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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플라톤의 문학적 형식과 철학적 목표
책브레이1504철사1권총
Histoire de la philosophie,
Emile Bréhier, 1876—1952
제1권. [고대] 그리스 시대, Periode Hellenique 35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Les présocratiques 37
제2장 소크라테스 Socrate 79
제3장 플라톤과 아카데미 Platon et l'Académie [87-108, 7절까지]
[# 생애와 작품들]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전427-347)은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서 귀족 가계에서 태어났다. 그 가계에서는 그 도시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했는데, 이들 중에서 크리티아스(Critias, Κριτίας, 전460/450경-403)는 그의 어머니 가계로서 플라톤의 이종사촌이며, 30인 참주의 일원이었다. 플라톤은 매우 심각한 정치적 혼란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펠로포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은 404년에 끝났는데, 아테네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로서 아테네의 해양제국은 영원히 파멸되었다. 이 도시의 내부에서는 민주정과 소수의 참주정 사이에서 뒤죽박죽의 경쟁이 있었다. 민주정은 기원전 411년 3월에 400인 과두제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들은 몇 달 동안만 지탱했었다. 기원전 404년에 라케다이몬인들(스파르타인)은 30인 과두정부를 채택할 것을 아테네인들에게 강요했다. 참주들은, 그 중에 크리티아스(Critias, Κριτίας, 전460경-403)도 참주 중의 한사람 인데, 아테네인들의 해군과 상업에 체계적으로 적대시 했다. 이들은 기원전 403년에 9월에 몰락하고 민주 정부로 대체 되었다. 이 민주정부가 소크라테스를 단죄했다. 플라톤의 작품이 이 사건들에 주목했다: 즉 정부들의 정치적 불안정, 해상 상업에 기초한 제국주의의 위험, 그러한 것이 그의 정치적 작품들의 일관성 있는 주제들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페리클레스(Periclès, Περικλῆς, 전495경-429)의 민주정 만큼이나 크리티아스의 참주제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다. 그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아테네 환경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고르기아스(515 e)에서 드러났던 정치적 비관주의의 결정적 이유임에 틀림없다. (87)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그는 긴 첫 여행을 기획했다(전390-388년). 그 여행에서 우선 이집트를 방문했고, 그는 이집트의 존경할만한 고대 문화와 정치적으로 완전한 안정성을 찬탄하여 마지않았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퀴레네에 갔다. 거기서 그는 기하학자 테오도로스(Théodore, Θεόδωρος, 기원전465-398)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 그리스에서, 여러 피타고라스파 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시실리에 첫 방문에서 그는 참주 드니/디오뉘시오스(Denys, Διονύσιος, 기원전432경–367)를 방문했고, 그리고 이때 참주의 조카인 디온(Dion, Δίων, 전408-354)과 친구가 되었다. 그는 되돌아와서 한 학교를 세웠다. 그는 아테네 부근의 콜로노스(Colone, Κολωνός)라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골짜기 땅을 사서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그리고 그 위에 그는 무사이들(les Muses, Μοῦσαι)의 성소를 세웠다. 이 터전은 학교(학파)라는 집단적 특성을 지니고, 매년마다 뮤즈들의 축제를 개최하는 종교적 연합이 되었다. 이 학교는 이 축제를 유스티아누스 황제(483-565)[재위 527-565] 시대까지(529년) 유지했다. 플라톤의 교육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무엇을 했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의 대부분은 대다수의 대중들을 위한 것인데, 그것에 대한 반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들 중에서 여러 종류의 논리적 훈련 작품들은 제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파르메니데스의 제2부라든지, 테아에테토스과 소피스테스의 도입부들은 논리적 훈련들이다. 만일 이 훈련들이 학생들에게 원기 왕성한 논리를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주의한다면, 게다가 플라톤이 문어투(파이드로스)의 영향을 훨씬 넘어서 생생한 구어투의 영향을 고려한 것이라는 것을 주의한다면, 결국에는 소크라테스식 어법이 논리를 이해하게 하는 방식처럼, 그 말투가 진술로 이어지기보다 토론이라는 것을 주의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이렇게 결론지울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학술적 진술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차지하는 지위를 거기에서는 찾을 수 없음이 틀림없다. (88)
기원전 366년에 디온의 여러 번 간청들이 있어서, 시실리로 둘째 여행을 했다. 디온은, 아버지 디오뉘시오스(Denys, Διονύσιος, 전431-367)가 막 사망하여 아들 디오뉘시오스 2세를 자기 생각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플라톤이 도착했을 때, 디온은 신임을 잃고 추방당했다. 플라톤은 참주의 손님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1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기원전 361년에 이번에는 새 참주인 디오뉘시오스 2세(전397-전354)의 여러 간청들로 시라쿠사에 새로운 여행을 했으나, 첫 두 번의 여행에서와 마찬가지로 결실이 없었다. 타렌토의 참주이며 퓌타고라스 학파인 아르퀴타스(Archytas de Tarente, Ἀρχύτας ὀ Ταραντίνος, 전435경-전347)의 친구로서 소중히 여겨 굉장한 대접을 받았지만, 플라톤은 디온과 그의 사촌 사이에 화해를 시키지 못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10여 년 동안에 디오뉘시오스에 대항하는 디온의 모반 때문에(357년) 침울해 졌다. 플라톤의 친구인 디온의 기회가 좌절되어, 그 친구는 음모의 희생자로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353년). (88)
플라톤의 편지들에서 사람들은 시실리에서 여행들에 관한 몇몇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그 어떤 자료들에서도 그의 시대에 아테네 정치적 조언자들과, 특히 이소크라테스(Isocrate, Ἰσοκράτης, 전436–338)와 틀림없이 가졌을 연관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다. 이소크라테스는 그 자신도 또한 한 철학자라고 주장했었다. 그는 자기 작품 부시리스(Busiris)를 써서 소크라테스에 반대하는 폴리크라테스(Polycrate, Πολυκράτης)의 팜플렛 「소크라테스의 고발(전393)」에 대립시켰다. 게다가 마치 퀴니코스학파의 안티스테네스(Antisthène, Ἀντισθένης, 기원전 444-365)처럼, 이소크라테스는 몇몇 소크라테스 흉내 내는 자들에 대해서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플라톤은 파이드로스편에서(278 e-279 b) 공공연하게 이 수사학자에게, 그도 자기처럼 소크라테스의 동반자였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자기 자신 속에 한 철학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소크라테스도 지혜로운 정신의 소유자이며, 온건한 민주정의 친구이며, 정치적 이상향의 적(敵)이라서, 심층적으로는 야만의 위험에 대항하여 헬레니즘의 옹호자라는 목표를, 즉 플라톤과 동일한 목표를 가졌다. 플라톤은 348년에 세상을 떴다. 이때에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Philippe II ὁ Φίλιππος, 기원전382-336)가 아테네에게 건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그 그리스 도시국가, 즉 아테네의 정치적 몰락의 결정적 시기였다. (89)
플라톤은 자기의 긴 삶의 과정에서 매우 많은 대화편들을 출판했는데, 모두 보존되어 있다. 이 작품들을 시대 순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다.
1) 소크라테스의 별세 바로 앞서거나, 곧 바로 뒤에 나온 대화편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Πρωταγόρας), 이온(Ion, Ἴων), 소크라테스의 논변(Apologie de Socrate, Ἀπολογία Σωκράτους), 크리톤(Criton, Κρίτων), 에우튀프론(Euthyphron, Εὐθύφρων), 카르미데스(Charmide, Χαρμίδης), 라케스(Lachès, Λάχης), 뤼시스(Lysis, λύσις), 폴리테이아(La République πολιτεία) 1권: 트라시마코스, (Thrasymaque), 대(大) 히피아스(Hippias majeur Ἱππίας μείζων)(이 작품에 대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소(小)피히아스(Le Petit Hippias, Ἱππίας ἐλάττων), 대(大) 알키비아데스(Alcibiade majeur, Ἀλκιβιάδης).
