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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2:21-27,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07.1.28, 박홍섭 목사
최근 베컴 이라는 영국의 축구선수가 미국의 한 축구팀으로 이적하면서 계약기간 동안 받을 몸값이 무려 2587억 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를 주 단위로 환산하면 한 주당 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프로축구선수들의 몸값이 가히 어마 어마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프로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에게도 나타나는데 헐리우드의 천재아역배우로 유명한 다코다 패닝은 지난 6년 동안 영화출연의 몸값만으로 무려 6억4천7백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이를 환산하면 어린아이 임에도 불구하고 편당 몸값으로 천5백만 달러의 몸값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잘 알려진 톰크루즈는 무려 편당 3천만 달러(2백80억원)에 달하는 몸값을 자랑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과연 나의 몸값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조감이 들던지 아니면 전혀 딴 세상의 소리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의 몸값은 얼마일까요? 여러분의 몸값은 단순히 세상이 말하는 연봉으로 책정할 수 없는 값임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몸값은 값으로 환산이 안 되는 금액입니다. 성도의 몸값은 어마어마합니다. 프로운동선수나 유명 연예인들의 몸값과도 비교가 안 되는, 몇 백억, 몇 천억으로 따질 수 없이 값비싼 존재가 바로 성도들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을 치르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대가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았으니 우리의 몸값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것은 믿음의 눈으로만 계산이 되는 몸값으로 원화나 달러나 유러화로는 도저히 환산이 안 되는 몸값입니다. 너무 귀한 몸값이기에 베컴과 비교하고 톰 크루즈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모욕스러울 정도로 비싼 몸값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옆 사람보시면서 같이 한번 인사하시죠. ‘엄청나게 비싸시네요.....’^^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런 엄청난 가치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몸값이 얼마나 비싼 몸값인줄 모르니까 자신의 삶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면서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사는 것이죠. 고액의 몸값을 받는 운동선수가 그 몸값의 가치만큼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때부터 듣는 별명이 있는데 밥만 축낸다는 뜻의 ‘먹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자신의 귀한 삶의 값어치를 못하고 밥만 축내는 먹튀 인생 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가 죄와 더불어 짝하면서 세상의 욕망을 향하여 값싸게 살아갈 때 그것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고 간섭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얄팍한 지혜와 달라서 자기 백성이 말씀에 불순종하고 교만하게 행하면서 먹튀처럼 살아갈 때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간섭하시는 지혜입니다. 두드려 패시기도 하고 그가 가는 길을 사사건건 막아서 방해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힘든 고통 가운데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도가 자기 몸값을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막아서 마침내 두 손 들고 항복하며 겸손하게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만들어서 자신의 몸값에 걸맞게 살도록 만드는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것이 요엘서에는 전대미문의 메뚜기 재앙으로 나타나는데 이 재앙은 단순히 징계를 위한 재앙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을 회개로 인도하여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지혜에 해당되는 재앙인 것이죠.
오늘 본문의 내용은 주의 백성들이 그렇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회복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시는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회복시킨다고 말씀합니다. 고난 받을 때 그의 백성을 보면 과연 앞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지고 완전히 깨트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생을 당신의 능력으로 다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도 단순한 원대복귀차원의 회복이 아니라 고난 받기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더 풍성하고 더 존귀하게 회복시키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회복이기에 선지자는 땅과 들짐승까지 초청하여 함께 기뻐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땅이여 두려워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21절에서는 땅을 초청하고 22절에서는 들짐승을 초청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지금 요엘이 왜 땅과 들짐승까지 초청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그 은혜와 혜택이 주의 백성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온 열방과 땅과 들짐승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땅을 불러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들짐승을 향하여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두려워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침체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순종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은 자신들만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땅이 함께 고통당하고 그 땅에서 사는 들짐승이 함께 신음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그의 백성들을 심판하고 징계하실 때 종종 기근과 들불 같은 자연재해를 통해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타락 때문에 그 땅이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쩍쩍 갈라질 때 땅이 얼마나 고통을 당합니까?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들불이 일어나면 애꿏은 들짐승들이 다 불에 타서 죽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계속 고집하게 도면 땅이 두려워하고 들짐승들이 긴장하면서 무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탕하고 술 취한 사람들은 자기들만 고생하지 않습니다. 온 가족을 고생시키고 그 가정에 있는 물건들을 함께 고통하게 합니다. 술 취한 사람이 집에 돌아올 때 어떻게 돌아옵니까? 절대로 그냥 돌아오지 않습니다. 집 앞의 전봇대에 실례를 하고 쓰레기통이나 대문을 걷어찹니다. 술 취하면 집에서 키우는 개가 고생합니다. 꼭 애꿎은 개나 고양이를 괴롭힙니다. 접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접시를 깹니까? 술 취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술 취한 자가 있는 가정은 모든 식구가 긴장합니다. 집 앞의 전봇대와 쓰레기통 강아지, 심지어 접시까지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와 새사람이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일이 중단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가족을 다 불러 모으고 전봇대를 부르고 쓰레기통을 초청하고 접시들을 다 꺼내어 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 이제는 두려워말아라, 이제는 더 이상 무서워말아라, 저 사람이 변했다, 이제는 무서워말고 두려워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우리는 회개의 귀함을 잘 모르고 있지만 성도 하나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천지는 말씀으로 6일 동안 다 창조했지만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은 인격에 관계된 것이므로 뚝딱 헤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것과 성도 한 사람이 자신의 교만과 죄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여호와께서 행하신 큰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의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리로 돌아온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을 안 할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이것보다 큰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학문과 철학과 사상, 세상의 지혜를 비롯해 그 무엇으로도 안 되는 일이며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섭하시고 끊임없는 사랑과 열심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우리를 설득하셔서 마침내 이루어내신 엄청난 일입니다.
