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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월 11일 토요일 맑음
새벽에 잠이 깼다. 아내의 드라이기가 110V 전용이다. 어제 밤 데스크에서 빌려온 어뎁터에서 220V를 110V로 바꾸어 꽂아보니 명쾌한 소리를 내며 바람이 나왔다. 기쁨도 잠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순간 방에 있는 모든 불이 꺼져버렸다. 어텝터 타는 냄새가 나고 전기가 나가버린 것이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캄캄한 새벽이다. 밖을 살펴보니 불이 켜져 있고 우리 방만 암흑이다. 불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출입문을 열어놓고 희미한 불빛 아래서 샤워를 했다. 어뎁터를 태워먹었으니 변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이드에게 이 사실을 설명했다. 걱정하지 말란다. 식사 때 가이드 아가씨 얼굴이 밝은 것을 보니 잘 해결된 것 같다. 별 이상한 경험도 다 해보는구나.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뷔페식으로 해결했다. 만두와 밀가루로 만들어 익히고, 튀기고, 찐 다양한 모양의 음식이 많았다. 쌀죽이 시원하고 아침 입맛을 당겼다. 짐을 챙겨 모두 나왔다. 차에 올라 배를 타는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다. 조그만 섬인데 제법 규모는 크고 현대식이다. 공항에서 하듯 똑 같이 출국 수속을 밟고 가이드와 헤어져 홍콩행 배를 탔다. 아침 9시에 마카오를 출발한 것이다. 거의 30분마다 배는 출발한다. 한 배에 70여명 정도 타는데 갑판은 없고 모두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바다를 보며 간다. 제법 빨리 달려가는 부양선이다. 아침이라 선내에서 사발 면과 간식도 판매하고 있어 식사를 못한 사람들은 사서 먹는다.
이렇게 해서 다시 오리라는 기약도 없는 마카오의 일 박 여행은 끝이 났다. 반나절과 밤에 둘러보고 잠을 자고 새벽에 출발했다. 이렇게 짧은 여정 속에 보면 얼마나 보고 알면 얼마나 알고 느끼면 얼마나 느끼겠는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여기서 나름대로 열심히 시간 속에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고 힘을 얻는다. 다음에 혹시 들리게 된다면 포르투갈의 깃발은 박물관으로 사라지고 중국의 오성기가 펄럭이겠구나. 흔적도 없이 순간 스쳐간 여행이지만 추억으로 영원히 기억될 조그마한 섬이다. 복잡한 삶의 모습을 지닌 마카오다.
단순한 해안선, 뿌연 바다 물 색깔에서 맑고 깨끗한 색깔로 바뀌었다. 창가에 종종 스쳐가는 마카오 행 부양선을 보고 있자니 홍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홍콩에 비하면 마카오는 시골이다. 마카오가 조용하고 느리고 낮다면 홍콩은 시끄럽고 빠르고 높다. 스케일도 크고 복잡하며 분주하다.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파도도 출렁인다. 대형 건물이 보이고 바빠지니 마음이 긴장된다. 큰 건물 내에서 이동하고 올라가고 내려가니 입구가 나온다. 대형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가 미소를 짓고 나타난다. 짧은 머리에 인물 좋은 아저씨가 사진사 조수를 대동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차에 오르자 한국에서 출발한 다른 팀도 있었다. 차가 출발한다. 알 수 없는 복잡한 도로를 따라 가다가 얼떨결에 도착한 곳이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해양 공원(홍콩해양공원 香港海洋公園)이다.
