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1월 17일 목요일, 맑음.(캄보디아)
새벽 4시 30분에 잠에서 깼다. 5시 30분에 차를 타고 톤레사프 호로 나가야하기에 일찍 일어난 것이다. 긴장되니 밤에 잠을 설쳤다. 몇 번이고 작은 손전등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비춰보았다. 프놈펜까지 이동해야 한다. 짐을 꼼꼼하게 챙겼다. 새벽 5시 30분, 아직 날이 어둡다. G.G.H로 내려갔다. 주인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쑥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픽업차가 왔다. 운전석 옆에 우리는 앉았다. 실내에 앉은 것이다.
픽업 차는 우리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골목을 다니며 다른 손님들도 태웠다. 모두 짐칸에 태웠다. 골목마다 작은 게스트 하우스가 많았다. 씨엠립 시내를 벗어나데 3분도 걸리지 않았다. 포장은 되어있으나 움푹 파인 곳이 많아 달리는데 불편하다. 흙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자기 집 앞은 물을 뿌리는 사람도 있다. 20분을 힘들게 달려가니 비포장 뚝 길이 나온다. 뚝 가에는 나무와 짚으로 만들어진 허름한 집들이 보인다. 날이 샌다.
오토바이들이 라이트를 켜고 오고 간다. 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에 잠긴 듯한 넓은 물 위에 풀과 나무가 새벽빛에 까맣게 보인다. 이 제방이 배를 통해 들어오는 생선들이 매매되는 부두역할을 한다. 70년대 잠시 머물렀던 청계천 뚝 방의 판자촌이 생각난다. 비와 더위를 피하는 최적의 최저가의 집들이다. 우리 차가 막혀서 섰다. 오토바이 바퀴를 단 경운기가 느리게 움직인다. 뚝 가에 노점상들이 줄로 섰다.
좁은 뚝 길에 자전거, 오토바이, 차량, 사람들로 붐빈다. 물 위의 수상가옥들이 보인다. 배도 보인다. 물이 점점 넓어진다. 우리 차는 또 달린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이 보인다. 물과 바나나와 방을 샀다. 부두라는 시설도 없는 곳이 끝이다. 차는 서고, 우리는 내렸다. 새벽 공기는 시원하다. 날이 훤해졌다. 쾌속정이 한 대 보인다. 나무를 얹어 사람들을 타게 한다. 아침 6시 30분경에 티켙을 보여주고 짐을 싣고 배에 올랐다.
종류가 다양한 배들이 주변에 있다. 모두 목재선이다. 흑백사진에서 보는 듯한 낡은 배들이다. 봉고차가 시꺼먼 매연을 내뿜으며 들어온다. 같이 타고 갈 관광객들이 큰 배낭을 메고 내린다. 지정석 17. 18번 좌석에 앉았다. 출발을 기다린다. 오전 7시가 되니 배가 서서히 움직인다. 대부분 서양 사람들은 배 지붕에 자리를 잡고 촘촘히 앉아서 일광욕을 하면서 바람을 맞으며 간다. 수상가옥과 배들이 있는 사이로 서서히 배가 움직여 간다.
통통배와 수상가옥과 물이 너무 멋있다. 배들의 통통 소리에 아침이 열린다. 손을 흔들어 주는 꼬마가 정답다. 배는 아코르 와트가 그려진 삼색의 캄보디아 국기가 펄럭인다. 아침 7시 출발 12시에 도착예정이다. 강어귀의 풀과 나무에는 건기와 우기의 표시가 선명하다. 배가 점점 빨라진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달린다. 부양선 같이 물위를 떠서 달리는 것 같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다. 수평선 끝 점에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
엄청나게 넓은 호수, 물의 양도 대단하다. 갈매기가 날아가는 것이 영락없이 바다다. 조그만 배들이 잔잔한 물 위에서 몇 가닥 줄로 고기를 잡는다. 온 식구가 모두 이 배에 매달려 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이 배가 학교고 놀이터이고 집인 셈이다. 또 그들의 한계인 것 같다. 그래도 배 윙에서는 즐겁다. 우리가 탄 배에서는 캄보디아 유행가가 반복해서 들려온다. 갑판위의 사람들은 지겨운 듯 체념한 듯 움직임이 없다.
