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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졸업60주년 기념문집 원문보기 글쓴이: 이정승
유럽人들의 魅力的인 旅行地 ‘라오스’(Laos)
厚堂 高 光 昌
o 國土의 90%이상이 山地인 山岳國家
o 世界 3大 佛敎聖地巡禮地
o 空氣가 맑고 깨끗한 空氣淸淨國家
o 市內 버스와 택시가 없는 나라
o 政治 : 共産黨 一黨 獨裁體制
o 經濟 : 世界 最貧國
o 유럽인들이 選好하는 觀光地
<머리에 生鮮 箱子를 이고 가는 라오스 행 베트남 버스>
2004년 겨울에 自由旅行이란 이름으로 베트남을 거쳐 라오스에 갔다.
하노이에서 라오스 ‘위앙짠’행 直行버스를 타지 못하고 一般버스를 탔는데 道路 사정도 안 좋고(非鋪裝 道路) 버스가 쉬엄쉬엄 가는 바람에 시간이 꽤나 걸렸다.
버스를 타고 1시간여 쯤 가니까 유리창 밖으로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몸에 닿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찝찔했다. 알고 보니 버스 위쪽 짐 싣는 공간에 生鮮 箱子를 실었는데 그 生鮮 箱子 얼음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물이라는 것이다. 라오스는 바다가 없으므로 바다 생선을 베트남에서 사오는 모양이다. 지금은 짐 싣는 空間이 客席 아래쪽에 있지만 그때는 짐 싣는 공간이 따로 없어 버스 위쪽에 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버스는 旅客 보다는 짐(荷物) 싣는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客車가 아닌 荷物車를 우리가 타고 온 느낌이다.
2시간 쯤 갔을 때 라오스 國境에 도착했다. 出國·入國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보니까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왔던 旅客들 일부는 荷物主들이었다. 手續을 다 마친 후 이제부터는 라오스 버스를 타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베트남 버스를 타라는 것이다. 生鮮 물이 흐르는 버스를 더 이상 타고 싶지도 않았지만 라오스에 왔으니 당연히 라오스 버스를 타야 하지 않을까? 왜 그런가 알아보니 荷物主들 말에 의하면 라오스에는 旅行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가 없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그 베트남 버스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라오스에 버스가 없다면 라오스에서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척 궁금했다.
<푸르름이 싱싱한 自然産 屛風>
산마루를 하나 넘으면 또 산마루가 나왔고 그 다음 산마루에는 반드시 休憩所가 있었다. 사람 사는 마을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도 차도 한 숨 쉬었다 가라고 한 것 같았다. 휴게소 가게에 있는 빵이나 과자 봉지가 모두 빵빵하다. 高地帶인지라 氣壓이 낮아 생기는 현상이다. 運轉技士에게 이곳의 높이가 어느 정도 인지 물었더니 이 옆 산봉우리 높이가 1000m 정도 되고 여기는 7~8부 능선이니까 대충 미루어 높이를 짐작해 보라고 한다. 산마루에 차가 쉴 때마다 내려서 新鮮한 空氣를 한껏 들여 마셨다. 정말 공기가 신선했다. 또 주위 산을 둘러보니 屛風처럼 푸른 산이 펼쳐져 있다. 畵家가 그린 그림의 屛風이 아니라 自然이 수(繡)를 놓은 屛風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美는 ‘自然美’라는 말이 있는데 푸르름이 싱싱하게 살아있는 自然産 병풍은 어데 비길 데 없이 정말 아름다웠다. 산마루를 넘고 또 넘을 때마다 새로운 병풍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自然産 屛風을 보는데 마음을 온통 빼앗기다 보니 지루한 줄 모르고 쉽게 라오스에 올 수 있었다.
<한 房에 20~30명이 함께 宿泊하는 多人室>
오후 늦게 首都인 ‘위앙짠’(비엔티안 Vientiane)에 도착했다. 내 후각이 안 좋은 편인데도 空氣가 맑고 깨끗한지는 코끝의 느낌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旅館에 방이 없었다. 두 번째 찾아간 여관에서 하는 말이 지금시간에는 여관방을 구할 수 없으니 게스트하우스(Guesthouse)를 가보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는데 공교롭게도 주인이 우리 韓國 사람이었다. 이곳에 온지 4년째 된다는데 매우 친절해 보였다.