정면에는 아직은 영국기가 들어있는 홍콩기가 펄럭이고 있다. 토요일이라서인지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도 일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이드가 들고 가는 깃발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따라갔다. 입장료는 대인이 140홍콩달러(16,000원)다. 좀 비싸 보인다. 깃발을 따라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니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왔다. 선을 보니 산 정상 옆으로 이어져 있다.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서는 줄 지붕에는 선풍기가 돌아간다. 1월인데 여름의 날씨다. 여기 여름에는 지옥 같이 더운 날씨란다. 남랑산(南朗山) 구릉에서 남중국해에 달하는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해양 공원은 모든 사람들이 즐기고 놀 수 있도록 만들어진 레저타운이다. 규모는 크다. 별로 짜임새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남해안 섬이 색각난다. 돈만 있으면 충분히 갖출 수 있는 비슷한 환경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을까? 공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해드랜드 파크와 로랜드 파크다. 두 곳을 6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한다. 1.4km의 로프웨이로 연결되어있다.
로랜드 파크는 소규모 동물원, 식물원, 금붕어 수족관 등이 있다. 여름은 7개의 풀장이 있어 사람들이 붐비지만 겨울에는 별로 매력이 없단다. 우리도 6인승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해드랜드 파크로 이동한다. 케이블카를 타본 것이 처음은 남산이고 가장 겁먹었던 것은 캐나다 자스퍼의 휘슬산에 오르던 케이블카였다. 전망 좋고 인상적인 케이블카는 싱가폴의 센토사 섬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가장 길게 탄 것은 아마도 여기인 것 같다. 타고 가는 맛은 싱가폴과 비슷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남산 타워 비슷한 탑을 향해 걷는다. 남미 복장의 밴드 연주자가 공원의 맛을 한껏 즐겁게 했다. 전망대를 올라간다. 빙글 돌아가는 전망대다. 한 눈에 주변 경관이 다 들어온다. 책에서 보던 리펄스 해변이 보인다. 홍콩의 빌딩들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 코스로 돌고래 쇼 장에 갔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다. 돌고래가 점프를 해서 줄에 매달린 빨간 공을 치면 쇼의 끝이란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끝나면 재빨리 일어서서 나오라고 한다. 그래야 다음 코스로 쉽게 갈 수 있단다. 설명과 모일 장소를 듣고 쇼 장에 내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4000 여명이 참석한다는 쇼 장은 빈자리가 없이 꽉 찼다. 햇빛이 깨끗하게 비친다. 상큼하고 기분 좋은 분위기다. 사람의 신호에 따라 큰 돌고래가 재롱을 부려 관중의 박수를 받고 먹이도 얻어먹는다. 악수하고, 점프하고, 뒤로 돌고, 지느러미 흔들고, 공도 굴린다. 배영으로 수영하기와 원반물고 달리기, 훌라후프 돌리기, 장대 뛰어넘기 등 다양하게 재주를 보여준다. 감미로운 음악에 사람을 등에 태우고 수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이드가 말해 준 끝 행사가 없이 쇼가 끝나서 나가는 시점을 놓쳤다. 사람들이 엄청 붐빈다. 가이드와 사인이 맞질 않았다. 돌고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보다. 아쉬워할 틈도 없이 부지런히 걸어서 수족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 수족관은 아토르리프 샤크 아쿠아리움으로 약 300종의 물고기 30.000마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나사 모양으로 걸어서 돌아내려가며 구경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 규모에 놀라고 말았다. TV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서 보던 희귀한 물고기들이 눈앞에 있으니 더욱 신기하다. 바다 속 깊이에 따라 살아가는 물고기들의 다양함도 느낄 수 있다. 시설의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입구에 상어의 종류만 따로 모아 놓았다. 상어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있다. 코가 큰 물고기, 긴 꼬리 가오리가 인상적이다. 역시 뚱뚱한 고기는 행동도 느리다. 날렵하고, 날씬한 고기는 살이 없다. 사람의 성격과 행동, 그리고 체형과 관계를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출구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더가 3단계로 되어있다. 규모가 세계최고란다.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없으니 한결 수월하다. 손님도 없이 청룡열차가 계속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가고 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저렇게 손님 없이 벌써 6개월 동안 시범 운행하고 있단다. 안전하다고 인정될 때까지 계속 운행해 본다는 이들의 의식에 고개가 숙여졌다. 예산 낭비와 시간의 중요성보다 한 명의 생명을, 안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25,000불 소득의 홍콩시민 의식이 부럽다. 1000불의 우리 의식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철저하고 빈틈없이 안전을 생각하는 이들 앞에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삼풍 건물이 무너지는 우리 민족은 어떻게 비췄을까? 씁쓸한 마음으로 해양 공원을 나왔다.
