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바로 전 까지
우리 모두 하루 하루 살고 있다.
아니, 한 순간도 거르지 않고 산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죽지 못해 살고 있나?
그냥 숨쉬고 저절로 살아진다고 해서 살고 있나?
"우리 다 먹고 살자고 산다"는 말도 들린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홍길동전에 나오듯 "입이 포도청이라" 했던가!
이렇게 확성기 거쳐 커다란 소리로 들리듯 하는 말에 기대어,
남들 다 살 듯이 마냥 이렇게 해를 넘기며
시간 때우듯 멈칫거리고 있나?
또
그러다 보니,
모두 서로 다를 바 없이,
똑 같이 저마다 남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세련된 것마냥 번듯이 차림하고,
더 편히,
더 많이 누릴 것을 욕심내며,
똑 같은 마음새로 달리기 하는 운동장 땡볕에
생 땀 흘리며 긴장하고 줄을 서 있는 꼴이
마치 "그래야만 하지!" 하듯
당연하다는 듯
정신 줄을 팽팽히 곤두 세우고 있나?
앞 쪽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금방이라도,
언제라도 뛰어나갈 참이다.
그러니 헐떡이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동무들 사이에서
하마 뒤 처질 것만 걱정이 태산,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
힘을 길러야 한다며 가지가지 애를 쓴다.
초등학생 때 벌써 의과대학 갈 준비한다니!
초등학교 5년생이 대학 입학자격고시 수학을 미리 떼야 한다니!
그것 한 가지만 들어도
하 기막히다.
그러니
꿈자리까지 전전긍긍한다.
이런저런 궁리로 머리가 뻐개질 판,
이것 저것에 중독되기 쉬워,
유명타는 운수 맞추기 전문가(?)에게 꾸벅 매달리고,
꾀를 부리며 온갖 수단을 써보려한다.
손바닥에 글자를 새겨보기도 한다.
하다 하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약에까지 의지하게 되나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모두들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 여겨,
똑똑하다는 듯 처세 싸움의 줄에 비집고 들어선다.
온갖 수단 방법 가리지 않게 된다.
윤리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마지막 선에서도
눈을 흐리게 만들고,
아예 눈을 감아 버려,
어둔 세상에서 불 밝히기를 요구받는 전문 분야 사람들 조차도
온통 눈 딱 감고 똑 같이 아웅다웅 사는 꼴이다.
높은 신앙을 늘 겸허하게 지켜야 할 종교계도,
세상의 기본 규율을 철저히 가다듬어야 할 법의 영역도,
골고루 사람의 건강을 철저히 책임져야 할 의학도,
사람을 바르고, 사람답게 길러야 할 교육계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공정하게 전해야 할 언론도,
모두 끈적 끈적 냄새 풍기는 욕심으로 얼버므려,
주인인 시민의 눈을 흐리고,
귀를 막게 하고,
제대로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대낮에 불을 밝히고 헤매야 할 판이다.
낯 붉히며 소리 질러대는
이른바 힘 센 사람들의 정신 없는 고함 소리에 귀가 따갑다.
목청껏 지르는 품위 잃은 소리에 아예 귀 막고 싶어진다.
아예 그 소리를 전하는 기계를 꺼버린다.
맑은 숨이 막히고,
머리는 판단의 방향을 잃는다.
이런 참에 다른 나라,
세상에서 제일 힘 센 나라,
힘 센 대통령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토론을 했다 한다.
세살 차이 늙은이 남정네 둘이 부끄럼 모르고 쇼를 했다.
하나는 사기꾼답게 유창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말더듬 버릇을 고쳤다는데도,
더듬거려 '치매'가 아닌가 걱정스러워 보였다고 한다.
사기꾼이 더 문제인가?
아니면 치매가 더 문제일까?
토론 결과는 사기꾼이 이긴 모양이다.
토론을 보는 사람들,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의 판단 기준이 걱정스럽다.
그런데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태도가 궁금하다.
우리도 험한 세상 살기 위해
싸움에 지면 안 된다는 그 생각만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 않나?
사기 꾼이라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 믿지 않나?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한 푼도 손해볼 수 없다고 악다구니 할 작정일까?
다른 사람이 불편할까 추호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눈을 질끔 감고 살 거나?
친구를 밀쳐 넘어지게 하고도
"내가 언제 그랬냐?"
"나는 결백해"
허리리우드 몸짓에 더 크게 소리 내 지를까?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내 아들 딸에게도,
손자 며느리에게도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남들도 그렇게 산다고
행여 손해 볼까,
굳게 믿고,
더욱 세게 단단히 결의에 차 살려 하고 있지 않나?
그러다 보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눈도 돌리지 않고,
신음 소리 듣지 않고,
서로 사랑할 기회를 놓지고 말 건데...
어쩌나!?
남 다른 동무가 나와 다르다고
따돌림 하지 말라고 일러주신
엄마의 딸 이 현주님이
자라 어른이 되어 울산에 온 난민에게 우리 말을 가르쳐 주고
이웃된 것이
우리 모두에게 햇살이 되어준 것은
기적이 아니다.
우리 모두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자세로 살 것인가
그것이 삶의 풀이인 것을!
이웃 사랑으로
이웃 알아주기를 익히며 살게 한다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며
한 세상 복 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조금 센 표현이 될까 싶지만,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을
능력있어 보이는 사기꾼으로 기를까?
아니면 높은 뜻 펴는 이웃 사랑의 순교자로 기를까?
가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ㅁㅇ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