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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은 농약병을 들고… [의정일기-여수 김상일] 부모님까지 동원해 출마저지하는 '지역벽'을 뚫고 당선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선거과정들이 아른거린다. 당선되자마자 바로 임시회에서 새내기 의원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여수에서 민주노동당 깃발을 꽂은 걸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100일 작전이 통했다
정확히 보궐선거 선거일 103일 전인 7월 18일에 난 민주노동당 후보가 되었다. 7월1일부터 4일까지가 민주노동당의 후보자선출선거 후보등록기간이었고, 난 망설이고 머뭇거리다 마지막날인 7월4일 후보등록을 했다. 그로부터 10일이 지난 7월13일~17일 당내 후보자 찬반투표가 있었지만, 투표율이 50%가 되지 않아 하루 더 연기까지 해가면서 7월18일 후보자로 결정됐다. 정확하게 7월 21일이 보궐선거 D-100일이었고,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선거운동 계획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100일간의 계획을 나름대로 세우고, 선거대책본부 준비모임도 꾸리고, 주위 지인들에게 보궐선거 후보로 나온다고 알리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당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당락을 떠나서 지역에서 민주노동당의 이념과 가치를 널리 알려내고, 지금은 비록 힘없고 그 세력은 미약하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수권세력으로 당당히 우뚝 설 수있다는 믿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또 회의적이고, 패배주의에 젖어있는 여수지역 노동자들에게 승리의 맛을, 승리의 쾌감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선거에 임할 것을 결의하고 또 결의하고, 세부적인 100일 계획을 수립해 하나하나 착실히 진행해 나갔다. 농약병까지 동원된 출마반대 운동 하지만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나에게 출마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출마를 반대하는 운동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며 집으로 와보라고 해서 집에 갔더니 어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누워계셨고, 아버지는 농약병을 옆에 두고 ‘지금 당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란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여기서 ‘당신이 죽어버리겠다’고까지 하셨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대성통곡을 하시며 ‘선거에 나가지 말라’고 애원을 하셨다.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이유는 말씀을 안하신다. 급한 불을 먼저 꺼야겠다라는 생각에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다가 일단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부모님을 진정시켰다. 집으로 돌아와 밤을 지새우면서 고민을 했다. 조직도 미약하고 자금도 미비하고 지역과 부모님도 저리 반대를 하시는데 ‘어찌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부모님이 저리도 강력히 반대를 하는지도 알아보았다. 지역유지라는 사람들이 아들을 출마하지 못하게 부모님께 갖은 소리를 다한 모양이었다. "후보단일화는 민주노동당 후보여야 한다" 화가 났다. 출마를 못하게 하려면 나에게 이야기하지 왜 늙은 부모님께 이러는가 싶었다. 그래서 지역에서 ‘후보 단일화’를 하려면 민주당 후보가 아닌 민주노동당의 김상일로 단일화해주라고 요구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당 텃밭에서 선거는 이렇게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8월 18일, 드디어 예비등록을 마치고 중간점검을 해보니 별로 한 것이 없었다. 해야 할일은 많았지만, 시간은 너무도 빨랐다. 지역에서나 노동계 내에서도 ‘김상일’이 누군지 얼굴조차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인지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자금도 거의 없었고 조직도 없고 어느 것 하나 넉넉한 게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뒤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는 민주노동당을 믿으며, ‘승리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앞만 보고 뛰었다. 구두 두 켤레는 구멍나고 그러다보니 예비후보기간동안 구두는 두 켤레나 구멍이 나있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지역의 주민을 만나서, 시의원 모두가 민주당 일당으로 구성된 여수시의회의 잘못된 구조를 설명하고 시의회를 개혁해내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의회의 기능, 시정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다. 예비후보 등록 후, 우리 지역구 유권자가 2만5000명인데 명함을 직접 나눠준 것이 3만 장이다. 농촌지역에서는 농부의 아들인 지역의 머슴꾼을 뽑아달라고 말했고 도시지역에서는 2012년 해양엑스포를 유치한 성숙된 시민의식에 호소했다. 시의회가 견제와 감시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일당소속의 시의회로는 안된다, 민주노동당의 김상일이 의회에 진출하여 송곳 역할을 하고, 썩어가는 의회를 개혁해내는 빛과 소금역할을 해내겠다고 약속하고 다녔다.