차는 비틀 비틀 오래된 좁은 도로를 달려간다. 왼쪽에는 밀집해 있는 묘지들이 보인다. 땅이 좁은 나라라 묘지를 쓸 공간이 작아 시신을 뉘어 놓을 수도 없고 세워 놓아야 한다. 묘비만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마카오에서 가이드 아주머니가 설명해 주던 강시 귀신의 내력이 다시 생각나 웃음이 나온다. 시신을 매장 시 비스듬히 서 있는 형태로 있다가 나중에 납골당으로 옮겨 갈 때 하도 오래 서 있어서 다리가 굽혀지질 않아 두 다리로 콩콩 뛰어 간단다. 손을 앞으로 하고 두 다리를 모아 뛰어가는 것이 중국 귀신들의 모습이란다. 이곳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묻혀 있지도 못하고 곧장 납골당으로 가고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이 평당 2억 원씩 주고 묘지를 산다고 한다. 돈이 많으면 혼자 묻히고 적으면 부부가 합장으로 묻힌단다. 묘비에는 코팅된 사진이 붙어있어 혼자인지 합장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홍콩의 땅은 빈틈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는 홍콩의 중심이라 불리는 아우분하우 가든(구 타이거 밤 Tiger Balm)에 가기 전 식사를 했다. 홍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다. 오후에 홍콩을 벗어나 구룡반도로 가기 때문이다. 배가 고팠다. 복잡한 번화가에 대충 버스를 주차해 놓고 식당으로 갔다. 이곳도 한인 식당이다. 식당 주인과 가이드 간에 모종의 뭣이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좋지 않다. 손님대접이라기 보다는 물건 보듯 하는 눈초리가 느껴진다. 메뉴는 김치 찌게와 몇 가지 반찬과 밥이다. 모자라면 더 준다는 말은 있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몇 번 불러도 대답뿐 응답이 없다. 모두 그릇을 비웠다. 옆 식탁에 준비된 김치 찌게에 라면이 유난히 맛있어 보였다.(여행을 마치고 집에서 몇 번이고 해 먹었다. 그때 생각이 날 때마다,) 썩 기분 좋게 먹질 못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계속 단체로 들어와 먼저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봉이구나.
타이거 밤은 우리에게는 호랑이 기름으로 알려진 만금유(萬金油)를 개발해 거부가 된 호문호(胡文虎)가 홍콩 시민들에게 이익을 환원하고자 1935년에 만들었다는 일종의 정원 비슷한 곳이다. 산비탈을 이용한 정원으로 현란한 원색으로 채색된 불교와 도교의 입체 그림이 인상적이다. 색깔이 많이 퇴색되어 있다. 불교의 극락과 지옥을 표현했단다. 구멍과 구멍으로 이어지는 미로와 계단이 인상적이다. 정원 내에는 눈에 띄는 하얀 탑이 있다. 위쪽에는 비취를 전시하고 있고 아래에는 호문호의 유골이 납골되어 있단다. 탑 왼편 높은 곳에는 호문호의 동상이 당당하게 굽어보고 서 있다. 동상 뒤편에는 고층 아파트가 새롭게 세워져 있다. 이 아파트 당도 전에는 호문호의 가든 이었단다. 호문호가 죽자 그의 아들들이 땅을 팔아서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단다. 머지않아 이곳 땅들도 팔아서 아파트를 세울 거라고 한다. 땅 값이 평당 5천만 원을 넘는다고 하니 엄청난 돈이다. 서민들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좋은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홍콩의 명물이 사라진다고 하니 마음이 좀 아쉽다.
