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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 TURKiye 사역보고¨
팀장:오동목
팀원:곽무홍,구미순,박계남
14일14시30분 인천국제공항 출발하기 위해서 교회로 갔다.
마침 최판근집사님 모친상이 있기에 목사님께서 조문하고 오실 때까지 식당에서 모여 출국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목사님 도착하여서 출국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
15시20분경 많은 사람의 환송을 받으며 버스는 교회를 출발하였다.
환송을 받으니까 가슴이 뭉쿨한다.
그간 애쓰셨던 이집사님의 노고와 쉽지 않은 후원금(관광버스료)까지 선뜻 내놓으셨던 그 마음을 알기에 또한 해외선교부원들의 기도와 저녁먹거리로 애쓴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필자는 버스에 오름과 동시에 머리가 띵 하는게 이상했다
그것은 기사분이 빈 차일 때 담배를 피우는 차이기에 그랬다 냄새가 났다..
멀미약을 먹었지만 유독 좀 민감해서 두통이 더 심해진다 ..담배냄새는 정말 싫은데...
다음에 버스 구할땐 담배 안피는 차로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심 해본다.
역시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분은 짐이 작아 보인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출국은 절차가 쬐끔 까다로워 색다른 경험을 해본다.
터키행 가는 비행기 좌석앞 공간이 너무 좁아서 다리가 아프고 힘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같은 기종이라도 서울로 오는 비행기는 공간이 넓었다 ...
인천공항 이륙후 11시간이나 공중에 있다가 터키 iSTANBUL공항에 새벽쯤 도착했다.
박중권선교사님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모두들 승합차를 타고 교회근처에 있는조그만 MECiDiYEKOY HOTEL에 도착하여 잠이 오는 비몽사몽간에 하루일정을 시작한다.
15일 : iSTANBUL 새벽에 도착.............................................................................................
MECiDiYEKOY HOTEL에 방을 배정 받아서 호텔직원이 짐을 방으로 안내 해 주었다.
짐을 들고 방으로 와서 내려 놓고 가면 될낀데 가지 않고 호텔안내원은 쳐다보고 가지않고 쳐다본다.
팁을 줘야 한다는거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 노골적이다.
1달러 짜리가 없어 5달러를 주었다. 인사를 하고 갔는데 기분이 쬐끔 떨떠름하다.
나중에 1달러짜리 많이 교환했지만..미국사람들도 1달러 준다고 애기 들었다..
우리는 쉴 시간도 없이 교회로 모였다.
교회는 흐름한 건물에 5층에 있었다.
교회밑에는 장날이라 시장이 서고 난 전이 있어 시장이 설려고 분주한 모습이다~사람 사는게 우리나라와 비슷한 풍경이다
교회에는 부산 포도원교회 단기사역팀 청년들이 3명 있었다.
이들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이 빤짝 빛나는게 정말 멋있어 보였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드린 후 호텔에 가서 쉬라고 할줄 알았는데 조별로 나뉘어서 도시사역을 가라고 하신다.
좀 마음에 부담이 많이 왔다다.
영어도 못하고 터키어도 못하는데 나가서 미션을 완수하고 돌아 오라는 것이다.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다시 이곳까지 돌아오라고 하시는지 ..혹 터키에서 미아가 되지 않을까 겁이 좀 났는데 말이 통해야만 모르는 길을 물어 볼낀데..
저희2조는 말 그대로 노장파인데 영어 단어나 몇 개 아는거 가지고 문제가 많겠다 싶었는데아니나 다를까 올것이 왔다. 시내버스를 타야 되는데 MaIkara! 물으니까 터키사람들이 한심했던지 고개를 갸우뚱거려요.
어디서 버스를 타는 건지 어떤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지 막막했다.
하나님께 기도 할수밖에 없었다..아이고 하나님 저희들 큰일 났습니다 ..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되겠는데 정말 깜깜했다..서로가 지식의 한계를 ..바닥까지 들어 내놓고 같은 팀원에게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만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다.
태어나고 놔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부끄럽고 속상하고 내 자신이 처참 해지고 한 없이 작아진 자신이 못 나보인 순간 순간 이었다..
큰 사거리까지 걸어가서 대로를 건너서 젊은 사람에게 지도를 내밀어 행선지를 물으며 행선지 글자를 찍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생각 해 보면 아마 그 청년이 좀 갑갑했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간에 버스를 갈아 타야 되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그 청년이 너무나 고마웠다.
터키청년은 어떻게 설명이 되지 않은니까 직접 오토버스 타는데 까지 안내 해 주며 버스표 지불하는 카드 찍는거 까지 시범보이며 웃었다.
그리고 같은 방향에 가는 다른 승객에게 말을 붙이더니 우리를 좀 데리고 가라고 인계를 해주었어요..
생전처음 시내버스 전용구간으로 달리는 두칸 짜리 버스를 타고 동행하는 터키인에게 오동목팀장이 터키어 회화책을 목적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같이 동행 하여 주던 청년이 회화책을 받아서 자기가 뒤지더니 낱말을 찍어서 우리에게 보여주며 서로 대화가 쬐끔 되었는데 아~ 그 회화책이 구세주 같았다.
오팀장님은 터키어사전과 회화책을 준비 해오셔서 큰 도움이 되었는데 참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iNCIRCI(인즈르)에 내려서 육교를 건너서 건너편에 마을 버스같이 비슷하게 생긴 돌무시가 기다리고 있는데 MaIkara! 하니까 타라고 해서 몆 리라를 주고 종점에 가서 내렸다.
공원 같은데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이 왔다갔다 하는지 우리는 이국멀리 낮은 도시의 풍경을 구경하기 비쁘다.
둥그렇게 생긴 구운 빵을 파는데 뱀 굽어 놓은거 같은둥글게 생겨서 ..특유의 용기를 내어서 빵 파는 청년에게 물었다.
몆 카타르냐고 물으니까 상인은 말을 해도 우리가 못 알아 들으니까 동전 리라를 꺼집어 내어 보여줘며 몆개 주면 된다고
시범을 보였다.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 구운 과자빵을 사 먹었다..
이제 터키어에 쬐끔 용기가 날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말을 붙여 보자는 마음으로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분에게 가서 메르하바 하면서 무조건 옆에 앉고 본다
선교사님 미션이 네 사람 이상 이름과 주소 이~메일을 적어 오라고 하셨다.
필자는 두 사람에게 접근하여 주소와 이~메일을 받아냈다.
눈물이 날만큼 감사했다~몇 시간전만 해도 미칠것만 같더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에 대한 뿌듯함에 기분이 으쓱 좋아진다.
터키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정말 복음을 전하고 싶은 국민들이다.
터키 사람들은 사진찍는 것을 좋아한다.터키인들의 정서관심은 상대방 사람의 가족관계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터키 여행하는 사람은 한국출국할때 가족사진을 가져 가는게 조금 이해가 되었다.
우리 일행은 처음보는 풍경과 신기한 음식점 앞에서 연방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터키사람들은 이슬람이기 때문에 쇠고기는 먹어도 돼지고기는 안 먹는다.파는곳도 없다.
교회 출발 하기전 선교사님께서 치킨 같은거 사 먹으면 되지~ 하시길래 우리는 치킨집을 찿아서 5섯 바퀴나 돌았지만 없었다.
치킨하니까 터키사람들이 못 알아 듣는다
치킨이 터키어로 타북인데 그때는 그 낱말을 몰랐다..지금 생각하니 선교사님께 얺친 기분이 든다 ~.
보편적으로 터키 음식은 모두 종류가 다른 케밥뿐이다.
결국 비좁은 식당으로 들어 갔는데 3층에 올라가서 터키식 케밥을 각각 시켰다.
음식이 나 왔는데 우리들 입에 맞지가 않아서 상에 놓인 작은 청량고추를 먹었다
와~매워 참 맵다
그렇지만 중독성이 있는게 맵지만 자꾸 손이 간다.
주인장에게 투왈렛이 어디냐고 물었다.
식당 5층에 있는 화장실에 올라가서 소변을 공짜로 보구 좋아했다.
말이 안 통하였지만 오팀장님은 식사한 영수증도 받아 오신다~..이제 어느듯 눈짓으로 터키인들과 대화를 잘 하신다..
이제 터키사람들과 대화 하는게 조금 부담이 없어진다.
오팀장님은 회화책과 터키어 사전을 준비 해 왔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교회에 못 돌아올 것 같이 걱정했는데 우리는 임무를 잘 마치고 교회까지 잘 찿아 왔다.
마침 교회주위에 주일날만 되면 서는 시장이 서는 날이다
시장에는 유독 젊은 남자 청년들이 시장(난전)에 농산물을 판매 하는데 눈이 휘둥 거래졌다
우리 기준으로 생각 했을때 왜 터키 남자들이 저렇게 난전에서 장사를 할까? 직장이 없을까 모두 일하는 사람은 남자인거 뿐이다.
우리 일행은 나르(석류)가 싱거롭고 가격이 저렴해서 3개에 2리라 (우리나라 돈으로 1500원정도)를 샀다.