2) 아카데미아 학당을 세우기 앞선 시기 대화편:
고르기아스(Gorgias, Γοργίας)
3) 학당을 세우고 난 조금 뒤 계획된 대화편들:
메논(Ménon Mενων), 메넥세노스(Ménexène, Μενέξενος), 에우튀데모스(Euthydème, Εὐθύδημος), 폴리테이아(Περὶ πολιτείας, La République), 2권-10권: 도시국가의 정의에 관하여, Sur la justice),
4) 소크라테스의 초상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대화편들:
파이돈(Phédon, Φαίδων), 향연/심포지온(Le Banquet, Συμπόσιον), 파이드로스(Phèdre, Φαῖδρος).
5) 과학과 변증법이란 새로운 개념작업을 도입하는 대화편들:
크라튈로스(Cratyle, Κρατύλος), 테아이테토스(Théétète, Θεαίτητος),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Παρμενίδης), 소피스테스(Le Sophiste, Σοφιστής), 정치가(Le Politique, Πολιτικός).
6) 만년의 대화편들:
티마이오스(Timée, Τίμαιος), 크리티아스(Critias, Κριτίας)(미완성 작품) 다음으로 헤르모크라테스(Hermocrate Ἑρμοκράτης), 법률들(Les Lois, Νόμοι)(이 작품은 미완성이나 플라톤 사후에 출판되었고, 많은 곳에 수집된 노트들의 관점으로 소개되어 있다), 에피노미스(Épinomis, Ἐπινομίς)가 있다. (89)
여기서 근대 비평가들에 의해 [위작으로 간주되어] 거부된 대화편들의 이름들을 보태야 할 것이다. 소(小)알키비아데스(Alcibiade mineur, Ἀλκιβιάδης), 경쟁자들(Les Rivaux), 테아게스(Théagès, Θεάγης), 클레이토폰(Clitophon, Κλειτόφων, 미노스(Minos, Μίνως), 히파르코스(Hipparque Ἳππαρχος. (89)
마지막으로 13편의 플라톤의 이름으로 보존된 편지들(Lettres)이 있다. 이 편지들이 아테네인들의 수사학 훈련 문제의 조각편들로서 간주된다는 점에서, 이것들의 진위에 대해 의심받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편지들은, 특히 긴 「편지 8」은 진실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편지는 디온의 친구들에게 보낸 것으로, 시라쿠스 참주 디오뉘시오스와 플라톤과의 관계에 대한 세부사항들로 가득 차 있다. (89)
게다가 플라톤 사유의 연대기와 진화과정을 탐구하는 대신에, 방법의 관점에서 대화편들을 분류하려고 시도 하는 것이 흥미롭다. 골드슈미트(Goldschmidt, 1914-1981)는 의심스런 대화편들과 완성된 대화편 사이를 구별했다. 그런데 논리적 배치는 연대기적 분할과는 전혀 일치 하지 않는다. (90) (47PLG) (57ULD)
제1절 플라톤과 플라톤주의 Platon et le Platonisme 90
플라톤을 직접적으로 뒤따랐던 시기에서부터, 자기 대화편들의 의미에 관한 불일치가 있었다. 고대로부터 우리 시대에까지 사람들은 그로부터 여러 갈래의 학설들을 표방되었다는 것을 안다. 예를 들어 키케로(Cicero, 전106-43) 시대에 어떤 이들은 플라톤의 이름에 스토아학파의 독단론과 같은 독단론과 결부시켰고, 다른 어떤 이들은 플라톤 속에서 의심과 판단중지의 주장자임을 보았다. 조금 더 지나서, 1세기경에서 부터는 신비가들과 피타고라스주의개혁자들은 플라톤의 이름과 저술들에 사로 잡혀서, 플라톤주의는 사유와 존재를 넘어서 영혼을 고양시키고, 또 그 영혼을 알기보다, 활기 있게 느끼는 선(le Bien)과 하나를 이루는, 학설의 동이어가 되었다. 반대로 19세기에 우리는 어떤 경향성, 즉 지금은 매우 강한 의미를 지닌 한 경향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본다. 즉 플라톤을 순수 합리주의자로 만드는 경향을 본다. 여기서 합리주의자란 진실한 실재성을 지성의 대상에 동일시하는 자이며, 이 대상을 토론을 통한 추론에 의하여 규정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자이다. 이 토론의 전형은 수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90)
해석자들 사이에 이러한 다양한 분화는 그의 사상이 특별하게 풍부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문학적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거나, 그의 사상을 모든 측면에서 일체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아마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우선 둘째 관점[문학적 형식]을 강조하자. 플라톤의 대화편은, 이오니아 철학자들과 히포크라테스 집단의 의사들이 이것을 전범으로 삼았던 학술적인 논문들이 전혀 아니다. 단지 오래된 옛 작품들에서 사람들은 닮은 어떤 점을 발견한다. 티마이오스편의 마지막에서 생리학적 고찰들과 법률편의 몇 부분들에서 이런 진술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몇몇 부분들을 제외하고, 플라톤이 진술들의 결정적인 형식들을 부여하지 못한 작품들이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플라톤의 저작들은 완전히 따로 따로 분류하게 하는 어떤 측면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플라톤과 거의 동시대인들인 (소)소크라테스 학파들에서, 누군가가 대화편들을 썼다면, 키케로나 플루타르코스(Plutarque, Πλούταρχος, 46-125)의 예에서처럼 산발적인 몇 가지 예들[조각글들]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진술의 형식은 고대시대로부터 거의 완전히 포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말기에 네오플라톤학자들이 스승의 문학적 절차를 결코 모방하지 않고서, 대화편 속에서 독단적인 실체를 발견하고자 모든 수단을 통해서 애썼다는 점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문학의 형식이란 면에서 플라톤 철학의 해석에 관심을 갖는 한에서, 플라톤 사상의 문학적 형식을 평가하려고 애쓰는 것도 그만큼 더 중요하다. (91) (47PMA) (57ULD)
제2절 문학적 형식 La forme littéraire 91
플라톤의 대화편은 다양한 수준 정도들임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측면을 지닌다. 하나는 드라마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시대 대부분이 행한 토론이며, 또 다른 하나는 가끔 연계된 진술을 포함하고 있다. (91)
우선 드라마이다. 때로는 프로타고라스(309a-310a)에서처럼 장소, 시기, 상황들이 자세하게 표시되어있고, 향연(172-174)에서처럼 그 대화 그 자체가 종종 이야기 속에 끼어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반대로 플라톤이 진도가 좀 나간 정도에 따라, 이러한 것은 보다 자주 일어나는 데, 대화가 갑자기(ex abrupto, abruptement) 시작한다. 그리고 대화편들 중에서 드라마 측면을 특정 인물들의 삶에 의해, 그리고 독자에게 맘을 동하게 하는 급반전에 의해 특히 볼 수 있다. 다른 대화편들 중에서는 드라마 같은 삶이 거의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무미건조한 대화편으로서 필레보스편과 소피스테스편에서는 몇 가지 유머와 풍자를 포함하는 것 이외는 어떠한 것도 거기에는 없다. 작중인물들로서 처음에는 소크라테스이다. 그러고 나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 또는 외국 철학자들, 아테네의 귀족 가정의 젊은이들, 도시의 정치가들과 관계 속에 있게 된다. 어째거나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처럼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주인공들 중에서 대부분은 당시 아직 살아있고, 많은 이들은 플라톤과 친척관계이다. 오직 노년기의 몇 대화편들에서만, 마치 소피스테스편과 노모이편의 이방인들처럼, 또는 필레보스처럼, 허구적이고 또 거의 생존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도입한다. (92)
사람들은 플라톤이 얼마나 기쁜 맘으로 소크라테스를 묘사했는지를 안다. 프로타고라스편에서 그 소크라테스는 풍부하고 명성 있는 소피스트들 가운데에서 아직 젊고 권위도 없지만, 소크라테스의 논변에서 그 소크라테스는 사회적 도덕적으로 자기가 맡은 임무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향연편에서 그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의식을 불안하게 하는 자이고, 메논(Ménon, Mενων)에게 자기의 무지를 드러내면서도 전기가오리가 행하는 것처럼 그를 마비시키는 자이며, 테아이테토스편에서 정신들의 산파의 역할을 하는 자이며, 결국, 고르기아스편과 메논편에서 철학적 삶의 옹호자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대화편의 드라마 같은 삶도 사라진다. 아마도 거의 확신할 수 없지만, 젊은 소크라테스는 파이돈편에서(97c 이하) 아낙사고라스를 읽으면서 교양을 쌓은 것으로 보여지고, 또는 파르메니데스편에서는(128e 이하), 플라톤 자신과는 다른 학설이라 할지라도, 엘레아의 늙은 그 철학자에게 이데아들(les idées)의 학설을 종속시킨다. (92)
