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큰사랑 보물창고 원문보기 글쓴이: 조해강
마태복음 연구05 2013.04.16
옹달샘교회 조해강 목사
I. 본문: 마태복음 3:13~17
II. 본문 관찰- [단락나누기]
*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설득하여 세례를 베풀게 함.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III. 설교 목적과 개요
① 소박하다 함은 홀로 취임식장까지 걸어가서 이렇다 할 환영이나 경호도 없이 진행되었고
② 비장하다 함은 그 취임식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세례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며
③ 영광스러운 것이라 함은 성삼위 하나님이 동시에 임재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 음성을 들려주시며 축하하셨기 때문이다.
① 예수님의 세례식
② 변화산의 영광
③ 한 알의 밀알의 영광
① 스데반 집사 행 7:55
② 바울의 세례-유라굴로 행 27:24, 참. 시 69:1
③ 사도 요한-밧모섬에서 계 1:9~11
IV. 설교 제목: 메시아 취임식
V. 서론 구상:
VI. 설교안:
지난 2013년 2월 25일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날입니다. 이날 0시에 국민대표 18인이 보신각종을 쳤고, 화려한 식전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식전행사는 국회 앞마당에서 열렸는데 김덕수 사물놀이패, 김영임 명창 합동공연, 싸이, 장윤정, JYJ등이 참여하여 축하 분위기를 돋구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서 출발하여 국립 현충원을 방문, 참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전 11시 국회 앞마당 취임식장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취임식 국민의례가 시작되어 조수미와 최현수 씨가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대통령은 이어서 취임선서, 취임사를 발표하였고 곡이어 축하공연이 벌어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환송하여 보내드리고 자신도 차에 올라 카퍼레이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광화문에 이르러 복주머니를 열어 축복을 빌었습니다. 이윽고 청와대에 도착,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경축 연회장인 세종문화회관으로 갔습니다. 여기서는 국내외 각계 대표들이 모여 새 대통령의 공식적인 임기 시작을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와대 영빈관에 돌아와 외빈을 맞아 만찬을 했습니다.
박군혜 대통령의 취임식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은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장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을, 중국은 류옌둥 공산당 정치국원을 특사로 파견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러시아에서는 빅토르 이샤예프 부총리 겸 극동개발부 장관이 참석했습니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 등 30여 개국의 정상급 인사와 외국 정상 파견 경축사절단이 참석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30여 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저는 갈릴리 나사렛입니다.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를 양육해 준 양부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목수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마 13:55). 그리고 마리아는 요셉과의 사이에서 더 많은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성경은 그 아들들만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였습니다.
이렇게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30년을 지내던 어느 날 한 소문이 들려옵니다. 그것은 같은 친척인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네에서도 벌써 요한을 보고 온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었다는 둥, 헤롯에게도 거침없이 회개하라고 했다는 둥, 그는 자기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했다는 둥, 여러 이야기와 소문이 깊은 산골 나사렛 동네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자, 이제 때가 온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적인 삶을 청산하고 공적인 사역을 할 때인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공적인 삶, 곧 메시아직을 수행하기 위해 사저를 떠나기로 결심하십니다.
그 길에는 동행하는 이도 없습니다. 누구 하나 눈 여겨 보지도 않습니다. 도보로 갈릴리 깊은 산골마을을 떠나 요단강 가로 나아갑니다. 이 걸음이 위대한 메시아께서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취임식이 열리는 현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수행원도 경찰차의 호위도 없이 묵묵히 요단강을 향해 나아가는 참 빛이셨던 분, 참 메시아이신 분이 그 성스러운 직임을 받기 위하여 취임식이 열리는 요단강가로 걸어갑니다.
