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方池秋馬葛皮자체는 양반 성입니다.
원래 조선시대에 7대천민(백정)을 일컷던 天方地丑馬骨皮가
현재까지 구습되어 천방지축마골피하면 백정성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그 유래는 갑오경장이전까지는 전국민의 30%밖에 성이 없었으며
남의 머슴이나 종 또는 소작인들은 자신이 고용된 양반의 성을 따라
예를 들면 김가네 집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김가네로 불리워 졌으며
따라서 김가, 이가란 말자체는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소속되지 못한 천민(백정)들은 자신들의 직업으로 불리워졌는데
갑오경장으로 신분차별이 없어져 모두 성을 갖게 되면서
양반에 소속된 사람은 자신이 소속된 양반성을 따라 성을 가지게 되었고
천민은 자기의 집업을 성으로 갖게 되었는데
天씨는 무당 ,
方씨는 목수나 미장이 ,
地씨는 지관등 요즘의 장의사 ,
丑씨는 소백정 ,
馬씨는 말백정 ,
骨씨는 뼈(고리)백정,
皮씨는 가죽백정(갓받치) 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호적이 재정리되면서
이들성이 발음이 비슷한 양반 성으로 옮아가게 되는데
天씨는 기존의 양반성인 千씨로 ,
方씨는 기존의 양반성이 잇어 그대로 ,
地씨도 池씨로 ,
丑씨도 秋씨로,
馬씨도 기존 중국성과 국내양반성이 있어 그대로 ,
骨씨는 葛 또는 高씨로,
皮씨는 기존 중국성과 국내양반성이 있어 그대로
바뀐 것입니다.
성을 갖지 못했던 70%국민이 일제호적정리과정을 거쳐
주인의 성이나 발음이 비슷한 양반성을 자기 성으로 쓰게되면서
이 이후에는 대한민국사람은 모두 양반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千方池秋馬骨皮가 천민성이라는 편견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못파악한 데 기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 족보는 본보와 별보로 구분하여
갑오경장이전족보에서 가계가 확인 불가능한 것을 별보라 했는데 별보의 분량이 본보의 몇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6.25이후인 1955년부터 57년사이에 각성의 족보가 대량으로 다시 만들어졌는데
이과정에서 본보와 별보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따라서,따지자면 전국민의 70%가 천출이 되는 셈인데
지금 그런 것을 따진 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유명성씨의 족보도 갑오경장전후로 갑자기 숫자가 급팽창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즉,전까지 1인당 평균 2명의 아들을 두다가 이때까 되면 갑자기 아들이 평균5명이상으로 늘어납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千方池秋馬葛皮 뿐만 아니라
모든 성에 기존의 성이 없는 사람들이 포함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현대에 사는 우리는 선진국들이 출신보다는 자수성가를 존중하듯이현재 자기 성도 중요하지만
신종추원의 논리로 가까운 조상위주로 효도를 다하는 것이 바람직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