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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손님과 어머니 (4)
My Mother and the Roomer (4)
요새 와서 어머니의 하는 일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도 퍽 유쾌하셨습니다. 밤에 때로는 풍금을 타고, 또 때로는 찬송가도 부르고, 그러실 때에는 나도 너무도 좋아서 가만히 어머니 옆에 앉아서 듣습니다. 그러나 가끔가끔 그 독창은 소리 없는 울음으로 끝을 맺는 때가 많은데, 그런 때면 나도 따라서 울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안고 내 얼굴에 돌아가면서 무수히 입을 맞추어 주면서,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응, 그렇지…….” 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요일날, 그렇지요. 그것은 유치원 방학하고 난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그 날 어머니는 갑자기 머리가 아프시다고 예배당에를 그만두었습니다. 사랑에서는 아저씨도 어디 나가고, 외삼촌도 어디 나가고, 집에는 어머니와 나와 단 둘이 있었는데,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옥희야, 너 아빠가 보고 싶니?” 하고 물으십니다.
“응, 우리두 아빠 하나 있으문.” 하고, 나는 혀를 까불고 어리광을 좀 부려 가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한참 동안을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천장만 바라다보시더니, “옥희야, 옥희 아버지는 옥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돌아가셨단다. 옥희두 아빠가 없는 건 아니지. 그저 일찍 돌아가셨지.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옥희 아버지는 죽었는데, 옥희는 아버지가 또 하나 생겼대. 참 망측두 하지,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한단다. 그리 되문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 받구, 옥희는 커두 시집두 훌륭한 데 못 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이렇게 어머니는 혼잣말 하시듯 드문드문 말씀하셨습니다.
It was hard to understand my mama these days. She did many unusual things. Some evenings she played the organ, and sometimes she sang, too. Then I was happy and listened to her. But often her singing turned into sobbing. Then I wept with her until she would embrace me. As she held me tightly and kissed me, she said, “You are enough for me. Aren’t you, dear?” And then she wept again.
One Sunday soon after kindergarten had closed for the summer, my mama did not go to church, saying she had a headache. We were alone in the house, and after a while she called to me and said, “Darling, do you want see your daddy?”
“Yes, I want to have a daddy,” I answered. For a while she did not say anything and then began to speak softly.
“Darling, your daddy was gone before you were born. You had a daddy. He is not here now. But you should not have a new daddy. If you have one, all the people around here will curse you and me. You don’t know the world. But these folks will curse you, and your friends will laugh at you. Then you cannot marry a good boy and you cannot be famous even though you are a fine student.” It seemed that she was telling all these to herself, and then she spoke to me.
그리고는 한참 후에, “옥희야.” 하고 또 부르십니다.
“응?”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내 곁을 안 떠나지.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는 엄마가 늙어서 꼬부랑 할미가 되어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가 유치원 졸업하구, 또 소학교 졸업하구, 또 중학교 졸업하구, 또 대학교 졸업하구, 옥희가 조선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돼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응! 옥희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나?”
“이만큼.” 하고 나는 두 팔을 짝 벌리어 보였습니다.
“응? 얼만큼? 응! 그만큼! 언제나, 언제나 옥희는 엄마만 사랑하지, 그리구 공부두 잘하구,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 되구.”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또 울까 봐 겁이 나서, “엄마, 이만큼, 이만큼.” 하면서 두 팔을 짝짝 벌리었습니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습니다.
“응, 그래, 옥희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우리 옥희 하나문 그만이야. 그렇지, 옥희야.”
“응!”
어머니는 나를 당기어서 꼭 껴안고 내 가슴이 막혀 들어올 때까지 자꾸만 껴안아 주었습니다.
“Okhi, you must not leave me. You will live with your mama. Even when I am an old woman, you will live with me … even when you have finished kindergarten, grammar school, high school, and the university, you will live with me. Okhi, how much do you love me?” Can you tell me?”
“This much.” I spread my arms as wide as I could.
“Oh, I see. That is good. And you will love mama only, won’t you? You will go to school and study well and become a fine woman. Even then, you will love mama only.”
“Yes, mama, I love you this much,” and I spread my arms both sideways and backwards.
“Surely, darling, your mama does not need any body else. All others are useless. I need only my Okhi. That is all.”
She hugged me hard.
그 날 밤, 저녁밥 먹고 나니까 어머니는 나를 불러 앉히고 머리를 새로 빗겨 주었습니다. 댕기를 새 댕기로 드려 주고, 바지, 저고리, 치마, 모두 새것을 꺼내 입혀 주었습니다. “엄마, 어디 가?” 하고 물으니까, “아니.” 하고 웃음을 띠면서 대답합니다.
