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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지 마라
제 11 일 : 10월 18일(월) : 맑음
(토글라 4620 – 쇼마레 4010 – 디보체 3820)
하산고도차 : - 800 m, 등반거리 : 13.8 ㎞, 등반시간 : 7시간 30분
어제의 강행군으로 오늘은 평소보다 1시간 늦은 7시에 기상을 했다. 모두 잠을 푹 잤기 때문인지
컨디션이 양호해 보인다. 다만, 아직 고소증으로부터 회복되지 않은 이춘식 선배님이 염려스럽다.
아직 식사는 물론 물도 마시기 힘들어하신다. 날씨는 맑게 개어 주위의 빼어난 경관이 시원하게
보인다. 아침으로 명태국이 나와 입맛을 크게 돋운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9시에 토글라를 출발한 대원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하산길이라도 크고 작은 언덕을 수없이 넘어야 하지만 숨이 차지 않아서인지 모두의 보속이 제법 빠르다. 우리는 이틀 전 오르던 길을 이제는 되돌아 내려오고 있다. 지난 금요일 밤을 보냈던 페리체의 히말라얀 롯지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50분. 오를 때 3시간 10분이 걸린 거리를 1시간 50분 만에 내려온 것이다. 그만큼 하산 속도는 빠르다. 그날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탐세르쿠봉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12시, 쇼마레에 도착하여 오무라이스로 점심을 들었다. 히말의 산중에서 한국식 오무라이스를 먹는 맛이라니, 대원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식사 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2시 30분, 커다란 계곡이 입을 벌리고 있는 분기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계곡 너머로는 집도 한 채 없는 황량한 언덕인데 단단해 보이는 철제 다리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셀파의 설명은 그 다리가 바로 아마다블람 베이스 캠프로 진입하는 다리라 한다. 아하, 아마다블람 베이스 캠프라, 언젠가는 다시 와야 할 곳이군.
오늘 목표지점은 디보체, 그리고 내일은 남체를 거쳐 조살레까지 가야 한다. 닷새에 걸쳐 오른 길을 사흘 안에 내려가야만 카트만두 귀환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다소 무리한 일정이란 것을 알지만 대원 모두의 사기는 높다. 오후 4시 30분, 팡보체를 거쳐 디보체의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디보체의 새로운 롯지는 잘 정돈된 정원과 함께 유럽풍으로 잘 지어진 멋들어진 건물. 더구나 인터넷과 전화 통화도 가능하니 모두가 모처럼의 문명의 쾌적함을 느끼며 쉴 수 있었다. 활활 타는 난로를 둘러싸고 앉아 지난 며칠 간의 고생담을 주고받는다. 누군가 말한다.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운 산행이야.” “그래, 한번은 올만하지만 두번은 아니야.”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말을 할까? 맞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리도 힘든 산행길을 다시 오고 싶을까? 그러나 나는 안다. 그들은 이번 산행을 이미 가슴 깊이 새겼으며 두고두고 곱씹을 것이라는 것을. 산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사는 대원들, 그네들은 분명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임이 틀림이 없다.
디보체 롯지부근의 단풍길
롯지의 침실에서 - 23정하선과 39조유동
제 12 일 : 10월 19일(화) : 맑음
(디보체 3820 – 풍기텡가 3250 – 남체 3440 – 조살레 2740)
하산고도차 : - 1080 m, 등반거리 : 15.7 ㎞, 등반시간 : 9시간 10분
고도가 낮아졌음인지 간밤에 숙면을 취했다. 디보체의 아침 하늘이 유난히도 맑다. 아름다운 아마다블람이 선명하게 보인다. 커피를 한 잔 하고는 서울에 소식을 전하기로 한다. 아침식사 전 인터넷 카페에서 산악회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겨우 두 줄의 안부를 전했는데 요금은 무려 300루피(한화 약 5,000원)가 나왔다. 1분에 20루피라는 기본요금도 비싸지만 느린 인터넷 때문에 접속에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된 것이다.