올라 탄 차가 멈춘 곳은 바닷가에 있는 천후묘(天后廟)라는 사찰이다. 바다를 향해 있다. 어부들의 안녕을 비는 곳이다. 원색으로 울긋불긋하게 색칠해 놓았다. 복을 받기 위해 비는 곳으로 동자 상 및 바다의 수호신이라는 동상(Tin Hau and Kwun Yum Statues, 天后及觀音像)도 보인다. 사람크기의 2배 정도 되는 크기다. 천년을 사는 말이라 불리는 천수마, 만수정 등 홍콩과 마카오 등에서 볼 수 있는 남방계, 중국 절이다. 사당은 주로 목숨 수자와 일만 만자 등 건강과 복을 비는 한문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별 내용은 없는 것 같다. 이 화려한 색채의 사찰보다도 오른쪽에 아담하고 아름다운 해변이 우리의 발길을 끌었다. 푸른 산을 등지고 포근히 곡선을 이룬 깨끗한 해변이다. 이곳이 淺水灣 리펄스 베이(Repulse Bay)란다. 머리를 들고 주변을 보면 서양식 고급 주택과 고급 리조트, 아파트가 태양빛에 밝게 반사되어 빛나고 있다. 이 해안은 영화 촬영의 무대로 이용되기도 한 유명한 곳이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바다와 깨끗한 백사장, 알맞게 자리 잡은 해안에서 몇 방의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한 여름에는 사람이 많이 몰린단다.
모래사장 중간에서 산 쪽으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평범해 보이는 고층 아파트 중간층에 구멍이 뻥 뚫려있다. 엄청나게 집값이 비싼 이곳에 이상하게 구멍을 만들어 8채 정도의 공간이 빈 것을 보니 이상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 구멍의 이름이 용의 문이란다. 홍콩에서는 건축 설계를 아무리 잘해도 건축시공하기 전에 반드시 풍수지리 점쟁이를 찾아가서 승낙을 받는데 이 점쟁이가 설계를 맘대로 바꿀 수 있단다. 이 아파트 설계가 끝난 후 풍수지리를 찾아가 물으니 이곳에 아파트를 세우면 망한다고 해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단다. 똑같은 소리를 들었단다. 이위치가 용이 다니는 길인데 이곳에 아파트를 세우면 용이 다니는데 방해가 되므로 집안에 우환이 생겨 망한다고 한다. 그 해법으로 용이 다닐 수 있도록 건물 중앙을 뻥 뚫어 놓았단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보면서 그들은 풍수를 믿는다. 그 후 이 건축주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홍콩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하는 것이 풍수지리란다.
152년간의 영국 식민지 통치가 종식되고 주권이 오는 7월 1일 이후 홍콩으로 넘어간다. 홍콩의 총독 관저는 어떻게 될까 라는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조선일보). 홍콩시내 한 복판에 어퍼 알버트 가 금싸라기 당에 위치한 빅토리아 풍의 총독관저는 평당 시세를 한화로 계산하면 2억3천만 원이란다. 땅 값만 1조7천억 원에 이른다. 이 관저는 1855년 제 4 대 총독 존 보오링이 입주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25명의 영국인 총독이 거쳐 갔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또 다른 지배자 일본인 총독이 살았던 곳이다. 일설에는 풍수지리를 몹시 따지는 홍콩 사람들의 성향 때문에 둥첸화 홍콩 특구 초대 행정장관이 입주를 꺼린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피크산을 뒤로하고 빅토리아 항 바다를 바라보는 명단 자리였으나 70년대 이후 주위에 고층빌딩이 가득 들어서 풍수가 크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특히 80년대 관저 말 관저 바로 이웃에 들어선 폭이 315m의 70층짜리 중국은행 빌딩은 총독관저의 기를 빼앗기 위해 중국정부가 일부러 풍수 공학적 건축방법을 도입해 지은 것 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빌딩은 외관이 거대한 칼 모양으로 마치 총독관저를 잘라버리는 , 양단하는 형세를 취하고 있어 홍콩의 풍수가들은 관저에 살기가 넘친다고들 해석하고 있다. 이 건물의 차후 용도는 기념관, 박물관, 공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버스를 타고 간다. 가장 가난하고 오래된 생활 모습인 선상생활의 모습을 차창 너머 보였다. 3.5평에서 3대가 살고 있다는 고층 아파트. 평당 2억이 넘는다는 호화 아파트, 중국은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별 표시 없이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인구 당, 면적 당 세계에서 제일 많이 벤츠 고급 승용차를 갖고 있는 나라란다. 이런 저런 홍콩 특징을 들으며 다음 코스로 옮겨 갔다. 목욕을 안 하는 민족, 약국은 없고 거의 한약방이 점유한 나라, 없는 물건이 없는 쇼핑의 나라, 현대화된 도심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은 미신 속에 사는 민족. 25,000불의 국민소득이지만 검소한 민족이란다.
