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史略 卷之二
고구리사략 권2
원문출처 ;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07.pdf
第四世 閔中帝紀
제4세 민중제기
帝,諱觧邑朱,光明帝之季子也.母,松太后.性寬厚好賢.大武之伐扶余時,守都得冝,故信其能,而臨崩寄以大事.群臣以慕本為不肖而立之.卽位於鸞臺,以解憂為太子戒之以善.
제는 휘가 해읍주解邑朱로 광명제光明帝의 막내아들이고, 모친은 송松태후이다. 성품은 너그럽고 후하였으며 현명한 이를 좋아하였다. 대무大武신제가 동부여扶余를 치던 때에 (해읍주가) 도성(西都?)을 지켜냄이 만족스럽고 마땅하였던 까닭에 능력을 믿어서 죽음을 앞두고 큰 일1)을 맡겼더니, 군신들도 모본慕本2)이 불초하여 그를 보위에 세웠다. 란대鸞臺3)에서 즉위하였고, 해우解憂를 태자로 세우고서 선善한 방도로써 타일렀다.
1)軍國大事 즉 나라를 經營하는 일
2)解憂의 諡號
3)西都之王臺
○元年甲子,十一月,大赦. 群臣請改元,辞以無德. 以烏后爲皇后,解憂為嗣. 是年,濟攻羅蛙山狗壤. 漢,陰麗華死,與匈奴合市.
○원년갑자(CE64,[大武37))4), 11월, 널리 사면하였다. 많은 신하들이 년호 바꾸길 청함에, 덕德이 없다면서 고사하였다. 오烏후를 황후로 삼고, 해우解憂를 후사로 정하였다. 이해에 백제濟5)가 신라羅의 와산蛙山6)과 구양狗壤7)을 공격하였다. 한漢에선 음려화陰麗華8)가 죽었고, 흉노匈奴와 저자市9)를 합쳤다.
4)年號를 새롭게 하지 않았으니, 元年을 大武37年으로 볼 수도 있겠다.
5)溫祚가 그 都城을 牛壤과 尉那城을 거쳐 漢山으로 옮긴 후로 馬韓을 服屬하고 新羅를 3년간 밀어내서 新羅의 일부를 차지하였던 伯濟(後日에 百濟로 國名이 바뀐다)
6)山東省 巨野嘉祥間 臥龍山?
7)句陽 則山東滋陽 則兗州? 龜山之壤?
8)光武帝 劉秀의 둘째 妻
9)市場
○二年乙丑,三月,宴群臣於西都. 五月,東部大水,上與皇后問民賑飢. 九月,烏皇后生鶴公主,以后兄烏芾為右輔. 漢度遼營斷南北虜.
○2년을축(CE65), 3월, 서도西都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5월, 동부東部10)에 큰물이 져서, 상이 황후와 함께 백성들에게 물어서 굶주리는 이들을 구휼하였다. 9월, 오烏황후가 학鶴공주를 낳으매, 오황후의 오빠 오불烏芾을 우보로 삼았다. 한漢의 도요영度遼營이 남南・북北 로虜11)들의 교통을 끊었다.
10)順奴故地等
11)漢에겐 非漢人인 敵들로 氐・羌・匈奴・鮮卑等 ○三年丙寅,七月,與烏皇后東狩,獲白獐,飼之. 濟取蛙山,置戌二百人,尋失. 東都無雪. 漢,昜殺其弟荊.荊以皃類於秀,言三十得天下,欲起兵而伏罪.弟英好佛,縑紈助饌. 以后弟烏希為中畏大夫,麻勁太輔,松宝左輔.
