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MBC 청룡 ‘감독 겸 선수’(1982년). <출처: 스포츠서울>
구단이 선수와 플레잉 코치(playing coach) 계약을 하는 경우는 꽤 흔하며, 이유도 여러 가지다. 현역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은 선수를 달래며 단계적으로 은퇴를 시키기 위한 경우, 그대로 내치기에는 팬들의 원성이 두려운 프랜차이즈 스타의 연봉을 깎아내리기 위한 경우, 그보다 나이 어린 코치들이 속출하게 되면서 대두된 ‘서열과 기강’의 문제를 고려한 경우 등이 있다.
하지만 감독 겸 선수(playing manager) 계약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야구 선수단의 정점에 있는 감독이 선수의 역할도 병행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나이와 관점의 격차가 꽤 크기 때문이다.
흔하지 않은 '감독 겸 선수'
물론 프로야구의 역사가 짧지 않다 보니 감독 겸 선수의 사례를 따져보자면 없지는 않다. 미국의 경우 1920년대까지 코니 맥(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타이 콥(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트리스 스피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저마다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무리하던 시점에서 감독 겸 선수로 수직상승한 적이 있고, 일본에서도 1940년대 중반 츠루오카 카즈토(난카이 호크스)가 선수와 감독의 역할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해낸 적이 있다. 1970~80년대에도 미국의 조 토레(뉴욕 메츠), 프랭크 로빈슨(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피트 로즈(신시내티 레즈), 일본의 노무라 가쓰야(난카이 호크스), 한국의 백인천(MBC 청룡) 등이 있었고 최근에는 지난 2006년부터 2년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마스크를 쓴 채 지휘봉을 잡았던 후루타 아쓰야가 있다.
미국의 명 감독 중 하나인 조 토레 감독. 과거 감독 겸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 <출처: 연합뉴스>
감독 겸 선수, 성공하기는 더 어렵다
세월이 흐를수록 감독 겸 선수는 찾아보기도 어렵게 됐지만, 성공한 사례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츠루오카나 노무라는 선수생활을 겸하면서도 역대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오를 만큼의 능력을 과시했고, 특히 그 중에서도 노무라는 1973년 감독 겸 선수로서 팀을 우승시키면서 최우수선수로도 동시에 선정되는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1982년 백인천은 선수로서는 4할대의 타율을 남기는 대활약을 한 반면 감독으로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2006년 후루타는 감독으로서는 무난한 평가를 받은 반면 선수로서는 단 36경기에만 나서 선수생활 최초로 0홈런을 기록하며 무려 80%의 연봉을 삭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1988년 피트 로즈는 불과 40여 경기를 지휘한 시점에서 경기 도박사건에 연루되어 쫓겨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야구가 너무 정교해져 버렸습니다”
성공적인 감독 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감독을 할 만한 나이까지도 선수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며, ‘감독의 역할과 선수의 역할을 모두 정확히 이해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최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40대 중반까지도 왕성한 경기력을 뽐내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여건은 감독 겸 선수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사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반대로 ‘감독의 역할과 선수의 역할’ 사이의 간격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한국을 방문, SK 김성근 감독(당시)와 대화하는 후루타 전 ‘감독 겸 선수’. <출처: 연합뉴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플레이와 승부에 집중해야 하지만 감독은 후보, 2군, 심지어 아직 입단하지 않은 예비신인까지 염두에 두고 매 경기 뿐 아니라 시즌과 2~3년 후의 구도를 그려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일 3국을 통틀어 현재 시점까지 ‘최후의 감독 겸 선수’였던 후루타가 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나며 했던 이야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 사람이 감독과 선수, 둘 다 수행하기에는 야구가 너무 정교해져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