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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4천만을 헤아려 세계 인구 순위에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4위에 올라있을 정도 엄청난 인구 수를 보유하고 있고, 국토 면적도 16위를 차지하여 굉장히 큰 나라에 속합니다. 그러나, GDP(국내 총생산)는 여전히 4천 달러 정도로 110위(2009년 통계)에 그쳐 필리핀 보다도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국토, 자원 등 외형적인 조건을 갖추고도 개발도상국 반열에 오르는 것조차 힘겨운 인도네시아지만 BC 50만년 전 자바 원인으로 불리는 도구의 인간 Homo Erectus가 발견된 인류의 발상지이고, 16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침략받기 전에는 강력한 왕국을 형성했던 곳입니다.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잠재력과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자바섬의 족 자카르타가 바로 그곳입니다. 신비롭고 놀라운 발견. 보로부두르 향료를 찾기 위해 동방으로 향했던 포르투갈은 1511년부터 1605년까지 94년간 인도네시아를 지배하였고, 이후 동인도 회사를 통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네덜란드는 1602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343년간 인도네시아를 점령하였습니다. 1811년부터 1816년까지 약 5년간 영국이 주도권을 잡았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 짧은 기간 중이었던 1814년 세계를 뒤흔드는 놀라울만한 발견이 족 자카르타 밀림에서 일어났습니다. 싱가포르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토마스 래플스(Thomas Stamford Raffles)에 의해 천년간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엄청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족 자카르타의 대표적 유적인 보로부두르(Borobudur)가 그것입니다. 당시 영국 부총독으로 인도네시아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래플스는 우연히 발견한 불상을 보고 발굴작업을 지시하여 밀림 속에 감춰졌던 면적 1만 2000㎡(가로세로 124m), 높이 31.5m(총 10층 규모), 504개의 불상 등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적을 세상에 공개합니다. 그는 이 발견을 계기로 『자바의 역사. The History Of Java』라는 책을 써서 자바의 높은 문명과 문화에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Boro(사당) +Budur(구릉)= 산등성이에 있는 사당이란 뜻의 보로부두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과 비교되면서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12세기 앙코르 왕조의 수리야바르만 2세가 힌두교 비슈누 신에게 헌정했지만 현재는 불교사원이 된 앙코르 왓과 달리 보로부두르는 8세기 샤일렌드라 왕조의 사마라퉁가 왕이 처음부터 불심(佛心)으로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때문에 힌두 신화의 내용이 새겨진 앙코르 왓과 달리 보로부두르는 시계 바늘 방향으로 부처의 일생, 행적, 가르침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생사의 윤회, 지옥의 고통, 극락의 즐거움 등의 이야기가 불탑 기단에 160개, 외벽에 1,300개 등에 새겨진 정교하고 아름다운 부조는 보로부두르의 예술성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보로부두르는 발견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숱하게 품고 있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데요. 원래 42m에 달했던 사원의 높이가 31.5m 까지 10m 이상 주저앉았을 정도의 엄청난 무게인 350만톤에 달하는 석조물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거대한 한 덩어리의 안산암을 잘라서 만든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더구나 보로부두르 인근 30km 이내에는 안산암이 발견되지 않아 이 거대한 돌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가 미궁에 빠져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서로 다른 형태의 건축물이 이어져있는 앙코르 왓과 달리 보로부두르는 불상을 덮은 종 모양의 불탑(Stupa)이 8층 높이로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어 장관을 이룹니다. 불탑 안에 팔을 넣어 불상에 손이 닿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로 인해, 너도 나도 있는 대로 팔을 불탑 안으로 뻗는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유적이 천년 동안이나 잊혀졌던 것이 놀랍기만 한데 1006년 메라피 화산의 폭발로 오랫 동안 화산재에 묻혀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14년 래플스의 발견으로 천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보로부두르. 343년의 네덜란드의 통치 기간 중 단 5년 동안 영국이 주도권을 잡았던 바로 그 짧은 순간에 보로부두르가 발견된 것은 역사의 필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3년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에 충분한 보로부두르는 족 자카르타 뿐 아닌 세계의 자랑이라고 할 만 한 곳입니다. 자바 건축의 또다른 자랑. 프람바난과 크라톤 보로부두르가 8세기에 건립된 불교 사원이라면 프람바난(Prambanan)은 10세기에 건립된 힌두교 사원으로 족 자카르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유적입니다. 족 자카르타의 동쪽 17km 지점에 있는 프람바난은 자바 힌두교 사원 중 최대 규모의 사원으로 브라만, 비슈누, 시바 등 힌두의 대표 신에게 바쳐지는 각각의 사원이 줄지어 있는 사원군입니다. 