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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백두대간 얘기좀 해볼까.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고유의 산맥체계로 고서적(도선국사의 《옥룡기》 부터 《삼국유사》.....《택리지》...너무 많아 생략.『산경표 톺아읽기』(김 우선.)39쪽~92쪽 참조) 뿐만 아니라 고지도(동국대지도, 해동지도, 대동여지도......이것도 너무 많아 생략.위 도서 92~120쪽 참조) 등에도 정확히 표시되고 있다.
그러나 1910년 일본놈들이 우리나라를 강제점령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산줄기 체계를 없애버렸다.(조선 총독부 관보 제 69호 11월 19일 고시)---한국인 저작의 모든 교과서를 몰수한다.
거기에는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1901년과1902년에 우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조선기행론』을 쓰고 이어 『조선 산맥론』이라는 논문에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니하는 이름을 만들어 수십개 산줄기를 마구잡이로(내가보기엔) 그어놓았다. 1904년에 야스 쇼에이란놈이 저서『한국지리』에서 고토의 산줄기들을 단순화해서 지금의 산줄기 이름으로 정리한 것을 일제가 교과서에 싣고 그걸 우리가 아직도 교과서에서 우리나라 산맥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도데체 고치려들지 않는다. 이하 욕이라 참고있음)
우리나라전통 산줄기 체계는 [땅위의 지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일제가 만든 산맥은 [땅속의 지질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고유의 산줄기는 수계(水系)와도 연결되고 지역간 생활풍습등 다양한 구별의 의미를 갖는다.
머리가 아프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 . .
지난 대간일에 참석을 못해서 이번에 혼자 두 구간을 이어서 산행하기로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전날 진동리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었다.
새벽 4시, 풀벌레 소리도 나지않고 계곡물도 숨죽이며 흐르는 모두가 잠든 새벽 마을길을 희미한 랜턴불에 의지하며 단목령에 오른다.
가는길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바로 옆 숲숙에서 계속 들린다.
제발 멧돼지만 아니길...
일부러 카메라에 시간표시기능을 열고 타임라인을 체크하기로 했다.
30분후 단목령에 도착.
단목령(檀木嶺)
박달나무고개 즉 박달재이다. 이 순 우리말을 일본놈들이 한자로 표기하여 단목령이 되 버렸다.
해동지도(1776)등 고지도에는 연수파(連水坡)로 표기되어 있다.
양양의 소금과 건어물이 진동리를 거쳐 인제 홍천등 내륙으로 넘어가고, 내륙의 콩.감자.버섯등 은 박달골을 지나 오색으로 넘어가고. . . . .
참고 1. 고지도에보면 고개를 뜻하는 지명에는 영(嶺),현(峴),치(峙),점(岾),그리고 파(坡)가 있다. ---미시령은 미시파, 단목령은 연수파.
참고 2. 우리가 알고있는 울고넘는 박달재는 이곳이 아니고 천등산 북쪽 충주에서 제천가는 길에 있다. 제천지나 영월가다보면 금봉이 휴게소도 있어요. ㅎㅎ
4시 반인데 하지 지나 얼마 안되서 그런지 벌써 동쪽 하늘이 훤하다.
랜턴을 끄고 산행을 해도 길이 잘 보인다.
비소식은 없었으나 날씨가 흐려 높이 올라갈 수록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보면 구름이 꼈다고 하겠지. 그럼 나는 구름속을 걷는다.
그런데 잎에 맷힌 이슬인지 머리위로 한두방울씩 떨어진다. 그리고 제발~~~
가끔 위치 표시목에 조침령(박달령)이라 표시되어 있다. 뭐하는 짓인지 참 개념도 없다.
북암령은 인제 진동리와 양양 북암리를 잇는 고개로 간혹 소동라령(所冬羅嶺)으로 표기되어 있는 지도도 있다.그러나 그것이 북암령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목령 2.9km. 조침령 7.0km
멧돼지가 방금 다녀가셨습니다.
풀과 땅이 다 젖었는데 파놓은 자리에 마른 흙이 드러나 있었음.
동쪽이 환한걸 보니 해가 뜨긴 뜬것 같은데 숲과 안개때문에 도무지 볼 수가 없다.
귀한 2등급 삼각점이 이곳에?
