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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선 목사의 회개론 | ||||
한국복음주의협회 세미나 ‘한국교회와 회개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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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교수 /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들어가는 말 김치선 목사는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교회와 민족의 죄에 대하여 뜨겁게 회개하며 민족의 부흥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던 인물이다. 195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총신대학교의 전신인 장로회신학대학에서 구약학 교수로 가르치면서 대한신학교(현재, 안양대학교)를 설립하여 신학생들을 육성하여 전국 2만 8천 동리에 가서 우물을 파라고 외쳤던 교육자이자 부흥사였다. 본고에서는 그의 일생을 소개하고 그의 회개론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I. 김 치선 목사(1899-1968)의 생애 고봉 김치선 목사는 1899년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그의 집안이 유복하여 어릴 때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배웠으며 서당의 훈장이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영수가 되었던 김응보의 영향으로 신앙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집안이 몰락하여 화전민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을 때 김응보 영수가 부친을 설득하여 김 치선을 함흥에 파송된 캐나다 선교사인 영재영(Lither Lisger Young, ?-1949) 선교사에게 소개시켜 선교사의 양아들로 삼게 하였다. 김치선은 영재영 선교사가 설립한 영생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학교의 대표로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그가 형무소에서 보낸 1년은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목회자로서 자신의 생을 불태우겠다고 결심하였던 가장 소중한 시기였다. 옥고를 치른 후에 영생중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중에 영재영 선교사가 시무하던 신창리 교회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일본 순사들의 충동에 의해 분노한 한국인 폭도들이 “서양선교사가 어떻게 한국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새벽에 교회에 불을 질렀다. 새벽에 홀로 기도하고 있던 김치선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 실신한 양아버지인 영재영 선교사를 구출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재영 선교사는 김치선을 자신의 친자식같이 사랑하며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후원자가 되었다. 김치선은 1922년 영생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곧 바로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가 1927년 3월에 졸업한 후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영재영 선교사가 뒤에 파송되어 온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스코트 선교사와 갈등을 겪게 되자, 카나다 선교부는 영재영 선교사를 1928년 일본으로 파송하였다. 이 때 김치선도 평양신학교를 중퇴하고 그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신호중앙신학교(현 개혁파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김치선은 30세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으면서 영재영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와가야마에 조그만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그 후 영재영 선교사는 그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1933년 웨스트민스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1935년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으로 귀국하였으나 사역지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영재영 선교사의 초정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신호중앙교회를 설립하여 목회를 하였고, 1939년에는 동경 신숙중앙교회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여기서 일본어로 설교하지 말라는 일본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한국어로 설교하다가 체포되어 여러 달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 시골의 작은 메구로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1944년 귀국하여 남대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일본이 미국의 공격을 받아 패색이 짙어지던 상황에서 김치선 목사는 이제부터는 살든지 죽든지 조국에 돌아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과 민족의 해방을 조국에서 맞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일제의 심한 감시 하에서도 새벽기도를 계속하면서 민족을 위하여 한없이 우셨다. 