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시조 017
당우도 친히 본 듯
금춘(今春) 지음 1/2
당우(唐虞)도 친(親)히 본 듯 한당송(漢唐宋)도 지내신 듯
통고금(通古今) 달사리(達事理) 명철인(明哲人)을 어디 두고
동서(東西)도 미분(未分)한 정부(征夫)를 걸어 무삼하리
당우(唐虞) - 중국 고대의 임금인 도당씨(陶唐氏) 요(堯)와 유우씨(有虞氏) 순(舜)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중국 역사에서 이상적인 태평 시대로 꼽힌다.
친(親)히 – 몸소. 작접.
한당송(漢唐宋) - 한(漢)나라, 당(唐)나라, 송(宋)나라. 경학(經學)이 크게 발달한 시대임.
통고금(通古今) - 예나 이제나 모두 통함. 과거와 현재를 꿰뚫어 환히 앎.
달사리(達事理) - 사물의 이치에 달통함.
명철인(明哲人) - 철인들을 밝히 앎.
미분(未分) - 분별하지 못함.
정부(征夫) - 전쟁터로 나가는 군사. 정인(征人). 먼 길을 가는 남자.
걸다 – 탓하다. 다른 사람이나 문제 따위가 관련이 있음을 주장하다.
무삼하리 – 무엇하리오.
작가는 ‘올봄’이라는 일반 명사의 이름을 지녔습니다. 새봄이요 지금의 봄이나 만화방창(萬化方暢) 생기발랄한 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선조(宣祖) 때 사람으로 자(字)는 월아(月娥)로 달처럼 예뻤던 모양입니다. 1582년에 태어났고, 죽은 해는 모릅니다.
명의(名醫)가 곁에 있어도 몰라보면 ‘이웃집 사람’일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통고금(通古今) 달사리(達事理) 명철인(明哲人)을 하는 대가(大家)가 어디 없어서 시간에 좆기고 머리에 든 것도 별로 없을 듯한 전쟁터에 나가는 남정네한테 어떤 하소연이 통하겠습니까 그려. 작가는 임진왜란 당시 10대를 지냈으니, 기녀로서 화급(火急)한 상황을 자주 맞닥뜨렸을 법도 합니다.
도헌
허...거참 잼있는 시조인데, 이 시조를 알아들을 사람이 과연 월매나 될꼬...ㅎㅎ
더 재미있는 건,
성종 조에 笑春風이라는 기녀가 아래와 같이 읊었다는데..것두 임금과 문무백관앞에서...말이유.
앞에서 한자로 포기하셨으니
난 한글로 쓸게요.
당우를 어제 본듯 한당송을 이제 본듯
통고금 달사리하는 명철사를 어데두고
제 설데 역력히 모르는 武夫를 어이 좇으리이까
.
.
.
위 시조를 밴치 마킹해서 今春 언니가 걸작을 만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여수 땅의 좋은 기운과 하나님의 은혜로 자당께서 쾌차하시길 비오이다...^^
도헌
흠흠시조 018
아녀 희중사를
금춘(今春) 지음 2/2
아녀(兒女) 희중사(戱中事)를 대장부(大丈夫) 신청(信聽) 마오
문무일체(文武一體)를 나도 잠깐 아노이다
하물며 규규무부(赳赳武夫)를 아니 걸고 어찌리
아녀(兒女) - 아녀자(兒女子). 어린이와 여자. 여자를 낮춰 이르는 말.
희중사(戱中事) - 놀이 속의 일. 별 것 아닌 일.
대장부(大丈夫) -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 장부. 남아(男兒). 반의어 – 졸장부(拙丈夫).
신청(信聽) - 믿고 곧이들음.
문무일체(文武一體) - 문과 무가 한 몸이다. 한 몸이어야 한다.
잠깐 – 조금.
규규무부(赳赳武夫) - 헌걸차고 용맹한 무사(武士).
걸다 – 붙잡다. 다른 사람이나 문제 따위가 관련이 있음을 주장하다.
사내를 대하는 일에 관한 경험칙상 척 보면 아나 봅니다. 사내를 기녀의 입장에서 등급을 매긴다 치면 규규무부가 으뜸이니 어떻게든 붙잡아야 하리라. 내용은 아주 간단한데, 표현은 기대 이상으로 식자연(識者然)합니다.
동일 작가의 지난 번 작품 ‘당우도 친히 본 듯’과 대조해서 감상하면 뜻이 완연할 것인 바, ‘걸다’의 용례로 ‘정부(征夫)’와 ‘규규무부(赳赳武夫)’의 확실한 대조가 드러납니다.
흠흠시조 019
한양서 떠온 나비
송대춘(松臺春) 지음 1/2
한양(漢陽)서 떠온 나비 백화총(百花叢)에 들거고나
은하월(銀河月)에 잠깐 쉬어 송대(松臺)에 올라 앉아
잇다감 매화춘색(梅花春色)에 흥(興)을 계워 하노라
백화총(百花叢) - 온갖 꽃무더기.