↑이런 풀숲도 지나니 옷과 신발이 젖어간다.
이제 출입금지 지역을 벗어 났으니 합법적(?)인 산행모드로 접어들었다. ㅎㅎ
↑단목령 5.3km, 조침령 4.6km
진동호(상부댐) 삼거리에 도착.
1996년에 착공하여 2006년 8월 31일에 완공되었으며 하부댐은 영덕 저수지에 있다.
여기서 댐까지 5분이면 내려가는데 대간 구간을 짧게 끊는다면 날머리로 해도 좋다.
단목령 5.9km. 조침령4.0km
↑단목령7.7km. 조침령2.2km
↑영덕저수가 보이 우측 정족산은 희미하다.
그나마 오늘 처음보는 조망이다.
조침령직전 전망대에 왔는데 글쎄. . . .
조봉과 암산 그리고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지난회차 참석하신분들의 갤러리 사진에서 확인하시고 오늘은 그냥 넘어 갑시다. ㅋㅋ
이 데크길도 20년이 넘으니 내 무릎처럼 삐걱 소리가 난다.
산경표와 청구도엔 曹枕嶺. 해동지도, 광여도에는 阻枕嶺.
鳥寢嶺 : 높고 험하여 새도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자고 넘었다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83.6.10~84.11.22
인제 방동에서 양양 서림까지 21km를 삼군단 공병 여단이 고생 무진장 했겠지.
나중에 한계령 가시면 108계단과 위령비의 의미도 한번 읽어 보시길. . . .
여기서 부터는 갈전곡봉을 향해 이정목이 거리 표시를 하고 있다.
지긋이 문을 열고 입성 ! 슬슬 피곤해 지기 시작한다.
10시에 작은 미아치골 상부에 도착해야 일행과 합류할 수 있다.
한시간 반이면 4.5km를 갈 수 있겠지? 이때만해도 시간당 3km씩은 왔다. 그런데 후반에 다 까먹는다. ㅠㅠ
열렸다 ! 근데 어딘지 모른다.
쇠나드리 갈림길. 보통 이곳을 들머리나 날머리로 산행구간을 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인 23기는 획기적으로 작은 미아치골을 발견하여 오히려 합리적인 구간이 설정되었다.
쇠나드리 : 진동리 동쪽 냇가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안에 있는 내(川)의 여울이 급하고 바람이 세어서 소가 건너다니기 힘들었다 한다.
조침령2.6km, 갈전곡봉13.9km
쇠나드리 갈림길에서 올라가는 길. 요기쯤에서 작은 비암 한마리가 스스슥~~. 지도 내가 겁났을텐데 빨리 도망가지도 않고 눈치만 보길래 나도 그냥 태연한 척 의연하게 지나갔음. 애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것 같았음.
사진은 징그러울까봐 생략. ㅋㅋㅋ
드디어 작은 미아치골 삼거리, 대 야영장에 도착. 그래도 목표시간에 도착했다. 심곡.지금까진 잘했어!
차가 막혀 일행들이 늦게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다.
배낭도 무겁고 다리에 힘도 빠지기 시작하고,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총체적 난관에 접어 들었다.
짐 일부를 덜어놓고 가라는 팀장의 고마운 전화에 그럴까 하다가 본인도 무거울 텐데 하던 차에 다른 산악회 일행이 구룡령부터 온다고 왁지지껄 떠들기에 그냥 배낭 메고 출발.
어차피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할테고 선두부터 따라 잡힐테고, 나는 다시 꼴지가 될 것이라 생각해 쉬엄 쉬엄 진행을 한다.
조침령4.8km,갈전곡봉 11.7km
조금 지나니 아까보다 조금 더 큰 그놈이 앞에서 어슬렁 어슬렁.
큰기침을 했더니 뭘 좀 아는 듯 옆 풀숲으로 스르륵~ 사진은 원하시는 분만 보여드림.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오면 올라가고, 끊임 없이 급경사로 계속된다.
일행과 점심먹으려던 계획은 틀어지고 틈틈이 요기하면서 진행하는데 갈전곡봉 9.4km남은 지점에서 식사 할 예정이란다.
그런데 나는 이곳(갈전곡봉10.4km 지점)에서 물한모금과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또다시 홀로 산행.
9.4km지점을 향해. . .