김치선 목사는 눈물의 기도 끝에 해방 후에 한국을 진정한 제사장 나라로 건설하려면 이 백성이 예수를 믿어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먼저 3천만 민족의 십분의 일인 300만 명이 하나님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믿는 우리가 먼저 “남한의 2만 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야만 이 민족의 살 길이 있다”고 부르짖었고 우물을 파기 위해서는 300명의 기드온 기도 특공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300만 구령운동'의 시발이며 그는 이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3백만 부흥전도회”를 결성하였고 1946년에는 회장에 취임하여 70인의 전도 목사들을 전국에 파송하는 중요한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유명한 부흥강사였던 이성봉 목사님, 박재봉 목사님,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 등도 전도팀의 한 분이셨다. 한편 그는 300만 부흥운동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기관지로 ‘부흥’지를 창간하여 민족각성운동과 구령운동에 필요한 자료와 논문을 게재하였다. 이 전도활동은 6.25동란 중에도 계속되어 순교자들도 나왔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1857-59년의 정오기도회와 평양대부흥운동시의 선교사들의 정오기도회를 이어받아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정오기도회를 하였다. 그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부흥은 오직 성령을 받아야 하고 참된 부흥이 수반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김치선 목사는 기도온 300용사를 선발하여 민족복음화를 이루면서 해방된 조국을 민주국가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고, 그러한 소원이 결실을 맺어 1948년 8월에 남대문 교회에서 야간신학교를 개설하였다. 이 학교 설립목적은 북에서 내려와 주경야독해야할 사람들을 민족복음화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1949년 1월에 교사를 서소문으로 이전하면서 교장직을 맡고 1950년 1월에 “대한신학교”로 개명하였고 1951년에는 장로회총회신학교 구약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남대문 교회에서 시무하다 6.25사변 이후에 사임하였는데, 1954년에 남창동에 “창동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면서 관악산에 “벧엘기도원”을 세웠다. 1956년에 창동교회를 한양교회로 개명하고, 대한신학교와 함께 남산 중턱으로 옮겼으나 화재가 발생하여 모두 불타게 되었다. 그 후 장로교 총회가 대한신학교를 인정해주지 않자, 1961년 6월에 ICCC의 칼 맥킨타이어 박사와 손을 잡고 ‘성경장로회’를 창립하였으며, ICCC의 기증으로 용산구 서계동에 교사를 마련하여 대한신학교를 재건하였다. 그는 대한신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1968년 2월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II. 김치선 목사의 회개론 김치선 목사는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리는 것은 예레미야가 우상숭배의 죄를 지어 망해가던 유다 왕조를 위해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자신의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것과 같이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한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김치선 목사는 강의시간에도 늘 눈물로 강의하였고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장로회 신학교에서는 구약을 가르쳤고 대한신학교에서는 구약, 신약, 조직 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쳤는데, 특히 당시의 한국교회의 회개를 강조하며 눈물로 강의하였다. 김치선목사의 회개론은 그의 구약개론을 비롯한 그의 강의와 그가 해방 후에 하여 유고형태로 남아있는 140여 편의 여러 설교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그의 회개론을 그가 심혈을 기울여 강의했던 예레미야 강해와 설교의 분석을 통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I. 구약사기와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회개론 그는 당시 우리 민족의 죄를 회개하면서 크게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하였다. 김치선 목사는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 민족의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여 회개운동을 전개하였다. 김 치선은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를 소개하면서 미가의 가정이 이스라엘 전 민족의 가정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가와 그의 어머니의 우상숭배 행위를 통해서 그 “당시의 종교적 형편”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의 종교적 본능”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거의 다 하나님을 버리고 저들의 소견대로 행동하였다는 것이다. 김치선은 이를 통해 현대문명의 부패를 조명하는데, 일본이 “신사참배 운동”을 일으킨 것이 그 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단 지파처럼 우상숭배를 자행하는 ‘종교적 타락’(삿18장)은 곧 “생활상, 도덕상 타락”(삿19장)을 빚어낸다고 한다. 선민이든 이방이든 “음란하고 더러운 우상을 섬기면서 악을 행함”이 극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급기야 이스라엘 백성과 베나민 지파 사이의 골육상쟁을 가져왔다고 한다(삿20-21장). 김치선은 이스라엘 백성간의 골육상잔을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심판 중 ‘두려운 보응의 심판’으로 결론을 지으면서 한국의 6.25 민족상잔을 같은 맥락에서 보고자 한다. 김치선은 아합이 이세벨을 통하여 들여온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겼으나 결국 참 예언자들의 지도하에 참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긴 일이 있었으며, 그들의 박해 앞에서도 의연하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존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어떤 박해가 이 강산에 올지라도 이러한 신앙이 남아 이 민족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바이니, 우리는 최후까지 여호와만을 섬기는 신앙과 또 이 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라고 당부하였다. 