그곳 Guesthouse는 도미토리(Dormitory 寄宿舍形 共同 寢室)만으로 운영되는데 1층은 책을 읽을 수 있는 休憩室이고 2,3층은 宿所였다. 그런데 2층에도 4人室, 6人室은 빈방이 없다며 3층으로 우리를 안내해서 따라 가보니 3段, 4段, 5段짜리 寢臺 밑에 바퀴를 달아 이리 저리 움직이는 移動式 寢臺가 7~8개 정도 있었다. ‘多人室’이라고 한다. 나는 ‘多人室’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았지만 한 층에 寢臺가 20~30개 놓여있는 셈이니 ‘多人室’이란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유럽 배낭 旅行者들의 情報交換所>
다행스럽게도 移動침대의 아래쪽 1段과 2段에 자리가 있어서 짐을 풀었는데 유럽에서 온 젊은 배낭 旅行者들이 3段이상 위쪽을 차지하고 앉아 相互 情報 交換하느라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귀가 먹먹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래층 主人丈을 찾아갔더니 귀마개를 주면서 그걸로 귀를 막고 자라고 한다. 오늘은 유럽에서 觀光客이 많이 온 관계로 旅館방을 구할 수 없으니까 내일 한 번 旅館방을 알아봐 주겠다고 한다. 또 이곳 게스트하우스는 ‘多人室’을 만들어 4~6人室보다 요금을 적게 받으니까 젊은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오는데다가 移動寢臺의 3段이상은 요금을 더 割引 해 주니까 가장 많이 선호해서 4,5段은 언제나 빈자리가 없단다.
<역시 韓國 사람답다>
그리고 배낭 旅行者들의 요구에 따라 인터넷도 設置해주고 複寫機도 사들여 놓고 1층 休憩室 벽에 揭示板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젊은 여행자들이 인터넷으로 고향 부모나 친구에게 安否도 전하고 또 자기가 다년 온 곳의 略圖나 情報를 다른 이에게 알려주기 위해 메모하고 複寫해서 1층 휴게실 揭示板에 붙여 놓는다고 한다.
인터넷은 요즘 다른 旅館에도 설치되어 있지만 複寫機 구입과 揭示板 설치는 이곳만의 특색이라고 한다. 여행자들이 便安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고 한다.
이런 관계로 유럽의 젊은 여행객들에게 ‘위앙짠’의 Guesthouse는 입에서 입으로 弘報가 되어 언제나 旅行客들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碑石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口碑가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實感할 수 있었다. 主人丈이 우리 ‘韓國 사람답게’ 머리를 잘 쓰는 것 같았다. 외국에 가보면 우리 僑胞들이 대부분 宿泊업, 料食업, 洗濯業 등을 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모두 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금년(2004년) 봄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 大統領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을 訪問했다는 말도 해 준다.
<아침 길거리 모습 이모저모>
아침 운동 겸가벼운 옷차림으로 시내 散策을 나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걷기, 달리기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유럽 사람들이 더 많았다. 혹시 내가 유럽에 와 있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길거리 간판 글씨를 보면서 여기가 라오스 맞는지 확인해 볼 정도였다. 유럽 사람들이 좋은 공기 마시면서 아침 운동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조금 걷다보니 이곳 여인들이 길거리 한쪽 켠에 한 줄로 서서 맞은편에서 한 줄로 다가오는 스님들에게 아침 식사 음식을 나누어 주는 布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佛信者가 아니므로 ‘供養’의 깊은 뜻은 모르지만 스님들이 쓴 책에는 ‘供養’은 ‘利他정신’의 極致이고 ‘自他不二’의 慈悲精神이라고 쓰여 있었고 ‘布施’는 음식이나 물건으로 남을 돕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오늘 아침 우연히 布施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앞으로 ‘利他정신’ ‘自他不二의 慈悲精神’을 더 많이 실천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하게 되었다. 참 좋은 아침이다!. Good Morning!
