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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피정 순례길 답사 -3일째
순례는 스스로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의 깨우침입니다. 누군가는 순례를 고통과 인내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순례는 믿음의 영성을 다지는 것입니다. 순례자가 순례의 과정에서 느끼고, 자신을 지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자신에게 맡겨진 문제일 것입니다.
제3일(2013. 3. 24) 성주간의 첫째 날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아 저희들이 미쳐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저희들은 수난복음을 봉독하며 저희들이 걸어야 하는 답사길을 십자가의 길로 생각하며 자신을 오롯이 주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제주시 구좌읍 김녕 성당 세화 공소로부터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포 성당에 이르는 22km의 순례길을 답사하고 4일째 답사를 위해 성산포 성당으로부터 표선 성당에 이르는 30km를 자동차로 미리 사전답사해 보는 일입니다.
제주교구의 공소는 역사가 오래고 넓은 부지에 성전과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단체 피정이나 순례자들이 기도하고 쉬어가기 안성마춤이었습니다. 오늘 따라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진종일 꽃샘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했습니다. 저희들은 서로의 건강상태를 살폈습니다. 오늘은 도보의 방법과 질을 조정해야할 것으로 보여 제4일째 순례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하는 날이어서 개인의 고통을 솔직히 들어내기로 했습니다.
순례 길은 되도록이면 차량통행이 적은 한산한 도로를 택하고 바다를 낀 해안도로의 바닷길을 따라 공소와 성지를 경유하면서 성당을 이어가는 순례길이 될 수 있도록 코스를 잡았습니다. 오늘의 답사코스는 본섬과 우도 2개 팀으로 나누었습니다.
제1팀 안창호 신부님 김성우 바오로 형제님이 본섬의 동북쪽에 걸쳐있는 해맞이 해안로를 따라 18km를 걷기로 하고, 제2팀 최화웅 비오와 김진철 레오 형제님은 도항선을 타고 우도로 들어가 해안선 16km를 걸어 일주하기로 했습니다.
제1팀(안창호 신부, 김성우 바오로) 세화 공소를 출발한 제1팀은 제주도의 동쪽바다가 펼쳐진 해맞이 해안로를 걸었습니다. 제주는 돌담도 많고 끊일듯 이어지는 석성(石城)이 섬을 포근히 감쌌습니다. 서문동 별방진의 옛 공중목욕탕터를 지날 때 길옆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판이 벌어져 구경꾼들이 몰렸고 표류하는듯 떠있는 작은 섬, 토끼섬이 문주란 자생지였습니다. 봄에 쌔잎이 돋아 여름이면 백설 같은 꽃을 피워 온 섬을 하얗게 물들이며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는 토끼섬 문주란은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132번 국도를 따라 걸었으면 놓쳤을 풍광을 해맞이 해안로가 보여준 셈입니다. 하도 해수욕장에 가까웠을 때 바다 너머 편안하게 누운 그리운 섬, 우도가 보일 때 영등의 바당(바다의 제주 사투리) 길목에 자리 잡은 어촌체험마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성우 바오로 형제님은 250번째 리본을 달며 시계를 보고서는 벌써 오후 2시가 넘은 것을 확인하고 취사담당 답게 지나가던 밭에서 무우를 얻어다 대원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산포 성당 앞에 있는 식당을 찾은 시각은 오후 4시가 넘어서 였습니다.
해맞이 해안로에서 바라다 본 제주바다 조천해변에서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칠머리굿판 구좌읍 하도리 굴동 포구 50m 앞 문주란 자생지, 토끼섬 편안하게 누워 있는 우도의 전경을 배경으로 폼잡은 김성우 바오로 형제님 종달리 두문포 해변의 지름 길 250번째 순례길 안내 리본을 다는 김성우 바오로 형제님 답사 단원들에게 쉬었다가라고 권하는 제주의 민심'좀 쉬영 갑서예'
제2팀(최화웅 비오, 김진철 레오) 하도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왼쪽에 떠 있는 우도를 보며 걸었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종달리 두문포 전망대에 이르자 왼쪽에 우도 오른쪽으로 일출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 "섬은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세화 공소에서 헤어진 제2팀은 제주에 딸린 섬 90여 곳 중에서 가장 큰 유인도 우도를 도항선, ‘우도사랑2호’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훼리선에는 200여 명의 여객과 30여 대의 승용차를 15분 만에 하우목동항에 풀어 놓았습니다.
