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에(2020.1.10.)
햇살이 유난히 유리알처럼 눈부신 겨울날 오후, 나에게는 사랑만 받은 오빠 언니가 여덟 분 계셨고 9남매 형제지간엔 자주 모이는 편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큰 오빠와 셋째 언니가 하늘나라 가셨다. 막내인 나는 친정 모임을 자주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바쁜 삶을 핑계로 가끔씩 참석했다. 이번만큼은 오빠, 언니들과 함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여행 떠나던 날 오빠네 차로 합승하자고 권유했었지만,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따로 일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내 마음은 이미 형제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들떠 신나게 핸들을 잡았다. 진도에 있는 모임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전망 좋은 휴게소가 있었고, 근처 식당에서 형제들을 만나 늦은 점심을 마쳤다. 내 차에는 막내 올케언니가 함께 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먼저 도착한 언니와 나는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어야 할 솔비치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벌써 설레었다. 주변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비탈진 산허리를 깎아 층층이 건물을 세워 놓은 것이 외국의 여행지에 온 착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바쁜 삶 속에서도 힐링의 기분을 느끼려고 찾는 멋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겨울인데도 봄날처럼 따뜻한 햇살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잔물결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가족들과 함께 할 다음 계획을 생각하며 숙소 입구 차단기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려고 주차하던 중이었다. 순간, 내가 운전하던 차가 주차 과정에서 급발진하는 일이 생겼다.
차는 막무가내로 가로 놓인 차단기를 제치고 급속도로 전진했다. 나는 핸들을 꽉 잡고 정신을 바짝 차렸고, 차는 날개 달린 듯이 질주했다. 내 발은 자동으로 브레이크 페달에 놓였지만, 아무런 힘도 느낄 수 없어 고장임을 직감했다. 그러고는 미친 듯이 달리는 내 차가 도로가 아닌 조경된 언덕으로 돌진하여 화단에 심어진 나무들을 부러뜨리고 약 20미터 거리에 있는 숙소 건물에 부딪히면서 벽을 뚫고 나서야 멈췄다. 차 안에 있던 에어백이 모두 터졌다. 그 당시 오로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어벤져스의 주인공처럼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장면을 경험했다. 어찌어찌하여 차 안에서 문을 열고, 정신없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와 올케 언니는 구급차에 실려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나는, 병원에 오자마자 촬영한 MRI에서 큰 이상이 없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심한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급하게 다시 광주 집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옮겨 검사와 치료를 받고 있었다. 병원에서 사고 이후 살아 있음에 우선 감사했다. 약 6주 동안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치료에만 전념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입원 중,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날 악몽의 순간이 되살아날 때면 미칠 지경이었다. 기가 막힌다는 것이 이럴 때 하는 말인가 싶었다. 새 차를 구입한 지 4개월도 되지 않아 아직은 사랑 땜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운전 경력 26년 만에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내 나이 늦게 일을 시작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맛보며 차가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동안 줄곧 중고차를 타다가 오랜만에 내 힘으로 새 차를 장만하여 타는 기분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핸들을 잡을 때마다 맛보는 행복감을 무엇에 비기겠는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차로 인하여 하루를 값지게 보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는 의문점만이 나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고 괴롭히며 시달리게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고 당시, 육체적으로 다친 부분은 골절 네 군데였다. 충격으로 인해 손상된 폐의 일부분과 뇌 속에 가벼운 출혈이 있었다.
작은 병원에서 알지 못했던 심한 두통의 원인이 밝혀졌다.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머리에 실핏줄들이 터져서 뇌출혈이 생겼다고 한다. 다행히 약물치료와 시간의 경과가 치료 방법이라고 했다.
뇌 부분 출혈과 통증으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어 힘들었다. 의사는 결과상으로는 거의 완쾌되어 가지만 후유증으로 사고 전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시간을 기다리리라 다짐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사고 그날의 트라우마는 내가 죽는 날까지 함께 할 것 같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새로운 세상은 나에게 선물인 것 같다. 또다시 모두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잠이 들었다가도 갑자기 그날의 사고 순간들이 스쳐 지날 때면 미친 듯이 울렁증이 생겨서 깊은 밤에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고통스럽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나와 함께 사고를 당해 옆 침대에 누워있는 막내 올케언니 모습을 훔쳐보면서 그저 미안함이 앞선다. 언니는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고모, 그래도 다행히 우리가 살아 있네! 감사하세.”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런 모습에서 다시 한 번 가족의 큰 사랑이 전해진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양 · 한방 병원과 함께 치료받고 있다.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며 아픔도 겪고 있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아직은 병원과 처방받은 약에 의존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두 번 사는 인생이니만큼 덤으로 주어진 삶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부대끼며 살았던 모든 것들과 용서와 화해의 삶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다시 한번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