교회에 오후 4시까지 도착하라고 했는데 다른 팀도 와 있었다.
그간의 도시사역을 조별로 사역보고를 하는데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다들 힘들었던 순간을 모험이 되어 용기를 가지고 다녀온데 대한 뿌듯함이 있었다.
두팀은 모두 영어라도 잘하고 해서 수월했다고 했다...
저녁은 교회에서 준비해서 차렸는데 포도원교회 팀들이 대접하는 거란다.
빵이며 야채가 전부인 식사이다~..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이 최대한 식사 또한 빵으로 만족 할려고 다짐해 본다..
이제 새벽에 비행기내려서 잠을 자지 않고 도시사역 다녀왔는데 모두 잠이 쏟아져서 비몽사몽인데 박 선교사님으로부터 터키역사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뒤에서 보니까 모두 잠이 와서 고개가 왔다갔다 한다.
출국 하기전 터키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동일 하다
정말 선교사님은 터키역사 박식하시다 .정말 대단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선교사님이 존경스럽다.
우리는 기도후 드디어 호텔에 와서 첫일정을 잘 소화하고 모두 취침한다.
다음날아침!..16일.....................................................................................................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또 빵이고 치즈 계란..우유에 후레이크,토마토 썰은거 이게 식사이다~커피한잔과 함께.
아침식사후 교회로 집합해서 어제 다녀 온거처럼 도시사역 가는 날이다.
우리 2조는 도시사역=Atakoy9(올탁케이) =
에미메뉴까지 갔다 오라는 것이였는데 어제 그렇게 고생해서 다녀 온 기억이 생생한 기억을 왔다 갔다 한다.
시내버스 타는곳 까지 1조 팀과 같이 내려갔는데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제 자기들이 다녀온 곳이란다.
자세하게 정보를 묻다가 오늘 우리들 1팀2팀과 같이 갑시다 ~
1팀이 다녀온 곳에 안내를 좀 해줘라고 하니까 팀원들 모두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 갑자기 힘이 난다 .어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시내버스타고 물어서 다녀온게 아찔했는데 오늘은 같이 가니까 신이 난 것이다..
도시사역하라고 경비도 나눠 주는데 (우리가 낸 돈이지만) 오늘은 영어 잘하는 이창훈 팀원도 있고 주엽이도 있고 재미 있을거 같다.
우리는 어제 버스타고 다녀왔는데 1팀은 택시타고 다녀 왔다는데..
그렇지만 오늘은 인원이 8명이니까 경비를 아켜서 맛있는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선교사님이 주시는 버스카드로 이용하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데 다리를 버스내려서 걸어서 건너본다 ~
8명의 사진을 찍으면서 처음보는 풍경에 구경하는라 정신이 없다 .
다리위에는 낚시하는 분이 많고 에미메뉴는 무슨 사람이 그리많은지 북적인다.
미션이 있기에 필자는 번갈아 돌아가면서 세 사람을 만나 주소를 받아 내었다
출렁이는 배위에서 고등어를 구어서 빵에 싸서 먹는데 우리는 2개 사서 나눠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에미매뉴에서 보면 큰 이슬람 사원이 버티고 서 있다.
구경을 하고 싶어서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신발 벗는데 까지 가서 색다른 구경을 하였다.
그리고나서 전차(메트로뷰스)를 타고 와서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살았던 왕궁의 담 벼락길을 한참 걸어서 진주에도 있는
포시즌호텔에 들렀다.
왜냐하면 사진도 찍을겸 소변도 할겸 겸사겸사 정문을 지키는 분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호텔을 나와서 한참을 걸어서 어제 1팀이 먹었던 식당에서 여러종류의 케밥을 주문하여 먹었다.
모자라는 돈은 이동수팀원이 보태었다. ......8명이 같이 다니니까 신이나고 재미 있었다.
16시까지 교회로 돌아와 사역보고를 하고 난후 오늘저녁은 좀 괜찮은 곳에 저녁식사를 한다고 해서 갔는데 여기 또한 여러 가지 종류의 케밥이다.
이제 조금 터키에 대해서 성향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느정도 이해할거 같은 느낌이다.
내일이면 진짜 농촌사역을 위해서 떠나야 하는 전초전 인것을 까마득히 잊은채 저녁을 즐겁게 보낸다
교회로 돌아와서 터키어 강의를 듣는다~질문도 하구~..
포도원교회에서 온 조지혜 자매가 터키어를 가르킨다..예쁘고 참신하며 싹싹하다~.
곧 결혼 한다고 한다.
수첩에 적으며 열심히 배웠다..경건의시간 가진후 호텔로 돌아가서 2일째 취침에 들어간다...피곤도 하고.....잠이 모자라기에..
17일:아침! ..오텔에서 간단한 식사~..여기서도 계란과 빵 치즈 이게 아침이다
스작슈(따뜻한 물)커피한잔하고 교회로 집합~
오늘 오전엔 터커어 공부를 한다 =늦은 밤에 떠난다는데 걱정도 되고 실감이 안 난다..농촌사역위해 최선을 다해서 공부한다
점심엔 특별 메뉴로 포도원교회 형제가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다
빵이 아닌 밥을 김과 같이 먹었다...맛은 별로 였지만 정성이 고마왔다..청년이 비빔밥을 다 만들고...
정말 포도원교회 청년사역팀께 감사드린다.
또 한형제는 (승혁)..교회에서 왔으며 터키에서 번역하는 알바도 하고 있으며 무역업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기타로서 찬양과 기도회를 이끌었다..
밤 10시.. 밖에는 눈이 펑펑내리는데 잠을 잘 시간인데 짐정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지방 사역지로 향해서 출발하라고 한다 ~아~아 큰일 났다..올 것이 왔구나
가이드도 없이 도시사역을 한거처럼 우리끼리 조별로 따로 떠나야 한다..
목적지가 주어졌다...
1조는 아다나~가지안탭~카라만 마라쉬(쿠르드족이 분포한 지역)~갑바도기아 집결
2조는 iZMiR~ USAK우샥~KONYA콘야~CAPADOCIA갑바도기아 집결이다 ~
3조는 삼순~시바스~요스갈(흑해쪽)~갑바도기아집결 ~..따뜻한 지방이란다
우리 2조는 노장파라고 좀 봐줘서 가까운 곳으로 선정 해줬는데 폭설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줄 까마득히 모른체 다른팀 보다 가깝다고 좋아했다..
iZMiR= USAK= KONYA= CAPADOCIA에 합류 하는 코스이다
iSTANBUL 저녁 출발=눈이 많이와서 길이막힘=차량정체 (561km)
모두 가자 베낭을 짊어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나섰다.
하는에선 눈이 내리고 옷을 따뜻하게 입었지만 기온은 내려 추웠고 바닥은 얼어서 빙판이라 조심조심 걸어서 운송 대리점까지 갔다. 타고 가야할 순회버스가 와서 합동 주차장까지 태워주게 된다.
운송회사 버스대리점 같은데서 표를 끊고 있으니까 순회버스가 왔다..선교사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모두 버스에 올라서 주차장으로 왔다.
여기서 모두 목적지가 다르니까 헤어져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기도할수밖에 없었다.
2조가 가야할 목적지인 이즈밀 행 버스에 오르는데 다른팀과 헤어 질려니까 눈물이 날라한다..서로 손을 흔들면서 갑바도기아에서 무사히 만날것을 약속하며 버스는 출발하였다.
걱정과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맡기고 버스에 몸을 맡긴체 눈을 붙이며 잠을 청한다~..몆번 눈을 떠보았지만 보이는 곳은 눈(카르)이 내린 벌판뿐이다.
알마를 왔는지 모르겠다..눈이 와서 길이 막혀 버스는 움직일 생각도 않는다. 마냥 차에 갇혀서 기디리며 또 잠을 청한다.
17일: 밤11시20분 출발한 버스가 다음날 18일 오후4시30분경 iZMiR에 도착했으니 다리가 저려온다
18일: iZMiR 저녁에 도착하여 날씨는 추운데 또 어디로 가야할지 ...또 말이 통해야 물어나 보겠는데..오후4시가 넘으면 농촌으로 간다 해도 하룻밤 재워 주라는것도 힘들고 해서 HOTEL로 가자고 탁시를 잡았는데 저렴한 곳에 소개 해주라고 해서 탓는데 허름한 오텔에 간곳이 바로LALELI HOTEL이다.
연세가 드신분이 카운터에 있는데 터키단어로서 어려운 대화가 또 시작되었다.
우리 오팀장님 정말 찬찬하며 대화를 이어갈려고 무든히 애를 쓴다. 준비성도 있고 대단하시다.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할 만하다.우린 피곤해서 대화하도록 저만치 지켜보고 있다.
