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든 것치고는 7시에 눈이 떠졌다. 여행의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숙면을 취한 탓인지 몸은 거뜬했다.
내 몸이 버텨주는 것에 대해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신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거의 이틀을 꼬박 새고 취한 짧은 수면인데도 이토록 가뿐하다니.
그런데 나 혼자만이 뻐길 일도 아니다.
팔십 룸메이트도 끄떡없어 보이고,
환갑을 넘긴 여성 동행들도 팔팔 튄다.
하긴 여기 7시가 한국 8시다.
그래서 아직 한국시간에 익숙한 내 몸이 벌떡 침상을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7시인데도 아직 카스는 어둑어둑하다.
생각해보니 카스는 서울보다 3시간 이상 늦은 시차가 있어야 한다.
서울 10시 기준으로 카스는 7시여야 하는데도 9시 시간대를 쓰고 있다. 북경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시간까지 통제하고 있다.
북경과 카스 사이의 경도차가 40도 이상이므로 북경 기준으로 2시간 이상 늦은 시간을 줘야 한다.
북경 9시는 카스 7시여야 하는데도 9시를 쓰라고 한다.
참 황당한 일이다.
말로만 치켜세우는 허울 좋은 자치구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인민들 일상생활의 리듬까지 틀어쥐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북경의 행정편의에 맞춰야 하는 카스 사람들은 그래서 하루를 2시간 빨리 시작해야 한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살아야 한다.
일상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그나마 관공서 문 여는 시간은 10시다. 그런데 북경시 적용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일사분란한 통제가 목적일 것이다.
2009년 신장 위구르의 성도 우루무치 유혈사태의 구호는 자주독립이었다.
사람의 생김새와 말이 다르고, 산과 물이 다르고,
음식과 풍습이 다른 땅. 여기서 신장(新疆, 신강)은 새로운 영토라는 뜻이다.
이게 뭘 의미할까?
청나라가 신장 지역을 복속시키면서 새로운 영토라 했으니,
그들 스스로도 남의 땅인 것을 내심 인정하고 있는 꼴이다. 카스(喀什)의 지명은 또 카슈가르라고도 부른다.
카스는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가운데에 들어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서쪽 끝에 위치하며,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로 가는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였다.
카스는 그 때부터 정치와 상업의 허브였다.
그 시절의 영화는 지금도 온전히 남아있는 카스 고성(古城)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정표에 따르면 오늘 오전은 호텔 내 휴식이다.
먼 길을 달려왔으니 피로회복을 위한 배려인 듯하다.
8시에 식당으로 내려가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식탁은 벌써 서역의 향기로 가득하다.
나는 남방의 독특한 향료가 되었든,
서역의 별난 채소가 되었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각 국의 저마다의 음식에 저항감이 없는 식습관은 낯선 여행길을 수월하게 해준다. 파미르 고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변경 통행증을 받아야 한다는 공지가 전달되었다.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변경관리구’에서 발행하는 그냥 ‘통행증’이다.
10시에 호텔 로비로 내려가 대기했다.
여행자가 관리구까지 가는 대신에 담당 관리가 호텔로 업무 출장을 나온다는 것이다.
웬일일까 싶다.
로비 구석 사무실 입구에 '카스공안국 동호파출소 라이닝호텔변방통행증발증점'이라는 긴 이름의 간판이 붙어있다.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에이전트가 일착으로 통행증을 발급 받고나왔다.
일행들이 줄서서 순서를 기다리며 다들 그가 받은 심사 내용을 궁금해 한다.
죄 지은 것도 없이 괜히 쭈삣대지는 마음이다.
나는 일부러 줄의 맨 끝에 서 있었다.
사무실에 젊은 여자 한 명이 컴퓨터를 앞에 놓고 민원인을 기다린다.
컴퓨터 뒷면, 내가 바라보는 정면에 '청사용국가통용어언(請使用國家通用語言)'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방에 들어서면 중국어 이외 말은 일체 하지 말라는 경고다.
외국어 특히 영어를 겨냥해서 영어 입을 닫겠다는 의도로 생각되었다.
대체로 서역지방에선 영어가 통하지 않기는 하다. 여권 대조 후 컴퓨터 자판소리가 들리더니 카메라에 얼굴을 대라는 제스처를 한다.
평상의 절차를 따른 발급까지 2분 남짓 걸렸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가겠다는 여행객에게 통행증은 왜 발행해야 하는 걸까?
나는 또 의문이 생긴다.
의문은 의심을 증폭시킨다.
시간까지 통제하는 마당에 사람 통제는 당연한 것일까.
남의 땅에 들어왔으니 군말 없이 지시에 따르면 된다? 통제와 감시. 어렸을 때부터 주입되어온 익숙한 단어다.