그러더니, 풍금 옆에서 내리어 새로 다린 하얀 손수건을 내리어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이 손수건, 저 사랑 아저씨 손수건인데, 이것 아저씨 갖다 드리구 와, 응. 오래 있지 말구 손수건만 갖다 드리구 이내 와, 응.”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수건을 들고 사랑으로 나가면서 나는 접어진 손수건 속에 무슨 발각발각하는 종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마는, 그것을 펴 보지 않고 그냥 갖다가 아저씨에게 주었습니다.
아저씨는 방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손수건을 받는데, 웬일인지 아저씨는 이전처럼 나보고 빙그레 웃지도 않고 얼굴이 몹시 파래졌습니다. 그리고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면서 말 한 마디 아니하고 그 손수건을 받더군요.
나는 어째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저씨 방에 들어가 앉지도 못하고, 그냥 되돌아서 안방으로 도로 왔지요.
어머니는 풍금 앞에 앉아서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지 가만히 있더군요. 나는 풍금 옆으로 가서 가만히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는 조용조용히 풍금을 타십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야요. 밤이 늦도록 어머니는 풍금을 타셨습니다. 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를 계속하고 또 계속하면서….
That evening she called me, combed my hair, and dressed me in all my new clothes. When I asked her where I was going, she said with a smile, “You are not going anywhere.”
Then she took a white, folded handkerchief from the top of the organ and handed it to me saying, “This … this is the new uncle’s handkerchief. Take it to him, please, and come right back.”
As I took it, I felt a paper folded inside it. I carried it to the new uncle and handed it to him, but his attitude toward me was quite different from usual. He did not smile, and looked stern as he took it without a word. I was uncomfortable and I returned to our room.
Mama was sitting calmly at the organ, and she started to play softly as I sat down close to her. I did not know what the melody was, but it sounded very sad. She played for a long time, repeating a certain refrain again and again.
여러 밤을 자고 난 어떤 날 오후에 나는 오래간만에 아저씨 방엘 나가 보았더니, 아저씨가 짐을 싸느라고 분주하겠지요. 내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린 다음부터는 웬일인지 아저씨가 나를 보아도 언제나 퍽 슬픈 사람,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만 보고 있어서, 나도 그리 자주 놀러 오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아저씨, 어데 가우?”
“응, 멀리루 간다.”
“언제?”
“오늘 기차 타구!”
“응, 기차 타구…. 갔다가 언제 또 오우?”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없이 서랍에서 예쁜 인형을 하나 꺼내서 내게 주었습니다.
“옥희, 이것 가져, 응. 옥희는 아저씨 가구 나문 아저씨 이내 잊어버리구 말겠지!”
나는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아니.” 하고 얼른 대답하고, 인형을 안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One afternoon I went out to the new uncle’s room. He was packing his things. Ever since I handed him the handkerchief, he was a changed person; sad and melancholy all the time. He did not talk much but just stared at me. So I had lost all interest in him and I did not go out to see him often. But now that I found him packing, I was surprised.
“Uncle, are you going away?”
“Yes, I am going far away.”
“When?”
“Right now, today.”
“By train?”
“Yes, by train.”
“When will you be back?”
He did not answer this question, but he opened a drawer and took out a doll, which he gave to me saying, “Okhi, this is for you. Okhi, you will forget me soon after I leave, won’t you?”
At this question, I suddenly felt sad, and I answered, “No, I will not.” Then I returned to our room to show my doll to mama.
“엄마, 이것 봐, 아저씨가 이것 나 줬다우. 아저씨가 오늘 기차 타구 먼 데루 간대.” 하고 내가 말했으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엄마, 아저씨 왜 가우?”
“학교 방학했으니깐 가지.”
“어디루 가우?”
“아저씨 집으루 가지 어디루 가.”
“갔다가 또 오우?”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난 아저씨 가는 거 나쁘다.” 하고 입을 쫑긋했으나, 어머니는 그 말에 대답 않고, “옥희야, 벽장에 가서 달걀 몇 알 남았나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깡충깡충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달걀은 여섯 알이 있었습니다.
“여스 알.” 하고 나는 소리쳤습니다.
“응, 다 가지고 이리 나오너라.”
어머니는 그 달걀 여섯 알을 다 삶았습니다. 그 삶은 달걀 여섯 알을 손수건에 싸 놓고, 또 반지에 소금을 조금 싸서 한 귀퉁이에 넣었습니다.
“옥희야, 너 이것 갖다 아저씨 드리고, 가시다가 찻간에서 잡수시랜다구, 응.”
“Mama, look! The uncle in the guest room gave me this. He said he was going away today by train.”
But my mama did not say anything.
“Mama, why is he going away?”
“Because the school is closed for the summer.”
“Where is he going?”
“He is going back to his home.”
“Will he come back?”
