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투 런
BORN TO RUN
다음은 1994년 리드빌 울트라 마라톤 대회(고산지대의 산악코스 150km를 달리는 대회. 매년 참가자들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기도 하는, 악명높은 대회)에 처음으로 등장한 타라우마라족에 대한 기억이다. 사실, 전년도에도 참여했지만 미치광이 매니저가 농구화를 신기는 바람에 다 뛰지도 못했다.
후안과 마르티마노가 반환점을 돌아왔을 때, 때마침 켄 추루버가 트윈 레이크의 마지막 급수대에 도착했다. 소방서 안의 사람들은 모두 앤의 놀라운 기록과 점점 벌어지는 간격에 대해 떠들었다. 하지만 켄은 소방서에서 나온 후안과 마르티마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진흙 경사로를 오르면서 웃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저 언덕을 걸어서 오른다.” 후안과 마르티마노가 마치 나뭇잎 더미에서 노는 아이들처럼 경사를 빙빙 돌며 뛰어가는 것을 보고 켄은 생각했다. '그리고 저렇게 웃으면서 오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타라우마라족 Arnulfo Quimare 과 미국 최고의 울트라 마라토너 Scott Jurek
지상의 버뮤다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멕시코의 코퍼 캐니언즈 Copper Canyons (타라우마라족이 숨어살고 있는 거주지 주변)에서 경주를 하고 있다. 이 꿈의 경주는 순수하게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다. 아무런 금전 보상도 없이 목숨의 위협까지 무릅 쓰고 라라무리들을 찾아간 것이다. <본 투 런>에는 이 경주의 과정이 회고돼 있다. 타라우마라는 이방인들의 잘못된 작명이었고 원래 이들은 '라라무리'(달리는 사람들이란 뜻)라고 불린다.
“ 저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비질 코치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즐거움과 결의는 보통 상반된 감정이다. 그런데 타라우마라족은 두 감정을 동시에, 그것도 넘치도록 느끼고 있었다. 죽도록 달림으로써 자신이 살아있음을 더 생생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비질은 그들의 모습을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기억하고 싶었다. 체조선수가 마루운동을 할 때처럼 발가락이 위로 향하지 않고 아래로 향한 것을 보라.
등은 어떤가! 머리에 물 항아리를 이고 가도 한방울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려야 한다고 얼마나 많이 얘기했던가? 하지만 비질을 정말 놀라게 한 것은 그 웃음이었다.
저거야!
비질 코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제 찾았어!
그동안 밝혀내고 싶었던 것이 바로 눈앞에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촛불 켜진 도서관에서 희귀한 책 표지를 발견한 것처럼 희미한 불빛을 잡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찾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비질은 인간의 인내력에서 다음 단계의 도약은 그가 두려워하는 차원에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바로 ‘기질’이다. 코치들이 일반적으로 열광하는 그런 기질이 아니다. ‘담력’이나 ‘허기’ ‘싸우고 있는 개의 투지’ ‘강인함’도 아니다. 비질이 뜻하는 기질은 ‘열정’과 ‘친절’그리고 ‘사랑’이다.
그렇다. 바로 ‘사랑’이다.
비질은 이 말이 헛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해하지 말라. 그는 최대 산소 섭취량이나 훈련 주기표 같은 구체적이고 정량화할 수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운동 생리학을 연구한 결과 비질은 쉬운 문제는 모두 해답을 찾았다는 불편한 결론에 도달했다.
남은 문제들은 해답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웠다. 비질은 케냐의 십대들이 미국의 십대들보다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다. (훈련할 때 2만 9천 킬로미터를 더 달린다.) 러시아 단거리 선수들이 사다리에서 왜 뛰어내리는지도 알아냈다. (측면 근육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트라우마로 인해 신경이 더 빨리 달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면 훈련할 때 부상확률이 줄어든다.) 페루 농부들의 식단의 비밀도 설명할 수 있다. (위도가 높으면 대사 작용에 특이한 영향을 미친다.) 산소 소비 효율이 한 자리 수 퍼센티지일 경우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몇 시간 동안 떠들 수 있다.