오텔안 입구쪽에 젊은 사람이과 서로 대화하며 서툰 터키말을 했다
필자는 그 청년에게 서툰 터키어로서 말을 건넨다 ...우린 한국에서 왔다~ 만나서 반갑다~ 터키를 사랑한다 ,우린여행객이다~
당신과 나 친구이다(알카다시) ~하니까 굉장히 좋아한다.. 얼싸안고 서로가 좋아했다~서로의 눈빛과 표정을 보며 뭔가 통한다
오텔은 정말 냄새나고 이런곳도 터키는 오텔이구나 생각하며 받아 들일려고 노력해보지만 가격이 만만찮다.
아침까지 쳐서 1인당 40리라인데 4명이면 160리라 ~아~비싸다.~1리라에 한화750원
우리나라 돈으로12만원이다~우리나라에서 8만원이면 방 두 개잡는데 ..
아침(식사)까지 주니까 괜찮다는 맘으로 숙박하였는데 탁시와 연결된 오텔은 쬐끔씩 비싸다는거 알아야겠다(아마 커미션을 주지 않을까 싶다)
방을 잡았으니 배를 채워야겠다 싶어서 한숨 돌리며 근처 식당에 가서 케밥(빵)을 먹었다.
갑자기 처량해지며 말수가 적어진다.
말이 안통하니까 자신이 부족해보이고 기분이 별로 안 좋아짐을 느낀다.
오팀장님 그 기분을 눈치 챘는지 자꾸 칭찬해주며 격려도 한다.
피곤도 하실낀데 옆에있는 박집사에게도 친근하게 서로 격려한다..지금 생각하면 팀장역활 톡톡히 하는구나!싶고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팀원들 관리하며 격려까지 하시는 오팀장님..저녁을 먹고 오텔에 돌아왔다.
4명이 모여서 사도행전을 읽고 오늘도 저희들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하였다..
오텔방에는 담요가 있는데 돌골족속이 덮고 자는 담요같아 냄새 나는거 같고 도저히 못 덮어 잘거 같았다.
우리가 가져간 침낭2개를 우리는 사용하였다.
19일 아침 세안후 하나님께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사도행전 봉독후 제목을 놓고 4명이서 통성기도를 하였다 .
아침식사는 오텔옆에 있는 우리나라로 보면 해장국집과 비슷한 집인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오텔영감님이 적어준 쪽지를 내니까 수프 두그릇과 빵바구니뿐이다..
여기서도 나이 지긋한 남자분 둘이서 일 하신다.터키는 어디 가나 일하는 사람은 남자이다.
만두처럼 보이는 빵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구집사님이 반대를 하신다.
내심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 서운했지만 참았다.
내맘을 알았는지 주인께서 만두같은 빵을 한접시 주었다 ...잘 먹었다.도마토스프와 녹두스프가 나왔는데 향이 너무 진해서
처음엔 한입먹다가 스푼이 안간다..우리 취향하구는 안 맞다...그렇지만 터키왔으면 철저히 터키 사람이 되어서 배워 가야 겠기에
자꾸 떠 먹으니까 차츰 맛이 익숙해 진다.
19일 아침식사후 짐을 꾸려서 iZMiR을 출발해서 USAK(우샥 211km)으로 가야 한다....................................
오텔옆에 바로 대로인데 로타리이다..
운송회사 지점에서 차표를 구매하면 우샥가는 오토버스까지 태워주는 순회서비스 차가 로타리까지 온단다
또 배낭을 짊어지고 아주 작은 미니버스를 타고 우샥행 버스로 갔다.
우샥행버스에 올랐다.버스는 천천히 눈이 있는 벌판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달렸다
오늘 아침은 처음으로 밝은 낮에 버스로 이동하니까 터키의 풍경을 구경할수 있어서 좋을거같다.
기분은 상쾌하다~
주위가 다 눈 밭이다 저~멀리 띄움띄움 마을이 간혹 보인다.
우리나라 버스와는 달리 비행기처럼 남자 차장이 있으며 2시간 지나면 버스복도에 미니 카를 끌면서 음료,커피 비스켓 같은 간식을 제공한다.
앞에 보니까 팀원 세사람은 잠을 자는거 같다~육신도 심신도 피곤하실만 하겠지..
앞 자리에 보니까 어머니를 모시고 앉은 젊은청년이 있기에 터키어 대화를 해보자 싶은 마음이 발도하여 말을 붙였다.
메르하바! 하면서 서로 인사를 했다.
내 수첩에 적힌대로 알아 듣던지 말던지 터키어로 말을 건네는데 젠장 되 돌아오는 말을 알아 들을수가 있어야지..
서로의 눈빛만 반짝반짝 주고 받으며 대화할려고 서로가 노력을 많이했다.
이름은 귤순인질 나이는25세..
터키어 사전을 찿아서 귤순인질에게 글을 가르키며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터키어로 대답한다
터키말을 하면 노트에 적어서 단어를 찿아서 다른 낱말과 합성시켜서 문장을 만들어 물었다..
귤순인질은 찬찬하며 상냥했으며 끝까지 외국인인 나를 도울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와 나는 마음으로 서로 주고 받으며 서로 웃는얼굴로 서로 친구가 되자고 했다..알카다시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고 전했는데 참 좋아했다.
너희 집에 하룻밤 잘수 있느냐 하니까 방이 비좁아 미안해 했다~
귤순인질이 바디랭기지 쓰는모습 아직 선하다
앞자리에 계신 어머니가 기침을 자꾸 하신다 ..건강하셔야 되낀데..
또 그 뒷자리에 계신 노인장이 말을 건넨다
버스탈때부터 사탕도 주면서 우리보고 사진 찍자고 하더니만~...이름은
터키사람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보다 좀 순박하고 착하다 할까?
이런 착한 사람들 속에 복음이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우리들 생각속엔 시골사역으로 1박을 어디서 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우샥에 도착했는데 오후 3시경 되었을까?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마을로 돌무시타고 간다고 해도 5시가 넘을 것인데 4시가 넘으면 안된다고 교육을 받았으니까..여기서 멀리 갈수가 없는 시간이다..
하나님 어디로 가라고 하시나이까?
대합실겸 식당 한켠에 짐을 내리고 시름에 잠기다가 점심도 못 먹었으니 빵이라도 먹자해서 간단하게 먹은 후 우리 팀은 지도를 펼쳐놓고 의논에 들어갔다.
1안은 CAPADOCIA가 가는 길목인 KONYA(콘야)로 가는 버스를 타느냐이며
2안은 우샥에서 밑으로 있는 조그마한 면소제지 같은 UIubey베르데이로 가느냐인데..
이왕 고생하는거 우리 반대방향인 UIubey로 가서 시골 사역 함 해보자는 오팀장님의 제안에 필자도 가까운곳에 가자는것에 의견이 같음에 따라서 걸어 나와서 UIubey베르데이가 는 돌무시(마을버스)를 탔다
과연 가면 우릴 쉽게 재워 줄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시골이라 오텔도 없을낀데..하나님께서 준비 하셨을거야..
우리는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내심 믿음으로 갔다.
한 30분정도 갔는데 베르데이 마을주차장에 도착해서 손님이 다 내린다
우리도 버스를 내렸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도 모르겠고 말은 안 통하고 갈데가 있는것도 아니고..난처해서있는데 오팀장님이 주차장에 있는 기사분들에게 여기 마을지도를 구할수 있느냐고 하니까 여기는 없고 시청에 가면 구할수 있다고 했다...시청이 어디에 있는지..우리가 아는 그런 시청인지..
고맙게도 우리가 타고 왔던 기사분이 미니버스(돌무시) 시동을 걸더니만 다시 타라고 해서 시청앞까지 태워 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머니를 줄려고 하니까 하니까 “노 머니”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정말 감동을 받아서 어떨떨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우리가 터키의 친절을 경험하고 있다..앞으로 더 큰 친절이 기다리고 있는것을 모른체...
시청문 앞에 예쁜 여직원이 나와서 웃으며 마중을 나와서 우릴 기다리거 있는데 우리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첫눈에 천사같이 아름다운 여직원의 환대에 놀란것이다
아마 버스기사분이 미리 전화를 해 놓은거 같다..
시청이라지만 규모가 우리나라 면 소제지 정도의 규모 인거같다.
직원이 몆사람이 나와서 서로 인사하고 외국사람이 왔다고 반겨주는데.. 또 말이 통해야지~..아~가는곳 마다 답답하고 스트레스받는데...왔기는 왔는데 젠장 서로 말이 통해야지 ..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휴~ 갑갑해.
회화책 펼쳐서 스피치를 해 보지만 알아 들을수 있는 귀가 없기에 답답 하기만 한다.
우리는 시청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하구 차이라는 차를 한잔씩 대접 받는다~..방문기념 사진도 찰영했다
오팀장과 시청여직원과 책을 펼쳐들고 대화가 더듬더듬 이어졌다..
숙박(코낙) 을 오텔에서 하면 안되겠는냐고 하는데 우리는 노“”~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가정집에서 시골체험 하길 원한다 인데..
참으로 그 말이 서로의 문화와 사고가 다르니까 서로의 원하는 것을 돌출 해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나중에 노트북으로 구글에 접속하여 터키어 치면 한국어로 전환하여 조금씩 좁혀 나가는데 그것도 우리의 사고와 차이가 있었다.