She did not answer my question, and I said, “I hate to see him go away.” There was not reply from my mama. When she spoke, she said, “Go to the closet and see how many eggs are there.”
“Six,” I reported.
“Bring all of hem here.”
She boiled all of them and wrapped them in a handkerchief. Then she wrapped some salt in a piece of tissue paper and put it in the package. Then she said to me,
“Okhi, take this to the uncle, and tell him it is for him to eat in the train.”
그 날 오후에 아저씨가 떠나간 다음, 방에서 아저씨가 준 인형을 업고 자장자장 잠을 재우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들어오시더니, “옥희야, 우리 뒷동산에 바람이나 쐬러 올라갈까?” 하십니다.
“응, 가, 가.” 하면서 나는 좋아 덤비었습니다. 잠깐 다녀올 터이니 집을 보고 있으라고 외삼촌에게 이르고, 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나섰습니다.
“엄마, 나 저, 아저씨가 준 인형 가지고 가?”
“그러렴.”
나는 인형을 안고 어머니 손목을 잡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면 정거장이 빤히 내려다보입니다.
“엄마, 저 정거장 봐, 기차는 없군.”
어머니가 아무 말씀도 없이 가만히 서 계십니다. 사르르 바람이 와서 어머니 모시 치맛자락을 산들산들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산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어머니는 다른 때보다도 더 한층 이쁘게 보였습니다.
저편 산모퉁이에서 기차가 나타났습니다.
“아, 저기 기차가 온다.” 하고 나는 좋아서 소리쳤습니다. 기차는 정거장에 잠시 머물더니, 금시에 뻑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움직였습니다.
“기차 떠난다.” 하면서 나는 손뼉을 쳤습니다. 기차가 저편 산모퉁이 뒤로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하늘 위로 모두 흩어져 없어질 때까지, 어머니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바라다보았습니다.
That afternoon, after the uncle had left I was playing with the doll he had given me, mama came in from the kitchen and said,
“Shall we go up the hill to get some fresh air?”
“Oh, yes, I’d like too. Let’s go.”
Mama told the younger uncle to stay home until we returned, saying that we would not be gone long.
“Mama, may I take the doll the uncle gave me?” I asked.
“Yes, that will be all right.”
We went up to the top of the hill, hand in hand. Pointing to the railroad station, I said, “Look at the station. The train isn’t there.”
My mama stood in silence. As soft breeze blow her linen skirt gently and she looked more beautiful than I had ever seen her. Then the train appeared around the corner of the mountain and came whistling toward the station. I shouted with joy, “Look, the train is coming!”
It stopped for just a moment and then started again. “The train is moving again!” I shouted and clapped my hands.
Until the train disappeared at the other side of the village and as long as the smoke of the engine hung in the sky, my mama watched it without speaking, without speaking!
뒷동산에서 내려오자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이 때까지 뚜껑을 늘 열어 두었던 풍금 뚜껑을 닫으십니다. 그리고는, 거기 쇠를 채우고 그 위에다가 이전 모양으로 반짇고리를 얹어 놓으십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찬송가를 맥없이 들고 뒤적뒤적하시더니, 빼빼 마른 꽃송이를 그 갈피에서 집어 내시고, “옥희야, 이것 내다 버려라.”
하고 그 마른 꽃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 꽃은 내가 유치원에서 갖다가 어머니께 드렸던 그 꽃입니다. 그러자, 옆 대문이 삐걱하더니, “달걀 사소.” 하고, 매일 오는 달걀 장수 노파가 달걀 광주리를 이고 들어왔습니다.
“인젠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 하시는 어머니 소리는 맥이 한푼어치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 말씀에 놀라서 떼를 좀 써 보려 했으나, 석양에 빤히 비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 그 용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주신 인형 귀에다가 내 입을 갖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었습니다.
“얘, 우리 엄마가 거짓부리 썩 잘하누나. 내가 달걀 좋아하는 줄을 알문서 생 먹을 사람이 없대누나. 떼를 좀 쓰고 싶다만, 저 우리 엄마 얼굴을 좀 봐라. 어쩌문 저리두 새파래졌을까? 아마 어데가 아픈가 부다.”라고요.
(끝)
After we had come down from the hill, and returned home, mama went into the room, closed the top of the organ, which had been kept open these days, and locked it. Then she put her sewing basket on top of it. Next, she opened the hymn book, took out the pressed dried flowers and said to me, “Throw these away.”
Then the side-gate opened and the egg seller came to bring us eggs.
“We will not be buying any more eggs,” mama spoke in a quiet, lifeless voice. “There is no one here now who cares for eggs.”
I was going to ask mama to buy some eggs for me, but I lost my courage when I saw how pale she looked. So I just whispered to my doll instead.
“Mama told a lie. She knows I like eggs. But mama looks sick. She is very pale. So I will not ask her to do anything now.”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