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월 13일 월요일. 맑음 그리고 비.(인도네시아)
아침, 저녁으로 흘러나오는 회교사원의 뜻 모를 마이크 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접는다. 오전 6시에 기상해서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 나시고렝(볶음밥)을 과일과 홍차와 함께 해결했다. 숙소로 올라와 풀었던 짐들을 다시 정리한다. 역시 천정에는 회교의 중심지 메카를 향해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이곳 부킷띵기는 파당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져 있다. 해발 930m의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다. 적도 바로 밑인데도 한기가 느껴진다. 주위에는 3개의 화산을 포함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잘란 파노라마 공원 앞에 있다.
차를 호텔에 세워놓고 걸어서 파노라마 공원으로 갔다. 공원 자체는 크지 않았다. 큰 나무 밑에 원숭이가 서너 마리 놀고 있다. 이곳에서 보는 시아노크 계곡은 그 전경이 참으로 훌륭하다. 멀리 아래로 산이 치솟아 있다. 멀리 아래로 논이 펼쳐져 있고 그 훨씬 맞은편에는 절벽과 산이 보인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의 느낌이 약간 풍긴다. 공원에 있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일본군이 조성한 지하요새로 갔다. 잘 부서지는 사암 언덕에 파 놓은 땅굴이다. 층계를 따라 깊숙이 내려간다. 불 빛이 없어 어둡다. 수백미터에 달하는 터널이 구릉의 허리를 미로처럼 파헤쳐 놓았다.
공원을 나와 우리 차를 타고 중심지인 시계탑이 있는 광장으로 갔다. 1926년에 만들어진 이 시계탑,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주변 경관이 다 보인다. 시계탑의 높이는 26m다. 지붕의 모양이 전통가옥 스타일이다. 시계탑 광장에는 이곳의 교통수단의 하나로 이용되는 마차인 벤디가 많이 서 있다. 손님을 기다린다. 마을 전체가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은 한적한 집들과 벤디 탓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옆에 시장이 있다.
민예품과 과일이 보인다. 바나나, 귤, 망고 등을 사서 고목나무 그늘에 앉아서 신나게 먹는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지 않아서 콕 요새에 도착했다. 19세기에 네덜란드인이 지은 콕 요새(Fort de Kock)는 별로 볼 것이 없다. 언덕 위라 전망은 좋다. 새로운 손님을 맞기 위해 예쁘게 단장중이다. 콕 요새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물원이 있다. 여기에 다리를 놔서 건너가게 해 놓았다. 다리를 건너며 밑에 있는 직선으로 뻗은 도로와 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박물관은 전통가옥인 지붕이 뾰족한 미낭카바우 하우스다. 나무로 섬세하게 지어진 외벽이 하나의 작품이다. 열대지방에 있는 동물원 동물들은 좀 불쌍해 보인다. 이제 부킷띵기 관광을 마치고 우리의 목적지 파당으로 간다. 가는 길에 한적한 농촌을 지나간다. 논이 펼쳐진 중앙에 있는 은세공공장에 들렀다. 주인 혼자 손으로 작품을 만드는 2층 가정집이다. 과정 설명을 듣고 구경하다가 은으로 만든 미낭카바우 하우스 모형 하나를 샀다. 지붕 없이 코너로 돌아가 있는 화장실이 인상적이다. 집 앞에 양식장을 조그맣게 만들어 놓았다. 물고기를 키워 잡아먹는다고 한다. 즐겨 먹는 물고기 머리 요리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은세공 집을 나와 약간 가다보니 굵은 비가 떨어진다.
