 같아 어딘가 후회되었다.
“후, 폐암이라는데.”
“예? 뭐라구요?”
“이제 얼마를 더 버티겠는지, 어쩔 수 있나, 그래서 천불지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산 속에 와서 좋다는 약재도 캐먹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 그리고……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렇나.”
“저도 듣기는 들었어요, 옛날부터 사람들이 천불지산에 치성을 드렸다는 얘기를요.”
천불지산 쪽을 바라보는 덕호 형의 눈길과 표정 그 자체가 간절함이고 바람이고 소원이었다. 나는 착잡한 기분을 돌리려고 말꼬리를 돌렸다.
“형님, 저 골짜기에서 일본 놈이 죽긴 죽었어요?”
나는 여태껏 몹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래, 죽었지!”
“왜 죽었는데요?”
“왜라니, 그게 썩 오래 전이었어.”
덕호 형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세세대대 천불지산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마래동에서 태어나 터를 잡고 마래동에서 해와 달을 이고지고 살아왔다.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은 바닷물을 퍼먹고 살고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을 파먹고 산다고 천불지산은 어쩌면 마래동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이었고 삶을 지탱해가는 젖줄기였으며 정신 줄을 이어가는 믿음이었고 희망이었고 소원이기도 했다.
광복을 맞던 해 초겨울 어느 날, 덕호 할아버지와 앞집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 두 사람이 노루 잡을 덫을 늘여놓고 오후 늦게 골짜기어귀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골짜기에서 쾅 하는 폭발소리와 함께 사람의 비명소리가 아츠럽게 들렸다.
잠시 후 놀란 두 사람은 허둥지둥 소리 현장으로 달려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에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피못이 된 남자의 시체가 보였고 끊어진 아이의 팔다리가 보였고 사처에 널려진 불타는 옷가지가 보였다. 그 가운데 머리를 틀어 올리고 외투 밑에 보라색 기모노를 입은 여자도 들어있었다. 아마도 한 가족인 것 같았다.
이튿날 두 친구는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일본인들의 시체를 우묵한 그 자리에 돌과 흙으로 대강 묻어버렸다.
감히 남의 나라 땅을 넘보고 침략한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고 열백 번 칼탕쳐 죽여도 시원치 않다고 줄욕은 하면서도 인간 대 인간으로 측은한 마음과 또 형체 없이 쪼개진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두면 썩은 냄새가 온 산에 진동할 것이고 그러면 숫처녀의 야들야들한 몸매처럼 때 묻지 않은 천불지산이 더럽게 오염되는 것은 물론 고사리 꺾으러 갈 수도 송이버섯 뽑으러 갈 수도 없다는 걱정과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으로 점찍어져 두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덕호 할아버지의 친구가 모든 것은 자기가 주도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에 덕호 네는 무사했지만 그 친구는 한동안 말밥에 올라 어지간히 속을 태우다 잠잠해졌다. 하여튼 두 집은 사이가 남달랐다.
그 뒤로부터 사람들은 그 골짜기를 일본 놈 죽은 골이라 불렀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입에 굳어졌다.
“오, 그랬군요. 하여튼 의리가 깊은 친구였군요.”
“그래서 옛날부터 남자는 의리로 살고 죽는다고 하지 않나, 저 부처 같은 천불지산이 말 그대로 영험했으면 좋으련만.”
덕호 형이 입속으로 중이 염불 외우듯 하는 것 같았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지 않아요.”
나는 진심으로 덕호 형을 위로했다.
술기운이 오른 덕호 형은 어느새 그 자리에 쓰러져 드렁드렁 코를 골았다. 허술한 시골 나그네라고만 보았던 그에게 그토록 깊은 이야기가 있을 줄은 생각 못했다.