오늘은 비교적 긴 하산길이 될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경치를 즐기며 걷기로 했다. 8시에 숙소를 떠나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을 1시간 정도 오르니 텡보체 사원에 도착한다. 히말에서는 제일 크다는 티벳불교사원인 텡보체 사원을 2진 대원들은 닷새 전 캄캄한 밤중에 통과를 하였으므로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꽤나 널찍한 사원에는 많은 건물들과 많은 방들 그리고 예불전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여기저기 앉혀있다. 여기 스님들은 무얼 먹고 살며 또 누가 이리 높고도 먼 곳까지 불공을 드리러 올까? 셀파 큰니마가 설명을 해준다.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특히 큰 축제 때에는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승무를 추는데 꽤 볼만하단다. 하긴, 한국에서도 그 험하고 높은 설악산 봉정암에도 많은 신도들이 찾고는 있으니 과연 종교의 힘은 놀랍기만 하다.
9시 30분, 풍기텡가가 발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 언덕에서 휴식을 취한다. 깊은 계곡에서는 우유빛 강이 힘차게 흐르고 주변은 온통 녹색의 향연, 머리를 들면 둘러선 하얀 봉우리들 위로 비취색 하늘 그리고 몇 조각의 흰구름이 그 에메랄드 빛 하늘바다에 박혀있다. 그건 바로 그림이었다. 10여분을 내리 걸어 도착한 풍기탱가는 냇가에 자리한 두어 채 돌집이 있는 작은 마을. 마치 우이동 유원지 계곡의 그늘집 같은 정원에서 40분이나 휴식을 취했다. 갈 길은 아직 먼데 모두의 발걸음은 그저 느긋하기만 하다. 다행히 이춘식 선배님도 기력을 많이 회복하셔서 전체 운행이 별 무리가 없다.
풍기텡가에서 사나사(Sanasa)까지는 깔딱고개를 세 개나 넘는 오르막길, 그러나 하산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리 어려움을 모르고 오른다. 12시 10분, 점심을 먹기로 한 캉주마(Kyangjuma 3550m)에 도착을 했다. 높은 고개 마루턱에 자리잡은 캉주마. 밑의 깊은 계곡에서는 흰구름이 쳐올라 오고 있다. 그 멋진 풍경에 노래라도 한 곡 부르고 싶은 심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스틱을 마이크 삼아 한 곡조 뽑아본다. “구름이~~ 흘러~~ 가는 고옷~~! 마음이~ 흘러~가는 고옷~!” 하이고, 다음 구절의 가사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소증은 기억을 흐리게 한다는데 아직 캉주마는 고소인가보다. 나의 생쑈로 대원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한 것에 만족을 한다.
이곳 캉주마부터 남체까지는 소위 에베레스트 하이웨이다. 높낮이가 별로 없는 널찍한 대로가 끝없이 산허리를 구비 돌아 이어진다. 대원들의 소풍 가듯 느긋하게 걷는 걸음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보인다. 아직은 몸이 불편한 이춘식 선배님과 대열의 후미를 따른다. 며칠을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극한 상황이지만 선배님의 발걸음은 재다.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이다. 지금 이순간 팥빙수가 제일 먹고 싶다는 선배님과 그렇게 말동무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남체,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남체는 제법 큰 건물들이 백 채가 넘을 듯한 히말 최대의 마을, 거리의 카페에 들러 잠시 쉬기로 했다. 선배님은 팥빙수대신 시원한 콜라로 겨우 목을 축여본다. 고도가 많이 낮아진 만큼 선배님의 증세도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음이 천만다행이다. 여기서 이춘식 선배님은 불후의 명언을 남기신다. “산은 겸허한 자에게만 자비를 베푼다!”는 체험적 명언을.