몸에 관한 것은 거의 알아냈다. 이제 뇌에 관한 것을 밝혀낼 차례이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인간의 몸이 타고난 주자였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가?
굳이 먼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는 타고난 주자인 때가 있었다. 기억하는가? 어렸을 때 항상 천천히 달라라고 어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았는가? 어릴 때는 무슨 놀이든 전속력을 다했고, 깡통을 찰 때도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옆집 안마당으로 쳐들어갔다. 무엇을 하든 기록을 세우는 데 열중했고, 생애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달렸다.
이것이 바로 타라우마라족의 진짜 비밀이었다. 그들은 달릴 때의 좋은 느낌을 잊지 않았다.
달리기가 인류 최초의 순수 예술이며 창조적 활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동굴에 그림을 긁적거리거나 속이 빈 나무를 리듬에 맞춰 두드리기 훨씬 이전에, 사람들은 드넓은 지역을 유연하게 달리는데 적합하도록 호흡과 정신과 근육을 단련시켰다. 조상들이 처음으로 동굴에 그린 벽화는 무엇이었을까? 산 중턱에서 아래쪽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가는 ‘달리는 사람’이었다.
장거리 달리기는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었다. 인류는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살아남아 번성하고 이 행선 전체 퍼졌다. 먹기 위해 달리고 먹히지 않기 위해 달렸다. 짝을 찾기 위해 달리고 이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달렸다. 그녀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달렸다. 사람들이 ‘열정’과 ‘욕망’이라는 감상적인 이름을 붙인 다른 모든 것처럼 달리기는 우리에게 필수적이었다. 우리는 달리도록 태어났다. 달리기 때문에 태어났다. 우리는 모두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타라우마라족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달리기를 대하는 방식은 뿌리부터 썩었다.
사람들은 인위적이고 탐욕스러우며 뭔가 얻기 위해 달린다. 메달, 나이키와의 계약, 날씬한 몸매를 얻기 위해 달린다. 하지만 이런 달리기는 예술이 아니다. 엄격한 대가를 지불하는 비즈니스다. 사람들이 달리기를 혐오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달리기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 더 빠르고 날씬하고 부유해지기 위한 목적을 위한 투자일 뿐이라면, 충분한 보상을 얻지 못했을 때 계속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항상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을 때는 우리도 멋졌다. 과거 1970년대 미국의 마라토너들은 타라우마라족과 많이 닮았다. 그들은 고립된 방랑자들로, 상랑을 위해 달렸고 본능과 조악한 장비에 의지해서 달렸다. 1970년대 러닝화의 윗부분을 제거하면 샌들이 된다. 옛 아디다스와 오니츠카 타이거즈는 납작한 민창과 끈뿐이었다. 모션 제어도, 아치형 지지대도, 뒤꿈치 패드도 없었다. 1970년대 사나이들은 ‘회내 작용’이나 ‘회외 작용’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운동구점에서 쓰이는 이 환상적인 은어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훈련 방식도 신발만큼이나 원시적이었다. 그들은 너무 많이 달렸다. “하루에 두 번, 어떤 때는 세 번 달렸다. ”고 세계적인 마라토너 프랭크 쇼터는 회고했다. “우리는 달리기만 했다. 달리고, 먹고, 자고, 달리기만 했다. ” 그렇게 열심히 달렸다. “유일한 훈련 방법은 경쟁자들을 잔뜩 모아놓고 성안 운전자들처럼 매일 달리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 논평자가 말했다. 하지만 경쟁자라고 부르기에 그들은 너무 친했다. 1970년대 마라톤 영웅이며 보스턴 마라톤의 4회 우승자인 빌 로저스는 말했다. “우리는 함께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달리기가 재미있었다. 달리기는 절대로 지루한 운동이 아니었다. ”
........................................................................
바란카스에서 돌아온 후 나는 카바요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매일 일이 끝나고 신발 끈을 맬 시간이 못 견디게 기다려졌다. 크릴 시 언덕에서 느꼈던 것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카바요의 뒤를 따라 몇 킬로미터를 달릴 때 나는 너무나 편안하고 가볍고 빨리 뛸 수 있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나는 카바요가 달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크릴 시 언덕을 떠다니듯 달리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는 외계인에게 납치되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이완되어 있었다. 팔꿈치만 장난감 로봇처럼 힘차게 움직였다. 카바요는 몸이 호리호리한데도 달리는 모습은 링 위의 무하마드 알리를 연상시켰다. 파도에 쓸리는 해초처럼 흐느적거리면서도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나움이 엿보였다.