<주먹 찰밥 ‘카우냐우’>
다음날 아침 主人丈이 다른 宿所를 紹介해주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辭讓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라오스에 관한 여러 가지 旅行 情報를 알아보려면 여기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더 났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우리들 Guide역할을 해 주니까 ---
市內地域이 넓지 않으므로 우리는 걸어서 寺院 2~3군데 다녀와서는 주인장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궁금한 것을 알아보았다. 식사는 이곳 사람들이 주로 많이 먹는 밥이라며 ‘카우냐우’를 주문했다. 주먹밥인데 손으로 떼어 먹어보니 우리 찰밥과 거의 비슷한데 쫄깃쫄깃하고 단맛이 있었다. 주먹 찰밥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주먹밥은 5·18 光州民主化運動과 관련이 많은 밥이 아니던가?
<유럽 사람들이 이곳 라오스를 많이 찾는 이유>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에게 왜 유럽 관광객들이 라오스를 많이 찾는지를 물어보니 제일 먼저 ‘空氣가 淸淨하다’는 것을 들었다. ① 製造業이 발달되지 않아 공장 굴뚝 연기가 없고, ② 버스나 택시가 없으니 자동차 煤煙가스가 없다. ③國土의 90% 이상이 山인 山岳國家이기 때문에 울창한 山林이 空氣를 맑고 깨끗하게 해준다. ④ 외국인도 ‘위앙짠’ 등 도시에서 쉽게 住宅을 구할 수 있다. ⑤ 山間奧地가 많아 이곳 사람들의 옛날 生活風習을 직접 보고 그대로 體驗해 볼 수 있다. ⑥ 生活物價가 低廉하다 등이다.
또 여행객들은 이곳 Guesthouse에서 1週, 2週 지내기도 하고, 텃밭이 있는 집에서 6개월, 많게는 1년 정도 살다가 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電氣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물론 自轉車도 탈 수 없는 오솔길을 1시간 이상 걸어가야 하는 산골 奧地에도 유럽인을 위한 Guesthouse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또 유럽 젊은이들은 이곳에 와서 屈曲이 심한 굽이길이나 非鋪裝道路에서 Jeep차를 자기가 직접 運轉하기. 낮은 산마루 오르내리기, 자전거 타기 등을 하면서 浩然之氣를 즐긴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도 라오스처럼 굴곡이 심한 비포장도로를 일부러 만들어 놓고 그 위를 Jeep차를 직접 運轉해서 달리는 體驗場이 있다는 말을 들은바 있다.
나는 유럽인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를 孔子曰 ‘近者悅遠者來’에서 찾아보았다.
중국 楚나라 葉公이 ‘政治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말에 대한 답으로 孔子가 한 말인데 ‘가까이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하면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는 뜻이다. 여기서 가까이 있는 사람은 라오스 국민이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유럽인이라고 생각할 때 라오스 국민들이 즐거워할 것이 무엇일까? 각자 마음속에 ‘良心’이라는 부처를 모시고 사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또 벌 나비가 먼 곳에서 꽃을 찾아오는 것은 꽃에 香氣와 꿀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꽃은 이곳 사람들이고, 벌과 나비는 유럽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때 이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향기와 꿀은 무엇일까? 이웃을 사랑하는 利他精神, 慈悲精神이 곧 香氣이고 꿀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이건 나만의 생각?
<라오스에는 왜 우리나라 여행객이 없을까?>
Guesthouse 主人의 말에 의하면
첫째, 우리나라와 라오스는 相互Visa免除協定이 체결되지 않아 Visa받기가 어렵고
둘째, 라오스에 여행사 버스가 없는데다가 다른 나라 여행사 버스도 들어올 수 없고
셋째, 개별 관광을 오더라도 라오스에 버스와 택시가 없기 때문이란다.
<라오스에 버스나 택시가 없는 이유>
또 이곳에 버스나 택시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① 市內버스의 경우 이곳은 라오족이 90%정도 살고 대부분이 佛敎 信者들인데 寺院을 聖域化하기 위해 寺院주변을 淸潔하게 함은 물론 조용하게 하려고 사원 50m이내 車輛 接近을 禁止하고 경적(警笛)도 울리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市의 규모가 작은데다가 이 도시에 寺院이 6~7개나 있으니 50m 이내 차량 접근 금지를 지키다 보면 市內에서 차를 운행할 수 있는 空間이 없어 市內버스나 택시가 존재하지 않는단다. 寺院을 聖域化하기 위해서 市內버스와 택시를 없앴다니 역시 佛心이 강한 대단한 民族이다.