또한 요시아 왕의 개혁과 관련하여 요시아왕은 온 장로들을 예루살렘에 모아놓고 회개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오늘도 … 하나님의 말씀에 겸비하여 애통하며 회개하는 지도자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할 것이다 … 오늘도 회개운동이 반드시 일어나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김 치선은 유대인들이 포로 이후에는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도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포로기간 중에 철저한 회개의 결과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고난 중에 분명히 참되신 하나님만 섬겨야 할 것을 알고 그대로 실행할 것”을 촉구한다. 김 치선 목사는 “예레미야 강해”에서 예레미야를 “유명한 선지자로 그 민족을 위하야 눈물로서 호소한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시다”라고 하였다. 그는 선지자의 소명에 대하여 하나님 편에서 보면 순전히 messenger일 뿐이나, 사람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권세를 잡은 대리자이다. 그리하여 그는 뽑을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뽑으며 파괴하며란 얻어헌 식문이던지 뽑우며 건물을 파괴함을 일음이다. 파멸하며 너머지게 하고란 거듭 자연과 시가지들을 대한 파멸을 말함인데, 이 뜻은 쪼각쪼각 찌저 버린다는 것이라고 한다. 6.25 동란 후에 되어진 것을 보면 자연과 시가지뿐만 아니라 인생까지 멸망케하고 너머지게 할 것을 잊을 수 없다. 과연 바벨론으로 인하야 멸망하게 된 것은 우리가 당한 비극 이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죄악의 값인 것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예레미야서를 편집의 취지에 의해 회개의 권고(1-13), 버림과 포로(14-22), 남은 자의 귀환(23-29), 위로(30-33), 예루살렘의 멸망(34-45), 외국들에 대한 예언(46-51), 역사적 결론(52)의 7부분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는 예레미야서를 1장에서 51장까지를 25개의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분석하고 있고 52장은 역사적 결론으로 취급한다. 그는 예레미야 2장에서 3장 5절을 예레미야의 예언 2로 분류하면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성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패역이 비할 데 없고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재앙을 자취하며 여호와의 길을 떠나 재앙을 자취하므로 유대의 죄악을 지적하고 무서운 죄의 값을 받을 것을 경고하였으며, 음행과 행악을 책망하였다. 예레미야의 예언 3은 3장 6절에서 4장 4절인데, 유대는 이스라엘보다 더 악하나, 회개하면 자비함을 받으므로, 죄를 자복하고 은혜 받을 것을 권면하면서 용서를 보증하였다. 예레미야의 예언 제4는 4장 5절부터 6장 30절까지인데, 멸망이 예루살렘에 박도하였고, 침입을 지속하며, 박도한 재난의 두려움을 진술하고, 사악을 인하여 심판이 나리며. 우상을 섬김을 인하여 심판이 나리고, 불신앙을 인하여 심판이 나리며(, 하나님을 모욕함을 인하여 심판이 나리고, 사회상의 부패를 인하여 심판이 나리며, 교직자들의 거짓과 부패를 인하여 심판이 나리고, 유대를 향하여 원수를 보내겠다 하였으며, 예루살렘의 포위와 포로됨,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재앙 받을 것을 예언하였고, 죄의 심판으로 백성이 비참케 됨을 선포하였다. 예레미야의 제5예언은 7장 1절에서 10장 25절인데 금식일에 성전에서 한 설교인데, 제목은 “회개하지 아니하면 심판이 나림이다.” 성전에 모인 많은 무리를 향하여 성전 문곁에서 열열이 회개를 웨쳤있다. 예레미야의 제6예언은 11-12장인데, 언약(covenant)을 어기면 저주받음을 알게 함이니 이 사실은 요시아 왕 시대에 계약의 말씀을 발견하여(11장) 새로 낭독한 것을 인용함이다(왕하 23장). 12장 4절을 갖고 3장 3절, 5장 24절을 생각하면 죄악으로 인하야 채소가 마르고 땅의 소산이 없겠다고 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새와 즘생까지 망할 것이니 계약을 파괴하지 말고 회개하야 계약대로 순종한 것을 주장하였다. 예언 8부터는 13중반까지는 버림과 포로부분이다. 예레미야의 제8예언(14-15)은 임박한 한재(drought)에 관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죄를 자복하야 회개의 기도를 드리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허락지 아니하심을 볼 수 있다. 다만 나라가 죄악 가운데 있는 까닭이니 모든 것이 망해도 죄의 값이다. 예레미야의 제9예언(16-18)은 유대의 벌을 나타내 뵈이심인데 특별히 惡疫과 방축으로 말미앉음이다. 저희가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나뇨 이제 임할지어다 하매 (17:15) 지금 와서 그 예언이 분명히 이루었다. 여호야긴 치세의 마지막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하였음으로 선지자의 에언대로 된 것을 우리는 아는 사실이다. 예레미야의 제10예언(17:19-27)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직힐 것이니 이것은 여호야김 치세 혹은 요시야 왕 그리고 그대로 계속하여 주장한 것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직히지 아니하면 안 된다. 만일 이 날을 직하지 아니하면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겠다고 하였다. 오늘에 우리는 깊이 생각하여 이날을 직힐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김치선은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우상숭배를 하며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므로 망하는 것을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민족의 죄에 대한 인식이 파수꾼이론을 위한 근거가 된 것 같다.