이 사원군은 한 변이 222m인 정사각 모양의 단 위에 다시 사방 110m의 단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 안에 8개의 힌두 신의 사당이 들어서 있는데 사원 가운데는 높이 47m의 시바의 사당이, 양 옆에는 브라만과 비슈누 사당이 비슷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각 사당의 기단과 주실에는 사자, 원숭이, 사슴 등의 동물들과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져 있고, 외벽에는 저 유명한 *『라마야나.Ramayana』의 42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프람바난에서는 매일 밤 『라마야나』의 무용 공연이 개최되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크라톤(Kraton)은 보루부두르와 프람바난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으로 1755년 하멩쿠보노 1세가 건립한 전통적인 자바 건축양식을 띠고 있으며, 족 자카르타를 통치하던 술탄의 왕궁입니다. 현재도 족 자카르타 특별지구의 지사이기도 한 하멩쿠보노 9세가 실제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라톤은 족 자카르타의 중심가인 말리오보로 거리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각기 특색있는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꽃의 정원”이라는 뜻의 타만 사리(Taman Sari)가 가장 유명한데 규모는 작지만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수영장처럼 보이는 타만 사리는 “물의 왕궁”으로도 불리우는데 당시 수많은 후궁들을 거느리던 왕이 물 속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1867년 지진 피해 여파로 지금은 서쪽의 일부만이 남아있고, 그마저도 많이 퇴락하여 하얀 외벽에 검푸른 이끼가 끼어있는 모습이지만 화려하게 장식한 복도와 흰 탑 등은 지난 날의 영화를 상상하게 합니다. 현재 진행형인 자바섬의 끓는점. 메라피 산 메라피 산(Gunung Merapi)을 등반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오직 보로부두르를 보기 위해 족 자카르타를 찾았던 터에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남아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말리오보로 거리에 있는 여행사 전단지에 야간산행 후 일출을 보는 코스의 메라피 산 등반 상품을 발견하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야간산행이니 숙박료도 아낄 겸, 덜컥 선금을 지불하고 인력거 베짝을 타고 동네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고나서 밤 10시에 집합장소로 향했습니다. 영국, 스페인, 스웨덴에서 온 젊은이 4명이 일행임을 확인하고서야 가이드에게 메라피 산의 높이를 물었더니 “2,950m 쯤?” 이라는 겁니다. “허걱, 그럼 백두산만큼 높다고?” 그제서야 높이도 확인하지 않고 등산길에 오른 저의 무모함에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같이 산을 오른 친구들은 장기 여행 중인데다가 등산에는 이력이 붙은 듯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을 쉬지도 않고 잘도 오르더군요.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비는 쏟아지는 등 날씨까지도 최악의 상황에서 저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원래부터 정상 등반 욕심이라고는 없었던데다가 다음 날 출근을 해야하는 스케쥴을 생각할 때 정상 등반은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하고, 일행과 떨어진 채 쉬엄쉬엄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보자 싶었습니다. 그래도 가이드에게 확인해보니 2,500m 지점까지는 왔다고 하더군요. 흐린 날씨 탓에 멋진 일출을 구경하지 못했지만, 먹구름을 뚫고 떠오르는 일출은 장엄했습니다. 하산길에는 날이 완전히 밝아져 자연을 만끽하면서 구름에 싸인 메라피 산을 한껏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메라피 산의 화산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메라피 화산 폭발로 보루부두르가 천년동안 묻혀있었다는 사실조차-인도네시아의 500개의 화산 중에서 가장 강력한 화산으로 “Merapi”라는 이름 자체가 “불의 산”이라는 뜻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1548년 이래 68차례나 분화한 기록이 있는 메라피 산은 1930년 분화 때에는 약 1,300명이 희생되었고, 1994년에는 60여명이 사망했으며, 2006년 5월에도 대피 명령이 내려진 사례가 있을 정도로 뜨거운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산 중턱에 마을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고, 동네 이곳 저곳에서 수확한 담배잎을 손보고 말리는 광경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겹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토록 위험한 지역에 6천여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하고 있다니…. 전문가들의 폭발 임박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사정을 헤아려보니 가슴 한 켠이 짠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위정자들의 무능에 울분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이룩했던 자바인들의 후손들이 그 뜨거운 에너지를 발휘하여 세계 무대에 우뚝 서게되길 기원하는 마음도 함께 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록 『라마야나.Ramayana』 기원전 4세기 경, 24,000송(1송은 16음절 2행)으로 쓰여진 서사문학을 3세기 경 시인 발미키가 집대성한 것으로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 왕자의 무용담으로 악마의 왕 라바나의 전쟁을 통해 바람직한 군주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흔히 고대 그리스 신화 디오메데스와 판다로스에 비유되며, 라마 왕자를 돕는 원숭이 장군 하누만에게서 『서유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