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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넷여섯여덟열은 원래 ‘2, 4, 6, 8, 10’이라는 숫자의 나열이지만, 시 속에서는 단순한 수세기를 넘어서 반복적인 의식이자 주문처럼 기능합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소중한 물건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읊조리는 듯한 느낌을 주며, 정서적 안정과 기억의 표식이 됩니다.
특히 “이젠 아예 그들 이름이 되어버렸다”는 구절에서, 이 숫자가 개체를 식별하는 고유한 이름이자 화자의 감정적 연결고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소재로서의 ‘구피’ – 소중하지만 불안정한 생명
구피는 작고 연약한 존재이자, 번식력이 강하지만 자신의 새끼를 먹는 존재로서 이중적인 생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화자는 “행여 한 마리라도 줄었을까”, “행여 한 마리라도 늘었을까”라고 하며 잃음과 더함 모두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이는 단순한 애완동물 돌봄의 차원을 넘어 삶의 균형, 상실의 두려움, 생명에 대한 죄책감 같은 복합적 감정을 함축합니다.
생명의 순환은 이 시에서 기쁨보다 불안과 고요한 책임감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새끼를 낳고는 바로 먹어치운다는 구피”라는 잔인한 생태적 사실을 통해 강조됩니다.
3. 화자의 내면 – 고요한 외로움과 의례화된 돌봄
“여행을 다니면서도 자꾸만 눈에 밟히고 입술에 어른거리는”이라는 구절은 무의식적으로 구피를 떠올리는 화자의 애착과 죄의식을 나타냅니다.
“빈집에서 나 혼자 중얼거린다”는 대목은 화자가 고립된 생활 속에서 구피들과만 교감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정적이고 폐쇄적인 심리 상태를 드러냅니다.
이 모든 행위는 돌봄의 반복적 행위 속에 삶을 부여하고, 동시에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의식적 노력처럼 보입니다.
4. 형식과 리듬 – 무심한 문장 속에 깃든 의도적 반복
이 시는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문장, 수의 반복, 비슷한 구절의 재배열을 통해 무심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 깃든 강박과 애착을 리듬감 있게 전달합니다.
첫 연과 두 번째 연이 구조상 거의 평행을 이루고 있어, 전체가 삶의 같은 시간대의 되풀이처럼 느껴지며, 이 또한 시간의 무게와 정서적 고착을 나타냅니다.
5. 전체적 감상 – 소소한 존재를 통해 드러나는 감정의 깊이
이 시는 겉보기에는 단순히 작은 물고기를 돌보는 이야기이지만,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소중한 것을 세는 행위의 애틋함, 그리고 고립 속에서 타자와 연결되려는 내면의 욕망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둘넷여섯여덟열”은 단순한 수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작고 사라지기 쉬운 것들’을 기억하려는 마음의 울림이며, 시적 화자의 삶을 지탱하는 리듬이자 기도처럼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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