II. 김치선의 설교를 통해 나타난 회개론 1. 회개의 정의
2. 그의 설교에 나타난 회개론 1) 그의 개인적인 죄에 대한 회개 오히려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신사참배한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한 적은 있어도 신사참배했던 지도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김 치선 목사는 남아 있는 설교들 가운데 적어도 세 번에 걸쳐 자신의 신사참배의 경력을 인정하면서 그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은 1952년에 했던 “전쟁 중의 부흥”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지 않으면 부흥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오날 여러분 나붙어 더러운 일본 우상에게 절하던 자이옵니다. 그러니 엇지 이 나라가 부흥할 수 있겠나이까 우리는 몬저 이 더러운 것붙어 다 제하여 버려야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1961년에 했던 설교에서 한 설교에서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의 마음을 말하면서 자신의 신사참배의 죄를 고백한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가 아버지를 생각지 않고 미소기바라이 신사참배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앞프셨겠나이까? 생각할 때 참 마음이 괴롭씁니다. 내 아버지가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나고 미국에 가서 공부할 때 어린 손자를 살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나를 부르면서 치선이를 보고 죽었으면 하셨다니 부모에게 불효막대한 죄인데,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불효의 죄는 태산보다 더하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이 더러운 나를 그대로 바리지 아니하시고 지금까지 사랑하여 주시니 나는 얻어케 하면 좋겠습니까? … 여러분 나는 아브지 하나님을 이렇게 아프게 하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말로 할 수 없는 고난받으신 주님의 마음을 앞프게 한 다시 죽어도 맛당한 죄안을 사랑하시니 그 감사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는 다시 “고멜을 보라”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크리스챤지에서 신사참배 미소기바리이한 자가 교회를 설립한다고 욕질한 기사가 씌였는데, 친구가 붉은 줄을 그 기사에 그어 보내고 내용은 없었다. 그 기사를 보고 퍽이나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아진 것은 나는 고멜이구나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 성경에 보시는 대로 고멜은 음녀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 즉 이스라엘을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나도 고멜이와 같이 내 남편 주님을 버리고 일본 神社에 가서 그것들과 음행을 범하였다. 나는 일본에 가서 신학을 하였다. 그 때 日本生徒들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다만 민심을 통일하여 대동아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것밖에 없다고 하였다. … 해방 후 회개 운동이 내가 돕던 남대문교회에 일어나 회개 금식 기도회를 할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나의 남편 주님을 버리고 일본 귀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를 섬겼으니 이는 고멜과 같이 음녀라는 것이다. 그 시 그시 나는 고멜과 같다고 하여 음녀로서 회개하였다. 이것이 생각나서 오늘 그 신문의 평한 것을 보고 오늘 여러분께 나는 고멜이니 와서 보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비난하는 <크리스챤지> 기사를 읽고 고민하다 오히려 설교시간에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있고, 이 설교 말미에 “나는 어떤 단체에서 신학교 교장이 주일에 자동차 택시 타고 갔다고 교장 사면식힌 것이 과할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것이 옳은 것이로 생각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주일날에 불평한 것을 회개하였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추모하고 사랑하되 내 몸같이 사랑하고 찬송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갖고 사느냐? 최근에는 더욱 슬픔을 금할 수 없는 생각이 일어난다. 나는 지난 주일 밤에 말한 즘생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나서 기도할 때 가끔 그 생각이 일어난다. 쥬님 나를 사랑하사 몸바쳐 피흘려 구원하여 주셨건만 나는 쥬님을 배반하고 원망하여 개만 못하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 글쎄 (대한신학교 졸업식날) 그 아참에 눈이 오고 좀 춥다고 글쎄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으니 이 어떤 사람이오니까? 이것은 생각할 때 가스이 앞아서 견댈 수 없다. 여러분 나는 이보다 더 한 고통이 있어도 감사하여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앞으게 하였으니 이 엇지하면 좋겠습니다. 