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덥다.
수스 루아지 터미널에서 이제는 택시를 탔다. 날씨는 덥고 많이 지쳤다. 숙소까지 걸어가기에는 약간 멀다. 택시비는 2.32디나르(1,000원)가 나온다.
3디나르를 주고 내렸다. 정직한 택시다. 기분이 좋다. 메디나에 들어서 시장 구경을 한다. 메디나에는 개방적이고 덮인 시장 (souks)이 있다.
수산물 매장이 구분되어있다. 새우를 비롯해 풍성하고 다양한 수산물이 있다. 싱싱한 비릿 내가 가득하다. 과일과 채소들을 파는 지역을 만났다.
사과를 비롯해 자두, 복숭아 수박 붉은 고추 등 다양하다. 시장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물건 상태와 가격표, 사용하는 단위와 저울를 보면서 이들의 문화와 삶을 배우고 짐작해 보는 시간이다.
선인장 열매, 백년초가 많다. 메디나 구 시가지에는 사람도 많고 다양한 가게들도 많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 오래되 보이는 빵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판매하는 아가씨의 미소가 예쁘다. 광장에는 분수대도 있다. 모스크(The Great Mosque of Sousse)도 있다. 수스 대 모스크는 튀니지의 해안 도시 수스에있는 역사적인 모스크다.
아바스 왕조의 851 년에 세워진 것이다. 초기 이슬람 시대의 건축 형태를 보여주는 주요 기념물이다. 모스크는 개조되었고 기도실은 다음 세기에 걸쳐 여러 번 확장되었다.
1988 년 이래로 모스크는 Sousse의 메디나를 포함하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직사각형 평면도를 가지고 있으며 안뜰과 기도실로 나뉜다.
돔형 타워가 돋보인다. 도자기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둥근 모양에 화려하고 규칙적이며 섬세한 문양이 눈길을 끈다.
아랍풍이란다. 흰색 예쁜 건물도 있다. 두부같이 생긴 견과류가 가득 들어간 엿, 달콤한 간식거리도 판다. 숙소로 들어왔다.
에어컨을 켰는데도 덥다. 샤워를 한다. 잠시 쉰 후에 다시 수스를 둘러보기 위해 나왔다. 아내는 수영복을 입고 수건을 챙겨 나왔다.
메디나를 나와 광장에 서니 국기가 가득하고 성벽에 붙어있는 조형물(Martyrs Monument 순교자)도 있다. 현대적인 은행 건물이 보인다.
그늘에는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다. 하비브 부르기바 기마상(Equestrian Statue of Habib Bourguiba)이 도로 중앙을 지키고 있다.
튀니지의 아버지, 튀니지 국민들에게 '최고의 전사'로 알려진 하비브 부르기바는 식민지 지배자인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위한 튀니지의 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모든 아랍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일관되게 친서방주의자 중 한 명이었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협상 해결을 촉구한 최초의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부르기바는 1903년에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화려한 지방 변호사로 명성을 얻은 후, 그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에 대한 프랑스의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프랑스에 투옥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부르기바는 프랑스에 의해 다시 한 번 투옥되었다가 1955년 프랑스군이 자치권을 인정했을 때에야 풀려났다.
그는 2년 후 나라의 완전한 독립에 따라 대통령이 되었다. 부르기바의 재임 기간 동안 튀니지는 중세 시대에서 20세기로 힘차게 도약했다.
부르기바 대통령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은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었고, 튀니지의 평화로운 정권 이양은 그의 업적이라고 한다.
수도인 튀니스 중심가에도 그의 기마상이 있다. 1900년대 인물로 보이는 흉상이 있다. 예쁜 분홍색 4층 건물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쇼핑센터 건물이다. 작은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를 하나 샀다. 바다다. 수스는 하드루메툼(Hadrumetum)이라는 도시 발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카르타고보다 앞선 페니키아 식민지였다.
그 후 반달족과 우마이야 정복자들이 그것을 파괴하기 전에 로마 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근대 초기에는 현재 튀니지의 수스 (Sousse)의 일부인 함메임 (Hammeim) 마을이었다. 카르타고의 도시로, 로마의 도시로 이어진다.
모자이크의 숨 막히는 유산은 이 로마 시대에서 지하 묘지의 많은 초기 기독교 물건과 함께 살아남았다. 434 년에 반달 족에 의해 크게 파괴되었다.