소크라테스 주변에는 한 무리의 소피스트들이 있는데, 수사학자들, 비밀독해자들, 시인들, 예언가들이 있다. 이들의 지혜는 스승에 의해서 시험에 통과되어야 했다. 플라톤은 이들을 다소 잔인하게 패러디하였다. 히피아스의 경우에, 그는 모든 예술들(arts)을 가르치고 실행한다고 허풍을 떤다. 프로타고라스의 경우에 그는 정의(正義, la justice)를 가르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토론을, 신화를 끌어들여 이야기함으로써만이 끝낸다. 수사학자 고르기아스의 경우에, 순수하게 기술이기를 바란 그의 교육이 자기의 원인의 올바름에 대해서는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호메로스의 해석가인 이온(Ion, Ἴων)의 경우에 그는 시인처럼 영감을 받아 따른다. 성스러움을 주장하는 에우튀프론의 경우, 그는 불의보다는 종교적 오점을 피하고자 원한다. (92)
그리고 젊은이들도 나온다.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카르미데스(Charmide, Χαρμίδης)는 플라톤의 어머니의 사촌이며, 사람들이 절제(sophrosyné, σωφροσύνη)라고 불렀던 덕목을 지닌, 즉 신중하고, 태도와 발언에서 예의 바름(décence)의 전형적 인물이다. 고르기아스편에서 칼리클레스(Calliclès Καλλικλῆς)는 낮은 계급의 출신이지만, 지적이고 교양있으며, 아테네인들에게 필수적인 뜨거운 의지로 가득 차있는 야심만만한 인물이다. (92)
마지막으로 아테테의 부르좌이며 정치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플라톤의 친척이며 참주인 크리티아스(Critias Κριτίας, 기원전?460/450-기원전404/3)는 카르미데스편에서 스스로 폭력성을 드러내고 소크라테스를 경계하지도 않는다. 라케스(Lachès Λάχης, 전475경–418)와 니키아스(Nicias, Νικίας, 전470경–413)는 탁월한 군인들인데, 누군가가 젊은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그들에게 묻고서, 전략적 토론에 들어갔을 때 쩔쩔매게 된다. 메논편에서 [나중에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인물들 중의 한사람] 아뉘토스(Anytos, Ἄνυτος, 기원전 5세기경)같은 불안한 인물은 부르좌 보수주의자이며, 소크라테스 정신의 자유를 불안해 하고, 심판관들 앞에서 소크라테스를 고발할 것이다. (93)
여러 대화편들은 드라마 같은 진행들이 있고, 또 연극의 한편 같은 방식으로 위기들로 표현한다. 때로는 시나리오가, 초대받은 각각이 술을 마신 후에 사랑의 찬가를 이야기하는 향연에서처럼 일상적 삶에서 빌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 같은 드라마적인 사건들에서 빌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진행과정에서 주인공들의 성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리하여 종종 대화는 대화자들의 참지 못하는 성급함으로 중단되기도 한다. 이 대화자들은 소크라테스의 검토하는 과정을 너무 길게 해서 수긍하기를 거절한다. 소크라테스가 고르기아스편의 칼리클레스처럼 화를 잘 내는 성격의 인물과 대화를 이끌 때, 대화는 각 순간에 끝내야 할 위협에 처한다. 고르기아스편의 그 전체를 보면, 드라마적인 운동의 가장 아름다운 예를 제공하는데, 세 가지 에피소드들이 완전히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소크라테스가 고르기아스, 폴로스(Pôlos), 칼리클레스와 행한 세 대담이다. 고르기아스는 단지 연설의 배움에서 기술적인 측면만을 보았기에, 그의 기술에 어떤 도덕적 목적을 부여할 수 없었다. 폴로스는 수사학을 나쁜 목적에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어른들의] 선입견들에 대해 공손함과 우유부단 때문이고, 반대로 칼리클레스 같은 이는 과격함이 나온다. 그래서 칼리클레스는 고르기아스 학파에서 견제를 찾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과격함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를 찾을 것이다. 이처럼, 이런 경우들은 생생하고 드라마같은 방식으로 전개했던 고르기아스의 지적 태도의 귀결들이다. (93)
삶에서 이러한 내공들 앞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담자들이 대부분 오래전에 죽은 자들로서, 신분을 감추고서 생생한 인물들을 묘사하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은 자문하게 된다. 플라톤이 실재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과 장년 시절에 만났던 인물들을 묘사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플라톤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연대기에 대해 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으로, 심지어 초기와 둘째 시기의 대화편 들 속에서 작중 인물들 중의 몇은, 예를 들어 칼리클레스는 또는 에우티데모스와 디오니소도로스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래도 에우티데모스와 디오니소도로스에게 플라톤이 대화편 에우티데모스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맡겼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플라톤과 동시대인들 중에서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았거나 간에 그들 각각에게 그 모습으로 그려진 대로 대응하게 할 권리를 전혀 갖지 못한다. 진실은 아마도 플라톤이 묘사한 대부분의 초상화들은 그 시대의 양식으로(styliser) 그려진 것일 것이다. 양식화된 이 초상화들은 삶의 생동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편적 가치를 띠고 있다. 플라톤은 이리하여 자연스럽게 이 작중 인물들에게서 그의 시대의 고민들과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고민들을 도입할 수 있었다. (94)
드라마적인 흥미를 표현하는 대화가 중요하든 안하든 간에, 대화의 영속적이고 실체적인 부분은 예외 없이 토론이다. 하나의 질문에 (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 탁월함(la vertu, 덕)[ἀρετή]이란 가르쳐질 수 있는가?), 응답자는 정식에 의해 대꾸한다. 토론의 시련에서, 즉 메논편에서(75d) 지적된 유일한 규칙에 따라서 이 정식은 굴복한다. “응답자의 편에서 토론 또는 변증법은 진실한 대답들을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안다고 인정하는 것을 풀어내는 대답들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론은 일련의 전제들이 인정되었거나 가설적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이 전제들을 사람들은, 그 정식이 전제들과 일치하는지 않는지를 알기위하여, 토론할 정식과 대치시키는 것이다. 첫째 정식이 반박되면, 응답자는 그 다음 둘째 정식을 제시하고, 그러고 나서 셋째 정식을 제시하고 이렇게 이어져서, 결국에는 가끔 어떠한 결정적인 결과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리하여 카르미데스는 그의 이름으로 된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로부터 절제의 본성에 관하여 질문을 받고서, 절제란 “순서에 맞게 천천히 행하는 것”이라 대답한다. 그러나 카르미데스가 인정하는 것처럼, 다른 한편으로 절제란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에 있다고 하며, 그는 천천히 하기 보다 재빨리 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하면서, 따라서 그 자신이 인정한 것과 자기의 정식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정식을 포기하고, 다른 정식을 제안해야만 한다. (94)
그러므로 토론 또는 변증법적 대화는 소피스트들의 시합에서처럼, 각각이 자기 대화자에게 주장하는 반대되는 두 견해들의 대치상태를 어떤 정도의 차이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응답자는 혼자서 실증적 견해들을 표현한다. 소크라테스 그 자신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지라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는 응답자가 그 자신과 일치하는지 않은지를 그 응답자에게 알게 하면서, 응답자의 말을 검토하거나, 그 응답자를 시험에 통과하게 하는 역할만을 한다. (94)