같은 길이지만, 멋모르고 오르던 길과 고생 끝에 내려오는 길은 그 기분이 사뭇 다르다. 내려가는 길은 왜 그리도 지루하게만 느껴지는지 대원 모두는 한시라도 빨리 고생길을 마치고픈 심정이란다. 오후 5시 10분, 목적지인 조살레에 도착함으로써 9시간이 넘는 오늘의 지루한 산행이 끝이 났다. 조살레는 엿새 전, 2진 대원들이 처음으로 묵었던 곳.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트레킹팀의 주사파 활동이 실로 오랜만에 재개되었다. 15회 강보현 선배님과 20회 오상필 선배님은 그 동안 고이 모셔왔던 오미자 소주 칵테일을 꺼내어 들고는 나와 한 방을 쓰시는 15회 조남직 선배님에게 오셨다. 불도 없는 롯지의 방에서 랜턴을 켜고 도란도란 대작을 하시는 세 분의 대선배님들. 나는 그러한 대선배님들의 꺼질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과 끈끈한 우정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기탱가의 계곡 - 뒤는 아마다블람
에베레스트 하이웨이
제 13 일 : 10월 20일(수) : 맑음
(조살레 2740 – 루크라 2840)
하산고도차 : +100 m, 등반거리 : 14 ㎞, 등반시간 : 7시간
드디어 트레킹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이면 트레킹이 끝난다는 이유 때문인지 대원 모두는 살짝 들떠있는 분위기다.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며 결국은 해냈다는 성취감과 이제 오늘이면 끝이라는 안도감이 뒤섞였으리라. 이춘식 선배님도 한결 가벼운 발걸음이다. 몇몇 대원이 감기약을 찾는다. 그러나 이미 준비해간 두통약은 물론 감기약도 벌써 떨어졌다. 50정이 넘는 두통약과 60정이 넘는 감기약이 그 사이에 전부 소진된 것이다. 그만큼 힘들었던 여정이었다. 급히 수소문을 하여 개인보유분을 찾아 전해드렸다.
루크라까지는 서너 개의 작은 깔딱고개를 넘는 오르막길, 마지막 힘을 짜내야 한다. 루크라가 가까워감에 따라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산길이 제법 붐빈다. 우리를 지나치는 비장한 표정의 그네들을 보며 대원들은 가벼운 인사를 한다. “나마스떼~!” 나마스떼는 네팔의 대표적 인사말인데 우리의 ‘안녕하세요’ 정도로 해석이 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에는 “언제 올라가냐? 우리는 벌써 다 내려 왔는데. 쯧쯧~”이라는 의미가 분명 숨어있다는 것을.
12시, 타도코쉬가온(Thado Koshigaon 2580m)에서 비빔국수로 점심을 먹는다. 셀파 큰니마가 말한다.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점심입니다~!” 그래 맞다. 벌써 마지막 식사라니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기나긴 여정의 끝이라는 들뜬 기분이 매콤한 비빔국수의 맛을 더욱 감칠나게 만들어준다. 모두들 국수사리를 추가로 먹는 왕성한 식욕을 보여준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끼여있다. 루크라에 착륙하려던 비행기가 몇 번이나 선회를 하더니 급기야 기수를 돌려 되돌아간다. 이러다가 내일 비행기가 뜨지 못하여 또다시 곤욕을 치르지나 않을지 슬그머니 걱정이 든다. 그래도 대원들은 역전노장처럼 느긋한 표정들이다. 오후 3시에 루크라 비행장 옆의 롯지에 도착을 하였다. 드디어 산행이 모두 끝이 난 것이다. 그간의 고생길을 회상하며 너도나도 하이파이브를 친다. 모두가 햇살이 비치는 정원에 모여 환한 웃음으로 담소를 나눈다.
[15임우빈] : “ 송회장, 자네 말이 맞아~!”
[27송기훈] : “ 네?”
대선배님은 환한 미소로 내게 말을 건네오신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나는 살짝 긴장을 한다.
[15임우빈] : “ 청계산이 맞단 말야. 그 놈의 고소증이 문제지…하하..”
[27송기훈] : “ 그럼, 이제부터 제가 거짓말 했단 말씀은 안하실 거죠~~?? ^^”
대단하신 노선배님들, 칠순이 넘은 연세에 이렇게 건강하게 완주를 하시다니, 그 체력에 그 열정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 그날 저녁식사는 흥겨운 주연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마시고 노래하고 또 춤을 추며 그렇게 밤이 늦도록 트레킹의 성공을
자축하였다.