② 市外버스의 경우는 전체 인구의 60%정도인 ‘라오루’족은 低地帶와 메콩강 유역에서 農事를 짓고 있고, 인구의 22%정도인 ‘라오퉁‘은 高地帶에서 火田농사를 짓고 있고, 인구의 8%인 ’라오숭‘족은 原住民으로 山間奧地에 살고 있는데 이 部族들은 모두 현 거주지에서 ’故鄕지킴이’를 자처하면서 오로지 祖上들의 傳統 生活方式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孝道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이 곧 ‘氏族共同體’인 셈이다.
율곡 선생님은 ‘天下의 모든 물건 중 내 몸보다 더 所重한 것은 없다. 그런데 이 몸은 父母가 주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께 孝道를 다 해야 하는 理由를 설명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곳 라오스 사람들이 율곡 선생님의 뜻을 잘 받들고 있는 것 같다. 孝心이 강한 대단한 民族이다.
다만 3大 都市인 ‘위앙짠(비엔티안)’, ‘왕위앙(방비엥)’, ‘루앙프라방’ 사이를 오가는 버스는 運行되고 있는데 이들 都市는 라오족 중에서도 上流 급에 속하는 사람 일부와 태국, 베트남, 프랑스. 미국, 중국 등 外國人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건 外國人에 대한 配慮 차원에서 이해해 주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는 經濟的인 면에서 세계 最貧國인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의 프랑스의 植民地 時代를 지나 解放은 되었으나 나라가 不安定한 상태에있을 때 1975년 共産黨이 革命을 일으켜 政權을 掌握하고 共産化를 宣言해 버렸다.
共産化 이후 美國을 비롯한 西歐 先進國의 財政 援助 中斷으로 經濟的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또 이웃나라인 泰國과의 전쟁, 중국과 베트남의 國境紛爭 시 베트남의 편을 들다가 中國의 미움을 받아 한때 中國과 國交가 끊기는 등 여러 어려움이 많아 經濟 開發의 時機를 놓쳐 버렸다고 한다.
<潛在力이 無窮無盡한 나라 ‘라오스’>
外國人들은 이곳이 空氣 淸淨地域이라 이곳에 定着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또 이곳은 아직 開發이 덜된 곳이라 각종 개발 사업을 맡으려고 각국 會社 職員이나 技術者들이 와 있다는 것이다. 道路鋪裝 사업, 電氣 가설, 製材業, 각종 鑛物 採掘, 工場 건설, 鐵道 건설(중국 雲南省 곤명에서 ‘루앙프라방’ 까지) 등에 관하여 라오스 정부 직원들과 協議를 하거나 工事 豫定 現地에 가서 工事에 필요한 資料와 情報를 얻기 위해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競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中國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兵法書인 孫子兵法에는 ‘戰爭의 神은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情報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情報를 많이 알면 알수록 勝利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쓰여 있다 한다. 각국 技術者들이 이곳에 와서 情報를 얻기 위해 치열한 競爭을 벌이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라오스는 나라 전체가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原木이나 原石에 해당함으로 앞으로 無窮無盡한 潛在力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外國人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보배중의 보배 나라다.