................................................................
사흘 뒤 언덕 밑자락을 주춤거리며 내려가던 나는 갑자기 걸을 수가 없었다. 샛강으로 절뚝거리며 가서 앉았다. 화가 났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카바요와 같이 달린 거리를 달리는데 3일이 걸렸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됐고 뒤꿈치의 통증은 족저근막염 때문일 것이다.
달리기 부상 중에서도 흡혈귀라고 할 수 있는 족저근막염이 뒤꿈치를 물면 평생 동안 고생할 수도 있다. 달리기 관련 게시판들은 족저근막염을 하소연하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사람들이 권하는 치료법은 거의 비슷하다. 야간 부목, 탄성 양말, 초음파, 전기 충격, 코티손, 보조기구를 권한다.
하지만 게시판이 붐비는 이유는 이런 치료법이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값비싼 쓰레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자신에게 겨누는 흉기? : 현대의 트레이닝화
나는 고작 몇 달 동안 쉬운 길을 달린 뒤에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어떻게 카바요는 보잘것 없는 샌들을 신고
그랜드 캐니언보다 더 긴 내리막길을 그렇게 오랫동안 달릴 수 있었을까?
라라무리의 샌들
키 2미터 16센티미터에 125킬로그램인 위트 체임벌린은 평생 농구를 했으며 60세에 80킬로미터 울트라러닝을 시작했지만 무릎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1832년 멘센 어니스트라는 노르웨이 선원은 오랜 항해 끝에 상륙했을 때 육지가 어떤 느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달렸다. 14일 동안 하루에 2백 킬로미터씩 뛴 것이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신발을 신고서 달렸다.
하지만 그것은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멘센은 그 다음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캘커타까지 달렸다. 두 달 동안 하루에 150킬로미터씩 달린 것이다. 그는 3일 동안 쉰 뒤 8천7백 킬로미터를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떻게 한번도 족저근막염에 걸리지 않는 걸까? 그는 1년 뒤 나일감을 따라 달리다 설사병으로 죽었지만, 그때도 다리는 최상의 상태였다. 달리는 현자는 어디나 있었다.
메릴랜드의 우리 집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는 13세의 매켄지 리포드가 엄마와 함께 JFK 80킬로미터 경주에 참가하여 즐겁게 달렸다. (그것도 재미로!)
딥시의 악마라고 부르는 잭 커트는 96세의 나이에 딥시 트레일 레이스를 달렸다. 이 경주는 절벽사면의 계단 671개를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국 역사의 절반을 산 남자가 50층 짜리 건물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숲을 달리는 것이다. 딥시의 악마는 말했다.
“늙었다고 달리기를 멈출 필요는 없다. 달리기를 멈추기 때문에 늙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 발은 달리기를 시작할 때보다 더 나빠졌다. 타라우마라족과 경주하기는커녕 경주 장소까지 갈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아이다호에서 넘어진 뒤 몇 주일 후, 나는 잡지 일로 에릭을 인터뷰했다. 와이오밍 잭슨 홀의 어드벤처 스포츠 코치이며 전 콜라도 대학 건강과학 센터 피트니스 감독인 에릭은 지구력 스포츠를 대중화시키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찾고 있었다. 카약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어깨 기술을 찾기 위해 암벽 등반을 연구하고, 노르딕 스키의 부드러운 추진력을 산악자전거 경기에 적용했다. 그가 찾은 것은 기본적인 엔지니어링 원칙이었다. 그는 운동 실력 향상은 트레이닝이나 테크놀로지가 아닌 테크닉으로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부상을 피할 수 있는 선수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카바요와 타라우마라족에 관한 내 기사를 읽고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타라우마라족의 달리기는 순수한 예술입니다.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달리지 못했요.” 에릭이 훈련시킨 선수가 리드빌에 참가했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샌들을 신고 긴 옷을 입고 황혼을 날아서 달리는 환상적인 인디언 이야기였다.