본래 취임식이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는 inauguration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새점(鳥占)을 본다는 라틴어 inaugurates 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집정관의 취임이나 전쟁을 위한 출정식에서는 사기진작을 위해 새점을 보곤 했습니다. 이 때 점을 보는 사람, 곧 점쟁이를 Augur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새를 뜻하는 avis와 부르다라는 의미의 gur가 합쳐진 말입니다. 로마인들의 점쟁이들은 출정식에서 새점을 보는데 닭이 모이를 잘 먹으면 길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닭을 몇 일 동안 굶겼다가 데리고 나와서 출정식의 점치는 자리에서 모이를 쪼아먹게 하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새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올림픽 경기에서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 벨기에 올림픽 때 평화의 상징으로 처음 실시되었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끝으로 더 이상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면 서울 올림픽 당시에 비둘기들이 성화로 주위에 앉아 있다가 점화식 때 많이 타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취임식은 어땠을까요? 그 취임식은 약간 이상했습니다. 예수님의 취임식은 그 절정이 세례였습니다. 사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들에게 주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아니시므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또한 세례를 베푸는 사람은 세례를 받는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이 증거한 바 자신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 말씀 드리기를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께서 내게로 오십니까? 라고 겸손하게 되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는 죄 씻음의 세례도 아니요, 요한보다 더 낮은 분으로서 받는 세례도 아닙니다.
그럼 예수님의 세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요한의 감격이 어땠을까요? 그는 자신의 순종이 과연 이 때를 위한 것임을 알고 떨면서 울면서 세례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한 차원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 속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함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훗날 또 다른 세례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2:50입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But I have a baptism to undergo, and how distressed I am until it is accomplished!
예수님께서 받으셔야 하는 또 하나의 세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세례는 물에 잠기는 것으로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고난을 물에 잠기는 것으로 표현한 곳이 여럿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시 69:1~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시 124:4~5)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애 3:5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받아야 할 세례란 곧 예수님의 수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속에는 메시아로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감당해야 할 희생과 죽으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메시아 취임식이 갖는 비장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메시아직에 취임하시는 예수님의 선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대통령의 선서문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메시아직 선서문은 어떤 것일까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세례를 통해 취임식에 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상상하여 선서문을 작성하면 이렇게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그 백성들을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지은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음으로써 나의 메시아직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하늘과 땅,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죽음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선언이요 순종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모든 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메시아직 취임의 첫 순간부터 죽음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하신 길을 걸을 것을 천명하시고 순종하실 것을 선서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입니까?
그 자리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비둘기의 모습으로 예수님 위에 임하시어 그 취임식을 인정하고 축하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감격에 겨우시어 축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라.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 순간에 성삼위 하나님이 한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는 성자 예수님, 비둘기의 모습으로 강림하신 성령 하나님, 그리고 음성으로 강림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렇게 하여 예수님의 메시아 취임식에는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직접 음성을 들려주신 것은 세 번 뿐입니다. 그 한번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1)죽음으로써 메시아직을 수행하겠다는 결단을 나타내는 세례식 때에, 그리고 (2)변화산에서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영광 중에 말씀하신 후에 그렇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때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엘리야와 모세와 나누신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성경 누가복음 9:31에 의하면 예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했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뒤에 또 하나님께서는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3)한 알의 밀알로서 자신이 희생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들려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요 12:28).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려는 예수님의 결단을 인정하시고 격려하시며 그 때마다 하늘에서 음성을 들려주시어 그 결단을 축하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하여 감동하시고 그들을 격려하십니다. 이런 경우는 예수님의 경우 외에도 여럿이 있다고 성경은 보여줍니다.
먼저 사도행전 7장에서 보여주는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오직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열어서 그의 눈에 보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신 것을 보이셨습니다. 순교의 결단으로 복음에 진실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마지막 걸음을 위로하시고 힘주시기 위해 그렇게 영광을 보여주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경우는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도 로마로 가는 항해 중에 지중해에서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납니다. 그 항해는 바울이 피할 수도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를 만류하는 측근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희생하는 그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풍랑 중에 큰 물이 배를 삼키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바울을 위로하시며 약속하십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3~25)
죽음의 길을 가는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음성을 들려주시어 그를 격려하셨고 그를 통해 하실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의 경우에도 이런 일은 일어났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유배 중에 있었습니다. 그가 유배를 당한 것은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받은 환난이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여느 때와 같이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의 뒤에서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하라고 하십니다. 고난과 환란 중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한 주님의 메시지가 밧모섬의 요한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계시록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고통과 환난 중에 있는 영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메시아십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취임식은 외롭지만 비장한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전적으로 자신을 드릴 것을 결단한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시어 우리를 격려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그리스도께서도 순종하셨던 것처럼, 바울과 스데반, 그리고 사도 요한이 순종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 믿음의 길, 교회를 세우는 길, 복음을 전하는 길, 그리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우리의 생명을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