이후 9.4에 도착하니 또다른 봉우리 위인데 일행이 식사할 장소가 못되 10.4 지점이 넓다고 애기 해 주고 계속 낑낑대고
터덜터덜 걷는다.
우리 일행중 이 의자나무에 앉아서 사진찍는 분이 꼭 있을꺼라 확신했다.
●연가리골 샘터 갈림길
정감록에 나오는 피난처, 삼재불입지처로 물, 불, 바람 세 가지 재난이 들지 않는다는 삼둔 사가리 중의 연기리골로 연결되는 계곡상부 대간길이다. 삼둔 사가리의 삼둔은 사람이 살만한 3개의 평평한 둔덕으로 살둔(생둔), 월둔, 달둔이며 홍천군 내면에 있다.
사가리는 네곳의 작은 경작지인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가 인제군 기린면에 있으며 백두대간길 주변이고 그중 연가리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는 곳이다.
지난 대간때도 내려가 봤는데 그땐 다 쓰러진 텐트와 담요들이 나뒹굴어 섬뜻한 기분에 그냥 올라왔는데 이번에도 내려가보니 텐트는 흙에 묻혀있고 썩은 이불 하나만 나무밑에 있었다. 역시 샘물은 어딘지 모르겠다. 그냥 계곡물만 쫄쫄~. 괜히 100m만 내려왔다 가네. 으히구~ 후회 막급.
조침령 10.5, 갈전곡봉 6.0
갈전곡봉 5km지점을 통과하고나니 나뭇틈 사이로 건너 산들이 보이는데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참 답답하다.
우리가 지나온 능선에서 양양 서면 방향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아닌가 한다.
운명(?)의 왕승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양양군 서면 갈천리 왕승골 방향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이며 비상시에 탈출로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양양 갈천리에서 연가리골로 트레킹을하는 트레커들이 주로 이용하는 산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쪽으로 바로 내려가면 아침가리골 상류가 나온다.
| 아침가리 : 방골 동남쪽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발이 적어서 아침나절에 다 갈수 있었다고 한다. 아침가리는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세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
나무 의자에 앉아 물한모금 먹고 있는데 한분 두분 내려오기 시작한다.
팀장은 4.7km에 있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힘도 들고 우리 가족같은 동지들 보고 싶기도하고, 배낭 무게도 줄일 겸, 이래저래 푹 쉬기로 한다. 나중에 올 부작용을 알지 못한채 . . . .
(이곳의 모습들은 갤러리에서 은자로님 사진으로 확인하시길)
조침령 13.1km, 갈전곡봉 3.4km.
갈전곡봉 3km를 남겨두고 보너스처럼 맑은 시야를 틔여 놓는다.
지나온 대간길 능선이다. 이름없는 봉우리들만 아무 표정없이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줬는지도 모른 채 무심하게 그냥 그자리에 서 있다.
우측(서쪽)을 보니 멀리 가칠봉인 듯하다.
지나온 대간길.
갈전곡봉 다오니 이제야 이길을 지나왔다고 확인시켜준다.
갈전곡봉 오르는 계단 하나하나가 다 봉우리 하나씩처럼 느껴진다.
긴 휴식이 오히려 긴장감과 힘이빠지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왜 이러지? 왕년엔 안그랬는데. . . .ㅋㅋ
드디어 오늘 산행 구간 중 가장 높은 갈전곡봉에 왔다.
힘들다. 선두는 벌써 구룡령에 도착했다 하는데 민폐가 될것같아 미안함이 먼저 밀려온다. 무한괘도와 현상총무님이 산행 내내 함께 해 준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술이라도 한잔 따라줘야 하는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안돼면 외상이지 ㅋㅋ
● 갈전곡봉(葛田谷峰)
갈전곡봉은 양양 서면, 홍천 내면, 인제 기린면의 경계지점으로 삼군봉이다. 원래의 명칭은 치밧골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주로 홍천 방향에서 치밧골봉으로 많이 불려왔고 치밧골이란 이름의 치밧이 칡밭에서 나온 것으로 한자명으로 갈전으로 불려 온 것이라고 한다.