부메랑 같은 초생달이 막 안에 희미한 빛을 뿌려주고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소낙비로 오랜만에 불어난 골물소리와 어울려 적막한 골짜기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택시는 아흔아홉 굽이 오랑캐령을 빠져나와 살얼음이 지기 시작한 어머니 강이라고 칭송하는 두만강 기슭을 따라 달렸다. 어딘가는 살벌한 느낌까지 안겨주는 철조망 사이로 내다보이는 그 옛날 푸른 물결 넘실대고 풍요롭던 두만강의 모습은 조금은 처량하고 쓸쓸했다. 마래동이 오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와 한 이틀 몸조리하는 내내 덕호 형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함께 눈앞에는 하늘불이라는 부처님 같은 천불지산과 마래동의 우중충한 산봉우리들과 하늘을 치솟는 나무숲이며 주인을 기다리는 송이버섯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술과 고기, 채소들을 한 짐 짊어지고 막을 찾았다.
텅 빈 막 안은 전보다 한결 깔끔했고 약초를 달인 냄새가 코막을 깊게 자극했다. 막 뒤쪽 켠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 같아 나는 막 뒤로 다가갔다.
아름드리 노송 밑에 주위에 흔한 손바닥 만큼한 돌들로 일매지게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어른 한 키 만 한 돌탑 두 개가 보였는데 다 쌓은 돌탑 앞에는 강마른 솔밥송이 몇 개가 입을 벌리고 댕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어느 핸가 사천 아미산에 갔을 때 사람들이 무리 지어 분향하고 합장배례하던 불탑이 생각났다.
뒤태가 조금은 호졸해 보이는 여인이 인기척에 놀라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손에는 납작돌이 쥐어져 있었다. 순간 두 사람은 한결같이 된 전기에 치인 사람처럼 그 자리에 장승처럼 굳어졌다.
“소소 송희이.”
그렇다. 그녀는 분명 송희였다.
……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야, 그러면 덕호 형은?”
“오, 그래 남편이야, 초저녁에 하마발을 놓으러 갔다가 사람을 구했다더니 널 줄은 생각 못했어.”
“그건 그렇고. 이게 몇 년 만이야.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 여기서 만나다니.”
“그래, 30년이야.”
그렇다. 30년 전, 고3 시절.
어느 날부터였던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송희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까만 눈이 좋았고 동그란 얼굴이 좋았고 깔깔대는 웃음이 좋았으며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지어는 그녀의 어깨에서 달랑대는 책가방이며 그녀가 타고 다니는 《비둘기》표 자전거까지도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늘 없는 구실을 만들어 송희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내를 싸다니군 하였는데 그것이 그렇게 장하고 신바람 날 수 없었다. 따라서 매일 적는 일기책의 주인공은 송희가 주역이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즐겁게도 하고 때로는 잠도 이루지 못하게도 하였다.
교내 운동대회 날이었다.
여자 사람 찾기 경기에 붉은색 티셔츠에 회색 운동복바지를 받쳐 입은 송희가 선수로 나섰다. 나는 은근히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스타트를 떼고 달리던 송희가 땅에 묻어 놓은 쪽지를 펼쳐보더니 남학생들이 무리 지어 있는 앞에 달려와 다짜고짜 나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나는 무작정 송희의 손에 이끌려 힘차게 종점으로 달려갔다.
그날 우리는 운 좋게도 1등을 따냈다. 송희는 너무 좋아 그 자리에서 어린애처럼 퐁퐁 뛰면서 손에 잡고 있던 종이쪽지를 나에게 풀어보였다. 거기에는 남학생이란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날 저녁 나와 송희는 처음으로 해란강 영화관으로 영화 보러 갔다. 평소 만나면 할 말이 태산 같던 것이 정작 단둘이 자리를 찾아 앉으니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애매한 얼음과자만 축내다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영화를 봤던 지도 머리가 텅 비어 있었지만 마음만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더없이 기뻤다.
이러구려 졸업시험을 치르고 아이들은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졌다.
이제는 더는 송희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더없이 서글퍼났고 우울해졌다.
나는 용기를 내 송희의 하숙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송희는 이미 하숙집을 떠나 살던 고장으로 내려가고 없었다.