그 여직원이 교사택에 가 있으면 자기가 나중에 가겠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우리는 시키는데로 OK했으면 되는데 우리는 교사택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자꾸 시골집을 추천해 줘라고 해서 시간을 좀 오래 끌었다.
겨우 긴 시간 동안 그 여직원과 말을 주고 받았지만 결론이 안 나니까 교사택에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같이 걸어서 1km정도 떨어진 곳에 교사택이 있었다.멀리까지 직접 데려다 주는 친절이 고마웠다
교사택은 방과 후에 어린이들을 교육 하는곳 인거 같고 숙박시설이 있는것을 봐선 선생님들이 기거하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방 두칸을 무료로 사용하라고 한다~ 우리가 바라던 바인데 너무나 뜻 밖에 제안에 감동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다 예비 해놓으셨던 것이다.
그 여직원의 이름은melekturke(멜레킹)이며 긴 머리에 얼굴이 예쁘고 날씬하며 마음씨 또한 천사같았다
어떻게 짜증한번 내지않고 전심을 다해서 예쁜 표정까지 지으가면서 우리를 도울려고 하는 멜레킹이 정말 고마웠다.
우리가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시청업무를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는데 좋아했다.
우린 조금더 깨끗한 환경에서 1박한다는데 기분이 좋았고 짐을 푼뒤 씻고나서 멜레킹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넘어가 어두운데 시청여직원 멜레킹이 왔다.
저녁 먹으러 우리를 데려간 곳이 조그만 식당인데 우리나라로 보면 해장국집 비슷하다.
메뉴는 빵조각이고 생선 구운게 전부이다.~식당(로칸다)
초출한 식단에 식당주인의 친절과 멜레킹의 미소에 저녁을 맛있게 먹을수 있었다.
멜레킹이 내일은 협곡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뒤 멜레킹이 저녁 먹은거 계산할려고 리라를 꺼집어 낸다.
우리가 놀래서 사양하라는 손짖을 했다.우리에게 안내하며 숙박까지 제공한 은인인데..식사비까지...
그 마음씨가 친절이 또한번 보는 순간이다.
보통 우리나라 시청직원이라면 업무적으로 대하고 말것인데 이곳 터키의 시청직원 멜레킹은 달랐다
업무를 마치고 난 후에도 시간을 내어서 우리에게 친절로 다가 온것이다
우리를 감동 시킬려고 작정을 하지않은 다음에야 우리나라 공무원은 이해가 안 갈거같다.
식사를 마치고 캄캄한 길을 여성의 몸으로서 우리를 1km걸어서 우리를 교사택까지 안내하여 주었다.
교사택에 오는길에 멜레킹을 휠것 쳐다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추운 날씨에 끝까지 친절을 실천하는 터키인..추워서 코가 빨개가지고도 미소를 잊지않는 여인..복음이 ~아
면단위의 시골마을에 시야가 뿌옇게 보여 컴컴하다 냄 역겨운 냄새가 많이도 난다.
터키인들의 집은 지붕에 굴뚝이 있다. 굴뚝엔 밤이고 낮이고 연기가 나는게 보인다.
연료를 석탄을 사용하는데 아마 아궁이에 쓰레기도 같이 소각 하다보니까 온 동네가 냄새가 지독하게 날수밖에 없다.
정말 우리나라는 공기가 맑고 환경이 좋은 나라인 것을 알게된다.
이런환경에서 춥고 냄새나는 곳에서 melekturke(멜레킹)은 이곳에서 살아간다.
하나님! 저 아름다답고 친절한 여인에게 복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오팀장님이 고맙다고 명함집과 예쁜 볼펜2자루와 사탕 같은거를 주었다.
melekturke은 내일 협곡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밤길에 혼자 가기가 마음이 안 놓이는지 미니 랜턴도 주었다.
여행이 초보인 우리팀은 배낭의 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공동물품 같은걸 챙기지 못했다.
담에 공동물품을 가져간다면 팀별 골고루 나눠서 사역에 가져 갔으면 좋겠다.
멜레킹이 가고난후 네사람이 모여서 말씀을 읽은후 하나님께 진실로 마음에 와 닿는 감사기도를 하였다.
모처럼 깨끗한 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수가 있었다.
20일 아침.........................................................................
20일새벽에 바로 가까운 곳에서 이슬람사원에서 흘러나오는 주문 같은거 소리에 잠을깼다.
세면후 우리팀원들도 말씀봉독후 기도하며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melekturke에게 전화가 왔는데 오후에 만나자는 것이다.
우리는 오전에는 시간이 있기에 동네 한 바퀴 돌자고 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얼마나 기온이 차가운지 숨쉬기 조차 힘들 정도의 기온이다.
모자를 안 쓰고 나온게 후회 되었지만 여성팀원들도 있는데 절대 안춥다고 꽁을 쳤지만 귀가 시리고 추운것은 사실이다.
이슬람사원 앞을 지나서 갔는데 저 앞에 또 굴뚝 같은게 있는데 이슬람사원이 있었다.
이런 면 소제지에도 이슬람 사원이 몆개가 있는 거 같다
터키에 이슬람사원이 변하여 예배드리는 교회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네를 한바퀴 둘러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빙 둘러서 어젯밤에 저녁먹었던 식당앞에 오니까 학생들이 다섯명 정도 있어서 카메라를 보이며 포토 을라으프 하니까 중학생쯤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를 지르며 우르르 뛰어왔다.
사진을 두 세판 찍으니까 여학생들도 몆명 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무척 좋아했다.
풍선 가방을 가져갔는데 내친김에 추운것도 잊어 버린체 풍선을 접어 주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함성을 지러면서 펄쩍 뛰었다.
신이나서 풍선을 빠른 손놀림으로 접어 나눠주는데 시청사쪽에 가셨던 오팀장님이 오셔서 애들에게 축구를 하지 않겠는냐 고 하며 말은 통하지 않고 발로서 차는 시늉을 하니까 애들이 알아 듣고 좋다고 하면서 학교에 가자는 것이다.
애들과 우리들 네 사람은 추운것도 잊은체 1km이상 떨어진 학교를 향해서 걸어갔다.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또 한번 놀라서 뒤로 나 자빠질뻔 하였다.
학교의 그 많은 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모여 드는데 애들 때문에 정신을 잃을 정도이다.
외국인이라고..똑 같이 생겼는데 갸들 눈에는 신기해 보였는가 보다
뭘 어쨌는지 지금도 가물거림의 기억을 더듬어서 글을 쓴다.
그때부터 시작된 풍선접기는 그렇게 막이 올랐는데 혼자서 접으니까 한계가 있지만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접어서 애들에게 나눠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포토~촉성사진 뽑는 카메라 가져갔는데 사진을 찍어서 뽑아주기에도 바빴다..
터키에서 우리가 이렇게 인기있을 줄이야..TV에서 보면 인기연예인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것과 같은 장면이다..
그사이 1층에 있는 교장선생님은 챠이라는 홍차를 준비해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풍선을 한 개라도 더 접어야 되기에 갈 틈이 없었다
오팀장님과 여팀원께서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담소를 나눴는데 아마 말이 잘 안통하지만 회화책으로 서로 주고 받으며 차를 마시며 웃엇다.
그사이 애들을 잠시 뿌리친체 교장실에 합류하였다.
오팀장님의 명함이 진주시청 공무원으로 되어있으니 더욱 공감이 가는 모양이다.
다시 먼저 일어나 애들이 기다리기에 사과모양,푸들,사랑의 하트모양,칼모양 같은거를 만들어 주었다,
터키어린이들 (초등,중등)정말 눈빛이 초롱 초롱 한게 순수하고 귀엽다.
저들에게 정말 무언가 해주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하나님아버지 저들에게 정말 하나님을 알게 허락 하옵소서..
옆에서 보니까 오팀장과 우리 팀원들 열심히 애들을 스다듬어 주며 기도하신다.
너무 귀여우니까 품에 안아주며 기도 해준다..
터키사람들 정말 친절하고 영이 맑고 순수하다.
오래 있다가는 애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거 같아서 가야 될거 같았다.
교장선생님과 옆의 선생님과 사진찰영을 한후 작별인사를 하였다
애들도 손을 흔들며 아쉬워 하였다.
정말 우리가 반가운 환대를 받고 돌아서는 그 기분 이루어 말할수 없지만 다시 또 언제 이곳에 오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학교를 나오는데 영감님 한분이 친절하게 저희를 다른 곳으로 안내 하신다.
학교 바로 뒤 500m 떨어진 곳에 규모가 아까 보다는 작은 학교가 또 있었다.
실내 체육관 비슷한거 같은데 탁구장도 있고 한쪽에는 급식도 하고 다른 한쪽에는 유치부 어린이들 교육도 하고 위층에는 교실도 있는거 같다.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하던 그 영감님 이름은 가디에르보오야드씨 027-6716-2779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알고보니 ~..55세
터키사람들은 젊었을때는 미남 미인으로 보이지만 좀 빨리 늙는거 같다..공기도 안좋고 물도 안 좋지만 담배고 많이 피워서 인가?