그러는 사이 상대진영인 민주당 후보는 나를 ‘8대2로 이긴다’ ‘너무 표 차이가 많이 나면 어쩌겠느냐’라며 우쭐댔고 그러자 내 마음속에선 ‘그래, 내가 기어이 승리해서 시민의 숨통을 터주리라’ 생각하며 오기서린 운동을 하기도 했다. 선거운동중에 ‘주민을 위해서 일하는 시의원 한명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주민들의 말에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 기어이 승리해 시민의 숨통을 터주리라" 그래서 다시 신발끈을 고쳐매고 의정 활동비 50%를 환원하겠다는 대표공약으로 서민속을 파고 들었다. 중앙당에서도 적극적으로 결합해 주었다. 선거대책본부에서 일했던 많은 당원동지들도 새벽 2시 이전에 집에 돌아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모두가 하나가 됐고 선거운동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진정성을 한번 더, 두 번 더 설득해나갔다. 지역의 지인들도 하던 일도 접어두고 ‘이번만큼은 민주노동당 후보를 시의회로 보내서’, 이 지역에서 ‘부지깽이를 꼽아도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하자며 열심히 도와주었다. 물론 민주당 텃밭인 지역에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여수에서 민노당 당선은 기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여수에서 민주당을 이기고 민주노동당이 승리한 것을 두고 ‘기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열심히 지원해주고 지지해준 많은 지역의 시민들과 건설노동자 동지들과 민주노총 동지들, 모든 분들의 땀방울의 결정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하는 머슴이 되겠다’는 공약을 반드시 의정활동을 통해 실천해야겠다는 결심을 또 해본다. 소외받고 힘없는 사람들, 노동자, 농민, 도시영세상인, 장애인들을 위해 성심을 다하고자 한다. 10월29일 개표가 끝나고 선거승리의 기쁨도 느껴볼 시간도 없이 뒷날 새벽 6시에 당선인사를 하고 바로 열린 임시회에 신참내기 시의원이 되어 참여했는데, 의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일'들은 다음 기회에 전해드리고자 한다. * * * 김상일 의원은 1962년 여수시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졸업한 여수시 토박이다. 경남정보산업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금호 몬산토㈜ 노동조합 사무국장, 삼려노동청년회 창립회원, 여수산단민주노동자연합회 창립회원, 대외협력국장 등을 지냈다. 국민승리21 여수지역 창당회원과 국민승리21 여수지역선대본 집행위원 등 지역활동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2007년 민주노동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 민주노동당 여수 대선 선대본 지역본부장을 거쳐 올해 4월 총선에선 민주노동당 여수선대본 조직팀장을 맡았었다. 현재 민노당 여수시위원회 부위원장과 여수시 민생특위 위원장, 삼일중 이설추진위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꾸준한 지역활동-노조 연대의 결실 | ||||||||||||||||||||||||||||||||||||||||||
[민노, 여수 승리 배경] 민주당과 맞대결 승리 의미…"낡은 정치 거부" | ||||||||||||||||||||||||||||||||||||||||||
민주노동당 김상일 후보가 민주당 텃밭인 전남 여수에서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기초의회 진출에 성공하게 된 데는 무엇보다 민노당의 지역밀착 활동의 성과와 함께 진보정치를 희망하는 유권자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지역 밀착 정책으로 표심 잡아
그러나 의정활동비 인상과 비례해 나아져야 할 시의회는 복지부동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당선자는 시의원 의정활동비 50%를 환원시켜 주민 혈세를 적절한 곳에 적정하게 쓰겠다는 '기초의회 역할론'에 충실한 공약으로 표심을 파고들었다.
또 방과 후 학교 무료지원, 공동주택 지원조례제정, 민간병원 예방접종 위탁조례 제정 등 지역 주민의 생활과 직접 맞닿은 교육, 주거, 의료 등 서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내걸어서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특히나 호남의 절대강자인, ‘민주당 후보는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여수에서, 민주당 후보와 1대1 진검승부를 펼쳐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받은 것은 호남에서 진보정치의 싹을 띄울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민노당 조직대외협력실 이승헌 실장은 "기초의회는 중앙당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민주당 텃밭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며 "이는 진보정당의 꾸준한 지역활동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또 이 실장은 "이와 함께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김상일 후보가 이를 잘 파고들었고 노동조합도 표로 화답해 승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민노, 기초광역의원 64명으로 늘어
이 국장은 "기초의회 선거에 중앙당이 과도한 지원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중앙당의 지원은 민노당 현역 국회의원들의 지지 연설 정도 밖에는 없었다"며 "그만큼 지역위원회가 지역활동을 통해 민심을 잘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당선자 진영에서 직접 선거운동을 했던 정병필 민노당 여수지역위원회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이 지금까지 민주노총 산하 사업자들과 연대하면서 함께 해온 것들이 이번에 표심으로 연결된 것이 승리의 가장 큰 부분"이라며 "공장밀집 지역, 건설노동자만 1만6,000명이 넘는데도 지금까지는 투표로 연결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의 연대가 득표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소속 광역·기초의원은 진보신당과 분당이전 81명에서 63명으로 줄었으나 김상일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64명으로 늘게 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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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가치 확산에 일조할 것" | ||
[인터뷰] 김상일 당선자 "민주당 1당 독식 끝내자 호소" | ||
"선거운동 때 시민을 위한 시의원 1명이라도 있엇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무척 아팠는데, 이제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다"
민주당 텃밭인 전남 여수에서 민주당을 굴복시키고 진보정치의 이름을 빛낸 김상일 당선자는 소박한 당선소감을 밝혔다.
민주당 1당 독식체제 끝내자 호소
<레디앙>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한 개 정당이 의회를 독식하는 구조는 온갖 문제를 낳게 마련이다"며 "여수시는 시장과 시의원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솔직히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구분하지 말고 독식체제를 개선하자고 유권자들을 설득했는데 그게 적중했던 것 같다"고 선거승리 요인을 평가했다.
또 그는 "거기에다 여수지역 건설노동자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며 건설노동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김 당선자는 이와 함께 "여수시는 시장과 의회가 모두 같은 정당이어서 의회가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말이 무의미했다"며 "그런데 이번 여수엑스포를 치르면서 도심 한복판에 골프장을 만들고 인공해수욕장 시설하는 등 문제가 많았는데도 의회가 행정을 견제하지 않고 혈세를 낭비하는 난맥상이 계속되면서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그동안 지역위원회에서 지방자치위원장과 민생특위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활동들을 집중적으로 펼쳐왔다.
탈당한 사람들도 지지해줘
그는 "그동안 민노당이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 등과 다양한 연대활동을 벌이면서 진보정치에 대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 결실을 맺은 것 같다"며 "앞으로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총 등과 함께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고 꼭 필요한 의정활동을 통해 진보정치의 가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진보정치를 얘기하면서 분당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지역에서는 정파가 중요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탈당하거나 진보신당으로 자리를 옮긴 많은 분들도 '진보정치에 대한 한 마음으로' 지지를 해줬던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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