돌아서는 나의 발길은 천근같았고 마음은 한없이 쓸쓸하고 처량하고 괴로웠다. 마치 품속에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했던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린 듯 허전하고 슬펐다.
그런데 강산도 세 번 넘게 변한 이 산골짜기에서 드라마처럼, 거짓말처럼 송희를 만날 줄이야.
그제야 나는 송희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 시절 어깨 위에서 달싹달싹 춤추던 단발머리에는 어느덧 굵고 센 흰서리발이 내렸고 시골 밤하늘의 가을 달처럼 동그랗고 티 없이 해맑던 얼굴에는 어름어름 병색이 짙었다. 심산유곡에서 솟아나는 옹달샘처럼 그윽하고 정기로 빛나던 눈빛은 불안감과 걱정과 병마의 침습과 고통으로 흐려있었다. 이것이 정녕 몇 십 년 동안 또렷한 기억과 갈피갈피 추억 속에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히 간직해오며 잊지 않고 그려왔던 티 없이 순결하고 순수한 한 소녀의 청순한 모습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때 왜 그렇게 총망히 떠났어?”
“그게 말이야, 아버지가 세상 뜬 후 설상가상 대들보 같던 어머니마저 갑자기 병석에 드러누웠어,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그 숱한 힘든 농사일이 한꺼번에 나의 어깨에 떨어졌어. 정말이지 막 죽고 싶었어.”
“그래서?”
송희네와 뒷집 덕호네는 할아버지 때부터 한 형제처럼 가깝게 살아왔다. 웃어른들이 화목하니 자연 자식들도 형제처럼 서로 도와주며 네 것 내 것 없이 살았다. 송희네 딱한 사정을 손금 보듯 잘 알고 있는 덕호는 과수나무전지로부터 약치기와 가을철 실걱질과 탈곡 그리고 겨울철 땔나무까지도 전부 도맡다시피 해주었다. 어느 핸가는 소발구에 치어 다리까지 상하였다.
고중을 졸업하고 몇 해 동안 시내 물을 다복이 먹은 예쁜 송희가 마래동에 돌아오자 일약 화젯거리로 되어 아들 가진 집들에서는 올리 재고 내리 훑으며 은근히 침을 흘렸다.
아래 마을 모 기관에서 일하는 아비의 힘을 믿고 제노라고 우쭐렁거리는 못난 쌍둥이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송희의 미모에 반하여 늘 송희네 집을 찾아와 시끄럽게 굴고 애를 먹였다.
그 날도 두 형제가 찾아와 밥상 위에 식칼을 탁 메치며 오늘은 어찌됐든 결판을 보겠다고 큰소리치며 야료를 부렸다.
송희가 한창 얼리고 구슬리는데 덕호가 발로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 쌍둥이 형제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야, 좋게 말할 때 어서 사라져라.”
“흥, 이 양반이 우리가 누군지 아직 잘 모르는군. 안 가면 어쩔래?”
만만치 않은 쌍둥이 형제도 눈을 치뜨며 와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나 칼을 쥐려 했다.
어느새 덕호가 잽싸게 몸을 솟구쳐 밥상 위의 식칼을 덥석 틀어쥐고 쌍둥이 형제를 노려봤다.
“용기 있으면 어디 찔러봐.”
쌍둥이 형제가 턱을 쳐들며 냉소했다.
당장 칼부림이 벌어질 것 같아 송희는 아슬아슬해났다. 갑자기 덕호가 옷자락을 확 제치고 푸르게 날이 선 식칼을 털이 부수수한 자기 복부에 들이대고 쓰윽 긋자 빨간 핏방울이 밥상 위에 주르륵 흘러내리며 매화꽃을 피웠다.
방금까지도 득의양양해하던 쌍둥이 형제는 덕호의 용기와 서슬에 그만 간이 콩알만 해져 덜컥 무릎을 꿇었다.
……
“그렇게 나를 도와주고 지켜줬어. 그래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 나이는 나보다 많아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줘.”