성도가 성도다운 삶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렇게 기뻐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은혜를 다 주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무슨 은혜를 주십니까? 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시는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내려주십니다. 유다백성들에게 비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비가 일 년에 딱 두 번 오는데 바로 늦은 비와 이른 비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와 달라서 수확기가 봄이고 파종기가 가을입니다. 그래서 수확을 앞둔 3-4월의 봄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고 파종에 필요한 10월과 11월의 가을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비가 제 때에 내린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백성들에게 비만 제때에 내리고 있다면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비밖에 없겠습니까? 농사를 짓는 농기구도 필요하고 당장 먹고 살 양식이나 농사지을 종자도 필요합니다. 그 밖에 많은 필요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지심을 의미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자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지실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하는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24절을 보시면 비 뿐 아니라 무엇까지 주신다고 말씀하십니까?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자기 백성을 책임만 지시는 정도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마당에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풍성함을 주실 수 있습니까? 이제는 그런 복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풍성한 생활이 허락되면 얼마나 교만했겠습니까? 얼마나 꼴사납게 굴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해 연단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은 아무리 많은 밀과 곡식과 기름이 주어진다고 해도 다시는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아름답고 귀하게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연단 받은 자들이 받을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일단 하나님 앞에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정확하고 풍성하게 쏟아지는지 겁이 날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먹튀로 살 때 간섭하시고 막아서 손해 보게 하시고 잃어버리게 하시고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아오는 순간 그 때 손해 봤던 모든 것들, 잃었던 시간과 재물,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을 다 기억하고 갚아주십니다. 흘렸던 눈물의 방울방울까지 헤아려서 갚아주시는데 정확할 뿐 아니라 더 차고 넘치도록 갚아주십니다. 그것이 25절의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갚아주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하나님의 회복케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26절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먹되 풍족히 먹는다고 하시고 나아가 회개하는 성도들을 기이히 대접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특별하게 대접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기이한 대접이고 특별한 대접입니까? 우리가 몸값 못하고 살 때 절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끝까지 간섭하시되 철처하게 하셔서 마침내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는 그것이 특별하고도 기이한 하나님의 대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대접하시는 것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제 멋대로 살아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영원히 버리시고 심판하십니다. 돼지가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고 야단치는 주인 봤습니까? 잔치 집 돼지에게는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아무런 스트레스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돼지는 그냥 잔치 날에 잡아먹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귀한 자들이기 때문에 너무 높은 몸값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사사건건 간섭하셔서 귀하게 살게 하시고 자신의 몸값대로 복되고 거룩하게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기이한 대접입니다.
이런 특별한 대접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다듬어집니다. 우리 같이 까다롭고 완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의 지혜로 기이하게 대접하셔서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것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데,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는, 그런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용사들이며 하나님의 정예부대입니다. 그 전에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합지졸 같았는데 어떻게 했는지 그의 기이한 대접과 훈련으로 용사를 만들고 특수부대원을 만드시어 하나님나라의 일에 동역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기이하게 대접하셔서 놀라운 회복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7절입니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면서 우리와 교통하시고 아름다운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기에 너무나 더럽고 마음이 복잡하고 부끄러운 사람들이지만 이런 우리들을 기이하게 훈련시키시어 흠도 점도 티도 없는 거룩한 처소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그의 지혜로 훈련시켜서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아도 교만해지지 않는, 그래서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겸손한 백성으로 변화시키시고 우리와 완전히 하나 되기를 소원하시는 분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 지금도 우리를 기이하게 대접하시면서 회개시키고 회복을 준비해놓고 있는 하나님 앞에 열과 성의를 다해 돌아가며 그를 사랑하는 한우리 식구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