원칙적으로 플라톤의 변증법은, 그 변증법이 처음부터 소크라테스의 대화들 속에서 있었던 그 무엇을 항상 그대로 남겨둘 것이다. 테에이테토스편은 연속적으로 테아이테토스의 학문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검토하듯이, 대(大)히피아스편은 아름다움에 관한 히피아스의 연속적인 견해들을 반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틀과 의미화 작업은 조금씩 변하는 것으로 그렇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대화들은 최소한으로 인물들의 검토만큼이나 그들의 견해들에 대한 검토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전자보다 후자에 관해서 이다. 절제, 용기, 경건 등과 같은 개념들은 그 자체적으로나 그 자체에 대해서나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이런 덕목들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이것들을 인식하는 지를, 한마디로 그들은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지를 탐구한다. 토론의 특혜는 “자기 자신의 인식”일 것이다. (95)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멀어짐에 따라서 그의 중심적 관심은 인물들로부터 실재성 자체로 자리를 바꾸어 옮기는 것 같다. 또한 그가 얻은 결과물들에 더 많은 값어치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프로타고라편을 메논편에 비교해보자. 이 두 편은 동일한 주제에, 즉 탁월함이 가르쳐질 수 있는가?에 근거한다. 그러나 두 대화편 중에서 첫째 것에서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그 자신과 불일치에 놓는 것으로 만족한다. 왜냐하면 프로타고라스가 처음에는 ‘그래요’ 다음에는 ‘아니오’로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 대화편에서 사람들이 검토한 것은 주제 자체이라기보다, 오히려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이었다. 반대로 메논편에서 플라톤은 아마도 그 순간에 아카데미에서 스승이 되었기에, 탐구와 교육의 실증적 방법을 지적했다. 게다가 후기 대화편들 속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전적으로 망각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필레보스(11 b)편에서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에 의한 대담자의 내용 검토로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변증법은 대치되는 두 개의 대립된 주제들을 허용하며, 그 중의 하나가 소크라테스 자신에 의해 주장된다. (95)
이리하여, 플라톤의 문학적 활동과정에서 변증법은 드라마적이며 인간적인 관심 속으로 조금씩 사라지고, 비인격적 방식으로 변형되는 경향을 갖는다. 이 비인격적 방법은 문제들에 대해 그 문제 자체로서 흥미를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95)
플라톤 작품에서 우리가 구별했던 셋째 측면은 연계된 진술이다. 이 연계된 진술은 첫째 시기와 둘째 시기에서는 서로 서로 많은 인접성을 갖는 두 가지 형식으로 표현된다. 하나의 주제를 주장하는 담론(le discours)과 그 주제를 이야기 하는 신화(le mythe)이다. 주제에 맞는 담론은 소크라테스의 대담자들의 입을 통해 일반화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종종 패러디의 성격을 띤다.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의 견해들을 뻐기는 방식식의 강의로 제시하고,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 프로디코스, 고르기아스의 방식을 모방하기를 즐긴다. 가끔은 소위 말해서 소피스트들의 강연들에 대해 닮았다고 말함이 없이, 그와 닮은 방식의 담론들도 있다. 향연에서 사랑에 대한 찬미가 그러한 것이다. 그 작품에서 플라톤은 수사학자 뤼시아스(Lysias, Λυσίας)의 방식으로(파이드로스의 담론을), 프로디코스의 방식으로(파우사니아스의 담론을) 히피아스의 방식으로(에뤽시마코스의 담론을) 고르기아스의 방식으로(아가톤의 담론을) 연속적으로 패러디 한다. 이러한 것이 고르기아스편 속에서 칼리클레스의 담론이다. 파이드로스편에서 뤼시아스는 연설가들의 기술적 결함들을 드러내는 구체적 표본으로 주어지게 될 숙명을 띤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서 연계된 담론들은 변증법이라 할 만한 진실로서 과학적 탐구방법에 맞는 것을 다른 것들보다 어느 정도 돋보이게 하는 데 쓰인다. 소크라테스 그 자신은 “긴 담론들에 대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프로타고라스(336b), 그리고 만일 자연적 경사를 따르는 그의 대담자들이 (프로타고라스처럼) 한 담론을 발언하면서 토론에서 빠져나가기를 시도한다면, 또한 소크라테스가 이들에게 [계속하여 전개하여] 말하기를 내버려 두지 않을 때, 만일 이들이 칼리클레스처럼 그 부분을 항상 포기할 준비되어 있다면, 반대로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재통합된 몇 사람의 토론과 인민에 속하는 담론” 사이에 구별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같은 책). 이것은 담론 속에서 청강자들에게 아첨하면서 설득하는 것만을 중요시하는 것이지, 진리를 또한 그 자체와 일치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96)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그의 탐구 과정에서 담론의 기술에 대해 항상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담론에서도 증가해 가는 [진리의] 지위를 부여했던 것 같다. 엄격한 증명을 인정하지 못하는 관점들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도, 설득의 방법들은 그것들의 중용성과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고려에서 노년의 작품인 법률편과 폴리테이아편을 비교해 본다면, 법률편에서는 더 이상의 토론이 없다. 대신에 반대로 법률의 각 범주를 위하여, 증명하기보다 오히려 확신을 끌어내야만 하는 긴 서설들이 들어 있다. 그러한 것이 법률편 10권에서 종교에 연관 있는 법률들에 관한 유명한 서설이다. 플라톤의 이 방법은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우리는 거기서 도덕적 예측의 초안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이 예측의 초안이 나중에 거의 전적으로 철학이 될 것이다. 게다가 파이드로스(269c 이하)편에서는 플라톤이 어떻게 유창한 웅변의 개혁이 가능한지를, 어떻게 사람들은 변증법에 연합하면서 담론에 질서있고 항구적인 것을 부여할 수 있는 지를 제시했다. 이 같은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웅장하고 연설적인 스타일의 예를(같은 책 245c 이하) 즉 초기대화편들에게 생동감 있고, 짓궂은 짓과는 대조가 되는 그러한 예를 보여준다. (97)
신화(le mythe)의 측면에서 보면, 신화는 우선 담론에서 장식용이다. 그처럼 신화는 플라톤이 패러디한 소피스트들 또는 연설가들에게서 그것의 지위를 갖는다. 예를 들면 프로타고라스에게서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향연편에서 에로스(Eros) 탄생의 신화이다. 그러나 매우 일찍이 고르기아스편에서부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신화들을 삽입했다. 이 신화들에는 어떤 정확한 특성들이 있는데, 신화의 특성들을 연설의 순수 장식과 단절하였다. 첫째로 신화들은 담론의 부분을 보다 넓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화들은 그것들 자체로서 취급되었다. 그러한 방식이 고르기아스(523 a)편과 공화국(10권 614 b)편의 목적으로 쓰인 신화들이다. 이 두 경우에서 신화가 시작하는 순간에는, 토론은 바닥이 나 있었고, 정의 개념은 명백하게 끌어내 밝혀졌다. 그 신화들은 토론의 일부를 이루지 않고, 토론에 덧붙여진다. 둘째로 신화들은 신들의 발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직 영혼의 숙명에 관한 것이며, 또는 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미래적 삶에 관한 그 신화들은 [호메로스의] 오뒤세이아(L’Odyssée, Ὀδύσσεια)에서부터 어둠의 나라를 묘사하면서 자연히 환상적인 지리학에 연결되어 있다. 플라톤 신화에서 일종의 지리학은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반면에 고르기아스편은 호메로스의 표상들을 전혀 넘어서지 못하며, 파이돈(Phédon, Φαίδων)편에서 지구 표면의 울퉁불퉁함에 관해 사색하며, 공화국(616 c-617 b)편과 파이드로스편은 영혼의 역사를 천문학적 체계에 내재적 방식으로 연결한다. 세계 전체는 인간의 영혼들과 신들이 진화하는 무대 장면과 같다. 사람들은 천문학적 사색들이 영혼의 신화를 위해서만 플라톤에게 도입되었다고 엇비슷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사물들의 메카니즘도 마찬가지여서, 영혼이 자연적으로 장소들에게로 끌어당겨지는 것과 같으며(법률, 10권 904 b), 이 장소들에서 영혼은 자기의 징벌을 감당하기도 하고, 또는 자기의 보상을 즐기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 자체는 살아있고 활성화하는 거대한 존재이다. 티마이오스편은 이야기 또는 신화의 형식인데, 어떻게 세계의 영혼이 형성되었으며, 그 자체 속에서 물체(신체)가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이 종교적 천문학은 상당한 영향을 이어갔다. (98)
또한 신화는 가끔 그러나 아주 드물게 역사 서술의 형식으로, 마치 노년기의 미완성 대화편 크리티아스에서처럼, 전설 쪽으로 방향을 잡기도 한다. 크리티아스에서는 역사시대 이전의 아테네와 아틀란티스를 묘사했다. (98)
마지막으로 티마이오스(61 c.에서 마지막까지) 신화의 연속된 진술은 봉합하지 않고서 다른 형식의 연속된 진술에, 즉 생리학적이고 의학적인 논술의 진술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덧보태야한다. 이 대화편의 마지막에는 이오니아인들 또는 의사들이 생각했던 대로 실험과학들이 마무리로 달아나듯 등장하는데, 이런 것들의 표현을 우리가 인용했던 문학적 형식들 중의 어떤 형식으로도 당연히 찾을 수 없다. (98)
형식의 이러한 예외적인 복잡성으로부터, 즉 드라마, 희극, 변증법, 연계된 담론, 신화, 언설 등을 시기들에 따라서 다르게 분량을 넣어 각각에게 알맞은 변형을 만든 형식들로부터, 플라톤의 철학을 판단하기 위하여 추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98) (47QKC) (57ULE)
제3절 철학의 목표 But de la philosophie 98.
