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8일 일요일. 덥지 만, 초가을 날씨. 최저 20℃.
여기는 카사블랑카, 마라케시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 창문 앞에서니 건물 옥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굴뚝들과 사람 사는 공간의 창살이 소박하다. 비둘기들이 여러 마리 앉아서 아침을 맞이한다.
도로에는 움직이는 것이 없이 고요하다. 주일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침 식사를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먹는다. 호텔 조식은 언제든지 설레고 즐겁고 반갑다. 빵 종류가 많다. 계란과 야채, 올리브 열매를 선택했다.
올리브기름에 빵을 찍어 먹으면 잘 넘어간다. 호텔 조식은 늘 풍성하게 잘 먹게 된다. 여행에서 느끼게 되는 행복함이 여기에도 있다. 여행은 맛이다.
즐거운 맛과 고통의 맛이 동시에 뒤따른다. 즐거움이란 낯선 환경에 대하는 설렘과 모르는 것을 배우는 설렘이고, 고통이란 만나기 위한, 보기위한 노력, 여정이다.
여행은 인간의 삶의 맛을 풍성하게 하는 일종의 행위 예술인 것 같다. 오전 9시에 체크 아웃을 했다. 숙소에서 좀 늦게 나온 것이다. 타고 갈 버스 시간이 10시이기 때문이다.
늘 일찍 나오는데 9시까지 숙소에 있으려니 좀 답답했다. 기다리고 머물러 있는 것도 귀중한 여행인 것을 잊곤 한다. CTM버스터미널로 배낭을 메고 힘차게 걸어간다. 시간이 남아 터미널 승객 대기실에서 좀 기다린다.
대기실이 차별, 구분되어있다. 버스도 체크인을 한다. 짐을 부치려니 짐 값을 따로 내야한다. 짐 두 개에 9디르함(1,350원)이다. 띠를 붙여서 짐칸에 넣었다. 우리 좌석은 11, 12번 좌석이다.
고급스러운, 싱싱한 버스는 어김없이 오전 10시에 출발한다. 카사블랑카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려간다. 도로는 막힘이 없이 잘 달린다. 창밖의 풍경은 평지에 누런 들판이다. 가끔 건물이 보이지만 너무 멀고 초라하다.
내려갈수록 황량해지고 사막 같은 느낌이 든다. 밀밭 같이 보이는 들판도 구릉진 언덕으로 바뀐다. 2시간 정도를 달려서 휴게소에 들어섰다. 새로 만들어진 휴게소다.
식당과 카페, 편의점등이 들어서 있는데 모든 것이 새 것이다. 기도실도 있다. 화장실도 사람들도 싱싱해 보인다. 주차장 밖에는 탁자와 놀이터도 있다. 도착해 들어서는 사람들만 원주민이요, 늙고 낡아가는 사람들이다.
건물 앞 주차장에는 천막을 설치하고 카페트를 깔아놓고 푹신한 의자를 만들어 놓은 전통찻집이 있어 반가웠다. 민트차를 끓여서 팔고 있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차장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빛나는 우리버스를 본다. 프리미엄 버스다. 언덕 위에 만들어진 휴게소 주변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건너편의 황량한 언덕이 약간 붉은색으로 보인다.
초록색 나무가 검은색으로 볼 품 없이 붙어있다. 마라케시의 붉은색이 살며시 보인다. 햇살이 참 좋다. 버스는 또 달려간다. 지겹게 황량함을 보여주는 창밖이다.
마라케시 버스터미널(CTM Coach station, Gare Voyage)에 도착했다. 붉은색 터미널이다. 마라케시 서쪽, 신도시, 기차역 가까이에 있다.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긴장이 된다. 배낭을 메고 이제는 숙소를 찾아가야한다.
차를 타기에는 좀 가까워 걸어가기로 했다. 기차역 방향으로 걸어간다. 붉은색 Ibis 호텔 건물이 보인다. 기차역(Marrakech train station)을 찾았다. 기차역은 아주 멋지다.