“그렇게 힘든 날들을 보냈구나, 겉보기보다 자상하고 의리 깊은 것 같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험한 천불지산 날 벼랑으로 폐암에 특히 좋다는 마른 돌버섯을 따러 갔던 덕호 형이 돌아왔다.
이윽고 간소하지만 산해진미도 울고 갈 밥과 찬들이 올망졸망 막 한가운데 차려지고 나는 가지고 간 술을 덕호 형에게 조심히 부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진정으로 형님이라 부를게요.”
“허허, 감사하네만 사람이 다 저 천불지산처럼만 살면 여북 좋겠나.”
“글쎄요.”
“그나저나 형수님이 어떤가?”
덕호 형이 다소곳이 앉아있는 송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예, 진짜 천하제일 미인이지요.”
“천하미인 좋지. 옛말이 그른 데 없어, 미인박명이야. 후!”
가지고 간 술이 굽이 나고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밤새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천불지산주봉에서 어딘가는 구슬프게 울려왔다.
택시가 멈췄다. 지난 해 홍수 탓에 이제부터는 한참을 걸어야 덕호 형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슬에 젖은 한 갈래 오솔길이 죽은 뱀처럼 골짜기를 따라 고느즉히 누워있었다. 초겨울에 접어들었는지라 싸늘한 하늬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몸부림치며 떨어져 이리저리 뒹굴다 발에 밟히며 처량하게 울었다.
두 사람이 형과 동생으로 약조한 다음날 나는 덕호 형의 도움으로 나의 송이막을 그들의 막과 얼마 멀지 않은 곳으로 옮겨왔다. 막이라야 비닐박막으로 하늘과 사면을 가리고 바닥에 나무를 몇 대 대강 놓고 그 위에 마른 볏짚이나 생당쑥을 베어다 두툼하게 펴려 하였지만 덕호 형은 그렇게 해서는 습기와 한기가 올라와 못 견딘다고 하면서 넙적넙적한 돌들을 주어다 외통온돌을 놓고는 마른 쑥가지를 주어 불을 달았다.
바람을 날름거리며 불길도 제법 잘 들었다.
아늑하고 양지바른 골짜기에는 자그마한 두 오두막이 제법 한 동네를 이루고 서로 정을 주고받았고 따라서 나의 송이수입도 짭짤히 늘어갔다.
나는 꿈만 같았다. 송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하여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현대 의학으로도 족히 어쩔 수 없는 치명적인 암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에 떨고 정신적 불안에 시달려야 할 송희의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뿐이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하늘불이라는 부처님 같은 천불지산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나무며 돌이며 골물이며 이름 모를 산새들과 지어는 마른 풀에까지도 기적이 일어날 것을 빌고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희가 나타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송이 팔러 간다고 내려간 덕호 형이 날이 저물고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송희는 근심에 쌓여 어두운 밤하늘을 애타게 쳐다보았다. 더는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어 나와 송희는 덕호 형을 찾아 떠났다. 산골짜기의 울퉁불퉁하게 거친 밤길은 걷기가 무척 더디고 힘들었다.
갑자기 앞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놀란 송희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몸에 붙어 섰다. 나는 한 손으로 송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손전지를 비추며 소리쳤다.
“형님, 덕호 형-”
“여보-”
오토바이가 길옆 골짜기에 거꾸로 틀어박혀져 있고 그 밑에 깔린 덕호 형이 절던 다리를 빼내려고 버둥대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장면이 손전지 불빛에 나타났다.
두 사람이 안간힘을 다해 오토바이를 들어내자 피범벅이 된 덕호 형의 상한 다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다급히 송희의 목수건을 풀어 피 흐르는 덕호 형의 다리를 동여매고 그를 들쳐 업고 천방지축 마을로 달려 내려가 택시를 불렀다.
그제야 나는 등골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음을 느꼈다.
시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과다한 출혈로 덕호 형은 거의 혼수상태였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혈고에 AB형 혈액이 바닥이 나 다른 병원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니 기다리라며 의사가 위로했다.
송희가 아연실색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했다.