○3년병인(CE66), 7월, 오烏황후와 함께 동쪽으로 몰이사냥狩12)을 하였다. 흰 노루를 잡아서, 먹이를 주어 길렀다. 백제濟가 와산蛙山을 빼앗아 수자리 200인을 두었으나, 오래지 않아서 (신라에게) 빼앗겼다. 동도東都(初都)엔 눈이 오지 않았다. 후한漢에선 유양昜13)이 동생 유형荊14)을 죽였다. 형荊은 유수秀15)와 모습이 비슷하였으며, 나이 삼십이면 천하天下를 얻어야 함을 말하고서 기병起兵하려 하였다가 죄罪를 받은 것이었다. 동생 영英16)은 불도佛道17)을 좋아하였다가, 비단縑紈18)이 찬거리饌19)를 도왔다. 오烏황후의 남동생 오희烏希로 중외대부를, 마경麻勁으로 태보를, 송보松宝로 좌보를 삼았다.
12)軍士訓練을 겸한 사냥
13)昜則陽은 後漢 孝明帝(顯宗)의 名이고, 諱는 莊, 字는 子麗.
14)廣陵思王荊
15)後漢 世祖 光武帝의 名.
16)楚王英
17)浮屠也.
18)罪를 免하는 代價로 贖바쳤던 黃縑白紈30匹
19)伊蒲塞桑門之盛饌; 그이의 邊方 草家 佛門의 豪華로운 飯饌
○四年丁卯,四月,與烏后田于閔中原,祀烏伊祠.七月,又田,見石窟,而謂烏后曰“吾死,冝葬于此.”后曰“粗殘,奈何.”上曰“東明,茅茨不剪.松讓,朽木為宮.吾安敢奢其死骨哉.汝亦從我于斯,可也.”后笑曰“女必從夫.陛下雖無言,妾當自從.” 解憂太子遊三賢古基,尋熊心山聖母古宅,名其地曰慕本原. 九月,東海使人高朱利献鯨目于烏后.夜有光當燭.時,烏后又産悅公主,上謂后曰“解憂改過而孝我夫妻,可以傳位.與汝為仙,何如.”后曰“解憂雖吾出,其心未可測.待我産一男子傳之未晩.”上笑曰“汝亦老矣.安能久産哉.”后不悅. 扶余內乱.命再思麻[樂]等,率達賈穆卓杜魯徃鎭之. 羅,以順貞為伊飡,委政. 漢置五經師,羽林通孝經,匈奴入學.
○4년정묘(CE67), 4월에 오烏후와 함께 민중원閔中原20)에서 사냥하여 오이烏伊21)사당에 제사하였고, 7월에 또 사냥하다가 석굴石窟을 발견하고서 오烏후에게 말하여 이르길 “내가 죽거든 꼭 나를 이곳에 장사하시오.”라 하였더니, 오후가 아뢰길 “거칠고 흉할 터인데, 어쩌지요?”라 하매, 상이 “동명東明께선 띠로 지붕을 잇고서 다듬지도 않으셨고, 송양松讓도 썩은 나무로 궁을 지었었소. 내가 어찌 감히 죽은 해골을 호사시키겠소. 그대 역시 나를 따라 이리로 와야 할 것이오.”라 하니, 후가 웃으며 아뢰길 “여필종부女必從夫입니다. 폐하의 말씀이 없어도 첩은 응당 알아서 따를 것입니다.”라 하였다. 해우解憂태자가 세 현신三賢臣22)의 옛터에서 노닐다가, 웅심산熊心山23) 성모고택을 찾아보고 그곳을 모본원慕本原이라 이름 하였다24). 9월엔 동해東海25)사인使人26) 고주리高朱利가 오烏후에게 고래눈알을 바쳤는데, 밤에는 빛이 나서 촛불을 켠 듯하였다. 이즈음, 오烏황후가 또 열悅공주를 낳자, 상이 후에게 이르길 “해우解憂가 개과改過천선하여 우리 내외에게 효도하고 있으니, 임금 자리를 물려줌이 좋겠고, 그대와 함께 선仙이나 하는 것이 어떻겠소?”라 하니, 후가 아뢰길 “해우는 제가 낳긴 하였어도, 그 속내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사내자식 하나를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아이에게 물려줘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 하매, 상이 웃으며 이르길 “당신 역시 이미 늙었는데, 어찌 능히 오래도록 낳을 수 있겠소?”라 하였더니, 후가 달가워하지 않았다27). 동부여扶余에 내란內亂이 일어서, 재사再思와 마락麻樂28) 등에게 명하니, 달가達賈・목탁穆卓・두로杜魯를 이끌고 가서 진압하였다. 신라羅가 순정順貞으로 이찬伊飡을 삼아 국정國政을 맡겼다. 후한漢이 오경사五經師를 두어, 우림羽林들이 효경孝經에 꿰뚫더니, 흉노匈奴가 입학하였다.