비는 잠시 후 멈췄다. 우리 차는 약간 언덕을 계속 올라간다. 산 밑에 차를 세운다. 왜 여기 세울까? 층계를 걸어 산 정상에 올라서니 눈 아래 펼쳐진 호수가 정말 장관이다. 입이 탁 벌어진다. 호수 쪽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은 정말 압권이다. 잠시 후에는 갑자기 하얀 구름이 물 솟듯 올라온다. 서늘함이 느껴진다. 정말 멋지고 큰 호수다. 우리는 이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차를 타고 44굽이를 돌며 호수로 내려갔다. 차가 방향을 트는 곳 마다 팻말에 숫자가 씌어 있다. 14, 13.... 드디어 2번을 급히 돌아 마지막 1이라고 씌어 진 곳에서 급하게 커브를 도니 호수가 마을길이다. 점심대가 되어서 식당에 들어섰는데 정말 경치가 끝내준다.
식당도 멋지지만 식당 발코니에서 펼쳐지는 호수는 정말 기가 막힌다. 바다 같은 호수다. 이 호수의 이름은 Maninj며 Lake다. 해발 500m 높이에 위치해 있다. 가로로 8km, 세로로 16km를 남북으로 펼쳐져 있다. 멋진 산으로 둘러싸인 둘레가 약 90km란다. 조용하고 신선하며 호수 경관은 정말 놀랍다. 멋진 곳에 비해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 식당에는 유명인사들의 방문 사진이 있다. 펜 케익과 나시고렝을 시켜서 점심을 했다. 나시고렝에서 특이한 것은 새우강 같은 과자가 밥에 올라온다는 것이다. 식당 내에 있는 화려한 의자에서 사진도 찍는다.
여행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장소다. 상희가 속이 안 좋은지 핀으로 손끝을 땄다. 호수를 따라 차를 몰고 간다. 경치가 끝내준다. 평화로운 논 다음에 펼쳐진 호수, 그 건너편에 이어지는 산들, 그 위로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 아쉽고 간직하고픈 풍경들이다. 계곡에 흘러드는 맑은 물줄기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양식하는 곳이 많다. 물고기들이 바글바글하다. 비닐봉지에 담아 트럭에 옮겨 싣는 모습이 보인다. 오후 3시 경에 산속만 보고 오다가 드디어 바다를 보게 되었다. 해수욕장에 내렸다. 긴 백사장과 해안선을 다라 늘어진 숲길은 정말 크고 조건이 좋은 해수욕장이다. 그런데 사람이 거의 없다. 낡은 어선 두 척만이 백사장을 지키고 있다.
늙은 노인이 그물을 그늘에서 손질하고 있다. 우리는 바다다! 라는 말을 외치며 맨발로 파도와 놀며 백사장을 뛰었다. 수영을 하지 않을 백사장은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차를 타고 파당을 향해 길을 간다. 이곳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 트럭과 버스는 외향을 화려하게 원색으로 꾸며 놓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기도 소리가 또 들린다. 파당은 큰 도시다. 메단 보다는 작아 보인다. 중심가를 지나 다리를 건너 기사가 내려준 곳은 제일 비산 호텔 같다. 요금이 방당 4만 원으로 좀 비쌌다. 좀 더 저렴한 호텔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설은 최악이지만 그래도 잘 수 있는 에덴 호텔로 정했다.
아침 포함이다. 생각보다 숙소가 작다. 지금까지 함께 했던 운전기사와 잔금을 치르고 헤어졌다.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함께 식사라도 하고 헤어져야 하는데 기사가 오늘 밤에 부킷띵기에서 자야한단다. 성원이와 내일 아침에 사용할 인도네시아 돈을 환전하러 중심가로 갔다. 환전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돌아와 호텔에서 환전을 했다. 흥정을 해야한다. 1달러에 8100루피에서 출발하여 결국 1달러에 8600루피로 결정했다. 아침 8시에 자카르타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약속했다. 재미있는 하루다. 진한 하루인 것 같다. 모두가 건강해서 다행이다. 메단에서 파당가지 오는데 예상한 것 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길도 험하고 지형도 예상치 못했다. 이제 내일부터는 또 우리기리 결정해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