애들이 탁구치고 있는데 우리 오팀장님이 그냥 지나 칠수있나..한 게임 해야지~
학생들과 한게임 하는거 보구 있는데 가디에 르보오야드씨가 따라 오라 해서 지하로 내려갔는데 석탄을 화로에 샆으로 넣는다.
석탄을 난로에 넣어서 학교에 희타를 데우는거 같다
사진한 캇트찍고 1층으로 올라와서 애들에게 풍선을 접어 주었다
저 멀리 쳐다보구 있던 급식하는 아주머니가 우리들에게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한다.
학생들 먹는 급식 을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는데 밥이 있었다..아주머니 반가운 마음에 잡고있던 주걱에 힘이 들어간다.
별로 맛이 없어 보이는거 같아서 조금줘라 했는데 많이도 퍼 주신다..
큰일났다..버릴수도 없구 그런대로 먹을만 했지만 한국의 밥하고는 다르고 반찬도 없기 때문에 서로 내밥 좀 먹으라고 야단이다.
빵에다가 우유 한개에 오랜지 한개 스푸와 프실한 밥~ 다 먹으니까 배가 부르다~..ㅎ
실컷 얻어 먹고 인사를 한후 가디에 르보오야드씨와 밖으로 나오는데 또 따라 오라한다.
어디로 가는도 모르고 일행은 따라 가는데 벌써 우리는 가디에 르보오야드씨와 많 친해져 있다.
가디에 르보오야드씨는 어린이 처럼 마냔 즐거워 하며 천진난만 하시다
“튜르큐에 촉 규젤”터키는 아름답다~라고 인사한다
“벨 터키세비요룸”터키를 사랑한다~고 했다.
가디에르보오야드씨는 특별히 코렐리임을 좋아하며 반기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전쟁때 아버지(바바)가 우리나라에 참전병으로 갔었다고 한다.
한국 전쟁때 터키병사들을 유엔군으로 와서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는데 순위가 3위로서 군사를 많이 파병 했다고 한다
터키사람들은 한국사람들 오면 참 반긴다.~피를 나눈형제의 나라 라고 한다.
도움받은 우리나라 국민들 은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살아 가는데 도움을 준 터키 사람들은 아직까지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가디에 르보오야드씨는 그래서 우리 일행을 더 반가워 하는지 모르겠다.
서로 웃으며 가디에 르보오야드씨를 따라갔는데 이슬람사원 앞으로 가는게 아닌가?
마침그때 사원에서 으~으~흐~하는 스피카 소리가 나온다.
우리일행은 그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하나같이 생각하기를 우리일행을 이슬람사원에 데려 올려고 하는구나!로 알았다.
그래서 난처한 얼굴표정을 지으며 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가디에 르보오야드씨는 막무가내 였다.
손짖을 하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너무 친절하였기에 한번 가보자고 의논후 따라가는데~아뿔사 우리가 좀 오해를 한거 같다.
가디에 르보오야드씨의 집에으로 가는길이 이슬람 사원앞 골목길을 통해서 가는 길이기에 그 앞을 지나 가야하기 때문에 오해를 한 것이다.
우리 일행은 조금 더 걸어서 길가 옆 아담한 자기 집에 와서는 들어오라고 했다.
밖은 추운데 집안에는 훈기가 있었다.
집에 계시는 자기부인을 소개하고 잘 생긴 대학생 아들을 인사 시켰다.
챠이라는 홍차를 대접했다.
쇼파에 앉아서 모두 기념찰영을 한후 방마다 구경을 시켜 주었는데 한쪽 방에는 훈기가 없는 차가운 방이 있었는데 사진이 벽에 쭉 걸려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여 한 고인이 된 자기아버지 사진을 가르꼈다.
우리팀원들은 속으로 기도한 후 일어서서 가족을 향해서.. 너에게~..세브키(사랑)을 주노라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를 불렀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며 나오는데 마중한다고 또 동행을 하신다.
교사택까지 가면서 서로 장난을 친다~“차부차북”하니까 빠른걸음 흉내를 내고 “야바쉬”~느림보걸음 흉내를 내었다.
샤(오른쪽)샤하면 온른쪽으로 도는 흉내를 내면 서 웃었다 숄(왼쪽) 도우(동쪽) 규레이(남쪽) 바트(서쪽) 왼(북쪽)
“비르디키카”(잠깐만) 투트팬 베라베르 체게빌리 르미이임~같이 사진찍을수 있을까요.이렇게 잘 통하지도 않은말을 주고 받으며 멋적어 웃었다.
교사텍에 와서 짐을 정리하고 일정에 대해서 의논 하였다.
UIubey에서 1박을 더 하고 내일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게 좋지않을까 생각했는데 시간맞추기가 어려울것 같았다
22일 CAPADOCIA PALACE (갑바도기아 필립스) 4시까지는 호텔도착해서 1팀과 3팀이 합류해야 되는데 여기서 1박을 더 하면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데 시간적으로 도저히 마출수 없기 때문에 오늘 밤차를 이용해서 KONYA(콘야)까지는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조그만 시골 UIubey 사람들과 정이 들어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떠나자는 결론을 내리리까 너무 아쉬웟다.
조금있으니까 여직원 melekturke이 시청사 소속 승용차와 기사분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자동차를 타고 시청으로 갔는데 직원들과 인사 후 분위기가 조용하니까 melekturke이 나에게 풍선을 접어 줘라고 해서 좋은 기회다 싶어서 풍선을 접어서 직원들에게 선물했는데 금방 분위기가 좋아지고 다들 좋아했다.
보답으로 터키 전통 음식이라 해서 챠이란 차와 3종류의 음식을 준비하여서 먹으라고 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어서 배가 불렀지만 먹음직 스럽게 보이는 음식을 마다 할수 있겠는가?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며 맛을 음미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밖으로 나와 시청사에서 제공하는 승용차를 타고시청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는 협곡으로 가서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가는데 사방이 눈밭이고 공원으로 가는 차길은 바닥이 얼어서 번들하게 얼어있는 빙판길 위로 운전도 잘 하신다.
협곡은 정말 눈을 의심할 정도로 크며 저 멀리까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발밑에는 낭떠러지로 저 밑에~ 저멀리~보인다 물이 있는 곳은 아니고 차길도 보인다.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자동차를 타고 마을 버스 주차장까지 가는데 이제 멜레킹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마을 버스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친절한melekturke 과 막상 헤어질려니까 발걸음이 안떨어진다
이국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다른 세상에 사는 멜레킹이지만 처음보는 외국인을 얼마나 친절하게 했던가? 다음에 꼭 신세 갚으러 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출발하는 돌무시가 바로 있어서 한사람씩 돌아가며 이별 스킨쉽을 멜레킹은 해준다.
내차레가 되어서 귀에대고 속삭였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국에 돌아가면 당신을 위해서 예수님께 기도 하겠습니다.
터키어로 짧은 몆 마디였는데 의외로 눈빛을 반짝인다.
꼭 이말은 해주고 싶었다.~아마 우리가 가고난후 예수믿는 사람인줄 알 것이다.
돌무시를 타고 오는데 고등 학생들이 있었다
버스 뒤쪽에는 남학생들이 있고 중간쯤엔 여학생 둘과 다른 또 한명이 각각 자리를 다르게 하고 있었다.
오팀장은 남학생들과 재미나게 터키어 단어로서 대화를 하고있었다.
필자는 여학생둘과 사진찰영을 했다.
학생들이 화장도 한거같고 좀 성숙하며 거리낌이 전혀없는 아주 발랄한 청년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눈짓하며 카메라를 보이며 포토 을라으프 하니까 기다렸다는듯이 둘이다 다가와 내옆에 서서 자기얼굴들을 내 얼굴옆으로 다가와 포즈를 취한다.
사진을 받을것도 아닌데 사진 찍는걸 터키 국민들은 좋아 한다는 것을 알았고 국민들 천성이 순박하고 착하다는 것을 느낀다.
말은 서로 안 통하지만 정말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눈빛으로 말하며 다가옴을 느낀다.
나중에 알았지만 혼자 있던 그 여학생 이름은 미샤였다
아까부터 관심을 외국인인 나에게 보이며 미소를 짖는다.
포토 을라으프하면서 웃으니까 냉큼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수첩을 내밀자 대뜸 페이스 북에 있는 친구찿기 주소를 적어주엇다~..
다시 빠른 동작으로 다가와서 자기휴대폰으로 우리 네 사람과 같이 자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더니 버스가 정류장에 서니까 손으로 흔들며 잘가라고 하며 급히 내렸다.
야~...정말 터키의 미래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학생과 비교가 되지 않을수 없었다.
정말 개성이 있어 보였고 조금도 어색해 보이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국민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터키 국민들 다 감명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말 터키 사람들이 좋다.우리나라나사 람들 좀 각성 해야겠다.