<400여 年간 라오스 都邑地 ‘위앙짠’>(‘위앙짠’은 ‘달의 도시’란 뜻)
‘위앙짠’은 현재 라오스의 行政수도로 400여 년간 라오스의 都邑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共産化 이후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발전 속도가 더디었지만 지금은 西歐선진국 및 日本의 도움으로 道路를 전면 改·補修하고 있다. 거리 곳곳에 있는 傳統寺院과 古典的인 유럽풍 建物들이 調和를 이루어 묘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市內에 있는 寺院중 ①커다란 黃金塔 ‘파 탓 루앙’이 있는 ‘탓 루앙’ 寺院과 ②각종 佛像을 비롯하여 王室에서 쓰던 遺物 등을 전시해 놓은 ‘파깨우’ 寺院, ③그리고 불교, 힌두교의 가르침을 彫刻으로 形象化하여 꾸며놓은 ‘씨앙 쿠안’ 寺院 등이 볼만했다. 市內버스도 없지만 寺院 부근 50m 이내로 차량 접근이 금지되고 경적(警笛)도 울려서는 안 된다고 하니 寺院 부근은 정말 조용하고 엄숙했다. 붓다에 대한 禮遇가 특별한 것 같았다. 옛날 우리말에 ‘절간처럼 조용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절간은 모두 산속에 있으니까 조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곳 사찰은 도시 한 복판에 있어도 산속에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市內가 좁아 寺院을 보는데 걸어서 다닐 만 했다.
寺院의 佛像을 보고 난 느낌은 泰國의 佛像은 아름답게 치장을 많이 해서 붓다가 外出服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고, 이곳 라오스 佛像은 붓다가 平常服 차림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泰國 佛像이 水彩畵처럼 예쁘다면 이곳 라오스 佛像은 水墨畵처럼 수수하면서도 무게감이 있었다. 그리고 泰國 寺院은 觀光客들로 야단법석(惹端法席)인데 반하여 이곳 라오스 寺院은 절간답게 조용했다.
現地인들의 삶을 느끼기 좋은 곳이 市場이다. ①‘아침 市場’은 비엔티안 最大의 시장으로 이름은 아침 시장이지만 하루 종일 영업하는 常設 市場이며 주로 工産品을 많이 취급하고 있었다. 이곳은 製造業이 뒤져있는 관계로 대부분 이웃 태국, 베트남에서 들어온 工産品, 즉 外來品이 많고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②‘쿠아딘’市場은 야채나 과일, 생선, 고기 등의 食料品을 판매하는 곳인데 아침에는 손님이 많아 ‘위앙짠(비엔티안)’의 活氣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장이었다. 시장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하나 같이 밝았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얼굴표정이 밝은 것은 이곳 사람들의 幸福은 所有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佛心에 비례하는 것 같았다. ‘吾唯知足’이란 말처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것 같았다.
라오스 革命 博物館은 植民地시절 프랑스의 總督館을 改造한 것으로 1층에는 라오스 古代史 관련 遺物들과 그림, 사진 자료를 전시해 놓았고 2층에는 여러 방에 걸쳐 라오스 激動期의 近·現代史를 紹介해 놓고 있었다.
아쉽지만 3泊4日을 머물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동안 主人丈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저녁을 함께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여기 온지 4년 남짓밖에 안된다는데도 라오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이 척척 對答했다. 머나먼 異國땅, 더구나 유럽인들이 많이 사는 이곳에서 1당 100의 정신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당찬 한국인의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헤어짐이 아쉬운 것은 우리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도 무척 아쉬워했다. 同族의 精때문이리라.
<少人數民族의 中心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은 ‘神聖한 佛像의 도시’란 뜻)
千年 歷史의 古都 ‘루앙프라방’은 ‘百萬 마리 코끼리의 나라’라는 말이 由來한 古代 王國 ‘란쌍’의 首都로서 ‘위앙짠’으로 행정 수도가 옮겨지기 전까지 라오스의 首都였었다. 지금도 라오스 제 2의 都市로 名聲을 維持하고 있으며 一年 내내 세계 각국에서 많은 觀光客이 모여든다고 한다. 1995년 UNESCO에서 世界文化遺産으로 指定된 都市로 도시 전체가 博物館이라고 할 만큼 볼거리가 豊富했다.
이곳 라오스 密林지역에는 아프리카 ‘動物의 王國’처럼 호랑이, 사자, 코끼리 등이 살고 있고 지금도 매년 2~4월경에는 野生 코끼리들의 集團 움직임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곳이 ‘코끼리 나라’임이 분명한 것 같다.