버스를 타고 구룡반도를 건너가기로 했다. 버스를 배에 싣고 건너갈 건지, 다리가 있는지 궁금했다. 의외로 수중터널로 간다. 바닷물 속에 튜브를 만들어 그 속으로 달리는 것이다. 위, 아래 좌우로 모두 바닷물이 있고 긴 호수 안으로 우리차가 들어가는 것이다. 총 길이가 2km이고 가장 낮은 곳이 아래로 21m이고 위로 25m의 수심이란다. 튜브의 지름은 7.5m, 두께는 78cm의 15개의 특수한 관으로 연결되었단다. 영국, 독일이 모두 실패하고 일본의 기술이 만들었다. 실제 작업은 대우와 현대가 일을 했다니 대견스러웠다. 외국에서는 잘 하는데 국내에서는 부실공사를 하는 원인은 어디 있을까? 둥근 벽에 빨간 불이 있는데 번호가 있다. 11번은 11번째 관이란다. 해저 도시가 상상의 도시만은 아닌 것 같다.
구룡반도를 건너자마자 번화가를 지나 약간 으슥한, 퇴색된 건물이 있는 골목에 차를 세웠다. 다이아몬드 전시장이란다. 외벽에는 화려함이 없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주변 분위기다. 2층으로 올라가니 외부와 차단된 제법 큰 다이아몬드 판매장이 있었다. 안내 아주머니의 능숙한 한국어로 다이아몬드 설명을 들은 후에 매장에 흩어졌다. 쉽게 얘기해서 많이 사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나온 우리 여행객들은 봉이었다. 끈질긴 그들의 꼬임에 하나 둘 사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돈도 없이 구경만 하는 아내도 신나게 설명을 듣고 흥미를 갖는다. 우리는 주는 커피를 들고서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 의자에 앉아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무료하게 서너 시간이 지나자 가이드가 미안한 듯 세팅한다는 두세 명을 남겨두고 우리 일행을 데리고 대형 면세점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맘껏 물건을 사란다. 저녁 7시에 면세점 휴식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앞으로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았다. 관광을 온 건지 쇼핑을 온 건지 모르겠다. 은근히 화가 났으나 짜증내면 뭐하겠나 싶어 면세점 뒷문으로 나와 첨샤추이 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면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자유를 얻은 기분이다. 그냥 걸어 거리를 보며 걸어가니 기분이 좋았다. 거리는 활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2층 버스를 비롯한 차량 홍수가 복잡하게 했다. 첨사츄이 역 옆에 있는 구룡공원으로 갔다. 도심 속에 조그마한 공원이지만 제법 다양한 휴식 공간이 있었다. 조각품들, 분수와 호수, 실내 수영장, 울창한 숲에는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로 보이는 초라한 외국인이 앉아 있다. 조그만 공간에는 노란 꽃의 수선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공원을 나와 상가밀집지역으로 간다. 그림과 사진으로만 보던 네이단 거리다. 선물가게와 브랜드 가게, 환전상 등 엄청난 상가가 있고 많은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걸으며 구경만 해도 재미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진하게 느껴져 좋다. 간판은 한문과 영어 그 사이에 간간이 한글 간판도 보였다.