이 부분을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여행자 나름대로 뜻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 어느 정도는 공감해 주기를 바라면서 자!
이제 다시 여행길을 따라 가볍게 달려가 보자.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월요일마다 장이 선다는 지역의 전통시장으로 갔다.
카스 인근 지역은 요일마다 지역을 정해 지역을 돌아가며 1주일에 한 번 장이 선다.
7일 장인 셈이다. 시장 입구에는 여지없이 경찰들이 보이고, 장갑차까지 서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견과류 상점,
나는 돈을 빌려서 대추야자를 양껏 샀다.
일행들이 하나둘 캐슈너트를 샀다.
나는 돌아 나오는 길에서 남은 돈을 탈탈 털어 파스타치오를 샀다.
신선할수록 고소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꼬막 까듯이 껍질을 벌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과, 조롱 배, 하미과, 수박, 포도, 석류, 귤, 바나나 등을 파는 과일전.
노전에는 도축한 양과 돼지가 통째로 매달려 있다.
양꼬치와 생선을 숯불에 굽는다. 숯불연기가 솟구치고,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를 느리게 걸어 통과하고 나니
이번에는 눈에 익숙한 서역의 국수집들이 즐비하다. 한국의 오일장과는 완전히 다른 날 것들의 진풍경이다. 투계 한 마리를 흥정한다.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미니 200 위안으로 거래한다.
투계를 받아든 사람이 닭의 날카로운 발톱을 요모조모 세심히 살핀다.
저 싸움닭은 새 주인에게 얼마나 벌어줄까? 말린 뱀 세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약재를 파는 노전이다.
규모가 큰 가게인 만큼 눈에 생소한 약재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3년마다 꽃이 피는 고산지대의 설령화, 신기하고 신비로운 약초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사거리에 서서 번잡한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꿀을 파는 가게다. 꿀단지가 드럼통 크기다.
반대편에는 홍화씨 기름을 판다.
기름통이 흰 플라스틱 한 말 통이다.
내가 홍화씨 기름의 햇빛에 투명한 빛깔을 보고 있는 사이 일행들이 꿀을 산다.
한 사람이 사는 순간 망설이던 사람들이 줄줄이 돈을 꺼낸다.
주인장은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며 뜬금없는 횡재에 어쩔 줄을 모른다. 한없이 넓은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슬림 복장의 두 촌로가 두 손을 마주잡고 오래도록 안부 인사를 나눈다.
과하지 않은 모습이 더 정겨워 보인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우리 아버지 장에 다녀오실 때 모습이 떠오른다.
근데 약간 불콰해진 얼굴은 햇볕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선 구이집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노상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선은 붕어였다.
붕어가 도대체 얼마나 크기에 살집이 저렇게 손바닥만 할까.
푸짐한 생선구이와 튀김이 식탁에 올라왔다.
현지 가이드는 이웃가게에서 양꼬치를 사다 날랐다.
화덕에 구운 고기만두에 고수가 곁들여졌다.
나는 염소처럼 고수를 씹어댔다.
고수를 잘 먹으면 승려 자질이 있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이런 점심상을 받다니.
여느 고급 식당보다도 나는 만족한다.
좋다. 생동감 넘치는 식탁.
나는 억센 붕어 뼈를 손으로 발라내고, 혀로 다시 점검했다.
현지인들이 먹는 생생한 맛을 볼 수 있다니. 즐겁고도 즐거운 체험이었다.
청정무구한 표정들, 거리낌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들,
왁자지껄 들려오는 말소리들, 행동에 막힘이 없이 자연스러운 사람들.
나는 생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오늘 하루는 시장에 온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배가 부르다.
비로소 나는 서역 땅에 들어온 것을 실감한다. 오후에 이슬람교들의 사원(Etigar mosque)와 카스 고성의 내부를 걸었고,
마지막으로 향비원을 둘러보았다.
모스크는 건립 주체를 밝히지 않은 채 명대인 1442년에 건립되었다고 적혀있다.
연대로 미루어 보건대 당시 이 땅의 주인은 명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은 중국 당국의 선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표지판에는 중국 당국이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정책,
소수민족의 전통과 역사적 유적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는 곳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고성의 정문에서 일직선으로 막힘없이 쭉 뻗어나간 대로에 감탄했다.
저 길은 당시 대상들이 다니던 길이었을 것이다.
사막 위에 낙타들이 발자국을 찍어 만든 길.
낙타에 교역물품을 싣고 어렵사리 성에 도착한 상인들을 생각한다.
부와 명예는 인간 욕망의 영원한 표상인 것이다. 오후 6시인데도 아직 해가 중천이다.
그렇지. 진짜로는 오후 4시 또는 3시가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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