좌우대칭이 확실한 아랍풍 건축물인데 무슨 모스크나 궁전 같다. 새로 지어진 것이 쾌적하고 넓다. 광장을 갖고 있는데 시설이 잘 정비되어있다. GARE DE MARRAKECH라는 글씨가 예쁘다.
광장에는 맥도널드 로고가 세워져 있고 KFC도 보여 반가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로터리 건너편에 핫산2세 은행 CIH BANK 건물이 있다. 건물 벽에 커다란 그래피티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핸드릭 바이키르히(Hendrik Beikirch)의 작품, 빵모자 쓴 원주민, 2016~2024, 내가 이름을 붙였다. 부산 광안리의 새로운 명물이 된 그래피티 작품 ‘나이든 어민의 얼굴’도 2012년 그의 작품이다.
육체 노동가의 숨결과 자본주의의 상징이 대조된다는 그림이다. 역경이 없으면 삶의 의지도 없다는 그의 말은 원주민 주름 속 깊이 깃들여져 있다. 정말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동이다.
겪어본 사람만이 알 듯한 말이다. 부산 대평동의 ’우리 모두의 어머니‘ 그래피티도 그의 작품이다. 독일의 작가ECB(본명 헨드리크 바이키르히)는 나이든 사람들의 얼굴에 삶의 흔적이 담긴 모습을 초상화로 그린 단색 그래피티 시리즈물 작가다.
인물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사람들로부터 희망과 역경 사이의 인상을 포착하고, 그 모습을 몰래 스케치 해 둔다. 이러한 작업들은 그의 최근 연작인 ’희망과 고난의 얼굴들‘에 영감을 주었다.
그는 다양한 색을 쓰지 않고 화려한 느낌을 최소화함으로써 그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주요 공공장소에서도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과 미주, 태국, 홍콩 등을 두루 다니며 15년간 이어온 그의 작업은 우리나라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도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Montresso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이는 후원 재단이다. Jardin Rouge를 설립했다.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모로코 마라케시에 위치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현대적인 예술가들이 여유 있는 시간에 예술적인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초대 받은 곳이다. 2007년 Montresso 아트 재단에서 설립한 공간이다.
개인적인 공간으로 독특한 환경에서 영감을 얻고, 반영하고, 실험하는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제공받는 작업실 이상으로, 전세계 아마추어, 수집가, 예술비평가들이 예술에 대한 열정을 교환할 수 있는 친밀한 공간이다.
길 건너편에는 공연예술극장(Royal Theatre)도 궁정 같이 세워져 있다. 역 주변도 하나의 관광지라고 생각이 든다. 걸어서 숙소를 찾아간다. Hotel Oudaya & Spa, 1박에 5만 원 정도인데 수영장도 있고 시설이 완벽했다.
테라스가 있는 전망 좋은 방에 조식도 포함이다. 성채 같은 호텔을 2박을 신청했다. 평점은 6.4로 좋지 않은데 생각보다 멋진 호텔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이제 마라케시를 체험한다.
마라케시(Marrakech)는 모로코의 큰 도시 4곳 중 하나다. 텐시프트 강 남쪽의 관개농업이 이루어지는 비옥한 하우즈 평야 중앙에 있다. 1062년 알모라비데 왕조의 유수프 이븐 타슈핀이 세웠으며, 1147년까지 알모라비데 왕조의 수도였다.
하우즈 평야에서는 곡류·감귤류·올리브·콩·살구 등을 재배하며, 양·염소·소 등을 사육한다. 마라케시는 유럽인들이 모로코를 잘못 부른 이름으로, 오랫동안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았던 왕국에 이 이름을 붙였다.
광대한 야자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고대 무어인의 도시)는 점토를 물에 이겨 만든 건물과 성벽 때문에 '붉은 도시'라고 불린다. 그 중심부에 북적거리는 장터인 제마알프나 광장이 있고 바로 동쪽에는 12세기에 노예로 잡힌 스페인 사람들이 지은 쿠투비아 사원이 있다.