구룡반도 끝 부분인 동부는 첨사츄이 동부라 불리는데 새로 생긴 매립지로 고급 호텔과 오피스 빌딩, 고급 쇼핑센터가 즐비했다.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모일 시간이 다되어 택시를 잡아타기로 했다. 말이 안 통한다. 지도를 보여주니 모르면서 안다고 기사는 큰소리친다. 번쩍이는 길을 달려 내려준 곳은 면세점이 아니라 홍콩 서쪽의 선착장 부근으로 버스 터미널, 택시 승차장이 있는 곳이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택시 안에 비치된 지도에서 우리 면세점을 찾아 보여주니 3분 정도 달려 면세점에 내려주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7시 전이었다. 우리 일행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황금 같은 오후 시간을 모두 쇼핑으로 끝낸 셈이다. 이들은 관광보다 쇼핑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홍콩을 모르니 보고 싶은 곳도 없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또 기억난다.
저녁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홍콩 섬이 마주 보이는 선착장으로 갔다. 일품이었다. 화려함이 바다에 비쳐 더욱 찬란했다. 반짝이는 네온은 없단다. 시내 복판에 있는 공항의 활주로 때문에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이착륙을 돕기 위해 반작이는 불빛은 없으나 화려하게 불 밝힌 야경의 건물들은 너무 멋있었다. 각 나라의 경제력을 과시하듯, 대형 네온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일본 회사들의 간판들이 많이 보인다. 산요, 샤프, 시티즌, 미타, 니콘, 히다치, 그 사이에 간간히 우리 기업 SKC, KAL 등이 보이고 외국 기업 필립 등이 보였다. 현대, 삼성, 엘지를 찾았으나 이곳에선 보이지 않았다.
밤 8시 경에 선상파티가 준비되어있어 부두에 가니 족히 300여명이 넘어 보이는 한국 관광객이 보인다. 여행사별로 듬성듬성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엄청난 인원이다. 한국 명동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대형 2층 배에 올랐다. 예약된 자리에 둥근 탁자를 중심으로 7~8 명씩 앉았다. 한국인이 주류를 이루고 간간히 일본인, 서남아시아인도 보인다. 앞에 있는 무대에서는 3류 가수가 밴드에 맞추어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신없이 복잡한데 능숙한 중국 요리사들이 음식을 날라다준다. 배는 서서히 빅토리아 항을 항해한다. 요리가 나오는 접시는 낡아서 이가 빠져있다. 오래되고 전통 있는 음식점일수록 그릇의 이가 많이 빠져있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들으면서 식사를 기다렸다. 홍차만 계속 부어준다. 또 다른 그릇에는 홍차가 있는데, 찐 새우를 손으로 먹은 후 손을 씻는 그릇이란다. 홍콩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비롯한 기름이 많은 육류를 좋아하는데 홍차와 함께 먹는다고 한다. 이는 음식 맛을 좋게 하고 기름을 분해해서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방지하고 건강을 지켜준다고 한다. 새우 먹는 손의 기름이 깔끔하게 씻겨 지는 것 같다. 계속 홍차를 마시니 배가 부르는 것 같다. 잔에 홍차가 비면 계속해서 직원이 잔을 채워준다. 주둥이가 긴 주전자로 홍차를 따르는 기술이 신기하다. 신속하고 과감하다. 몇 가지 양념과 찌든 김치가 반찬의 전부다. 순서대로 음식이 나왔다. 고기튀김, 해물요리, 만두종류, 나올 때마다 정말 맛있었다. 국수종류만 식탁에 남아있고 모두 깨끗이 비웠다. 윤 수일의 ‘아파트’라는 노래가 나오고 제법 흥이 올라가니 디스코 타임도 있다. 식당이 서서히 춤판으로 바뀌어간다. 식탁에는 남은 음식들이 쌓인다. 배가 부르다. 아래층에 내려와 조용히 주변 야경을 구경했다. 배는 서서히 움직여 구룡 만을 돌아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선상이지만 음식만은 맛있었다. 특이한 체험이다. 식당에서 간간히 여자가 사진을 찍더니 30분도 안 되어 얼굴이 들어있는 열쇠고리를 만들어 와서 팔고 있다. 개당 1000원이다. 구경만 했다.
