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시조 13/75 – 산중신곡 13/18 – 오우가 01/06
오우가(五友歌) – 서(序)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몇이나 하니 - 몇이나 되는가 하니. 헤아려 보니.
수석(水石) - 물과 돌.
송죽(松竹) - 솔과 대. 소나무와 대나무.
동산(東山) - 동쪽에 있는 산. 달이건 해건 뜨는 곳은 동산이지요.
긔 – 그것이.
반갑고야 – 반갑구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시조로 일일 문안을 시작합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인 작가는 정치가로서도 유명한 선비입니다만, 국문학도 입장에서는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숭앙받는 인물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습니다. 그 세 사람에는 정철(鄭澈) 박인로(朴仁老)가 포함됩니다. 그의 시문은 정조(正祖) 15년에 임금의 특명으로 간행된 <고산유고(孤山遺稿)>의 ‘하별집(下別集)’에 시조(時調) 및 단가(短歌) 75수가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섭렵(涉獵)하면서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한국어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시켰다’는 평가에 가까이 다가서보려 합니다.
오우가는 모두 여섯 수입니다. 그 처음이 ‘서(序)’라고 부르는 이 작품입니다.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이 순서대로 등장하건대 그 맨 앞에 놓였다는 뜻입니다. 다섯 대상 모두가 자연물이지만 달은 많이 떨어져 있고 영휴(盈虧)가 매일 달라지는지라 중장에 따로 읊고, 종장에서는 이 다섯 말고는 더해 무엇하랴 하면서 함께 추켜세우는 고난도의 기술이 쓰였습니다.
작가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조(觀照)의 경지’로 칭송받는 오우가의 첫수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떠오르니 그 모습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외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고산시조 14/75 – 산중신곡 14/18 – 오우가 02/06
오우가(五友歌) – 물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칠 뉘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자로 – 자주.
적이 – 때가.
하노매라 – 많더구나.
좋고도 – 맑고도.
뉘 – 사이. 짧은 시간.
물이 지닌 좋은 점을 구름과 바람을 데려와 비교함으로써 너끈히 해내고 있습니다. 상대의 장점을 먼저 말하고 단점을 나중에 세움으로써 물은 그러한 단점이 없노라 추켜세웠습니다. 맑고도 그치지 않는 물이야말로 내 벗이 지녀야 할 덕성이라는 애기입니다.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하기 이전에 벗으로서의 맑음과 그치지 않음 두 장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구름 빛이 좋다지만 자주 검어지고
바람 소리 맑다지만 그치는 때가 많노라
깨끗하고도 그치는 때가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 물〔水〕 -
고산시조 15/75 – 산중신곡 15/18 – 오우가 03/06
오우가(五友歌) – 돌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일로 – 까닭으로.
쉬이 – 쉽게. 이내.
어이하여 – 어찌하여.
누르나니 – 누렇게 되나니. 시드나니. 시드는가.
아닐손 – 않을손. 않기로는.
석(石)이 돌이기보다는 바위로군요.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바위 작아진 게 돌이고, 돌이 컸을 때가 바위었을 테니까요. 꽃과 풀을 데려와 쉽게 져버리고 가을이면 말라버린다는 점을 들어 변함이 없는 돌을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그 돌, 바위가 곧 사람의 마음이라면,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변하지 않고 믿어준다면 가장 좋은 친구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수석(壽石) 완상(玩賞)의 아취(雅趣)는 오래된 문화유산이며, 바위을 바라 선정(禪定)에 드는 수신(修身) 또한 돌이 주는 위안인 것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꽃은 무슨 일로 피었다가 쉽게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른 듯했다가 누레지는지
아마도 변치 않을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 돌〔石〕 -
고산시조 16/75 – 산중신곡 16/18 – 오우가 04/06
오우가(五友歌) – 솔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설(雪)을 모르는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
눈설(雪) - 눈. 같은 의미의 한글과 한자를 붙여 써서 음수율도 맞추고 의미도 확실히 했습니다.
모르는다 – 모르르냐.
구천(九泉) - 땅속 깊은 밑바닥이란 뜻으로,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곳을 이르는 말.
글로 하여 – 그것으로 미루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천이란 말이 불교적 용어임에 해석이 분분할 수 있겠으나, ‘깊다’라는 의미만 취하여 땅속 깊이 있는 물길로 심상하게 풀면 좋겠습니다. 세인들은 솔이 지닌 상록(常綠)과 침상(針狀)의 특징에 주목합니다만, 솔이라 하여 어찌 조락(凋落)이 없겠습니까. 다만 빙설(氷雪)에 견디는 식생(植生)에 특징이 있는 것이지요.
소나무를 한 글자로 ‘솔’이라 부르니 더욱 친근한 것처럼, 한민족과 한반도에 솔처럼 어울리는 나무는 없을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천연기념물 나무에 소나무가 많고, 이런 노거수를 찾아가 경배하다보면 저 아래께까지 뻗은 뿌리가 물길에 닿고 있음을 잠작할 수 있습니다.
고산의 벗이 되려면, 깊은 물길에 닿아 겨울을 이기는 고상한 절개는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는 뜻으로 풀어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따뜻해지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하여 눈이며 서리를 모르느냐
깊은 땅속까지 뿌리 곧게 뻗어 있음을 이로 인해 알겠노라 - 솔〔松〕 -
고산시조 17/75 – 산중신곡 17/18 – 오우가 05/06
오우가(五友歌) – 대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뉘 – 누구의.
시기며 – 시킨 것이며.
어이 – 어찌. 어떤 연유로.
비었는다 – 비었는가.
대나무라고, ‘나무’라 칭하지만, 식물학적으로는 나무가 지녀야 할 ‘목질(木質)’부분이 없어서 ‘풀’로 분류된다네요. 고산은 어찌 이런 전문적인 부분에도 정통했을까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기특하게도 곧기는 으뜸이요, 속이 비어 욕심 없어 보이니 벗으로 삼기에 더할 것이 없겠다 노래했습니다. 더하여 사철 푸르름까지 맘에 쏙 들었답니다.
대를 노래하면서 형태와 습성 등을 의인화한 기법이 시조의 대가(大家)답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누가 곧게 자라게 한 것이며 속은 어이하여 비었는가
저러고도 사시사철 푸르니 그것을 좋아하노라 - 대〔竹〕 -
고산시조 18/75 – 산중신곡 18/18 – 오우가 06/06
오우가(五友歌) – 달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萬物)을 다 비추니
밤중(中)의 광명(光明)이 너 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만물(萬物) - 온갖 물건. 여러 가지 물체.
광명(光明) - 빛. 밝음.
너 만한 이 – 너 만한 것이. 의인법으로 풀면, 너 만한 사람이.
또 있느냐 – 설의법(設疑法)으로, 다시 없다. 네가 최고이다.
다섯 벗 중에 물, 돌, 솔, 대는 일상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며 손으로 만질 수 있으나, 마지막 다섯 번째인 ‘달’은 멀리 있고,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능력자(能力者)입니다. 조고만 것이 글쎄, 중천에 떠서 세상 만물을 다 비춥니다. 그러니 다 보고 다니는 것이죠. 그러나 진정한 친구라면야 ‘보고도 아니 본 척’해야 되는 것이지요.
작가 고산이 정치적 격량에 휩쓸렸을 때마다 입이 무거운 달 같은 존재가 더욱 귀하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 - 달〔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