그 뾰족탑의 높이가 67m에 이른다. 16세기의 사디 능, 18세기의 다르엘베이다 궁전(지금은 병원으로 씀), 19세기의 바히아 왕궁 등은 이 도시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잘 보여준다.
'겔리즈'로 불리는 신시가지는 구시가지의 서쪽에 있으며 프랑스 보호령 시기에 개발되었다. 마라케시는 공원, 특히 메나라 올리브 숲과 벽을 두른 405㏊의 아그달 정원으로 유명하다.
관광과 겨울철 스포츠를 즐기는 곳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오(하이)아틀라스 산지와 사하라 사막 간의 무역을 중개하는 상업중심지로 국제공항을 갖추고 있다.
철도나 도로를 통해 사피 및 카사블랑카와 연결되고 그밖에 모로코의 주요도시와 도로로 이어져 있다. 옛 시가지, 메디나는 붉은 색으로 채색된 미로와 같은 시가와 독특한 건물들로 눈길을 끌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특유의 신비로운 풍광 때문에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여행자들이 세계에서 제일 찾고 싶은 도시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는 제마알프나 광장을 목표로 삼고 호텔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간다.
시내버스, 1번 버스를 알려준다. 버스비는 4디르함(600원)이다. 15분 정도를 달렸다. 제마알프나 광장 부근이 종점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주 혼잡하다. 엄청난 차량들과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멋진 마차들도 다니고 있다.
먼저 눈에 들러온 것은 쿠트비아 모스크(Koutoubia Mosque) 다. 탑이 우뚝 솟은 것이 웅장하다. 이 거대한 12세기 알모하드 양식의 모스크는 정원과 분수가 있는 광장이 특징이다. 미나렛의 높이 67m로 제마 엘프나 재래시장 인근에, 메디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12세기 북부아프리카 전역과 스페인, 그리고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일부를 지배했던 베르베르계 무와히드 왕조의 아부드 알 무민에 의해 지어졌다. 쿠트비아 사원의 이름은 모스크 앞에서 필사본을 파는 상인들(koutubiyin)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서점 모스크라고도 불린다.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곳이라고 한다. 마라케시에서 가장 큰 모스크이어서 도시의 랜드마크이기도 한데 일반인은 출입이 통제되고 이슬람교도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복잡한 골목길과 시장이 얽혀 있는 메디나, 그리고 제마 엘프나 광장을 탐험하며 미나렛을 기준 삼아 방향을 잡는다. 해가 질 무렵에 특히 쿠투비아 모스크의 붉게 물든 모습은 정말 감동이다. 마라케시를 사랑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그린 '쿠투비아 모스크'가 있다.
처칠은 정치가로서뿐만 아니라 화가로서도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다. 처칠의 그림을 보고자 했던 지난번의 여행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생각난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은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은 1천200만달러에 팔렸다.
처칠의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다.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은 1943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처칠과 이 도시가 이어지는 것이 참 신기했다. 처칠은 1943년 1월14일-24일까지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연합군 지도자 회의에 참석했다.
처칠은 연합군의 승리를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설득하는 편지를 약1,100통을 보냈고, 루즈벨트 또한 780여통의 편지로 화답했다. 처칠은 루즈벨트와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그림을 선물로 주게 된다.
처칠은 1935년에 처음 마라케시를 방문했는데 그때 마라케시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멋진 장소"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붉게 빛나는 성벽, 생기가 넘치는 메디나, 그리고 멀리 보이는 아틀라스 산맥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카사블랑카 회담을 마친 후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이곳에 초대해 마라케시의 매력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처칠은 자신이 그린 이 그림을 루즈벨트에게 선물했다. 시간이 흘러 이 그림은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다가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여담으로 처칠은 마라케시에 방문할때마다 라 마무니아 호텔에 머물렀다. 큰 정원을 가진 궁전 같은 호텔이다. 쿠투비아 모스크, 제마 엘프나 광장에 가까이 위치한 이 호텔은 1박에 100만원 정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