20)閔中帝가 石窟에 묻힌 이후로 붙여진 地名일 듯.
21)芻牟之功臣, 歷黃龍王及卑离假王等
22)順奴故地 毛屯谷의 세 村長들이자 芻牟의 臣下들이었던 再思・武骨・黙居
23)河北省東北部인 承德・都山間 ‘熊虎頭+牛心山’之境
24)自身이 죽으면 묻힐 곳으로 定하였다는 意味이련가?
25)現今遼河平原? 現今黑龍江下流之境?
26)品等이 中兄 上大夫인 使者에 해당하는 듯함.
27)또 아들이 아닌 딸을 낳음에 불초 해우가 아닌 다른 아들을 낳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임에 마음이 상한 듯함.
28)底本에는 “麻藥”으로 적혀있으나, 이후의 모든 기록에는 “麻樂”으로 나옴.
29)芻牟가 鶻岺湖邊에 東都를 짓고서 國事를 돌보던 宮闕 殿閣인 듯
○五年戊辰,正月,扶余乱平.再思請娶王文女,許之. 五月,上崩[於]東都,春秋六十二,遺命立解憂太子.太子卽位於東都神宮,改元慕本,葬帝于石窟.羣臣欲作陵,烏后曰“吾止禅位之事以違夫志,且作新陵,是重違夫志也.吾亦死,當敀此,使後人知帝之儉德.而為皇后者勿違夫志,可也.”群臣拜伏.
○5년무진(CE68), 정월, 동부여扶余의 내란이 평정되었다. 재사再思가 왕문王文의 딸과 혼인하겠노라 청하여, 허락하였다. 5월, 상이 동도東都에서 죽으니, 춘추 예순 둘이었고, 명을 남겨 해우解憂태자를 보위에 세웠더니, 태자가 동도신궁東都神宮29)에서 즉위하여 년호를 모본慕本으로 바꾸고, 민중제를 석굴石窟에 장사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새로이 릉陵을 지으려 하여, 오烏후가 이르길 “나는 선위禅位를 막아서 지아비의 뜻을 어겼소. 게다가 새로이 릉을 지으면, 이는 지아비의 뜻을 거듭해서 어기는 것이오. 나 역시 죽으면, 응당 이곳으로 와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선제의 검소하신 덕을 깨닫게 하겠소. 그리고 황후가 된 이들은 지아비의 뜻을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이오.”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엎드려 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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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지기님, 각주 부분이 본문과 함께 올려지지 않습니다... 방법이 없는지요?
첫댓글 감사합니다.방법이 없슈~
안녕하십니까? 수정해야 할 곳입니다.
(1) 二年乙丑, 五月, ..., 上與皇后 -> 上與烏皇后, 황후 ->오황후
(2) 四年丁卯, 九月, ..., 羅,以順貞為伊飡 -> 羅,以順貞為伊伐飡, 이찬 -> 이벌찬
고맙습니다!
화일을 다듬고 정비하는 작업 중에도
혼자서 하는 일이라 무봉하게 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부지불식간에 실수가 계속됩니다.
보이는 족족 말씀을 주시길 앙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