이 모든 형식들의 통일성을 이루는 것, 어느 정도로는 이 형식들을 필수적이게 하는 것, 그것은 도시국가에서 철학자의 지위를 확립하고자하는 욕망이며, 철학자의 사회적 도덕적 임무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자는 사변적이든 종교적이든 간에 다른 종류의 사변적 작업들과 연관해서 보아 전혀 정의되지 못하였으나, 연설가들, 소피스트, 정치가들과 연관을 통해 그리고 그와의 차이를 통해서 정의된다. 철학은 적어도 사회적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지적 삶의 새로운 형식의 발견물이다. 대화들은 우리에게 이런 삶을 그려주고, 문제거리가 되는 모든 드라마들과 모든 희극들을 그 삶과 더불어 묘사해준다. 어떤 점에 비추어보면, 이 철학은 그 시대에 그리스에 확고하게 심어진 습관들과 부딪힌다. 그리고 회피할 수 없는 것은 충돌들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충돌의 비극적 결말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98)
철학자는 무엇인가? 플라톤에서는 철학자에 대한 많은 초상화들이 있다. 파이돈(64e 이하)편에서, 철학자는 신체의 더러움으로부터 정화되는 인간이다. 그 인간은 영혼에 의해서만 산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삶으로부터 그의 영혼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테아이테토스(172c-177c)편에서는 철학자는 인간들과 연관해서 서투르고 어설픈 인간이다. 그 인간은 인간 사회에서 제자리에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고 도시국가에서 영향력 없이 있을 것이다. 공화국편에서, 그는 도시국가의 우두머리이고, 법률편에서는 바로 그가 최조관이 되어서, 시민들의 “영혼의 구원”을 원한다면서, 영구적인 감옥형이라는 위협으로 도시 주민들에게 도시의 신들을 믿는 신앙을 강요한다. 결국, 파이드로스(244 a,이하)편과 향연(210 a)편에서 열정적 인간이며, 영감을 얻은 인간이다. 이어지는 초상화들 속에는 서로 모순될 것 같은 두 개의 지배적인 특징이 있다. 한편으로, 철학자는 “이 세상으로부터 달아나서” 정화하여, 소피스트와 정치가가 모르는 실재성들과 접촉하여 살아야 하는 자이다. 다른 한편으로 철학자는 사회적 연관들 속에서 학문의 목적인 정확하고 엄격한 연관들을 반영되는 정의로운 도시국가를 건설해야한다. 그 다음으로, 한편으로 철학자는 세상으로부터 은퇴한 과학자이며, 다른 한편으로 현자이며 정의로운 자, 즉 도시국가에 법률들을 부여하는 진실한 정치가이다. 플라톤 그 자신이 아카데미아 창설자임과 동시에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의 친구이기도 하고, 또한 디온과 시라쿠스의 참주인 디오뉘시오스의 자문역이기도 하지 않는가? 게다가 철학자로서 그는 엄격한 논리의 발명자 또는 발안자이라 할지라도, 또한 영감을 받은 자이다. 그런데 영감을 받은 정신이 사랑의 충력 없이는 생산 없는 불모성으로 남았을 지도 모르나, 그의 정신은 영감 받은 만큼 아름다움 안에서만 생장할 수 있다. 추론으로 이루어진 이 토론은 사랑의 변증법으로 이중화되는 데, 즉 가슴으로 토로하는 목가적 시들로, 그리고 신비적 관조들의 표현으로 번역된다. 과학자이며 신비가, 철학자이며 정치가, 이것은 일상으로 보아 분리되는 특성들이다. 우리는 역사의 과정에서, 즉 19세기의 몇몇 개혁가들에게서 이 특성들을 통합하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무엇이 이것들의 연결을 이루는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99) (47QKD) (57ULE)
제4절 소크라테스의 변증법과 수학 Dialectique socratique et mathématiques 99
우선 플라톤의 과학은 무엇인가? 과학은 인식의 대상과 거기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방법적 절차 사이에 내밀한 통합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거기에 사람들이 충분히 강조할 수 있는 첫째 중요한 점이 있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적 개념이라 부르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플라톤 그 자신은 이미 이데아[관념]라 부르는 것, 즉 용기, 탁월함, 경건이라 부르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플라톤을 본다. 말하자면 경건이라 불리는 것을, 마치 에우티프론(6d)에서 “경건한 모든 사물은 경건하다”고 그가 말했듯 것처럼, 그리고 마치 사람들이 “[그와] 닮은 것으로 이뤄진 모든 것이 경건하다는 비교의 용어로써” 사용하는 것처럼, 의미한다. 따라서 이 관념은 사물자체 속에 남아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적 검토에 의해서만 분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 관념이 검토에 대해 저항하더라도 그 시련으로부터 승리하고 나왔을 때만, 응답자에 의해 도달한 정식이 진실로 관념이라는 것을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관념을 시련으로부터 면제해줄 수 있는 계시도, 무매개적 직관도 없다. 게다가 여기서 방법은 대상보다 훨씬 중요하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관념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반대로 그는 정신을 훈련시키고 정신에게 정신의 착각들을 걷어낸다. (100)
소크라테스적 탐구는 도덕적 사실들에 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 방법을 행동의 영역에 있지 않았던 이데아들(des idées)로 확장한 것이 플라톤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또 플라톤이 이데아들을 “따로 떼어냈고[분리]”, 그리고 이데아들에게 분명한 실재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이런 변형의 과정이 이뤄졌는가? 그러면 이 변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것에 부여한 순수한 임의적 특성인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이데아들의 분리는 관념들을 가지고 감각적 사물보다 우월한 실재성을 만들고, 또 이 분리는 플라톤이 수학에게 부여한 지위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100)
수학은 엄밀한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반대로 실증적 귀결들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떻게 그리고 왜? 하나의 절차 덕분인데, 이 절차를 플라톤은 가설이라 불렀으며, 메논(87a)편에서 매우 분명하게 정의한다. “사람들이 기하학자에게서 표면적에 관해서 물었을 때,” 예를 들어 만일 그 어떤 삼각형이 그러저러한 원 속에 기입될 수 있을 때, 기하학자는 대답할 것이다. “내가 이 표면적이 거기에 적합한지를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규정하기 위하여 다음 방식으로 가설에 의해서 추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믿는다. 만일 이 표면적이 그러하다면, 즉 주어진 직선에 적용된 동일한 면적의 평행사변형이 그 표면적의 모자란 부분인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이러이러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러저러할 것이다.” 이 방법은 분석이며, 조건 지워진 것으로부터 조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조건 그 자체가 실현되었는지를 아는가하는 문제를 임시적으로 옆으로 젖혀두고서라도, 무엇보다 두 명제들 사이에 논리적 귀결연관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조건은 유사한 탐구의 대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 조건 자체는 사람들이 가정했던 어떤 조건에서도 연관될 수 있다. (101)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적 토론 대신에 메논편에서 수학적 분석이 대체된다. 그런데 이데아들의 현존과 분리는 파이돈편에서 분석방법을 자연학에서 제기되었던 것과 같은 사물들의 설명의 문제에로 적용하여 생긴 결과로서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소개되었다. 플라톤은 이야기한다. 