그들의 열렬한 아리우스주의는 많은 순교자를 낳았다. 한 세기 후, 하드루메툼은 반달 전쟁 동안 비잔틴 제국에 의해 탈환되어 재건되었었다.
로마의 주요 도시인 하드루메툼은 카라칼라 통치 기간의 지역 박해 기간 동안 마빌루스를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 성인을 배출했다.
255 년부터 551 년까지 이 도시는 기독교 주교단의 자리였다. 2세기 말부터는 그리스도교가 확신되어 카타콤베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중세에 로마 제국의 670년경에 도시는 두 달 간의 포위 끝에 우마이야 왕조의 무슬림 군대에 함락되었고 파괴 되었다.
아랍인들은 폐허 위에 새롭게 계획된 도시를 세웠고 이름도 수스로 바꾸었다. 프랑스 지배기에도 수스는 중요한 항구였다.
2차 세계대전 시에는 독일군과 연합군과의 격전이 일어나 시가지가 일부 파괴되기도 하는 피해를 입었다. 튀니지 독립 후에도 수스는 여전히 중요한 항구 역할을 하고 있다.
무슬림 아랍 군대는 철저하게 로마화 되고 기독교화 된 지역에 아랍 문화를 빠르게 퍼뜨렸다. 교회의 대리석은 리바트(Ribat)를 짓는 데 사용되었다.
첨탑과 감시탑의 목적을 결합한 우뚝 솟은 구조물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모스크는 때때로 이 지역에서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9 세기에 지어진 마을의 주요 모스크도 비슷한 요새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튀니지 동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 카르타고 시대와 중세 아글라브 왕조의 유적이 있다.
수스는 튀니스와 스팍스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함마메트 만을 끼고 있는 항구 도시이다. 튀니스에서는 남쪽으로 140km 떨어져 있고, 해안이 아름다운 휴양도시이다.
곡류 재배지역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이며 인광석, 올리브유, 에스파르토초 (펄프 원료) 등을 수출한다. 인구는 30만 명 정도로 튀니지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또한 Sousse는 중요한 관광 휴양지이다. 덥고 반 건조 기후이며 해변에 위치해 있어 기후가 좋다. 덥고 건조한 여름과 따뜻하고 온화하며 습한 겨울이 있는 사계절 휴양지이다.
고운 모래 해변은 과수원과 올리브 나무로 배경을 갖고 있다. 호텔 단지는 구시가지(메디나)에서 북쪽으로 해안가를 따라 포트 엘 칸타우이까지 20km까지 뻗어 있다.
매년 약 1,200,000명의 방문객이 호텔과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카지노, 해변 및 스포츠 시설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다고 한다. 엄청 길고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다.
서민들이 시원한 바다를 즐긴다. 석양이다. 호텔 앞 백사장과 바다는 서양 관광객이 즐기는 해변으로 표시 없이 구분되어 있다. 아내도 수영을 한다.
백사장에 주저앉아 아내의 옷을 부둥켜 앉고 음료수를 마시며 수영하는 아내를 지켜본다.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이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엄청 사람들이 많다. 해가 너머 간다. 아이 러브 SOUSSE 조형물이 있는 해변도로를 산책한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살살 분다.
해변도로에 줄지어 세워진 깃발이 나부끼고 하얀 관광열차는 손님을 기다린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해변 길에 가득하다.
키 큰 야자수가 해변을 지키고 있고 여인들이 모래에서 쉰다. 숙소로 돌아선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는다. 빵도 사고, 무화과와 복숭이도 샀다.
훤한 쇼핑가를 구경하며 간다. 복잡한 큰 길을 조심스럽게 건너서 메디나로 들어선다. 어둠속에 조명이 들어와 더욱 멋진 분위기다.
길고양이들이 모여 있다. 어두워진다. 숙소로 들어왔다. 빨래를 하고 내일의 목적지 마트마타 숙소를 예약했다. 저녁은 누룽지와 멸치, 사가지고 온 빵으로 흡족하게 먹었다.
*8월 29일 경비 – 수스행 루아지 27, 택시비 4.7, 엘젬행 루아지 13.6, 원형경기장 입장료 24, 수스행 루아지 13.6, 택시비 3, 과일 9, 빵2개 5, 아이스크림 3.4, 물, 음료 4, 빵 4.7, 숙박비 48,000원. 계 92,800원. 누계945,775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