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 슈톨렌
"건강을 조심하라기에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였는데 밖에 나가서 그렇게 죽어올 줄 누가 알았겠니"
너는 빵을 먹으며 죽음을 이야기한다
입가엔 잔뜩 설탕을 묻히고
맛있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사실은 압정 같은 기억, 찔리면 피가 질끔 나는
그러나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말할 필요는 없다
퍼즐 한 조각만큼의 무게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퍼즐 조각을 수천수만 개 가졌더라도
얼마든지 겨울을 사랑할 수 있다
너는 장갑도 없이 뛰쳐나가 신이 나서 눈사람을 만든다
손이 벌겋게 얼고 사람의 형상이 완성된 뒤에야 깨닫는다
네 그리움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하려다가
있는 힘껏 돌을 던지고 돌아오는 마음이 있다
아니야, 나는 기다림을 사랑해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마당을 사랑해
밥 달라고 찾아와 서성이는 하얀 고양이들을
혼자이기엔 너무 큰 집에서
병든 개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펑펑 울고 난 뒤엔 빵을 잘라 먹으면 되는 것
슬픔의 양에 비하면 빵은 아직 충분하다는 것
너의 입가엔 언제나 설탕이 묻어 있다
아닌 척 시치미를 떼도 내게는 눈물 자국이 보인다
물크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제가 선택한 시는 안희연 시인의 '슈톨렌'입니다. 저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 표현을 어떻게 했는지 살피는 데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요, 안희연 시인의 표현은 대부분 익숙한 소재를 활용해 추상적인 마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나타내고 있어서 안희연 시인의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살면서 생겨나는 아픈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져서 나중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사실만 남곤 합니다. 이 시의 경우 그 중 상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면 슬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어떻게든 살다 보면 결국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상실감은 결국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흔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상실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상실에서 비롯된 외로움이나 슬픔은 사랑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한 수단이자, 열심히 사랑했던 무언가가 있었다고 알려주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든 시간이 어떻게든 잘 지나가서 말해도 아무렇지 않을 때가 된다면, 나중에는 별 일 아니었던 것처럼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날이 모두에게 오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힘들어하고 있을 각각의 개인에게 담담하게 큰 위로를 주는 시인 것 같습니다! 좋은 시 추천 감사합니다👍
처음 접한 시인데,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시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