자연학자들이 보다 단순한 사실들의 설명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확정한 후에, 어떻게 소크라테스는 아낙사고라스(Ἀναξαγόρας, 기원전 500-428)의 한 책에 매료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책에서 사람들은 다음을 읽었다. “지성[νοῦς]은 질서를 잡는 자이며, 모든 사물의 원인이다.”(97c)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의 독서를 진일보하여, 현상들의 세부를 설명하면서, 예를 들어 땅의 형태 또는 천체들의 운동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성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아낙사고라스가 공기, 에테르, 물에 도움을 청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낙사고라스는 이렇게 설명했으리라. 소크라테스는 감옥 속에 앉아있는데 그가 달아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유기체[신체]가 그러그러한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 당시에 소크라테스는 자연학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시각 또는 다른 감각들의 의해 주어진 실재성들을 옆으로 완전히 젖혀두고자, 그리고 “이차적 통과”로 메논편에서 이미 지적했던 방법을 사용하기를 시도하고자 결심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가장 확고하다고 판단했으리라는 정식을 가설로서 제기하고자, 그리고 이 정식과 일치할 것을 진리로서 이것과 일치하지 못할 것을 진리가 아닌 것으로서 제기하고자,” 결심했다. 사물들의 설명의 문제에서 이 정식은 이데아들을 주장하는 정식이다. “사람들은 가정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선함이 그자체로, 위대함이 그자체로, 나머지 것들도 마찬가지로 현존한다고.” 그리고 만일 하나의 사물이 아름다움 그 자체 없이도 아름답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한 사물이 아름다움 그 자체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사물을 설명할 것이다. 플라톤의 의도는, 그가 설명할 사물의 양태를 자연학자들의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분명하게 된다. 어떻게 두 사물이 짝을 형성하는지를 설명한다고 해보자. 자연학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 사물들이 원초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서로 접근하였다고 하거나, 동일한 사물이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거나 이다. 따라서 그는 동일한 사실의 모순된 설명들을 우리에게 주거나, 또는 그가 그것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이다. 어떤 자연학적 조작도 양자 관계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양자 관계는 모든 자연학적 조작들과 독립적으로, 마치 수학의 대상처럼, 그 자체로 현존한다. 두 사물들로부터 짝이 전적으로 태어나는 것은 양자관계 그 자체에 참여에 의해서 이다. (102)
사람들은 어떻게 이데아들의 이론이 분석적 방법 또는 가설적 방법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았다. 그 방법은 이데아들의 이론보다 더 넓고 크다. 이데아들의 이론은 앞의 방법의 특수한 적용의 하나일 뿐이다. 거기에 바로 플라톤주의의 정신이 있다. 이 정신에 매우 분명하게 이 후에 따라 나오는 독단주의들이 대립할 것이다. 사유의 도약은 소크라테스에서처럼 플라톤에서도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남아있다. (102) (47QKI) (57ULE)
제5절 플라톤의 변증법 Dialectique platonicienne 102
그러나 분석적 방법은 파이돈편에서 예견되었고, 폴리테이아편에게 길게 다루어진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방법에서 가설은 증명으로 쓴 이후로 그 자체는 보다 높은 가설로 귀착해야만 한다. 그러나 조건들로 향한 퇴행에서 “자체적으로 충분한”(파이돈, 101d) 항에 멈춰야 하며, 그 자체는 더 이상 가정된 것이 아니어야(폴리테이아, 511b)한다. 그런데 여기서 수학들은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게 한다. 수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학은 직선들 또는 곡선들, 짝수들 또는 홀수들을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가정들은 가정들로 남아있다. 상위 과학이, 즉 비조건에 이르는 변증법이, 가정들에게 근거있게 할 뿐이다. 플라톤이 이 용어를 선 또는 선의 이데아(폴리테이아 508e)라는 표현에 의해서 지칭할 때, 그의 의도는 아주 분명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원했다. 사람들이 한 사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결정적 설명, 그것은 사물이 선하고 또는 사물이 그 선(le Bien)에 참여하는 경우일 뿐이다. 후기 대화편들에 따르면, 그가 폴리테이아를 쓴 시기 이후부터 티마이오스편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추론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가정할 수 있다. 티마이오스(29e-30a)편에서, 천체들의 운동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천문학자에 의해 가정되었던 수학적 연관들 또는 기하학적 형식들이 이번 차례에 와서 설명되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데미우르고스의 계획을 실현해 주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그의 선한 의도로부터 도출되고, 선성은 전체가 선가정하는 그 무엇인데, 그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선가정하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목적인이라고 부르게 될 이것은 절대적이고 진실한 원인이다. 이 원인은 지난 설명을 부여한다. 마치 탁월함들 그 자체들처럼, 정의와 아름다움은, 만일 사람들이 “이것들이 어디에서 선한지”(폴리테이아, 506a) 알지 못한다면, 아무 가치 없을 것이다. 그 선은 태양과 같으며, 그 태양의 빛으로서 많은 다른 사물들이 자기들의 존재이유가 알려지고, 그 태양의 열로서 그것들이 현존한다. “따라서 온선은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품위의 면에서도 권능의 면에서도 존재를 넘어 선다”(506 b). (103)
만일 사람들이 선의 이데아가 해소될 숙명에 놓인 이 문제를 잘 고려해 본다면, 사람들은 그 이데아에 관한 폴리테이아편의 수수께끼 같은 구절을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파이돈편에서 플라톤은 반성(réflexion, διάνοια)이라는 일반 명사로 사유(la pensé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사유는 가설들의 발견에 의해 진행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설에서 가설로 거슬러 올라갔던 조건이 그 자체로서는 더 이상 가설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인정하는가? 확실하게 가설이 아니지, 나머지 모든 것이 그것[가설]과 갖는 의존적인 논리 연결로 보면 말이다. 그 가설은 다른 가설과 구별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가설[최종가설로서 조건]을 인정하는 것은 직접적인 지적 직관(l'intuition, νοήσις)에 의해서, 즉 일종의 통찰(vision)에 의해서 이다. 이 직관은 다른 어떠한 방식으로도 정당화되지 못했다(폴리테이아, 511 d) (103)