백번 천번 죽어 맛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사사로서 가정을 다스리는 파수꾼을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있다. “오늘에 우리의 파수꾼들이 사사로서의 직무를 다하는 자 그 멫이나 되느냐? 여러분 파수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시기 바란다. 몬저 가정에서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사사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얻어함니까? 나는 여기에 죄인인 것을 여러분께 자백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의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을 보면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어버이 주일에 설교하면서 효도하지 못한 것도 회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부모에게 효성을 함니까? 나는 부모 세상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봉양하지 못하고 노엽게 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 세상 떠날 때 아들 치선을 보고 죽으시겠다고 하셨으나 이 놈은 외국에 있어 어머니 앓으시는 줄을 몰랐다. 얼마나 불효자식이오니까? 오늘 이 보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할 때 많다. 아들 이 목사는 좋은 일한다고 어머니의 마음을 앞으게 하고 낫분 언사를 사용하면 그것이 효자되겠습니까? 나는 오늘 참회 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김치선 목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회개하기 전에 자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설교시간에 공개적으로 말하면서 자신의 죄부터 철저하게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 교회와 민족의 죄에 대한 회개 “그러나 오날 우리 교회는 참으로 국민의 양심이 됩니까? 불신자보다 더 부족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말노 다 할 수 없습니다. 過去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을 갖이 못하고 사라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양심은 얻어 합니까? …본래 나라없는 사람은 지기의 양심대로 못사는 것이옵니다. 거즛말 아니하면 살 수 없으니 거즛말하는 생활을 하고 왔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기독교인은 이중의 거즛말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교회는 오날 생활 때문에 상한 창흠을 낫게 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부족의 力이 됩니까? 제사장이나 레위사람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일전에는 드르니 교회의 傳道人으로 있던 이가 해방후 戰爭曰胞를 위하여 救護事業을 하였난데 미군들이 의류를 수천벌을 주었난데 그것을 파라 사욕을 채워서 불신자가 술을 먹고와서 믿는다는 것들이 그렇게 하느냐고 야단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 오날 우리 교회 가운데 무삼 사업을 한다고 야단하나 결과를 보면 거의가 사리사욕을 채우려다가 고만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 우리 목사 가운데 위조지폐 때문에 지금 감옥에서 고생하는 이가 있지 아니함니까? 우리는 감옥에 안드러갔다고 안심할 수 있음니까?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참 부조의 일을 하는 이가 얼마나 있습니까? 부조일 가운데 근본문제의 해결은 망신창되는 영을 부조하는 것이외다. 오날 우리는 이 일 외에 다른 것을 돌 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1947년에 했던 설교에서 해방 후의 대혼란은 어디서 오는가? 첫째 조선민족과 교회의 문제도 서로 감투를 쓰겠다는 생각과 대립에서 발생하고 있고, 둘째 그리스도 신자와 교역자간의 시기와 질투가 온 교회에 꽉 차 있으며, 셋째 자신이 맡은 거이 천직인 줄 알아 충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북한 上空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라는 설교(1952)에서 당시 우리 조국이 대단한 위기를 만나고 있는데, 주님은 우리와 북한에 있는 우리 신자들에게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나타나실 것이니 우리는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 선 땅은 거룩한 거룩하니라”라고 하신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모세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셨는데, 이 신을 벗으라는 말은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상공에 나타나시면 맨 처음 전도하실 때와 같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급선무는 지금 회개하는 것이다. 오날 북한이나 남한에 요구하는 것은 회개인줄로 생각하나이다. 국가적으로 회개하여야하겠나이다. 