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의 조건 (은총론) >
외국 성지나 성당을 방문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낯선 풍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엑스보토’(Ex-voto)도 그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벽면 가득, 간단하게 적은 문구와 함께
은색으로된 금속 패치 등을 만들어 걸어둡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재난과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등
각각의 ‘엑스보토’에는 교우들의 애절한 신앙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은총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왜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고통만을 주시는가?’ 하고
원망의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원하는 바가 있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얻어야지,
종교적 신비에 기대어 은총을 청하는 건 미개한 행동이라며 꾸짖기도 합니다.
어느 신학자는 ‘은총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가장 잘못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은총은 무엇일까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습성’(habitus)이라는 개념을 통해
은총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습성이란 말은 익숙해진 성향이나 몸에 밴 습관을 말하는데,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나오는
자연스러운 태도와 같은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날마다 훈련을 하다 보면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성인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습성이 노력과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미리 주어진 조건이자 원리라는 것입니다.
토마스 성인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습성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습성은 마치 인간이 그리운 고향을 본능적으로 찾듯
본성적인 원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최종 목적인 참행복을 향해 응답하고 나아간다면
그것 자체가 바로 습성인 것입니다.
이렇듯 은총은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이기 이전에
인간이 갖고 태어난 선험적 조건입니다.
이 원리 덕분에 참행복을 알 수 있으며 우리는 이를 강화시켜
실제로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은 언제나 우리 삶에 닥쳐옵니다.
그때마다 신앙인들은 은총을 청하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태도를 지니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지나 성당에 가면
기도 지향을 적어놓는 책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쁨 뿐만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 안에서도
하느님께 매달리는 신앙인의 걷잡을 수 없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이 모든 행위들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capax gratiae)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미리 심어놓은 경이로운 습성 때문이 아닐까요.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