들거고나 – 드는구나.
은하월(銀河月) - 은하수와 달.
송대(松臺) - 소나무 누대(樓臺). 작가의 이름이 송대춘(松臺春)임을 감안할 때, 자신을 중의(重意)한 듯.
잇다감 – 이따금.
매화춘색(梅花春色) - 매화 핀 봄빛.
계워 – 겨워. 겹다 - 감정이나 정서가 거세게 일어나 누를 수 없다.
작가 송대춘의 이름을 살피자니 ‘소나무 누대의 봄’이라는 풀이가 가능합니다. 생몰연대는 미상입니다.
기녀답게 한 나비, 한양에서 온 나비에 주목했습니다. 온갖 꽃무더기에 그 나비가 드는군요. 은하월(銀河月)은 뭐럴까, 기녀들이 모인 곳의 애칭 정도 될까나요. 그 안에 제 이름을 빗댄 송대도 있군요. 종장에서는 그 나비 흥에 겨워 놀고, 또한 작가 자신은 흥을 돋우는 매화춘색입니다.
흠흠시조 020
님이 가신 후에
송대춘(松臺春) 지음 2/2
님이 가신 후(後)에 소식(消息)이 돈절(頓絶)하니
창(窓)밖에 앵도화(櫻桃花)가 몇 번이나 피었는고
밤마다 등하(燈下)에 홀로 앉아 눈물겨워 하노라
돈절(頓絶) - 딱 끊어짐.
앵도화(櫻桃花) - 앵두화. 앵두나무의 꽃.
등하(燈下) - 등잔불 아래.
기녀이긴 하지만 어찌 제 맘속에 앉혀 놓은 님이 없겠습니까. 그 님의 소식이 딱 끊어지고 벌써 몇 번의 봄이 지나갔는고, 속절없습니다. 이러구러 세월이 가는 겝지요. 맘속에 누군가를 앉히는 일, 또 잊는 일 모두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요.
흠흠시조 021
천리에 만났다가
강강월(康江月) 지음 1/3
천리(千里)에 만났다가 천리(千里)에 이별(離別)하니
천리(千里) 꿈속에서 천리(千里)님 보거고나
꿈 깨어 다시금 생각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천리(千里) - 먼 거리.
보거고나 – 보겠구나.
작가 강강월(康江月)은 맹산(孟山)의 기녀(妓女)로, 생몰연대는 미상입니다. 호가 천심(天心)입니다. 이름을 살피자니, 성은 강(康)이고, 기명이 ‘강 위에 뜬 달’로 봐 줄만하게 미색이었나 봅니다.
멀리 떨어졌다가 만났으니 이별도 천리요 꿈속도 천리가 맞습니다. 먼 거리감을 나타내는 ‘천리(千里)’가 반복되어 운율이 되었습니다. 꿈 깨니 눈물밖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흠흠시조 022
기러기 우는 밤에
강강월(康江月) 지음 2/3
기러기 우는 밤에 내 홀로 잠이 없어
잔등(殘燈) 도도혀고 전전불매(輾轉不寐) 하는 차에
창(窓)밖에 굵은 비 소리에 더욱 망연(茫然)하여라
잔등(殘燈) - 깊은 밤의 꺼질락 말락 하는 희미한 등불.
도도혀고 – 돋우고.
전전불매(輾轉不寐) -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 전전반측(輾轉反側).
망연(茫然)하다 - 아무 생각이 없이 멍하다.
기러기는 왜 한밤중에 날아가는지. 님 생각에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아낙에게 ‘혼자 깨어 있는 게’ 아님을 알려주려 그러하는지. 종장은 초장과 연계성이 거의 없을 듯, 엉뚱하기조차 합니다. 굵은 빗소리라, 하가야 소낙비 한 줄기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차라리 정신을 아득하게 몰아부처 잠이 오게 하려나요.
흠흠시조 023
시시로 생각하니
강강월(康江月) 지음 3/3
시시(時時)로 생각(生覺)하니 눈물이 몇 줄기오
북천상안(北天霜雁)이 어느 때 돌아올고
두어라 연분(緣分)이 미진(未盡)하면 다시 볼까 하노라
시시(時時)로 – 때때로.
생각(生覺) - 고유어 ‘생각’을 억지로 한자어로 만들었습니다.
북천상안(北天霜雁) - 북녘 하늘에 서리 기러기.
연분(緣分) -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 인연.
미진(未盡) - 다하지 아니함.
인연을 맺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잊히지 않는 ‘놓쳐버린 기회’를 북천상안을 기다리는 상황으로 대신하였고, 연분이 다하지 않았기를 애써 기도(祈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