대형 관광버스에 올라타고 밤길을 지나 약간 어둡고 조용한 외곽으로 달렸다. 숙소를 가는 것이다. 숙소는 조용한 신세계 지역에 있다. 신계(新界)는 홍콩 영토의 상당히 큰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그 존재 가치는 구룡이나 홍콩 섬과는 약간 다르다. 영어로 부르는 명칭이 뉴 테리토리(신영토)인 것처럼 , 이곳은 최후로 영국식민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얻은 영토가 아니고 99년 동안 한정된 조차에 의한 영토다. 영국이 중국에서 빌린 것이다. 이 기한이 끝나는 1997년, 홍콩 반환의 실마리를 만들어 낸 것이 실은 신계(新界)인 것이다. 뉴 타운은 건설되어 계획적으로 잘 정비되어있었다. 지하철과 구룡철도 변에는 고층빌딩이 제법 보인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리버사이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새로 지은 것이라 호텔은 깨끗하고 잘 꾸며져 있었다. 777호의 열쇠를 받아 숙소에 들어서니 약간 추웠다. 이곳은 물 뿐 아니라 냉장고에 있는 모든 음료가 유료다. 홍콩 풍경을 그린 그림이 벽을 장식한 훌륭한 객실이다.
우리는 그냥 자기에 아쉬워 거리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잘 정비된 강변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다리에 장식된 네온이 강물에 비쳐 아름다웠다. 다리를 건너니 대형 쇼핑몰이 있다. 지하철역도 보인다. 밤 10시가 가까워오는데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2층 버스를 타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노선이 맞질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서툰 영어로 학생에게 물어 지하철 표를 샀다. 우리의 목적지는 구룡의 야시장인 남인가와 옥외 펜션 마켓의 여인가다. 왕각(旺角)에서 내리기로 했다. 지하철은 새것이다. 시설도 우리 수준과 비슷했다. 왕각에 내려 무조건 번화가로 걸어갔다. 가게 문이 조금씩 닫히고 있다. 지하철 요금은 사전(沙田)에서 몽콕까지 5.5 홍콩달러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몽콕역에 와서 표를 사려고 매표소에 가니 1등 요금표 밖에 없었다. 사전에 동전이 있었다면 기계에서 표를 살 수 있는데 아쉬웠다. 11홍콩달러 요금을 지불하니 배가 아프다. 좋은 체험이라 생각했다. 타는 곳으로 간다. 타는 장소를 잘 모르겠다. 기차는 들어왔다. 곧 출발할 것 같아 그냥 올라탔다. 1등 칸이 아니었다. 1등 칸은 앞으로 한참 가야한다. 그냥 가기로 했다. 잘 모르니 고생하는 게 몸이고, 죽어나는 게 돈이구나. 사전 역에서 내렸다. 다리도 아프고 밤이 너무 늦어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택시 기본요금이 14홍콩달러였다. 씻고 자려니 칫솔이 없다. 호텔시설에 비해 서비스가 엉망이다. 밖에 슈퍼에서 물 2개와 아이스크림, 면도기, 칫솔을 사왔다. 뜨거운 물에 진하게 샤워를 하고 아무생각도 없이 침대에 쓰러져 잤다. 무척 피곤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