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을 향하여 걷던 그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마리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올라!
부엔 까미노
그라시아스
똑같은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되 뇌이며 걷던 그 길
“Camino de Santiago”.
프랑스의 생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리고 묵시아 , 피니스테레에서 다시 콤포스텔라까지
장장 933 km. . .
나는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걸었고,
또 세상에 존재하는 나라에서 온 수 많은 사람들은 희생을 인내하며 걸어야하는
그 길을 왜 그렇게 Very Beautiful, Perfect! 하며 걷는 것일까?
산티아고 카미노를 걷는 나에게 많은 사람이 묻곤 했다.
어떻게 이 길을 알았고, 왜 이 길을 걸을 생각을 했는지.
난, 그냥 몇 사람에게서 이 길에 대하여 들었고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길은 하느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보호를 받으며 살기보다는 내가 보호를 해 주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았던 나에게 가슴이 아리도록 보호받으며 걸었고,
그렇게 보호받으며 산다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차라리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이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그냥 주어진 시간을 누렸고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너무도 웃겨서 오줌까지 바지에 지려가며 웃어 본적이
과연 몇 번이나 나에게 있었던가!
삶이란 그런 것이고 또 그 시간을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았던 나에게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삶의 길도 나에게 보여주셨다.
카미노를 걸으며 만나 한 달 가까이 24시간을 함께 했던 프랑스인 제랄드와 다니엘.
제랄드는 나보다 5살 많고, 다니엘은 4살이 많았다. 동 시대를 살았기에 통하는
이야기도 많아 서로의 공감을 나누었던 사람들.
그런데 한 사람만 만났다면 그렇게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을까?
어떤 남자에게든 이성으로는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나를 너무도 잘 아시는
그분이시기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을 함께 엮어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카미노 여정을 모두 마치고 파리로 돌아가던 그들을 마중하고 돌아온 그때부터
처음 며칠은 가끔가끔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눈에 아른거리고 보고 싶었다.
아마도 24시간을 함께 했는데 갑자기 혼자 떨어졌다는 묘한 기분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들이 파리로 돌아가기 전날 우리는 콤포스텔라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이별만찬을 했고 그들은 내게 과분한 선물까지 주었다. 처음에는
1 유로까지도 정확히 나누고 셈을 하던 그들의 변하는 모습도 내게는 즐거움이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톨릭신자이지만 오랜 기간 냉담 중이던 제랄드가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영성체를 했고, 성당엘 들어가도 별 행동 없이
구경만 하던 다니엘이 어느 순간 성체 앞에 앉아 함께 성체조배를 하며 걸었던 때였다.
마을에 있는 성당마다 문이 열려져 있으면 잠시라도 들어가 함께 조배하고
또 그 곳에 들렀다는 증표인 스탬프를 받으며 우리는 즐거워하였다.
그렇게 먹고 자고 걷는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콤포스텔라까지,
그리고 야고보사도가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피니스테레, 묵시아까지 걸었다.
등에는 10Kg이 넘는 짐을 지고 걸었지만 어느 날은 짐 없이 걷는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가벼웠다.
준비 없이 섭리에 맡기고 떠난 이 길이 내게는 완벽이상의 경험이었기에
또 다시 그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지금은 없다.
중학생때 보았던 벤허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 이후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있어도
보지 않았던 것처럼.
그것은 아마도 그때의 그 느낌, 그 행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기에...
(카미노를 완주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미사를 기다리며
왼쪽부터 다니엘, 마리아, 제랄드, 린)
(산티아고 완주 순례자 증명서)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를 마친 순례자에게 발행되는 순례자 증명서)
순례자 여권 - 크리덴시알
생장 피드포르에서 카미노 데 산티아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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