‘루앙프라방’博物館은 1975년 共産革命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王宮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王宮으로 사용될 당시의 物品들과 ‘루앙프라방’을 비롯한 周邊의 文化財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市內에 큰 寺院이 6개 있는데 그 중 ① ‘씨앙통’ 寺院은 ‘금의 도시’란 뜻의 사원으로 1560년 대 建立된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寺院이다. 씸(sim)이라고 부르는 本堂의 壁장식이나 지붕의 모양이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②‘위쑤나랏’사원은 1513년 ‘위쑤나랏’왕 때 건립된 사원으로 부처님의 舍利가 들어있다고 전해오는데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寺院이다. ③‘탓 루앙’사원은 大佛塔 안에 ‘씨사왕윙’ 왕의 遺骸가 들어있다고 전해지는 寺院이다.
‘쾅씨 폭포’는 石灰質로 되어있는 버섯 모양의 바위 위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光景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폭포 바로 아래에는 맑고 선명한 靑綠色의 물이 고여 있어 연못을 이루고 있다.
<少數民族의 장터 夜市場>
이곳은 ‘夜市場’이 유명하다. 밤이 되면 王宮 앞길에 車輛이 統制되고 ‘夜市場’이 서는데 주로 少數民族이 만든 수·공예품과 綿織物이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예뻐서 膳物로 사기에 적합했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에서 쇼핑하기에 가장 좋은 곳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뉴 루앙프라방' 왼쪽의 좁은 골목 안에도 밤마다 먹거리 夜市場이 섰다. 우리는 2일 동안 夜市場에 나가서 수·공예품도 購入하고 맛있는 먹거리도 사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 ‘루앙프라방’ 정말 좋은 곳이다. 특히 밤거리가 아름다운 곳이다.
<少數民族村 訪問>
‘루앙프라방’북쪽으로 中國과의 사이에 5~6개 州가 있는데 모두 少數民族의 居住地다. 少數民族村 방문 하려고 여행사에 1일 투어를 신청하러 갔더니 여행사 주인이 ‘네덜란드’ 사람인데 英語 會話 능력도 좋지만 手話가 아닌 온 몸으로 意思를 表現하는 ‘身話(?)’의 達人같이 보였다. 少數民族은 물론 외국 여러 나라 觀光객을 상대하다보니까 ‘身話’의 필요성이 절실해서 자기가 직접 開發했다고 한다. ‘必要가 發明의 어머니’란 말이 맞는 것 같았다.
旅行社 사장이 직접 운전하는 Jeep차를 타고 少數民族村으로 갔다. 입구에 遮斷機가 있는데 여행사 사장님과 상호 인사를 나누더니 들어가라고 한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는데 때마침 그 동네 結婚式 날이었다. 정말 우리는 運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 마을에 20여 호가 살고 있다는데 마을 주민이 모두 나와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이 온통 祝祭雰圍氣였다. 우리는 하마터면 주민들이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음식 준비하는 것으로 착각할 뻔 했다.
그 마을 村長인 듯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사람이 내 손을 잡아 집 안으로 이끈다.
아래층은 여러 가지 家財道具들을 보관하는 헛간인 것 같았고 계단을 몇 개 딛고 올라서니 방이었다. 村長이 술 도가니처럼 생긴 곳 뚜껑을 열고 빨대를 넣어 조금 빨더니 새 빨대를 나에게 주면서 빨아 보라고 한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여행사 사장이 괜찮다고 먹어 보라고 한다. 빨대를 넣어 조심스럽게 빨아보니 家庭酒 술이었다. 술맛은 잘 모르지만 ‘엄지 척’을 해 보였더니 자기도 웃으면서 ‘엄지 척’을 한다. 방안을 보니 바닥은 대(竹)를 엮어 만든 平床이고 벽은 싸릿대 같은 질긴 풀을 엮어서 만들었다. 寢室, 廚房, 化粧室 등이 모두 방안에 있는 多用度 房이었다. 아래층을 비워 둔 이유는 밤에 山에 사는 野生동물들이 먹이 감을 구하러 내려오기 때문에 혹시 모를 被害 豫防 차원에서 윗층에 방을 마련했다고 여행사 사장이 귀뜸 해 준다.
