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소식이 들리던 어느 날
마실에 나가는데 선산댁 큰 딸 구늠이 누나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 것이다.
아니, 누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뭔 일이지?
어린 마음에 괜히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궁금했는데
금방 의문은 풀렸다.
그 날은 지방국민학교 졸업식이 있었고 그 졸업생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당시의 졸업식은 순서가 똑 같았다.
개회사, 지방 유지 축사, 교장 선생님 훈시, 우등생 시상 등이 끝나면
졸업식 노래로 마무리 된다.
반주는 보통 여선생님이 우아한 자태로 풍금을 쳤다.
(1절: 후배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 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2절: 졸업생)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 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3절: 다같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몇년 후에 막상 졸업생이 되어보니
1절 노래를 들을 때 아쉬운 마음에 울먹울먹 하다가
2절을 막상 부르면서부터 울음보가 터지는 것이었다.
"잘 있거라 아우들이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 갑니다"
여기서 눈물꼭지가 완전히 터져버린다.
3절에서는 다같이 부르면서 울음바다가 되어 노래소리는 안들리고
풍금 소리만 남는다.
시골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선생님들도 고개를 돌리며
애써 눈물을 훔쳐내신다.
물론 장난끼 많은 개구쟁이 머스마들은 울보 지지배들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평소처럼 짓궂게는 하지 못한다.
6년간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가 졸업하면서 모두가 헤어진다니
서운한 마음이 가득한데 가사가 그만 감정선에 불을 질러버리는 것이다.
특히나 여자애들 중 감성이 풍부한 구늠이 누나 같은 학생은
집에 오면서도 세상이 끝나는 듯 소리내어 울면서 슬픔을 표출하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부모님은 6년간의 노고를 치하해 주고
중학교 올라가면 잘 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우예끼나 중학교 가마 공부 열씸히 하그래이.
나쁜 아들 사귀지 말고 근처에도 가마 안된대이. 알았제?"
이렇게 아동 시절은 매듭이 지어지고 까까머리 또는 단발머리 중학생이 되어
새로운 세계로 나가게 된다.
너무 오래전이라 졸업식 사진은 찾아봐도 없다.
열장도 안되는 앨범에서 한 컷을 빌려온다.
첫댓글 실제로 그 때는 가난해서 책이며 옷들을 거의 물려받아서 쓰고 입었다.
또 학교에서만 아니라 모내기 품앗이랑 소먹이기, 경조사, 각종 놀이 등으로
희로애락을 같이 한 기간이 길었기에 더 애정이 깊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