............................................................
카바요의 경우처럼, 내가 이해하기도 전에 타라우마라족의 비법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가볍게 먹고 한 번도 부상으로 눕지 않았으므로, 나는 더 많이 달릴 수 있었다. 더 많이 달렸으므로 잠도 더 잘 잤고,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졌다. 쉴 때는 심장박동이 느려졌다. 성격도 변했다. 아일랜드계 이탈리아인의 유전자 탓이라고 생각했던 다혈질 성격이 많이 누그러져서 아내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이게 모두 울트라러닝 덕분이라면, 내가 당신 운동화 끈이라도 묶어줘야겠어요.” 유산소 운동이 효과적인 항우울제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 기분을 안정시키고 ‘명상적’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4시간 동안 달린 다음에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 애초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유령들이 고함을 지르며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킬레스건이 비명을 지르고 햄스트링이 찢어지고 족저근막염이 재발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멀리 달릴 때는 핸드폰을 갖고 다녔다. 언젠가 바위에 걸려서 다리를 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통증이 올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서 점검했다.
등을 곧게 폈나? 오케이!
무릎을 구부리고 앞으로 움직였나? 오케이!
뒤꿈치를 가볍게 스쳤나? 그게 문제였군.
문제점을 바로잡자 통증이 줄어들었고 마침내 사라졌다. 경주를 한달 앞두고 에릭이 5시간을 달리게 했을 때, 유령들과 핸드폰은 잊어도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나는 초장거리 달리기를 두려움이 아닌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다. 맨발의 테드라면 어떻게 말할까? 다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맞다 나는 달리기 위해 태어난 느낌이었다.
과학계의 세 이단아에 따르면, 나는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
이 책의 작가인 크리스토퍼 맥두걸 씨는 <맨즈헬스> 기사에서는 (유명 RKC였던) 스티브 맥스웰에게 케틀벨을 배워 족저근막염 치료에큰 도움을 받았음을 밝혔습니다. 즉 둔근이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힙을 접고 펴고를 반복하면서 근막 전체를 늘리고 수축하고... 이것을
반복하는 케틀벨 스윙의 덕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가이아요가 회원이었던 꾸준남 님도 케틀벨 스윙, 조석 태양경배(맥두걸 씨는 요가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꾸준남 님과 제 경우는 효과가 확실했습니다. 이론상으로도 근막은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으니까 몸 전체 근막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브람 3박자로 족저근막염을 치료하셨습니다. 병원보다 비할 수 없이 훨씬 저렴했고 비할 수 없이 훨씬 빨랐고 비할 수 없이 우울하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주류 의학계는 족저근막염에 대해서 완전히 무능합니다. 이 무능함은 너무나 확실해서 스스로 인정하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첫댓글 워낙 少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니, 주인공들이 계속 걷고 뛰고 헤어졌다가 다시 걷고 뛰어서 만나고 이러는 책은 이 책과 <반지의 제왕>밖에 읽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2009년 5월에 나온 책인데.. 마침 그 때쯤 RKC에서 고객이 맨발도 싫다하고 쿠션 있는 신발을 고집한다면 가르치길 거부하라. 는 케틀벨 안전수칙 101을 읽고 엄청 신이 나서 자료를 찾던 중에 이 책에서 가장 공격적인 파트 "나이키, 쓰라린 진실" 을 영문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에 누가 올려놓았더군요. 그리고 직접 제 발을 사진촬영해 작년 7월에 처음으로 맨발 찬양 글을 올리게 됐죠. 수소문해서 비브람 오프라인이 곧 한국에 생긴다는 소식도 소개했죠. 그 전에 최하란 씨는 이미 요가칼럼에 글을 올렸었죠. 어쨋든 우리 글을 보고 비브람 수입사가 우리에게 연락을 해와 이렇게 지금은 대리점을 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지역단체들에서 열리는 60세 이상 실버요가수업, 70세 이상 거동불편 어르신과 치매 어르신 요가수업, 정신증환우 요가수업을 1년 가까이 방문해 진행했습니다. 그 분들의 발에 대해서 천둥같은 충격을 받고 고민하게 됐습니다. 발을 잃자 그 위로 모든 게 제대로 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까지요. 그 수업들은 그야말로 1시간 내내 발의 소중함을 내게 수십 번씩 되새기게 하는 수업들이었습니다. 작년 7월의 글은 그래서 정말 한번 마음먹자 일사천리로 써진 글이었습니다. "씹고 뜯고 먹고..." 치아 잇몸 건강도 소중하지만, "걷고 뛰고 서고, 앉고..." 발의 건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도 베어풋 케틀벨을 배우고 난 뒤로는 걷든 달리든 위와같은 포인트를 항상 생각합니다. 상체는 올바르게 폈는가? 무릅은 구부리며 앞으로 움직였나? 발 뒷꿈치는 스치듯 하는가? 물론 처음에는 다소 힘들고 잘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 계속하다보면 특유의 리듬감이 생김을 느낍니다. 걷더라도 마치 춤추는 기분입니다.