“선생님, 제가 AB형입니다. 빨리요.”
내가 팔을 걷고 나섰다.
“아니, 안 돼요.”
송희가 소리 질렀다.
나는 앞을 가로 막는 송희의 섬약한 두 팔을 와락 밀치고 의사의 뒤를 따랐다.
피를 뽑고 간호사가 풀어주는 홍탕물을 한 컵 마시고 복도에 나오니 그때까지 흐느끼고 있던 송희가 휘청하며 나의 어깨에 몸을 묻었다. 나는 전율하고 있는 송희를 가볍게 껴안아 주고는 잠깐 밖으로 나왔다.
동쪽하늘이 희붐히 밝아오며 밤의 적막과 고독을 이겨내고 밝은 태양 아래서 펼쳐질 아름다운 생활을 그려보던 별들이 숙명적으로 순리에 따라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혈액이 제시간에 도착하고 뼈가 크게 다치지 않아 덕호 형은 며칠 병원신세를 지고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 이듬해 임업부문에서는 송이산을 전부 개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덕호 형네도 송이산이 차례졌다.
덕호 형은 피를 나눈 생명의 은인이라며 명절 때는 물론 좋은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나를 불렀다. 해마다 송이 철이면 나를 불러 함께 송이 뽑으러도 다녔고 돌아올 때면 송이버섯은 물론 산에서 나는 귀한 물건들을 한 짐씩 지워 보내군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돈을 모아 한국에 가 송희의 폐 수술도 하였다. 덕호 형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폐는 크고 작게 다섯 잎으로 이루어졌으며 송희는 그 중 제일 작은 잎을 절제했는데 다른 잎에 전이만 안 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죽는다던 사람이 되살아난 기분이라고 이제는 어디 한 번 남들처럼 떵떵 소리 내며 살게 되었다고 그토록 기뻐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냇가에 홀로 핀 한 송이의 이름 없는 수수한 들꽃처럼, 가없이 푸른 초원에서 시름없이 풀을 뜯는 어린 사슴처럼, 티 없이 결백한 하얀 눈꽃처럼 살겠다고 꿈을 무르익히던 그 시절 한 소녀의 순결하고 순수한 모습을 되새겼다.
드디어 마래동에 다달았다. 젊은이들이 선참으로 간수물 빠지듯 빠지고 잇달아 중년들이 줄줄이 나가고 뒤이어 장년들까지 하나 둘 가버리고 노약자들과 불구자들만 남아 있는 마을은 생기라곤 없이 적적하였다.
집에 들어서자 덕호 형은 말없이 나의 손을 꽉 잡았다. 손은 무섭게 떨고 있었다.
꽝꽝 관널에 대못을 박는 소리가 쩡쩡 가슴에 못을 박는 것처럼 아프게 들렸다. 손잡이 트랙터 바구니에 관이 놓여지고 우는 사람도 곡할 사람도 없는 조촐한 장례행열이 송이막을 쳤던 곳에 마련한 장지로 행했다.
마을에 몇 안 남은 바깥노인들이 옆구리에 삽을 끼고 어정어정 그 뒤를 따랐다.
서리가 내린 하얀 소나무가 가지를 축 드리우고 있었고 돌탑 위에서 솔씨를 까먹던 산다람쥐가 인기척을 듣고 머리를 갸웃거리며 일행을 바라보다 빳빳이 세웠던 꼬리를 사리고 풀숲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두 돌탑 앞에 어느새 작고 아담한 봉분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간소한 장례절차를 마치고는 하나 둘 산을 내려가고 나와 덕호 형만 남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납작납작한 돌들을 주어 거의 쌓다가 그만 둔 돌탑을 차곡차곡 마무리해갔다.
겹겹이 낮게 드리운 구름 속을 용케도 꿰뚫고 한 갈래 저녁노을 빛이 천불지산과 돌탑을 얼추 비추고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천불지산은 하늘불이고 부처님이고 판도라의 궤라고 했는데, 그랬는데.
산아, 산아 천불지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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