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으능정이
䨒溪 이도현
대전에 오시거든
으능정이 가보시게
한밭 구수한 풍물
이곳으로 모여드는
홍명등(紅明燈) 다정한 불빛
다정다감 한마당.
목척교 저자 거리
새바람 몰려온다.
멋진 유행 창조하는
도심, 젊음의 행렬
보아라 현란한 아우성
한 세기를 끌고 온다.
잊지 못할 고벨화*
䨒溪 이도현
여보! 어디 계시오, 보이지 않네요
포도원에 숨었나요, 별나라로 가셨나요?
고벨화! 나의 신부여
사랑하는 꽃이여.
인자하신 하나님! 허물은 사하시고
이별의 공허를 그만 달래주세요
잘 가오! 새 하늘, 새 땅
사망 없는 곳으로
가는 곳 어디서든 번뇌를 재우시고
하얀 꽃 그 이름으로 영원을 빛내소서
당신은 하나님의 딸
살아있는 꽃송이.
*성경 아가(雅歌)에서 솔로몬 왕이 사랑한 술람미 여인을
고벨화로 상징하고 비유한 대목(아가1:14)
일명 ‘신부의 꽃’이라 부름
<시조가 있는 수필>
아호(雅號) ‘우계(䨒溪)’에 관한 단상
䨒溪 이도현
나는 지금까지 ‘野城’이란 아호를 즐겨 쓴다.
내가 태어난 향리가 바로 충남 예산군 삽교읍 상성리다. 상성리는 삽교읍에서 덕산 가야산으로 향하는 들녘 중간 지점 오른편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엔 나지막한 성이 있어 ‘성재’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성재’ 마을의 이미지를 살려 스스로 ‘野城’이라 호를 짓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야성’이란 아호를 사용한지도 오래되어, ‘野城’이라고 하면 필자를 떠 올릴 만큼 문단에 조금은 알려진 터, 이제 雅號 하나쯤 더 지어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던 차, 공교롭게도 멀리 홍성에서 시조를 쓰시고 서예와 조각까지 하시는 逸農 金東日 선생께서 낙관(落款) 한 질을 돌에 새겨 보내오셨다. 두인(頭印)을 고리당(古里堂), 아호를 ‘우계(䨒溪)’ 그리고 이름까지 양각, 음각으로 조각하여 보내오셨으니 그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상 서랍에 오랜 동안 고이 간직하다가 이제야 서랍을 열어 사용하면서 진정 그 고마움을 깨닫는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과분한 선물이었다.
일농(逸農) 선생은 나의 모교 선배이자 홍성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1988년 <山새벽>이란 첫 시조집을 간행하고, 다음 해 「시조문학」에서 천료, <가람문학> 회원으로 활동하신 분이다.
<가람문학> 제9집(1988)에 수록된 선생의 작품을 보자.
맑은 흐름이여
깨끗한 삶이여
꽃으로 승화시킬
텅 비운 화선지에
물 같은 마음이어라
마음 같은 물이어라
-김동일의 <心如水> 세 수중 마지막 수
평소 물을 좋아하고 물처럼 욕심 없이 착하게 살고자 하셨다. 작품 종장에서 ‘물 같은 마음이어라, 마음 같은 물이어라’라고 물처럼 사는 것이 선생의 신조요 철학이었다. 그러기에 선생은 <心如水>란 필명을 갖는다, 베레모를 즐겨 쓰시고, 미소 지으며 반가이 맞아주시던 선생께서 저세상으로 훌쩍 떠나신 지도 벌써 십여 년이 넘었으니 세월은 참으로 무상한 것, 허전하기 그지없다. 명복을 빌어드린다.
선생께서 손수 짓고 돌에 새겨 주신 아호 <우계(䨒溪)>를 제(題)하여 시조 한 편 지어 올린다.
우계(䨒溪)
물빛도 고우신
심여수(心如水) 일농(逸農) 선생
지금쯤 천상에서
시조 한 수 지으실까?
옥석(玉石)에 새겨 준 아호
문채(文彩) 더욱 빛납니다.
베레모 빗겨 쓰신
다정한 홍주(洪州) 시인
보일 듯 손잡아줄 듯
다시 못 올 먼먼 길에
물소리 졸졸 흐르는 우계(䨒溪)
낙관(落款) 찍어 띄웁니다.
-이도현
逸農 선생은 필자가 이곳 대전광역시 복수동 초록마을 유등천 물가에서 졸졸졸 물소리 들으며 여생을 정리할 것을 예견하고, 아호 ‘우계(䨒溪)’를 지어 주셨는지도 모른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이 사는 것이라 하였으니, 선생의 선견(先見)처럼 ‘野城’에서 성처럼 뜻을 세우지만 말고, 아호 ‘우계(䨒溪)’를 사용하면서 물소리 들으며 낮은 자세로 남은 생을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