물을 가르며 달리는 엔진 소리만 시끄럽다. 물위의 나뭇가지 위에 하얀 백로들이 목련꽃 같이 나무위에 하얗게 앉아있다. 정권이 안정되어서 이 호수를 잘 관리하면 공업, 농업, 수산업, 관광업이 엄청 발전할 것 같다. 씨엠립에서 프놈펜까지 육로로는 15시간이 걸린다. 배로 가면 5시간이니 많이 단축되는 셈이다. 어제 준비한 간식을 먹는다. 바나나와 방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다.
배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같은 속도로 물을 가르며 달린다. 수상교회인 듯 물 위 가옥에 십자가가 보인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온가족이 웃통 벗고 낚시를 한다. 배가 달릴 때 앞에는 은빛 고기들이 떼를 지어 튀어 오른다. 햇빛에 반사된 비늘이 반작이는데 멋지다. 한참을 달리니 당이 보인다. 강 같은 주변 모습이다. 멀리 수상가옥이 줄지어 있다. 바람에 머리가 엉망이다. 통나무 기둥 위의 목조 가옥이 많이 보인다.
집집마다 TV안테나가 산만하게 보인다. 숲도 있다. 넓은 강에 다리가 보이고 현대식 건물들이 보인다. 프놈펜이다. 이 강이 메콩 강의 한 줄기 인 것 같다. 강이 넓다. 12시 25분에 배가 선착장에 멈추어 섰다. 배에서 내려 걸어가 철문을 나서니 각종 호텔이나 여행사에서 나온 젊은이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들은 정보대로 걸어서 Capital Hotel에서 대기해 놓은 봉고 버스에 탔다.
여러 외국인과 함께 호텔에서 나온 호객꾼이 지도를 한 장씩 준다. 날씨는 덥고 지친다. 차가 움직여 시내로 들어선다.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과 북적대는 자전거들과 오토바이들이다. 길가의 상점들이 활력이 넘쳐 보인다. Capital Hotel은 낡은 4층 건물이다. 호텔이라기보다. 호스텔 이다. 아래층에는 식당이다. 식당에서는 각종 여행 업무도 대행해 준다. 2층부터는 숙소다. 숙박비는 2인 1실 4달러다. 길가라 약간 시끄럽다. 시내에 있어 편리하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1층에 내려와 베트남 비자 신청을 부탁했다.
당일 나오는 비자 요금은 60달러이고 내일 오후가지 나오는 비자는 35달러란다. 35달러로 나중에 지불하기로 하고 여권을 맡기고 시내 구경을 나왔다. 거리에서는 조그만 노점상이 환전을 해 준다. 사람들이 많아 도로를 걷기도 힘들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에 엄청 복잡하다. 상점마다 물건들이 가득하다. 중앙 시장을 향해 걸었다. 프놈펜 시내는 작아서 지도 한 장 들면 걷기가 쉽다. 약간 덥다. 먼지가 많아 약간 불편하다.
14세기 말, 펜이라는 호족의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불심이 깊은 여성이었다. 어느 날 펜 부인은 강으로 흘러 내려온 썩은 나무속에서 불상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을 집 근처 조금 높은 언덕위에 불당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이것을 펜 부인의 언덕이라 불렀고 아울러 그대로 이 도시의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펜 부인의 언덕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며 언덕 위에는 오래된 스투파와 사원이 남아있다.