우도는 면소재지로 초등학교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등대가 바다를 지키고 바람이 머무는 우도에는 문화가 살아 숨쉬는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우도 해녀항일운동 기념비가 말해주듯 이곳의 정신과 기질이 면면이 계승되고 있었습니다. 도항선 뱃머리가 두 곳이나 있었고 뱃머리에는 스쿠터를 대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갈매기떼는 배를 따라 다니며 애타는 만남과 헤어짐의 현장을 지켜주었습니다. 섬 속의 섬, 우도에 들어서자 제주도가 달라 보였습니다.
우도는 듣던대로 풀을 뜯는 소가 편안히 누워 있는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우도에 발을 딛자 문득 시인 이생진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 실려 있는 '무명도'가 떠올랐습니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섬 속의 섬, 우도에는 청보리밭 사이로 노란 유채꽃이 그리움처럼 피었습니다. 20년 된 우도 공소를 성모님이 홀로 지키고 계셨습니다. 대문이 없는 우도 공소는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우도 중심부인 중앙동 광장에는 이번 봄에 '문예운동'을 통해 등단한 이 지역 출신 김철수 시인의 축하 현수막이 수줍은듯 내걸렸고 칠레 여인 이레네씨의 칠레 전통만두 '엠빠나다(Empanada)' 가게는 오늘 따라 심장수술을 받아 쉬게 되었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닫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해안선 따라 우도 올레코스 16km를 걸었습니다.
폐교가 된 옛 우도초등학교 교정에는 '책 읽는 소녀상'만이 텅빈 운동장을 지키고 섰을뿐 발길 끊긴 운동장에는 잡초만 우거져 지난날의 추억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김철수 시인이 돌아나오는 저희들을 막아서며 "우도 바라보며 지는 노을 당신은 보았는가?"라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왜구의 배가 드나들었던 우도는 본섬에 성을 쌓아 국토 방호에 힘쓰게 했습니다. 김진철 레오 형제님은 감기증세가 해풍을 맞아 기침이 심해진 것같습니다. 그래도 레오 형제님은 핸들을 놓지 않고 시장을 보고 대원을 태워날랐습니다. 오후 5시가 가까워서 제1팀과 합류하여 성산포 성당을 순례하고 섭지코지의 그 아름다운 유채꽃밭에서 일출봉을 마음껏 바라다보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천혜의 자연경관에 새삼 경의를 표했습니다.
열대 야자수 사이로 펼쳐진 평화로운 우도의 모습 우도를 오가는 도항선'우도사랑2호' 바람이 머무는 섬 '우도에는 유채꽃이 그리움처럼 피었다 우도의 마을, 나지막한 지붕이 돌담과 나란히 키를 맞춘 모습이 정겹다 소담스런 우도 공소 우도 공소의 마리아 상 우도 공소의 내부 전경 성산포 성당 수녀님께서 찍은 저희 일행 섭지코지 유채밭에서 바라다 본 일출봉
오늘 3일째 답사를 끝낸 저희들은 노을빛 짙어지는 성산포 성당에서 만났습니다. 내일 코스를 차편으로 미리 달려본 뒤에 숙소인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짐을 옮겨야 합니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은 더 열심히 걷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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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순례답사기 잘 읽고 갑니다.
구선생님,많은 분들의 기도와 성원에 힘입어 순례 잘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입니다.
도보순례를 통해 매일 천국과 연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도에 있는 칠레의 전통만두 '엠빠나다' 가게를 인간극장에서 보았는데...
저도 함께 제주도 답사를 하고있는 듯 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칠레 여인 이레네씨가 심장 수술을 받아 당분간 가게 문을 닫게되었다고 안내문을 내다 부쳤습디다.
그리운님과 레오님께서는 이레네씨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드리고 발길을 돌렸다고합니다...
레오선생님, 제주바람에 기침감기 날려 보내시고,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오늘 오후부터 레오님의 기침이 잦아들었습니다. 감사해유~~~
제주 피정 순례길 힘든 길이시겠지만 사진으로 보는 전경은 아름답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아름다운 전경을 이곳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꼼꼼하게 기록을 해주셔서 성지순례를 간 듯합니다~
너무 힘드시겠지만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철부지님!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