언제나 즐거운 식사시간 - 오늘은 비빔밥
셀파들 - 뒷줄 좌측이 작은니마, 가운데 빨간모자가 큰니마, 큰니마 왼쪽의 검정자켓이 치링, 그리고 앞줄 왼쪽이 가지
제 14 일 : 10월 21일(목) : 맑음
(루크라 - 카트만두)
어제 비록 찬물이지만 무려 여드레 만에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서인지 몸이 날아갈 듯하다. 주위의 산들을 보니 지나간 일정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래 우리는 해낸 거야, 알듯 모를듯한 미소가 나도 모르게 얼굴에 번진다. 다시 뒤를 돌아 본다. 지나친 마을들의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조살레, 남체, 풍기탱가, 디보체, 페리체, 로부체, 이제는 한동안 보지 못할 그리운 마을들. 그리고는 하얀 산들, 계곡의 우유빛 물, 진눈깨비, 추위, 야간산행 따위의 그림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간다. 이제 그만, 돌아보지 말자. 그 끈적한 추억들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니까.
오전, 히말산군에 작별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16인승 조그만 비행기는 불과 30분 만에 우리를 카트만두로 옮겨 놓았다.
예전 네팔 왕실의 사냥터였었다는 카트만두 외곽의 고급스러운 Gorkarna Forest Resort 에서 우리는 마지막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카트만두 시내의 신라레스토랑에서 마지막 저녁식사 전, 우리는 해단식을 가졌다. 대원 모두는 세분의 15회 선배님(강보현,임우빈,조남직), 그리고 16회 이완석 선배님의 감동적 산행에 뜨거운 박수로 축하를 하였고 아울러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자기자신들을 위해 또다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15회 임우빈 선배님께서는 감명 깊은 총평을 하여주셨고, 킬리만자로를 비롯한 세계 3대 트레킹을 모두 다녀오신 20회 염일순 선배님의 비교평가도 뜻 깊게 들었다. 24회 함기영 단장님의 해단선언을 끝으로 대장정은 그 대미를 장식했다.
** 다음날 우리는 무사히 인천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공항까지 환송을 나온 두 셀파, 큰니마 그리고 작은니마. 대원들은 뜨거운 포옹으로 작별을 나눴다. 순수하기만 한 세르파족,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락을 같이하였음인지 모두들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눈물이 흐를까 공연히 애꿎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두 녀석이 말했다. “다시 꼭 오세요~!”
에필로그
10월 22일, 밤 늦은 시간에 대원 모두는 길을 떠난 지 보름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전원 무사히 귀국을 하였다. 대개가 육개월 동안은 다시는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데 나는 벌써 그 곳이 그리워진다. 험난한 산길, 세찬 바람과 추위, 그리고 퀴퀴한 야크똥 냄새. 그렇지만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었기에 나는 늘 따듯했고 향기로웠으므로.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동문들의 첫 행사로서는 다소 과감한 도전이었다. 한 번도 손발을 맞추어 볼 시간도 없이 트레킹 중에서도 제일 힘들고 어렵다는 에베레스트로 떠난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에베레스트를 목표로 트레킹을 시도한 동문은 경동이 처음이라 했다. 대부분 초면의 얼굴들, 그리고 대원의 절반이 육순을 넘긴 고령자. 그러나 삼각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경동의 동인랑들은 멋지게 해내었다. 우리의 이러한 당찬 행사를 통해 동인랑들의 단합이 더욱 굳건해지고 모교의 무궁한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이번 산행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한 후배들 35회 이훈상, 36회 유학재, 39회 손광윤, 39회 조유동 제군들을 비롯한 경동동문산악회의 모든 회원들에게 다시 한번 크게 감사를 하고, 지대한 관심 속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18회 임종웅 총동창회장님을 비롯한 총동창회 회장단, 그리고 사무국장 29회 이성종 동문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 끝 -
첫댓글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촘촘히 써 주신 글이 사진과 함께 읽어보니 저도 현장에 같이 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야영가서 밤새들어도 못끝낼 이야기를 글로는 이렇게 끝을 낼 수 있군요. 뭐 다 그렇게 생각않을진 몰라도 정사보다는 야사가 진맛이 나는법 야영가서 들은이만 알수있는 진맛들 보러 다음주 인수에 야영들어오시죠, 훈상형님 하선형님 올러오신다는데 공대캠프에 보일러 새로나드려야 겠어요^^
뒤늦게 카페에 들어와 작가수준의 송회장 글을 멋있는 사진과 함께 재미있게 읽으면서 죽기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그리운 추억을 회상햬봅니다. 그간 송회장 여러가지로 정말 수고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