조침령16.5km, 갈전곡봉0km
갈천리(葛川里)
농촌경제가 향상되지 못하였을 때 화전민의 생활이란 극히 궁한면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춘궁기에는 葛根으로 근근이 호(糊:풀칠하다.))하여 오는 실정에서 前川이 葛粉一色이었다고 하는데서 갈천 또는 속칭 "치래"라고도 한다.
구룡령만 가면 되는데 오르막이 계속 된다.
지난 대간때는 야간산행으로 뵈는게 없어서 그런지(ㅎㅎ)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 금방 온것 같은데 지친상태에서 오르려니 더 힘들다. 삼성맨이 전화로 "형님 여섯개나 되요" 하는 소리에 맥을 놓아서 안되겠다 싶어 마지막 힘을 내 본다.
●구룡령 옛길
구룡령 옛길은 홍천군 명개리에서 양양군 갈천리를 연결하는 고갯길로 2007년 12월 17일 명승 제29호로 지정된 명승지이기도 하다.
구룡령 옛길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옛길로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명칭에서 유래하듯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라 하며,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옛길 입구에는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 있고, 길의 중간중간에 길의 위치를 표시하는 횟돌반쟁이, 묘반쟁이, 솔반쟁이 등이 자리하여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옛길 걷기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구룡령 옛길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어 일대 주민들이 강제 징집되었던 애환의 역사가 서린 철광소와 케이블카가 남아 있고, 옛길 길가에는 1989년 경복궁 복원 당시 사용되어 밑동만 남아 있는 소나무 거목 흔적이 남아 있는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사의 역사가 함께 잔존하여 역사적 가치가 큰 소중한 명승지이다. (출처: 국가유산청)
또한 강원도는 백두대간의 줄기가 남북을 강하게 가르고 있어 동서의 교류가 어려운 지역이다. 그래서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 지방에서 나는 중요한 물산의 교역로 역할을 구룡령 옛길이 담당했다. 이 길을 통해 양양 사람들은 소금, 간수, 고등어, 명태 등을 가지고 영서 지방으로 가서 콩, 팥, 수수, 녹두, 깨, 좁쌀 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구룡령 옛길을 바꾸미 고개, 또는 바꾸미 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날은 어두워 가고 이제 구룡령 계단만 내려가면 된다.
대형 화살표가 왜이리 반가운지. . . .
이후 구룡령사진은 더이상 찍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다음 구간을 시작하니 신작로 구룡령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모두들 쉼터에서 간단한 요기를 했나보다. 늦은 것도 미안한데 이것 저것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어 막걸리 한잔과 도토리묵 한점이 어느때보다 맛이 있었다.
도상거리 32km. 전망도 전혀 없고 오르내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간에서도 마의 구간이라고 하는 곳을 덥고 습한 여름에 걸었으니 뿌듯함이 아니고 정신 나간 짓이 아닌가 했다. 그래도 탈출을 안했으니(사실 탈출로도 없다) 아직은 산에 다닐만 하지 않겠나? 스스로 위안을 해 본다.

첫댓글 당일 32키로면 거의 지리산 성중종주 거리에요. 대단하십니다~^^
노란 진범 비슷한 아이는 참배암차즈기입니다. 귀한 꽃이에요~
좋고 멋진 곳 있으면 여기저기 열심히 다녀보자구여~~^^
무지 더운날에 길게도 걸으셨네요 너무 대단하시고 고생많으셨습니다. 최고예요^^
멋진 길과 멋진 후기 잘 보고 갑니다.^^
산에서 보자니까~~
헐 32키로~
18키로도 힘들어 기진맥진였는데
그 악조건에서도
대원들을 위해 요술냄비처럼 가방에서 먹을것이 계속나온다는~
너무힘들어 손가락까딱도 힘드셨을텐데
사진도 많이찍으시고
훌륭한 산행기도 완성하시고~
덕분에 읽으면서 또한번 힐링되네요
대단하시고 고생많으셨어요~
읽고
32k를 완주한 체력과
박학다식함에 경외심이 듬니다
많이 배우겠음니다~~^^
귀한 설명과 쉼터에서 먹거리를 주셔서 더욱 추억에 남는 대간길이었습니다
심곡님!!
아무래도
좀
짱 이신듯^^
제가 입안에 혀 처럼 표현은 잘 못하는데
진짜 멋지심요
암튼 뭐
앞으로도 산행기 잘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