조금 떨어진 空間에서는 남녀 얘들이 놀이를 즐기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놀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팽이 싸움, 여자는 고무줄 놀이였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 어렷을 때와 똑 같을 수 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손으로 하는 ‘가위, 바위, 보’도 우리와 똑 같았다. 여행사 사장은 두 발을 앞뒤로 벌이면 ‘가위’, 두 발을 양 옆으로 벌리면 ‘보’, 두 발을 함께 모으면 ‘바위’라고 표현하는 民族도 있다고 하면서 특유의 ‘身話’를 보여 주었다. 서로 다른 民族인데 애들 놀이가 이렇게 똑 같은 것은 도저히 理解가 안되었다. 여행사 사장 말에 의하면 이 민족은 文字는 없지만 아버지는 ‘파바’, 어머니는 ‘마마’라고 中國語를 사용한단다.
여행사 사장의 안내로 산마루 하나를 넘어가니 새까만 火田이 나왔다. 2년 전 농사지은 땅, 1년 전 농사지은 땅, 금년 농사지은 땅 등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산에 불을 질러 나무를 태우고 나면 재가 남는데 거기에 씨를 뿌려 곡식을 재배한다고 身話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外來 觀光客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火田같은 느낌이 들었다.
結婚式은 어느 때 하느냐고 물으니 저녁 어둑어둑해지면 한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 장면은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婚’자가 女(여)변에 昏(어두울 혼)을 쓰니까 저녁 때, 어둑어둑할 때, 婚禮를 치루는 모양이다. 중국 漢字뜻에 따라 결혼 시기를 정하는 것 같았다. 中國이 모두 56個 民族인데 그 중 1/3이 중국 최남단 雲南省에 살고 있고 여기가 雲南省에 隣接해 있으니 中國 少數民族이 이곳까지 밀려 내려와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돌아오면서 村長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라오스어로 ‘컵 짜이’(감사합니다)했더니 촌장도 라오스어로 ‘버어 뺀 냥’(괜찮습니다)이라고 한다.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 했더니 부락민들도 똑같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막상 헤어지려고하니 아쉬움이 남아 자꾸만 뒤돌아보아진다.
<잘 못된 우리들 셈 법>
우리는 出國을 위해서 泰國과 國境을 맞대고 있는 ‘훼이싸이’(Huay xai)로 가야한다. ‘루앙프라방’에서 ‘훼이싸이’를 가려면 水上보트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야하는데 수상보트는 슬로보트와 스피드보트가 있다고 한다. 슬로보트는 1박 2일 걸리고 스피드보트는 8시간 걸린단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슬로보트는 事前에 豫約을 해야 하는데 스피드보트는 豫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스피드보트를 타려고 豫約을 하지 않고 그냥 왔다.
그런데 다음날 스피드보트를 타러 출발시각 9:00에 맞춰 가보니 스피드보트가 이미 떠나고 없다. 보트 회사 職員에게 물어보니 스피드보트는 배에 사람이 차면 出發시각과 상관없이 바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너무 황당했다. ‘루앙프라방’ 공항으로 바로 연락해서 ‘훼이싸이’항공편을 알아보니 곧 출발하는데 빈 좌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 라오스 Visa는 7일짜리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오후 6시까지 훼이싸이에 到着해서 태국 ‘치앙콩’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
스피드보드가 예약을 받지 않는 것은 좌석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坐席만 다 차면 出發하려고 豫約을 안 받은 것인데, 우리는 스피드보트는 평상시 坐席이 남아돌기 때문에 예약을 받지 않은 것으로, 즉 우리 셈법으로 계산을 해서 스피드보트를 놓친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 ‘도적맞으려면 개도 안 짓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일행은 어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智慧를 발휘하여 난관을 突破해왔는데 이번에는 그게 안 통했다. 할 수 없이 1박 2일 슬로보트를 타고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낙담(落膽)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두의 마음을 다시 추스러야 한다. 우리를 이곳에 하루 더 붙잡아 둔 理由는 무엇일까 각자 肯定的인 측면으로 생각을 모아 보기로 했더니, 이곳 空氣가 맑고 깨끗하니까 하루 더 맘껏 마시고 가라는 뜻도 있고, 이곳까지 왔으니 ‘메콩강’에서 뱃놀이(船遊)를 하고 가라는 뜻도 있고, 스피드보트는 보트 보폭이 좁은데다가 빨리 달리므로 위험하니까 安全하게 슬로보트를 타고 가라는 뜻도 있는 것 같다는 여러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이런 생각들이 모두 그럴듯하니 슬로보트를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라오스에서의 旅行을 마무리 짓자며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Visa期間 超過가 조금 마음에 짐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내일 解決할 일이고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슬로보트를 타고 가면서 메콩강 船遊를 즐기기로 했다.