4천년에 지은 죄악을 다니엘 느헤미야와 같이 에스라같이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하겠고 다음으로 나 자체의 회개가 옴이라. 하나님이 오날 이런 시련 중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회개인 줄로 생각하나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개인으로 회개할 것이 없다고 한 대도 국가적 의미에서 회개하는 태도는 따라야 하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속히우지 맙세다. 할 일은 하야야 하는 것이외다. 하나님은 수만강수같은 기름이나 수천수만의 우양을 원치 않고 다만 우리의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적어도 국가적 견지에서 회개하여야 한다. 천년 동안 나려오는 영국의 역사는 우리는 회개의 순종이 있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도 여기에 힘써 회개하자 우리의 제일 큰 죄는 불신의 죄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것을 회개할 때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는 믿는 신앙을 갖어야 하겠다. 여호수에게 의심의 태도 이것이 죄이다.” 그는 교회 안에서 발생한 심각한 윤리적 타락을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한다. “오늘의 죄악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분 보시라. 이 죄악 도성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서울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라고 하는 이곳이 음탕의 죄악으로 화하여 감이 난다.전 도인과 교인이 간음하는가 하면 산에 가서 기도하고 큰 권능을 얻었다 하는 사람들이 음란의 죄악에서 헤메이고 심지어 피가름한다하여 저의 친구의 안해는 물론 심지어 장모하고 붓허가고 하니 이것이 얻어함인가? 그리고 지금에 또한 얻어 사람들은 이 교회에 가서 총각이라 처녀라 하여 같이 살다가 아희까지 낳아 내어 바리고 다른 데 가서 또 총각이라 하여 속이여 여자를 못쓰게 맨들고 하는데 여러 곳으로 도라 다닌다고 함이다. 그러나 노아만은 이런 것이 조금도 없고 진정으로 의인인 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 우리는 노아와 같이 의인이 되어 무서운 죄악을 범치말고 축복받으시기 바란다.”
3. 회개의 방법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하다”라는 설교에서 “종교재건운동은 성전건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저들이 몬저 와서 제단을 쌓고 에스라는 금식하면서 죄를 회개하는 운동을 일으켜스니 이것은 종교재건운동이 분명하다. 그와 같이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 각 개인이 성전인 것을 알아 내가 성전을 일우워야 하겠다. … 성신이 거하는 성전은 회개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강원도 금룡조합에서 돈 十원을 더 차졌다. 그것이 죄인 것을 알고 갇다 주었다. 무디 선생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주인께 35원을 도적한 것을 자백하여 같이 가서 청산하였다. 성신은 그 시간부터 와서 계시어 영광이 나타나게 되었으니 부귀와 공명의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하더라.” 에스겔 43장 1-5. 1954.2.5.) 회개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는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본문으로 사명감에 대하여 설교하면서 “참 회개의 기도가 금식인 것을 알게 되었다. 말로 회개 회개 하면 무엇이냐? 금식은 회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내 죄는 물론 이 민족의 죄악은 금식이외에 없다고 생각한다. ---죽으면 죽으리라한 사실의 증거는 금식이다. 이것은 속일 수 없는 진정을 그대로 폭로하고 자기는 죽어서 그 민족을 구할 수 있으면 사양치 아니하는 사실 증거는 금식뿐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죽으면 죽으리라” 1964. 8. 23. 에스더 4장 7-17.)
4. 회개와 부흥운동 그는 “헤브리데스의 부흥은 얻어게 시작되었던가?”라는 설교에서 “큰 부흥은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을 가진 때 생명수는 넘쳐 흐르는 것이니 이것이 부흥이다. 이 생수는 성신의 생수인 것이 사실이다. 에스겔 36장 25절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정결케 할 것이며 …” 이는 회개를 이름이다. 더러운 것을 제거하면 깨끗한 것이 남고 우상을 제거하면 하나님만 남는다. 한 청년은 믿은지 6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그는 산기슭에서 엎드려 자신이 부패하다는 것을 알아 부패한 심정과 더불어 격투를 하기를 몇 달 동안 하였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 물었다. 그리스도도 이 이상 큰 일을 못하시는가 그 순간 청년의 마음의 귀에 성경 구절 하나가 들어왔는데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 것이요(요일1:7) 그 순간 이 청년은 더러운 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곳으로 옮기었다. 그리하여 이 청년을 통하여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헤브리데스의 부흥은 얻어게 시작되었는가?” 시24편. 1955.1.25.)