그러다 보면 한가지 느끼게 되는 점이 운동화의 쿠셔닝이 매우 불편하다 입니다. 일단 굽이 있는, 더욱이 쿠션이 빵빵한 운동화는, 리듬감 있게 걷게 될 경우 지속적으로 걸었을때 다리가 뒤틀리거나 골반이 뒤틀리는걸 느낄 수 있습니다. 뒷꿈치가 들려 있으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예전에 걷던 방식으로그냥 걸으면 당연히 무릎부터 아파옵니다. 저같은 경우는 몸무게가 상당한 편이라 장시간 걸을시에는 그 누적 데미지를 무시못합니다.
이래저래 쿠셔닝은 정말 쓰잘데기 없는 거라는 생각 밖에는 안듭니다. 차라리 라라무리 샌들이나 비브람을 신고 리듬감 있게 포인트에 유의하며 걷거나 달리다보면 굉장히 사뿐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허리나 무릎으로 걸리는 누적데미지도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햄스트링과 둔근의 쓰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분이 틀려지고 산뜻해 집니다. 단, 발목에는 어느정도 무리가 오는 듯 싶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단련이 필요한 부분인듯 합니다. 차차 적응해 가면서 변화 추이를 봐야겠습니다.
햄스트링, 둔근의 사용-> 워낙 달린 경험이 적어서 일 수 있습니다. 베어풋 러너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 봐도, 뉴비들은 언제나 엉덩이 근육통이 와요~~와우!!이러지만..1달만 꾸준히 달리면 한 20~30은 달려야...ㅡ.,ㅡ....그리고..발목이 아픈건 여전히 쿵쾅거린다는 뜻입니다.
케질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 같습니다. 하드스타일 자체가 몸의 정렬을 잡고 제대로 된 모빌리티를 확보하는것이 관건인데, 뒷꿈치가 들려 있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듯 합니다. 그것은 그냥 케틀벨을 하겠다는거지 하드스타일을 하겠단 뜻은 아닌듯 합니다. 온 몸이 바르게 뿌리 박힌 상태에서 효율적으로 케틀벨을 통제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케질을 할때도 항상 맨발로 발바닥을 제대로 뿌리 밖았는지 부터 확인합니다.
난 중학생 시절부터 창 얇은 신발을 좋아라 했는데... 그당시 인기리의 에어 있는 신발에 대한 동경으로 한번 사서 신어보고 나와는 안맞구나 싶어 사놓고 안신다가 친척 동생에게 흘러 들어 가버맀다는 지금도 좋아하는 신발은 아디다스 가젤
Som에서 운동을 배우고 난 뒤 전 항상 좀 더 본질에 가까운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런 생각이 운동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깊이있게 만들어주는 듯 합니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걷어내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20분을 운동하더라도 신중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번이라도 느낌좋은 모빌리티가 나온다면 그만큼 희열을 느낍니다. 달랑 맨몸에 맨발 케틀벨만 있으면 모든것이 가능합니다. 그야말로 최곱니다.
소독 하시는 분이라 다음 책을 감명 깊게 읽기 전까지 계속 "외계인에게 납치된 사람처럼, 해초처럼"을 무한반복 하겠군요. 큰일입니다. 어제도 뛸 때마다 30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