터키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친절하다~ 친절(나직)
표정들이 다 밟아서 좋았고 솔직히 터키 사람들이 좋아졌다.~이 나라에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람들 매력에 성품에 끌리기 때문이다
공중도덕은 좀 떨어지는거 같다
무질서는 아니지만 그 가운데 자연스러우면서 조용한 질서가 보인다.
터키사람들은 담배를 많이 애용 하는거 같다~
휴개소에 서면 여기 저기서 담배연기에 ....여자도 남자도 거리낌 없이 피운다.
저녁 또는 아침무렵이면 지붕굴뚝에도 연기가 나니 온 하늘이 뿌옇게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나이에 비해서 겉 늙는다고 할까..나와 나이가 같은데도 할아버지로 보인다.
내심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나라 사람들은 물도 안 좋고 공기도 안 좋고 담배를 많이 피우기 때문에 호흡기환자가 많을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임을 깨닿는다 우리국민들은 다만 남에게 피해를 많이 주며 계산적이고 약삭빠르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여행담을 이어가야 되겠다
우리를 태운 돌무시는 전날에 왔었던 USAK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KONYA(콘야)가는 버스표를 사야했다~
현제시간이 오후 6시20분경인데 8시30분에 있다고 한다.
여기는 무슨 대리점처럼 각 운송회사 사무실이 총총 붙어 있다.
밖에 혼자 살짝 나와서 다른회사에 알아보니 다른 KONYA(콘야)버스가 7시30분에 있다고 한다.
기쁜 마음으로 오팀장에게 알리니 오팀장께서는 말이 안 통하는가운데 여기 운송회사 직원과 대화한다고 많이 애를 먹였는데 미안해서 다른회사 버스를 타고 갈수 있겠냐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만 했다.
내심 빨리 가면 될낀데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되는데...
이런땐 별거 안닌거는 신경을 끄고 팀장님 말에 순종하는게 최고이다 싶어 순종을 했다.
운송회사 직원은 그 마음을 알았던지 여행객인 우리에게 챠이라는 홍차를 대접 해주었다.
또 KONYA(콘야)에 도착하면 가격도 괜찮은 오텔도 소개 받았다
챠이라는 홍차는 예쁘게 생긴 나선형의 유라컵에 발간 포도주같은 색깔의 홍차인데 터키인들이 많이 애용하는 차이다.
터키의 추운 지방에는 공통적으로 챠이를 마시는 것을 보았다
손님 접대용으로도 많이 사용하며 저희들 일행도 마셔 본 차 라서 익숙해 져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가운데 버스가 도착했다.
자석은 1,2~3,4번 운전석 바로 뒷 자리와 조수석 맨 앞자리인데 ...처음엔 좋아 보였는데
다리를 펼수 없을만큼 좁았다..큰일이다 비 좁은 좌석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버스탈때 맨 앞 자리는 좋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단기사역 가실분들은 참고하여 주시길 바란다.
6시간 이상을 타고 가야 하는데...할수없이 그냥 잠을 청해본다.
어느휴게소에 가서 버스 뒤쪽에 보니까 빈 자리가 몆 개보여서 차장에게 알아듣지 못한말로 애기했는데 못 알아들었는지 소식이 없다.
운전자는 운전하면서 승객을 태운체 담배를 피운다..안 그래도 좌석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있는데 앞에서 담배냄새 까지 풍기니 기분이 좀 상했다.터키사람들 다 좋은게 아니구나..싶다~터키를 알아가면 갈수록 단면도 보이지 않을까 싶다.
터키의 좋은 감정이 어느부분은 무너지는 순간이다.
역시 문화가 다르니 이해를 해야지만 승객이 있는 버스에 운전자가 담배 피운다는건 이해 하기 어렵다.
늦은 시각에 KONYA(콘야)에 도착했다 .
버스에 내리니까 밤 공기가 차가웠다
탁시가 기다리고 있는곳에 가서 택시 기사에게 오텔이름을 보여주니까 타라고 했다.
탓시를 타고 15~20분정도 달려서 알려준 오텔에 도착 하였다
카운터에서 접수를 하고 방으로 오텔직원이 안내를 해준다
1달러짜리를 바꿔놨기 때문에 1달러 주니까 좋아했다
먼저 짐을 풀고 모여서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말도 할줄 모르는 우리를 인도하셨던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오텔이 보통급에 해당하는데 이불이 맘에 안 들었다 .
징기즈칸이 덮는 이불도 아니고 뭐 이런 담요가 있나 싶어 도저히 덮을수가 없었다.
가져간 침낭으로 잠을 청해서 자다가 너무 추워서 잠을 깼는데 희타를 끈 모양이다
할수없이 덮고 있는 침낭 위에다 징기즈킨담요를 끌어다 침낭위에 덮어서 잤다.
21일:아침에 샤워를 했지만 몸이 찌푸르한게 감기증상이 있었다.................................................................
아침역시 입맛이 없었다 .
아침에 경건의 시간을 마치고 배낭을 챙겨서 출발을 서둘렀다.
오팀장님 역시 팀장 답다
어젯밤에 늦게 도착했던 콘야주차장까지 택시를 안 타고 돌무시를 타고 갈려고 카운터에 문의하고 있었다.
탁시비를 조금이라도 아껴 볼려고 하는 마음인거 같다.
돌무시(마을버스))가 도착하여 탔는데 비좁은 의자에 앉아서 자기몸 덩치만한 큰 베낭을 안고 있을려니까 여간 힘든게 아니였다.
출근 시간인지 이 작은 미니버스에 사람들 자꾸 타고 내린다
어제 밤에 도착했던 KONYA(콘야)주차장이 보이는 곳에서 내렸다
모처럼 햇볓이 있는 낮에 버스를 탄다니까 모두가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럴만한게 마음속에 부담감이 싹 없어지는 것이 결실이 있던 없던 3일간의 시골사역이 끝나고 이제는 다른팀과 합류지점에
도착하면 되니까...모두 마음속에 즐거운 마음이 해방감이 드는것이 사실이다..
그간 지내온 3일이 정말 꿈만 같았지만 할 이야기는 많은거 같다.
우리팀 네사람은 생사고락을 같이 하여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말씀이 떠 오른다
같이 동거함으로서 그 사람의 장,단점을 보았고 더 이상 숨길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이 완전히 바닥을 다 보인 상태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며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지나간 일이지만 우리 팀원들 교회에서 만나면 정이 들었는지 정말 반가워진다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며 서로를 알아 간다는 거와 같은 맥락이다.
서로가 쬐끔 이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가운데 하얀 눈밭에서 사진찰영을 한후 KONYA(콘야)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제 말은 안 통하지만 지도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행을 다닐수 있는 능력으로 훈련되었다.
모처럼 낮에 이동하는 버스에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감상을 할수 있었다.
계속 달려도 하얀 눈밭 이였으며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며 가끔 나무 몆 그루씩 보이며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처럼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것이 아니라 땅이 넓어서 집이 띄움띄움 있었다.
저 광활한대지에 놀고 있는 땅이 너무 많아 보였다.
이제 버스는 달려 갈수록 눈은 보이지 않고 차츰 흙이 보이는데 저 넓은 땅에 기계화가 되어 경작에 들어가면 대단한 영농이 될것이다
주식이 빵이라서 우리나라 처럼 논은 보이지 않고 밭 농사와 과일농사가 전부인거 같다.
버스안에 참신한 청년 차장이 간식을 나눠준다.
버스는 달려서 드디어 갑바도기아 근처에서 정차하여 우리를 내리라 한다,.
이유인즉 이 버스는 시내에 경유하지 않고 바로 다른 곳으로 가며 그대신 자기 운송회사에서 제공하는 미니 차량으로 갑바도기아 시내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독일 벤츠차량인데 터키에는 찝차처럼 생긴 이런 승합차량이 많이 다닌다.
그차를 타고 내려주는 곳이 갑바도기아 시내까지 갔는데 갑바도기아 필립스오텔이란 메모를 보여주니까 내리라해서 내렸는데 오텔까지 가는 돌무시를 타고 가야 된다고 한다.
마침 곤야에서 같이 타고 온 손님이 우리와 같이 내렸는데 버스안에서 오팀장하고 애기를 나눈 가족이인데 우리와 같은 방향이란다. 갑바도기아 필립스오텔 부근까지 간다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눈앞에 많이 다니는 돌무시를 어느 것을 타야 되는지 모르는데 같은 방향의 동행이 있으니 반가울 수밖에..돌무시가 와서 그 가족일행과 우리들은 몸을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20분 달려서 드디어 CAPADOCIA PALACE (갑바도기아 필립스) 오텔에 도착 하였다.
동행 하신분이 오텔 앞까지 안내 해주었다 그분의 어린딸이 참 예쁘서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오후 3시경쯤 되었다 시간이 1시간 가량 남아서 점심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텔 근처식당에 들어가서 모처럼 이것 저것 시켜서 먹으며 그간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1팀에 전화 해보니까 이동수,이창훈팀은 어젯밤에 도착 했단다.
