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堂(오억령조 사가독서)
호당(湖堂)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別稱)이다. 독서당은 조선 시대 때에 홍문관(弘文館)의 젊은 문신(年少文臣)들 중에 특히 문재(文才:문학)에 뛰어난 사람을 선출하여[뽑아] 휴가를 주어 특별히 학업[학문]을 연마하게[닦게] 한 서재(書齊)로서, 글을 읽게 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곳이다. 세종 8년(1426)에 문신 중에서 덕과 재주가 있는 사람을 선출하여 시간을 할애하여 주고[이를 사가 독서(賜暇讀書)라고 함] 창의문(昌義門) 밖 장의사(藏義寺)에서 공부하게 한 것이 그 시초이며, 집현전(集賢殿)의 대제학(大提學) 변계량(卞季良)이 임금의 명을 받고 이를 행하였다. 세조 때에 이것을 폐지한 적이 있었으나 성종 22년(1491)에 다시 복구시켜 용산(龍山) 북안(北岸)의 폐사(廢寺)를 수리하여 글을 읽게 하고 독서당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연산군 때에 폐지하였고, 중종 때에는 정업원(淨業院)의 옛자리를 독서당으로 삼았다가 두모포(豆毛浦:지금의 서울시 옥수동 강변) 언덕으로 옮겨 잡고 독서당을 지어 호당(湖堂)이라 하여 두었다. 이 곳이 도성(都城)의 동남이므로 동호(東湖) 또는 동호 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하며, 독서당을 호당(湖堂)이라 별칭(別稱)한다. 임진 왜란 때 화재로 없어졌다[소실(燒失)].(한강의 동호대교가 이런연유로 대교명이 되도다) 서울 옥수동(玉水洞)·한남동(漢南洞)·보광동(普光洞) 등 한적하고 강변의 경치 좋은 곳에 세웠으나, 지금은 서울시 옥수동(玉水洞)의 극동아파트 정문 우측에 『독서당터』라고 하는 표석만이 남아있다. ※사가 독서(賜暇讀書) 줄여서 사가(賜暇)라고도 하는데 덕과 재주가 있는 유능한 젊은 문신(文臣)을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당(讀書堂)에서 글을 읽게[독서하게] 하던 일을 말한다. 세종 때 시작되어 세조 때 없어졌다가 성종 때 다시 복구되었고 그 뒤 병자 호란(丙子胡亂)을 당하여 아주 없어졌다. *만취공(휘 오억령)깨서 입당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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