이로부터 철학자의 통치 체제라는 것이 전개된다. 플라톤은 그러한 것을 폴리테이아편 제7권에서 묘사했다. 철학자의 지적 형성작업의 토대로서 “가설에 의한 방법을 사용하는 4개의 과학들이 있다.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다. 플라톤은 매우 큰 고민을 하면서, 그는 단지 이 과학들이 그 방법을 사용하는 정도에서만 인정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는 이 과학들로부터 감각적 관찰이 섞여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증명이 안되는 모든 것을 쳐낸다. 예를 들어 산술학이란 상인들 또는 전략가들에게 쓰이는 계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적 사실들과 독립적인 수들 그 자체를 분간해내는 과학이다(525 e). 똑같은 방법으로 기하학은 측량술이 아니다(526d). 그리고 플라톤은 사실에 의해서 그것의 증거를 이 과학의 새로운 부분에서 발견한다. 그는 계속하여 이 기하학에다가 입체기하학 즉 다각형 입방체들의 과학을 중요하게 결합시킨다. 입체기하학은 표면적들을 측정하기가 전혀 아니며, 소위 말하는 기하학과 천문학 사이에서 매개이다(528a). 천문학은 천체들(les astres, 별들)과 행성들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등속도 운동들의 조합만을 인정한다. 따라서 천문학은 불규칙한 운동들만 직접적으로 시각에 나타나는 행성들의 관찰로부터는 너무 거리가 멀다. 결국 시행착오를 하면서도 악기와 일치시키는 음악가는 현들의 일치를 구성하는 연관, 즉 단순히 수적인 비례 연관을 발견하는 과학자가 결코 아니다(531 ab). 따라서 이 네 개의 과학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의 사유 만에 의한 가설들에로 단계를 높이도록 강요하면서, 감각적 사물들의 바깥에서 우리를 존재로 향하여, 즉 진실한 실재성을 향하여 끌어당긴다(533ab) (104)
그러나 여기서는 이것이 하나의 준비일 뿐이다. 이 과학에게 변증법을 포개야만 한다. 진실한 변증론자는 “종합적 시각의” 정신이며, 그 자는 분산된 상태로 과학들을 간직하지 않고, 오히려 과학들 사이에 근친성을 존재들과 더불어 본다(537 c). 한마디로 그는 다양한 가설들을 그것들의 유일한 뿌리인 온선(le Bien)에 결합시키는 자이다. 모든 과학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인 온선의 과학은 이 모든 과학들을 밝혀주고 또는 그것들의 실재성 제시한다. (104) (47QKJ) (57ULE)
제6장 과학의 기원. 회상과 신화 L'origine de la science. Réminiscence et mythe. 104
성숙기의 플라톤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지적 인식의 두 도식들이 정신에게 항상 현재해 있게 하는 것이 가장 높은 정도의 중요성이다. 이것들의 구별은 문제의 계열 모두에 결합되어 있다. 첫째로 순수하게 소크라테스적인 플라톤은, 응답자에 의해 주어진 정식들 또는 해결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데 만족하면서, 정식들 그 자체들의 기원을 완전히 모호한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식들이 완전히 임의적이라면, 이것들은 실재성과 어떤 운수에 일치되는가? 이것이 바로 메논에 의해서 제기된 소피스트적인 의문의 의미이다. 만일 사람들이 무엇을 탐구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른다면, 탐구는 불가능하고, 마찬가지로 만일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그 탐구는 무용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응답자는 이미 실재성을 향해 방향이 정해져 있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는 이미 이 실재성을 인식했었고, 탐구와 지식은 “회상”일 뿐이다(메논, 81d). 만일 정신이 단순한 반성에 의해 (스승의 질문에 의하여 인도되었거나 아니거나 간에) 진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신이 그 자신 속에 진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반성에 의하여 소크라테스에게 질문 받은 노예도 한 정방형의 두 배의 정방형이 대각선 위에 구축된 정방형이라는 것을 발견한다(메논, 82b-85b). 사람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를 다시 회상해내는 것이다. 게다가 회상의 이론은 게으른 이론이 전혀 아니고 자극하는 이론이다. 그 이론 덕분에 “우리는 착실한 용기를 당연히 갖고 있으며, 우리가 그 무엇의 추억을 상실하고 있었지만 그것의 기억을 탐구하고 재발견하려고 애쓴다.”(메논, 81d-86b). 기억 덕분에, 우리는 마땅히 “보다 착하고, 보다 생기 넘치고, 덜 게으르다” 회상은 탐구에 있어서 정신의 자치의 첫째 이름이다. (105)
그러나 이 이론은 그 다음 차례로 영혼의 선현존(la préexistence)이라는 심각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메논, 81 b). 플라톤이 초기 대화편에서 의심했던 영혼의 불멸성은 이제 과학의 조건이 된다. 선현존이라는 건조하고 추상적인 주장은 충분하지 못하다. 플라톤도, 만일 이 신념이 신화에서 표상될 수 있을 경우에만, 그 신념은 신체화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신체 밖에서 영혼의 현존을 이야기하는 신화는 그가 고르기아스(523 a)편에서 취한 초기 형식으로서, 메논편에서 선입견들과는 아주 독립적인 것이었다. 플라톤은 오직 정의(正義)의 작업이 죽음 이후에도 어떻게 계속 추구되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대화편들 속에서 신화는 아마도 매우 많은 부분에서 동일한 특성을 유지하고, 신적 심판의 설화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입장이 정립되어서, 그 입장은 파이돈(248 ac)편에서 매우 중요한데, 그 방식에 따르면, 영혼이 신체 속에 들어가기 앞서 실재성들의 인식을 획득했었다는 것이고, 영혼은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에 그 추억을 재발견하는 것이라 한다. 영혼은 신들의 원환 운동과정에서 천상의 신들과 같이 하면서, “천상의 저 너머에 있는 장소”에서 “색깔도 없고 형태도 없는” 실재성들을 보았다. 이 실재성들이 이데아들(les idées), 정의 그 자체, 절제, 과학이다. 신체 속에 떨어지고 난 뒤에, 영혼들이 이 상황들을 더 잘 알도록 허락받을 경우에, 회상할(de souvenir) 수 있는 철학자들의 영혼들이 될 것이다. (105)
이리하여 이데아들은 파이돈편에서는 영혼의 신화로부터 인식적 요소들이 된다. 이데아들은 감각적 세상 저 넘어서 영혼이 깨달았던 하늘 보다 그 위의 장소에 위치할 수 있다. 이데아들에 대한 신화적이고 상상적인 일련의 실현화 경향은 아마도 플라톤 철학의 암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이 경향이, 이론 그자체가 과학의 조건이 되는 회상 이론에 의존하는지를 본다. 과학이 수학적 가설들을 넘어서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신화와 과학은 분해할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106) (47QLA)
제7장 과학(학문)과 사랑의 변증법 Science et dialectique de l'amour 106
메논편에서 이데아들의 회상에다가 올바른 견해들을 소유할 가능성을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켜놓았다. 이 견해들을 정당화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견해들은 과학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메논, 97c-98c). 이리하여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들, 이 도시국가를 잘 지도했던 페리클레스(Périclès, Περικλῆς, 전495경-429)와 아리스테이데스(Aristides, Ἀριστείδης, 전530–468)는 어떠한 정치학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기술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마땅할 어떠한 방법적 인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학문과 기술을 가르치고 전달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자식들을 정치가로 만들 수조차 없었다.(93c-94e) 그러나 실천적인 면에서 행동만이 문제가 될 때, 올바른 견해는 과학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이 견해는 개인에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이 견해가 교육에 의해 더 이상 획득되지 않기 때문에, 이 견해는 신들의 영감으로부터 도출할 필요가 있다(99c-100b). 이런 영감 작용은 아테네 도시국가에 속하는 신들에게 혜택을 입은 총애자들 가운데 있다. 이것이 플라톤의 어떤 독자에게도 놀라게 하지 않는 특징이다. 어떤 그리스인에게나, 그 도시국가는 필수적으로 그 도시가 재단을 세워 섬기는 신들의 보호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106)