경비를 아낄려고 밤에 도착해서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는 긴장감을 풀고 편한 마음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음식 값은 비싼거 같다~
음식 먹은후 써비스 주는거 처럼 자꾸 차를 주문하기를 청해서 주문했는데 나중에 가격에 다 들어 있어 기분이 별로였다
터키 가기 전에 들어서 알고는 갔지만 음식점 써비스는 별로였다 ~
차 한잔 물 한잔까지도 돈을 다 받아 챙기기 때문이다. 비싼 댓가를 치른후 호텔로 갔다.
잠시 팀원들과 모이기 전에 객실 방을 잡고 들어 갔는데 역시 박선교사님께서 잡아 놓으신 오텔이 이때 까지의 오텔보다는 마음에 제일 들었다.
1층 카운터 옆에 돔같이 생긴 아담한 까페(식당)이 있는데 1팀과 박선교사님께서 계셨다.
며칠만에 보지만 얼마나 반가운 얼굴들인가?
아마 힘든 기간을 지내고 며칠 고생을 한 탓 일것이다.
모두 할 말이 많은가 보다~ 팀원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다.
3팀이 좀 늦는다고 한다~3조는 안목사님과 자매 2명과 청년1명 이다
전화 하니까 아직 악샤라에도 못 왔다고 한다.
할수없이 먼저 오텔옆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 하여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후 일어 설려는데 3팀이 도착했다.
식사하라고 하고는 먼저 먹은팀은 CAPADOCIA PALACE 돌아와서 사역보고 준비를 기다렸다.
조금후 천정이 돔같이 타원으로 생긴 지하같은 느낌이 드는 아담한 까페에 다 모였다.
잠깐의 선교사님의 멘트후 1조부터 이창훈집사가 다녀온 경과 보고를 하였다.
다음은 2조 차례인데 팀장께서 사역보고는 여성들이 격이없이 보고 들은 대로 하면 좋겠다고 해서 여팀원들이 할줄 알고 필자도 내심 마음의 준비를 못 하였다.여성들 역시 마음의 준비를 안했는가 보다~..
2조가 좀 멋지게 사역보고를 해야 되는데...좀 아쉽다는 마음이 있다.
그간에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서로 이해 할려고 노력을 많이 한건 사실이다.
팀원들 간에 불화가 발생하면 사단의 장난에 놀아 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인내하였다
박 선교사님께서 시골사역 떠나기전 당부말씀이 "우리가 여기에 무엇하러 왔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하라고 하셨다.
1조에서 3조까지의 사역보고를 한고 기도 한후 각자 숙소에 들어가 모처럼 편안한 단잠을 잘수가 있었다.
22일 아침이 밝았다....................................................................................................
지난밤은 모처럼 푸근하게 수면을 취한 탓에 몸이 가뿐한데 콧물이 줄줄 나온다.
감기가 들었기 때문이다
KONYA(콘야)에 오텔에서 너무 추웠기 때문 이었다.
막바지에 감기가 들다니 옆에있는 박집사가 더 건겅체질 인거 같다
필자는 평소에 달리기도 해서 내심 제일 건강하다고 했는데 감기가 들다니~..
아침에 경건의 시간을 위해서 호텔1층 까페겸 식당에 모였는데 필립스오텔에는 한국인 (크리스찬)들이 많이 애용 하는거 같다
필립스오텔에서 부산에서 온 학생이랑 서울서 오신 목사님부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내심 참 좋아 보였다...우리는 여기 오는것도 큰 마음 먹고 왔는데 다들 여행 쉽게 다니는거 같아서...대학생들도 자기들끼리 여행을 ..딴 세계 사람들 처럼 나와는 거리가 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내심 생각 해본다.
나이가 많으면 세계여행도 힘들거 같고 나이 더 먹기전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 해본다.
호텔1층 까페겸 식당에 모였는데 안 목사님께서 지난 밤을 뜬 눈으로 보내셨다고 한다. 방이추워서 ...감기 들어셨다.
우리 방은 괜찮았는데 오텔에서 새벽에 희타를 꺼는 것인지 방이 매우 추었다고 한다..
박선교사님의 인도로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필립스오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는데 귀를 의심했다.음악이 나오는데 교회 음악이 흐른다.~
이슬람지역에서 이런 음악을 듣다니~..
아마 밤에 카운터에 근무하시는 담당자가 우리를 생각해서 베려를 한거 같았다
오늘은 터키에 와서 처음으로 가이드가 안내하는 여행을 하는 날이다.
렌트카에 가이드가 있는 갑바도기아 여행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즐겁다.
시간이 되니까 여행사에서 렌트카가 도착하여 모든 짐을 실은후 갑바도기아 필립스 오텔을 출발하였다.
CAPADOCIA는 공통성이 눈에 보이는 것이 버섯같이 생긴 모양의 탑과 절벽 같은곳에 동굴을 만들어서 수도사들이 수도하던 곳이 많다.
4세기에서~7세기는 수도사들의 시대였으며 7세기부터~11세기는 성상파괴 운동이 일어나며 우상숭배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11세기~17세기는 이슬람숭배 공동생활을 하였던 시대이다.
렌트차는 높은곳에 가서 전경을 구경하기 위해서 세웠다.
처음보는 전경에 놀라고 눈이 휘둥거레 졌다.
기념사진을 찰영한후 다시 출발하여 간곳이 2만명이나 땅속에서 살았다는 지하동굴 교회를 갔다.
지하동굴 교회는 4세기 이전과 이후시대 인거같다
관람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 걸리지만 대략보면 1시간 정도면 될거 같다.
지하 8층까지 있다는데 조명은 해놨지만 조금 컴컴한 곳을 고개 숙여서 뒤따라 지하로 내려 갔는데 가는 길목마다 큰 멧돌 같은것이 있었는데 아마 밖에서 로마군이 쳐들어오면 맷돌을 굴려서 굴문을 막아서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면 갈수록 더 신기하고 어떻게 2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동굴에서 살았을까?
하는 생각과 로마군의 의 추적과 압박을 피해서 동굴을 파서 지하로 숨어 들은것이 지하동굴 이다.
순교하면 되겠지만 믿음을 지키며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뿌리의 줄기처럼 각 방향대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동굴이 있기에 앞사람을 놓치면 못 나올것만 같았다.
내려가다 보니 십자가처럼 양사방으로 길이 있는 큰 동굴에서 기념찰영을 하였다.
때로는 고개를 숫여서 다니는 길도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높이 정도의 큰 공간이 많이 있는데 정말 놀라지 않을수 없다.
호미 같은 것으로 긁어서 동굴을 어떻게 팠을까?또 파낸 그 많은 흙은 외부에 표시 나지 않도록 어디로 운반하여 버렸을까?
2만명이나 되는 사람들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포도즙을 짜는 틀이 있고 애기를 낳아서 키웟고 동굴 안에 교육하는 곳(학교)가 있고 조리하는 곳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삶이 였는지 말해주고 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세상의 삶을 포기했던 저들의 신앙에 머리가 숙여진다.
무덤이 있는곳 시신은 없지만 관 모양처럼 바닥을 파서 장사를 지낸거 같다.
일제히 거기서 통성기 도한 후 찬양을 했는데“ 주님가신 그길을 ..나는 주님을 따라 가리라~ 란 곡을 부르는데
마음의 각오를 해 보는것이 요단강을 건너리라 마음을 다짐 해본다.
여기 오신분들 중 이곡을 부르고 있지만 정말 주님따라 가기는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숙연한 마음으로 동굴을 나왔다.
동굴밖에 나오니까 별다른 세상에 다녀 온거 같았다~동굴에서 기도 하였는데 희미해 지지않길 애써 본다.
다시 차에 올라서 이동 한 곳이 흰눈이 와서 운치가 더 좋은 버섯모양의 풍경앞에서 차를 세워 사진을 찌고 모처럼 애들 처럼 좋아했다.
눈(카르) 비(야물) 온 사방을 둘러 보아도 카르뿐이다
다시 찿아 간 곳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가는데 수도사들이 수도하던 동굴을 구경하게 되는데 동굴이 한 두개가 아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풍경과 버섯모양의 돌기둥 같은거 보구 색 다르게 보았는데 온 사방이 그런 곳만 보이니까 더 이상은 구경거리가 못 되었다.
몆 년후에 다시 보면 몰라도 ...하루정도 있으면 싫증을 느낀다고 할까..
자기들의 신앙을 고집하며 파당을 이루며 근거지를 이 동굴에서 수도하며 보냈다고 한다.
동굴 벽과 천정에 그림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부분을 그림으로 예)베드로의 그물 내려서 고기잡아서 올리는 모습.천사들 모습이 있는데 이슬람이 들어오면서 그림을 훼손시킨 부분이 있고 회 칠한 것도 있다.
요사이 이 그림들을 보기 위해서 세계각국에서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그 대표작이 성소피아 성당이라 할수있다.
카메라 찰영이 금지 되어있다. 카메라 후라쉬를 사용하면 그림의 색깔이 탈색된다나?
그림을 훼손할때는 언제고 이제는 관광수입을 올리기위해서 안달을 하다니~..괘심한 마음이 든다.