5. 민족이 파수꾼론 제사장으로서의 파수꾼의 임무는 에스겔이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가 되어 그 민족의 죄를 담당한 것같이 우리도 우리 민족의 대표가 되어 민족의 죄를 담당해야 한다. 에스겔은 누워서 고생하며 유대와 이스라엘의 불쌍한 형편을 표시하였는데, 오늘 이 민족이 이러한 역사상 유례없는 고생은 당하는 것은 바로 우리 죄로 인한 것을 알 수 있다. 에스겔은 자기 민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일년을 하루로 계산하여 490일 동안 옆으로 누워서 소똥으로 떡을 구워 먹으면서 자신의 민족의 죄를 짊어졌으니 우리도 전 민족의 죄 즉 4천년 동안 죄은 죄를 담당해야 하겠다. 목사님은 우리가 이 민족의 죄값을 담당하기 위하여 금식하며 회개할 것을 제안한다. 금식은 1일을 천년으로 계산하여 4천년의 죄를 짊어지기 위하여 4일은 금식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만이라도 3천만을 대표하는 회개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모세와 같이 에스겔같이 여호수아같이 그 민족을 대표하여 그 민족을 구하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너는 죄악을 담당하라: 파수꾼은 전민족의 죄를 담당함.” 에스겔 12장.) 이러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안수함을 받으며, 성신의 임재가 있고,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파수꾼” 에스겔 3;12-21, 33“1-9.) 동시에 파수꾼을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장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파수꾼의 역할을 잘 하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첫째 8.15 시절에 3천만이 다 간절히 원하는 자주통일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자주 통일이 이루어지면 진정한 평화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참 부강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니 그 역시 3천만이 밤낮으로 원하고 애쓰는 것이다. 목사님은 조국이 바라는 이상의 자주통일, 진정한 평화, 참 부강이 아직 성취되지 못한 것은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지 아니한 까닭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책임을 질 것을 역설한다. 에스겔이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시면서 전 인류에 대한 파수꾼의 사명을 담당하신 것같이, 오늘 우리가 3천만 배달의 집의 파수꾼이 되었으면 반다시 4천여년간 지은 조상들의 죄악을 담당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을 통하여 파수군의 사명을 다하여 위의 목표를 성취해야 하겠다.(“3천만 배달의 집에 파수꾼이 되자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자.” 에스겔 4장.) 그런즉 우리가 주님을 먹고 마신다는 말과 같이 생각할 때 이 사람은 불의의 배가 부르고 악의 배가 부르면 의와 사랑의 그리스도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 성신의 역사로 몬저 우리의 더러운 것을 조제하고 다 없새고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와 사랑의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을 잇지 마라야 할 것이다.(“영생을 얻을 자” 요6 (26-40), 41-59.) 파수꾼의 사명은 반드시 신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전 민족을 위한 것인데,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새벽마다 나와 기도하는 것이다. 파수꾼으로서의 제사장의 제사는 우리의 기도를 가르치므로 우리는 오늘 3천만 배달의 집에 파수꾼이 되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민족 전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다.("3천만 배달의 집에 파수꾼이 되자: 제사장으로서의 파수꾼의 임무.” 이사야 62, 에스겔 9:3-11; 11:13.)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민족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매일매일 민족을 위하여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하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다 할 수 있다. 제사장 직분을 다하기 위하여 회개하고, 기도하되 무시로 기도하여야 한다.("제사장의 직분.” 레위기 10:17. 1964.9.20.) 우리는 기도온의 300용사와 같이 우리 민족 3천만의 파수꾼이고 또한 3천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용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파수꾼되자.” 겔3:16-21. 1964.9.27.)
나가는 말 김 치선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가장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특히 6.25 이후의 민족의 위기를 바라보며 민족의 파수꾼이 되어 민족과 교회의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때문에 망한 것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와 예레미야서 분석을 통하여 제시하면서, 이러한 죄를 회개하며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부흥을 주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민족을 위하여 늘 눈물로 기도하며 민족의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였고 실질적으로 부흥과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