중앙시장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환전을 했다. 조그만 노점상이 담배를 팔 듯 환전해 준다. 1달러에 3,900R이다. 3달러를 환전해서 손에 쥐었다. 중앙시장을 찾기는 쉬웠다. 이름그대로 프놈펜 시가지 중심에 있는 시장이다. 지붕이 돔 형태로 되어있다. 금방 눈에 들어온다. 시장에 들어서니 의외로 다양한 상품들이 가득하다. 돔의 바깥쪽은 외곽을 빙 둘러싸고 야채, 생선, 고기 등의 식료품을 팔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주물제품과 선물이 될 만한 상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카세트 테이프, 전자계산기, 가전제품도 많이 눈에 띈다. 제일 안쪽에는 귀금속 매장이 있다. 화폐 리엘의 환율이 불안하여 전에는 금으로 많이 바꾸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장에 둘러보니 귀뚜라미를 번데기 같이 식용으로 팔고 있다. 살 것이 마땅치 않은데 먹을 것은 많다. 국수를 바닥에 앉아서 한 그릇씩 사 먹었다. 시장바구니에 자그마하게 준비해 온 꼬치도 먹을 만했다. 빨간 소스가 우리 입에 맞다.
바나나 밥도 사먹어 본다. 재미있는 곳이 풍부한 농산물과 수산물 파는 곳이다. 민물고기와 바다고기로 풍성하고, 과일도 풍성하다. 말린 생선과 젓갈 냄새가 우리와 같다. 고구마 오이 야채 호박, 계란, 오리알 등 모두 친근감이 간다. 그런데 막 부화하기 전의 오리 알을 삶아서 판다. 거의 오리의 모습, 털도 있는 것을 삶아서 숟가락으로 맛있게 먹는다. 도저히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예쁜 아가씨들도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다.
오이와 여러 과일을 사서 손에 들고 중앙 시장을 나왔다. 숙소를 향해 걸어오다가 고속버스터미널을 만났다. 베트남의 호치민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 국제 버스터미널 같다. 먼지와 오토바이, 자전거와 자동차의 정신없는 소리와 엄청난 물결을 보며 살아있는 도시의 모습을 느껴본다. Capital Guest House에 도착했다. 3층 숙소에서 내려다보는 시내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다. 엄청 혼란스럽다.
사람들과 바퀴 있는 것 들이 엉켜서 사거리가 막힌다. 그런데 짜증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거리 모퉁이에 평화롭게 빵을 파는 아저씨, 그리고 복잡함을 구경하고 있는 건너편 꼬마가 대조를 이룬다. Capital Guest House로 내려가서 내일 시내 투어를 신청했다. 두당 5달러다. 사진 현상료가 한국의 반값이다. 3통을 맡기고 찾으니 10,000원 정도다. 사진을 찾아서 구경을 한다.
어느덧 저녁이다. 샤워를 간단히 하고 밀린 빨래도 했다. 노점상에서 파는 밥을 사가지고 왔다. 1개에 200리알이다. 밥이 참 맛있다. 찰밥이다. 고추장과 콩장과 함께 식사를 했다. 저녁에 Boeng Kan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먼지만 없다면 거리를 걷기에 좋은 날씨다. 오르세 마켓을 옆으로 끼고 간다. 재래시장이 무척 북적댄다. 허약한 전기사정 탓인지 약간 어둡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신호등도 지켜지지 않는 어두운 길을 따라 걸어간다. 학원인 듯 한 곳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차량물결에 곡예를 하며 길을 건넌다. 겨우 도착했는데 호수에 불빛이 없어 암흑 속에 있다. 호수 주변의 낡은 집들로 구경을 할 수 없다. 머릿속에 기대한 멋진 호수는 아직도 이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무식의 소치로다. 다시 돌아온다. 오는 길에 길가에 길게 펼쳐진 과일 노점상을 만났다.
한국에서 들어 온 창원 단감도 팔고 있다. 앞에서 보면 초대형 고급식당인데 음식을 만드는 주방은 뒷골목에서 대형 물통과 주방기구를 놓고 정신없이 만들어 건물로 갖고 들어간다. 대형 새우 요리가 눈에 들어온다. 위생을 생각할 정도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된다.
숙소에는 침대 두 개가 있다. 침대 모서리마다 4개의 막대를 세워 모기장을 친다. 그런대로 잘만하다. 찻길 옆이라 시끄럽다. 열쇄를 꼽으면 전기가 들어오고 열쇄를 뽑으면 전기가 끊어진다. 절약형이다. 피곤한 하루다. 정신없이, 지저분하고 시끄러워도,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데, 잠을 잘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