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야
-가로질러 탈출하다
천 번 덧칠로도 내가 나를 알 수 없어
‘가로 질러 탈출하다’ 그림 속 제목처럼
내, 나를
벗어던지고
나신으로 가려 한다
긴 그림자 드리우며 꿈꾸던 서교동 길
남겨 둘 그 무엇도 얻은 이름도 없지만
어쩌다
마음 준 담벼락
담쟁이 더욱 붉다
캔버스에 해먹으로 심줄만 그은 이 밤
골목길 나풀나풀 따라 온 상현달이
자동문 틈새에 끼어 서성이는
202호
그녀가 떠난다고 한다. 머나 먼 이국땅으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와 27년간을 함께하며 겪었던 수 많은 일들이 하나 하나 오버랩 되며 지나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 교과의 공부는 물론 글짓기, 그림, 피아노 연주 등 못하는 게 없었던 그녀. 친구들을 잘 아우르고 통솔력이 뛰어나 늘 인기가 많았던 그녀. 그녀가 이 땅을 떠나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치러 간다고 하니 정말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지만 걱정이 앞섰다.
“남자들도 해 내기 힘들다는 유학 생활을 건강도 좋지 못한 네가 해 낼 수 있겠니?”
“ 할 수 있다. 해 보지 뭐”
그녀는 강단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이 길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여름 방학 무렵 그녀가 갑자기 미술대학 쪽으로 진로를 정하겠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즉답을 할 수 없었다. 공부를 잘 하는 그녀가 남다른 인물이 될 것이라 여기며 기대했던 탓이기도 했지만 조금만 피곤하거나 잠을 못 자면 혼절하는 증상 때문에 늘 걱정하던 그녀의 건강이 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몇 날을 생각하고 의논한 끝에 결국 그녀의 진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로 정해졌다.
학교 공부를 마치면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미술 학원을 다녔던 그녀. 밤 12시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 올 때쯤 마중을 나가면 100미터 전방에서 자기 방어복 같은 교복을 입고 손을 흔들던 그녀. 그녀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특차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던 날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뒤늦게 시작한 실기 공부와 함께 수능 상위그룹의 점수를 받기 위해 잠을 설치던 그녀의 노력은 한 편은 짠하면서도 한없이 대견스러웠다.
학부 4년을 마치고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던 그녀가 200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서양화 특선 상을 받음과 동시에 ‘제8회 나혜석 미술 대상’전에서 ‘허물 벗기’로 대상을 받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녀는 대상 상금으로 유럽의 미술관과 미술대학을 탐방하는 자유여행을 결행하였다. 유럽을 다녀 온 후 다시 미국을 다녀 온 그녀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많아 캔버스 하나에 만족할 수 없다고 하며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미국행을 선언하였다.
급박하게 유학 조건을 준비한 후 미국에 있는 석사과정 미술대학의 문을 두드린 결과 캘리리포니아를 비롯한 몇 군데의 대학에서 합격 통보가 왔다. 그 중 파슨스에서 장학금 수혜자로 결정되었다는 통보가 와서 다른 대학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