‘어제가 질투(嫉妬)하도록 오늘을 즐기자.’!!
<Visa期間 超過 Charge>
다음날 ‘훼이싸이’에 도착해서 出國 手續을 밟는데 出入國管理所 직원이 우리들 旅券을 보더니 Visa期間이 超過되었다며 초과된 만큼의 요금(Charge)을 要求했다. 일종의 過怠料(?)였다. 1인당 50달러라고 한다. 좀 많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公法상 義務 履行을 怠慢히 했으니 當然하다고 생각하고 흔쾌히 支拂했다. 처음 겪는 좋은 經驗이었다.
<눈요기 觀光旅行이 아닌 健康 여행>
나는 이번에 라오스에 가서 호강을 하고 왔다. 여행을 가면 보통 눈과 입이 호강을 한다. 좋은 것 많이 보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
그런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눈과 코가 호강을 했다. 눈은 주위에서는 우리와는 다른 異色的인 自然環境을 많이 보았고, 또 寺院에서는 神聖한 佛像을 보면서 호강을 했고, 코는 汚染된 탁한 공기 대신 이곳의 新鮮한 空氣를 맘껏 마시면서 호강을 했다. 이번 여행은 눈요기 觀光旅行이 아니라 健康旅行 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良心이 바로 부처다>
‘이 世上에 變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이 世上에는 변하는 것도 있고, 변하지 않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生物은 대부분 변하지만 無生物은 변하지 않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해는 해이고 달은 달이다. ‘眞理또한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 世紀 전에 했던 聖人들의 말을 ‘眞理’로 여기고 이를 오늘에 되살려 삶의 指標로 삼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라오스는 라오족이 전체 人口의 90%이지만 佛敎 信者는 95%나 된다. 불교를 國敎로 指定하지 않았는데도 라오족이 아닌 사람들 일부 까지도 佛敎를 믿고 있다는 증거다. 라오스에서 불교는 宗敎의 울타리를 넘어 生活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마음속에 있는 良心이 바로 부처임으로 良心에 따라 행동하면서 거리낄 것 없는 마음 편안 생활,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최빈국이지만 ‘吾唯知足’을 몸소 실천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溫故知新’이란 말도 있다. 歲月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라도 옛것에서 우리가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17~18년 전 라오스 旅行記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라오스는 역시 魅力的인 觀光地>
一黨 獨裁 國家와 經濟的 最貧國을 생각하면 라오스는 國家的인 면에서는 3等 國家, 아니면 等外國家이지만, 太古的 自然環境과 깨끗한 空氣. 수 천년동안 잘 보존된 神聖한 佛像, 국민들의 뜨거운 佛心, 부모님께 孝道하면서 氏族 共同體 生活을 하는 국민들의 孝心등은 우리가 본 받을 만하다. 國民들 만큼은 1等 國民임에 틀림이 없다.
市內에 있는 寺院을 聖域化하기 위해 寺院隣近地域 버스나 택시 接近을 統制하고 있어 버스나 택시가 없는 상황이라 交通이 다소 不便하지만 현재 國家的인 차원에서 道路 改·補修 事業이 한창 進行 중임으로 앞으로 交通 인프라가 좋아지면 市外버스는 충분히 다닐 수 있어 交通難이 어느 정도 解消되리라고 생각한다.
太古的 自然環境과 깨끗한 空氣. 수 천년동안 잘 보존된 神聖한 佛像, 라오스 국민들의 慈悲精神 등이 우리들 마음을 끄는 라오스의 魅力포인트이다.
라오스!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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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졸업60주년 기념문집 원문보기 글쓴이: 이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