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근(安柄根, 1962년 2월 23일 ~ )은 현재 은퇴한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가 고향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참가하여 71kg 이하급 결승전에서 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챔피언 이탈리아의 에치오 감바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에도 1985년 세계 선수권 대회,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같은 무게급 타이틀을 보유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하였지만, 아깝게 탈락하고 말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코치로서 참가하였고, 현재는 전문적 유도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진선유(陳善有, 1988년 12월 17일 ~ )는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소속이다.
경상북도 영천이 고향인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2004년 4월,주니어 대회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하던 선수였지만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광문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 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달 전 중국의 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토리노 동계 올림픽 한국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이 되었고(1500m,1000m,3000m 계주), 2007년 단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다. 2007년 ISU 세계선수권대회 3년 연속 우승 하였다. 07/08 6차 월드컵에서 중국 선수의 몸 싸움에 밀려 오른쪽 발목 바깥쪽과 안쪽 인대에 모두 손상을 입었다. 10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았다. 재기를 위해 나간 10/11 선발전에서 대표팀 복귀를 눈앞에 뒀었으나 타임레이스 3000m·1500m 1위에도 불구하고 타임레이스 1000m,500m에서 밀려 탈락했다.
김진욱(金鎭旭, 1960년 8월 5일 ~ )은 전 한국 프로 야구 선수이자, 2011년 현재 한국 프로 야구 두산 베어스의 감독이다.
영천중앙초등학교 출신으로 춘천중학교, 천안 북일고등학교, 동아대학교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고, 프로 야구 선수 시절198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OB의 1차 15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다. 사이드암 투수로, 1992년까지 9시즌 동안 OB 베어스에서 활동하였으며, 1993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하고 은퇴했다. 프로 야구 통산 53승 71패 16세이브, 평균 자책 3.61을 기록했다. 현역 시절 선동열의 천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부상으로 인해 현역을 일찍 마무리했다.
은퇴 이후쌍방울에서 은퇴한 후 주위 권유로 대만 프로 야구에 도전했지만 6개월 동안 공도 제대로 못 던지고 돌아왔다. 귀국 후 대전에서 친형이 운영하는 일식집에서 일했으나,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지도자로 전향하여 1998년 분당중앙고등학교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2007년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아 친정 팀의 코치로 복귀했고, 2011년에는 투수 노경은과 김창훈의 부활에 도움을 주는 등 소통 능력을 높이 인정받았다. 2011년 10월 9일 두산 베어스와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의 조건으로 감독 계약을 체결한다.
김문수(金文洙, 1951년 8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현재 경기도지사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출생했다.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노동 운동에 뛰어들어 1978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85년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1970년대 노동 활동을 하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좌파 사회주의 노동운동 조직이었던 서울노동운동연합의 핵심 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이던 1986년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2년 6개월간 복역했다. 1990년 민중 중심의 좌파정당을 지향한 민중당을 이재오와 함께 만들어 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하고, 1994년 김영삼에 의해 발탁되자 "혁명의 시대는 갔다"는 말을 남기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1994년에 창당한 민주자유당에 입당한 후 그동안의 노동운동 입장을 완전히 바꿔 한나라당에서 줄곧 활동해 왔다. 1996년 민주자유당의 후신인 신한국당 공천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16대, 17대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역임 후 2006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민선 4기 도지사로 당선됐다. 2010년 6월 2일에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전재희는 경기도 광명시장, 국회의원을 지내고,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경상북도 영천출신으로, 대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 영남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그녀는 1973년 행정고시에서 홍일점으로 합격하고, 문공부 방송관리국 사무관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 노동부로 옮긴 그녀는 그때부터 만 20년간 줄곧 노동부에서 근무했다. 노동부 직업훈련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1994년 4월 그녀는 인구 3만 명 규모인 경기도 광명시의 시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4대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광명시 시장에 당선되었다. 이로써 전재희는 한국 공직사회에서 여성행정고시 합격 1호(1973), 고시출신 첫 여성국장(노동보험국장, 1992), 최초의 임명 여성시장(광명시장, 1994)이라는 경력에 이어 민선(民選) 여성시장 1호라는 경력을 추가했다.
전재희는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그녀는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2004,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경기 광명 지역구에 출마해 승리하며 3선에 성공했다. 2007년에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윤종용(尹鍾龍, 1944년 1월 22일 ~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 출생이며,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삼성전자 상임고문,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 및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을 맡고 있다.
그의 아들이 연기자 윤태영이다.
첫댓글 땡큐쌤 낼뵐께요....ㄱ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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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저학년들 숙제로 종종 나와요.. 우리고장에서 배출된 현대인물이라고....진작알면 좋았을 걸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