메논편의 회상이 파이드로스편에서 영혼의 선현존의 신화 속에서 실현됨으로써, 이런 영감 작용은 그의 신화적 완성이라 부른다. 이 신화적 완성이란 상상에 의해서 영혼 속에서 행사되는 영향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향연편과 파이드로스편에서 에로스의 신화가 그것이다. 플라톤은 철학적 영감을 동일한 종류로서 사실들의 일체에 결부시켰다. 이 철학적 영감은 그 자체로 보면 사랑의 광기의 한 측면이다. 왜냐하면, 플라톤에 있어서 철학은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철학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고독한 명상이 아니라, 제자의 영혼 속에 심는 정신적 생성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 속에서만” 그리고 사랑의 영향 하에서(향연, 206 c)만 “생성할 뿐이다.” 사랑은 불멸성을 향하며, 또한 마찬가지로 한 개인에서 다른 개인으로 삶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신체들의 사랑을 향하는 만큼이나, 스승에게서도 제자에게서처럼 지성의 잠자는 권능들을 깨우는 아름다운 영혼들의 사랑을 향한다.(향연, 206 d, 208 b) 이처럼 정신의 삶은 육체의 삶에 접목되어 있다. 살아있는 존재를 자기와 닮은 것에로 밀고 나가는 본능적 욕망에서부터 영원하고 소멸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급작스런 통찰에까지, 진보 일반이라 할 만한 연속적 진보가 있다. 그것은 감동 먹은 존재의 진보이며, 하나의 신체의 아름다움에 의해서가 더 이상 아니고, 조형적인 모든 아름다움에 의해서 감동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조형적 아름다움의 그 위에는 영혼들의, 전념하는 활동들의, 과학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그보다 더 위에, 모든 아름다움들이 나오게 되는 온미(le Beau)의 거대한 바다가 있다(향연, 209e -212a). (107)
플라톤은 사랑의 다이모니아적 본성에 관하여 길게 강조한다. 사랑에 대해 그 본성을 믿는다면, 다이모니아들은 종교적 숭배에서 첫째 도식의 역할을 한다. 이들은, 신들에게는 인간들의 기도들로, 인간들에게는 신들의 선물로 기여하면서 인간들과 신들 사이에 매개의 역할을 한다. 에로스(Eros, Ἔρως)는 포로스(Poros, Πόρος, 풍요)와 페니아(Penia, Πενία, 빈곤)의 아들로서, 다이모니아들 중의 하나이다. 이는 자기 어머니의 빈곤에 자기 아버지의 능란함과 풍부한 정신자원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에로스는 모범적 전형이며, 마치 철학자들의 후원자와 같다. 에로스는 철학자들에게 있는 영감을 일으키고 도약하게 하는 것 모두를 그 자신에게서는 상징화한다. 애정적인 질서 안에서 사랑이 지적인 질서 속에서는 수학적인 것들인 무엇이다. 수학적인 것들이 존재로 향해 끌리듯이, 사랑은 아름다움을 향해 끌린다(향연, 202e, 203c). (107)
마찬가지로 인격화된 에로스가 다른 인격화된 다이모니아들 중의 하나의 다이몬인 것처럼, 사랑의 광기는 또한 “신들로부터 오는 모든 광기들을 포함하는”(파이드로스, 245b) 보다 광범위한 광기 류 중의 한 종의 광기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특별하게 신격화의 양식[예언]에 결합된 신념들과 종교적 실천을 몽상했다. 이 양식의 사회적 중요성은 굉장하며, 델피 신전의 퓌티아(la Pythie, Πυθία) 여사제의 예언은 “그녀의 광기 덕분에 그리스에서 그 만큼 많은 선을 행하며, 또한 [그 예언은] 그녀의 양식(un bon sens)에서는 선한 것의 어떤 것도 행하지 않는다.”(위 책, 244b). 예언하듯이 말하는 예언자의 광기는 뮤즈들에게 사로잡인 시인의 광기와 나란히 행하는 듯니 행하며, 이 시인의 작품들이 미래 세대들을 교육시킨다. 모든 그리스인들이 그 가치를 받아들인 두 가지(여사제와 시인)의 망상(délire)에 대해, 플라톤은 사랑하는 자들의 망상을 비교하려 한다. 그 망상은 보다 적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각적 사물 속에서 영원한 미의 이미지를, 즉 영혼이 지상의 삶에 앞서서 신들과 함께 지냈을 때 관조했던 미의 이미지를, 인정하는 영혼의 동요(l'agitation)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망상은 철학의 출발점이며, 영혼에게 그의 날개들을 다시 달아 주는 것이다(위 책, 249a-250c). 그것은 소크라테스처럼 영혼을 분발시키고, 향연(216a)에서 완전한 애인은 소크라테스의 변론(30e)에서 아테네인들을 자극하는 쇠파리이다. (108)
에로스(사랑)의 주제는, 즉 일반적 방식으로 보면 신적 영감의 주제는 플라톤 학문의 감화적 토대를 노출 시켰다. 플라톤에서 철학은 좁은 의미로 순수하게 지적인 방법이 아니다. “사람들이 감각 기관을 통해 이해하는데, 이 기관이 신체 전체와 다르다는 것은 마치 눈(l'oeil)이 스스로 빛으로 방향을 돌릴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영혼 전체와 더불어 생성에서 존재로 전향을 작동시킬 필요가 있다.… 재주 많은 교묘한 자들인 나쁜 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작은 영혼은 날카롭게 꿰뚫는 관찰력을 지닌다.… 그러나 그 영혼이 더욱 더 깊이 꿰뚫을수록, 더욱더 그들은 잘못을 범하도다!”(폴리테이아, 518e이하). 이 시시한 자들의 관찰력은 선의 이데아의 통찰에 대비된다. 이 통찰은 사랑으로부터 진행하여 사랑의 교리 전수의 정점에 이른다. (108)
게다가 그 신화는 철학적인 삶을 인간 숙명의 일체에 연결하였고, 그러고 나서 그 일체의 극장인 전 우주에 연결하였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영혼의 하강, 즉 지상에서 그 영혼의 아바타들, 그리고 영혼의 전향, 영혼이 출발했던 곳으로 영혼의 통찰로 회귀, 이러한 것이 파이드로스편에서 신화의 토대를 이루고, 폴리테이아편에서 동굴의 우화(l'allégorie)의 토대를 이룬다. 파이드로스(246c)편에서 타락한 영혼은 어두운 동굴에 위치한 죄수와 같으며, 그 죄수는 빛에 등을 돌린 채 있으며, 변증법이 그에게 빛으로 향하는 전향의 운동을 부여하기까지는 동굴의 저 끝에 헛된 그림자들의 다소 규칙적인 연속들만을 볼 뿐이다(폴리테이아, 514 a-516 a). (108) (47QLE) (17:38, 57LNA) (16:38, 57ULC)
{ 출브B24철1권03A대중}
**미주
1) G. Mathieu, 이소크라테스의 정치적 생각들(Les Idées politiques d’Isocrate, 1925), pp. 177-181. [마튜(Georges Constant Mathieu, 1890-1948) 프랑스 헬레니스트. 파리대학 문학부(현4대학) 교수.]
2) Cicéron(전106-43), Derniers académiques, I, 15-18; Apulée(125경-170이후), Du Dieu de Socrate; Natorp(1854-1924), Platos Ideenlehre, 1903.
3) 테아이테토스편 143b에서, 그는 첫째 절차의 비판을 똑 같이 하고 있다.
4) 필레보스 15e 이하, 소피스테스 241d.
5) 프로타고라(361 a-d)와 메논(86 c, 87 b)을 비교해보라.
6) 프로타고라스(320 c-323a), 히피아스 I(291 d), 고르기아스(48 c), [프로디코스는 프로타고라스편에 잘 나온다.]
7) 파이드로스(Phèdre, Φαίδρος), 파우사니아스(Pausanias, Παυσανίας, 전 420경 활동), 아카톤(Agathon, Ἀγάθων), 에뤽시마코스(Eryximaque Ἑρυξίμαχος)는 수사학자들 또는 소피스트들 중의 각각의 제자들이다. [위 본문에서 각각을 대응시켜 놓았다.]
8) 설득설의 중요성에 관하여, 법률, 903 ab.
9) 프로타고라스, 320 c-323 a.
10) 테아이테토스, 176 c.
11) 향연, 203 c.이하, 206 c.
12) 같은 책, 210 e.
13)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M, 4, 1078 b, 17. 이것은 이책 ‘제2장 소크라테스’에서 이미 설명한 것이다.
14) 파이돈, 99 c-100d; 참조 101 e.
15) 메논, 80 d.
16) 소크라테스의 변론, 29 ab.
17) [아름다움의 단계적 상승: 아름다운 것(le beau)이 감각적 미(물체미)라면, 아름다움(la beauté)은 표면상의 형태의 미(조형미)이며, 그리고 그 위에 영혼과 과학의 아름다움으로서이 추상적 아름다움(추상미)이 있으며, 그 보다 더 위에 온미(le Beau), 즉 미의 이데아(이데아미)가 있다.] -[네 단계의 인식은 이데아의 인식과 닮았으니, 브레이어의 설명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