사람이 지켜보지 않는 곳에선 사진을 찰영을 했다.
정말 좋은 그림이 있는 동굴에선 사진을 찍고 싶지만 한 캇트도 못 찍었다.
우리일행을 태운 자동차는 단지와 접시 만드는 곳에 세워서 장인이 만드는 단지 만드는 것을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예쁘게 보였지만 아무도 사지 않았다
또 찿아간 곳이 터키석으로 만든 보석 만드는 곳에 갔는데 터키석으로 만든 반지와 목걸이 팔찌 같은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격이 꽤 비싸다..
점심은 정말 동굴을 파서 만든 로칸다(식당)인데 우아하고 품위가 있는 아늑한 곳이였다.
직원이 카룬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기념찰영을 하였다
셀기에란 항아리 케밥은 맛이 있었다~그외 바클라바,슈트라치(쌀*우유) 쾌펙 개등의 음식들
점심을 먹은후 ~
선교사님은 내려서 비행기로 이스탄불로 가시고 우리 일행은 밤차(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입성을 해야 한다.
시간이 참 어중간해서 악샤라에 가기전 어느도시에 렌트카는 세워서 1시간30분 정도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라고 해서 들어
갔는데 진주의 이~마트보다는 조금 작은데 건물의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터키는 남자가 주로 일을 하며 돈을 번다~그래서 경제권은 남자에게 있다.
시장에서의 난전에서도 주로 남자들이 일하고 있었고 식당에서는 주방에서 셔빙까지 모두 남자이다.
그런데 좀 발전이 되어있는 곳에는 정복을 입고 쇼핑 같은 곳과 서비스업 같은데는 여성들이 일하는것을 볼수 있었다.
쇼핑센터에서 1시간30분을 시간을 보낸후 렌트카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셀프식으로 일본에 처럼 접시에 담은 음식을 담은접시를 계산대에서 무게를 측정 한 다음 각각 계산을 하는데 음식 값이 비싸다고 한다.두 접시 정도만 가져와야 되겠다.
세 접시를 정도 가져가면 쾌 비싸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녁을 먹은후 렌트카는 악샤라에 내려 주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밤새 달려서 아침에 도착 하는거 같다.
악샤라 대합실에서 버스출발시간이 1시간 가량 기다려야 한다.
어린이가 있어서 풍선을 접어 주었는데 그것이 또 발단이 되어서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여드는 군중들에 싸여 내심 놀랬지만 웃으며 침착하게 풍선을 접어서 나눠주기 바빴다.
꼭 가져가야 된다며 줄을 서는게 아닌가?
터키사람들도 있지만 외국인도 좋아하네여~..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때 3팀의 팀원들은 기도하면서 생각 해낸것이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찬양을 터키어로 불렀다.
조금있으니까 경찰이 두명이 왔다
내심 우릴 잡으러 왔는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하트풍선 두 개만 접어줘라고 사정을 했다.
내심 웃음이 났다~..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이곳 사람들 정말 순수하고 재미있다..
한창 정신없이 풍선 접는다고 정신이 없는데 버스출발시간 다 되었다고 분주해진다.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 놔두고 어떻해...세사람에게 풍선을 더 접어주고서야 바쁘게 버스에 오를수 있었다.
버스는 자기멋대로 세워서 손님 태우고 기름주유하고놔서는 20분이상 정차하고 움직일 생각은 않고 ...그렇지만 어느누구하나 큰소리 치는 사람이 없었고 불만하는 사람이 없어서 신기했다.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과 대조적이었다.
손님을 태운체 담배를 피우는 운전자와 밤에 이동하는 버스는 자기 편한대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이곳 저곳 다 들려서 손님 태우는것은 분명 문화의 차이가 있는거 같다.
잠을 처해서 몆 번이나 눈을 붙였다거 떴다가 하다 보니 아침쯤 되었을때 이스탄불에 도착하였다.
23일: 아침~................................................................................................................................................
기온은 차가운데 이스탄불 버스회사 주차장에 내려서 순회 미니 버스를 30분이상 기다려서 타고 교회옆에 있는 첫날에 숙박했던 MECiDiYEKOY HOTEL에 짐을 푼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한후 12시경 모여서 교회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메뉴가 참 좋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이때까지 먹어본 터키음식 중에 제일 맘에 드는 집이다.
점심을 먹은후 아피엘 엘리니제 사을륵~(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였다.
점심을 해결한 후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도착감사예배를 드렸다.
갑자기 선교사님께서 터키까지 왔는데 성소피아 성당을 구경해야 되않겠는냐며 오후5시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시간이 좀 촉박한거 같다..모두 서둘러야 겠다
승혁선생님을 가이드로 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서 에미메뉴 광장으로 갔다.
에미메뉴광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이제 이곳은 눈에 익어 있었다.
터키와서 제일 많이 온 곳인데 에미메뉴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다리 건너오면 아시아쪽인데 역시 좀 거리가 지저분하다.
지하통로를 지나서 메트로뷰스(전차)를 타고 성소피아성당으로 향했다.
메트로뷰스를 내려서 빠른 걸음으로 겨우 도착했는데 성소피아성당 문은 굳게 닫쳐 있었다 .
이유인즉 오후 4시까지 입장 시킨다고 했다.. 문을 닫아서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성소피아 성당 바로 건너편에 우뚝 서있는 이슬람사원이 있는데 꽤 규모가 다른 사원보다 커 보였다
성소피아성당과 맞은편 이슬람사원 중간지점에 벤치가 있는데 사진 찰영하기가 좋은 지점이였다
바로찍으면 성소피아성당이 보이고 돌아 앉아서 찍으면 이슬람사원이 사진배경이 된다.
박물관으로 향했는데 거기서는 월요일은 아예 문을 안 여는 날이라 한다.쉬는 날이라 한다.애써 왔건만 구경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멕도널드에 들려서 간단한 빵조각으로 저녁을 해결했는데 맛이 별로였다.
남자화장실 변기는 키가 큰사람 위주로 만들었는지 소변기가 괸장히 높이 붙어있다
비데기는 스위치방식이 아닌 수도 꼭지 돌리듯이 꼭지를 틀어야 된다.
역시 우리나라가 전자제품과 it 부분은 상당히 앞서 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교회로 돌아와서 기도회를 한후 호텔에 모여 돌아가며 그간의 소감을 말하고 기도 한후
시장 난전에서 구입한 석류(나르)를 맛있게 먹었다.
나르 큰것 3개~한화1500원 정도이면 저렴하다.
24일:아침 오늘 저녁은 집에 가는 날이다....................................................................................
오전에는 오스만제국이 왕성했던 술탄의 왕궁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선교사님께서 직접 오늘은 가이드 하신다.
술탄의 왕궁은 입장료가 한화로 1만5천원정도 꽤 비싼거 같다.
오스만제국의 영화를 한눈에 보는거 같다.
왕궁 뒷쪽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사진 찰영하기 좋은데가 있다
모두 사진을 찍은후 아름다운 바다를 구경하고 왕궁을 나와서 에니메뉴광장으로 왔다
박선교사님은 교회로 가시고 조지혜양이 나와서 교대하여 가이드를 한다
에니메뉴에서 배를 타고 이스탄불과 바다 이편(유럽) 과 건너편(아시아)를 구경할수 있었다.
교회로 돌아 오는길에 마트에 들려서 한국귀국 준비위해 선물을 샀다.
터키의 대표적 상품인 치즈랑 나르차와 말린 건포도 같은 것을 샀다
교회에서 저녁 경건의 시간(귀국에배) 가진후 터키에서의 마지막 식사에 선교사님께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국인 식당에 가서
오랬만에 김치를 먹을 기회를 주었는데 한국 음식이 정말 반가웠지만 실망했다.
김치도 맛이 없었고 된장도 영 우리나라 맛의 근처도 못가는 수준 이었다.
저녁을 먹은후 호텔에 돌아와서 짐을 챙긴다
좀 아쉽기도 했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쁜 마음으로 짐을 챙긴후 공항까지 데려다 줄 렌트카를 기다렸다.
잠시후 렌트카가 왔는데 선교사님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한후 혜어졌다.언제 또 올수 있을는지 기약이 없다.
그간의 고생한게 필림지나 가듯이 떠 오른다
렌트카는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지금가면 또 언제 터키에 오겠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공항에 도착 하였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의외로 터키 올때 보다 비행기 좌석앞 공간이 넓어서 좋았다.
터키 올때도 한국으로 돌아 갈때도 안목사님은 내 옆자리이다.
편안하고 좋은 분이라서 좋은 여행이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이상 공중에 떠 있다는거 자체가 은혜이다..
그간의 터키에서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요단강을 어떻게 건널수 있을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단장이신 오팀장에게 감사하며 같이 동행한 팀원들게 감사하며 물심양면으로 기도해 주시고 출국하기전 차를 팔아 주며 격려하여 주신 삼일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또 한분 한결같이 변함 없으신 분이며 버스비용을 부담 해주며 터키비젼트립을 위해서 애를 많이 쓰신 이강인집사님께 감사드린다. ~...........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