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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발견을 위한 글쓰기-김기석(청파교회담임목사, 문학평론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글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몽상가 프레드릭..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중..
이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엘리드는, 신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간을 만들었다. 에덴에서는 시간이 소거된것임을 살았던때이며 에덴이후 인간은 시간속에 산다. 시간속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이 유한함을 자각하는 존재가 된다. 인간이 유한함을 자각하는 순간 인간은 불멸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그 답은 쉽지않아 인간은 불안속에서 살게 된다. 이 세상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가 있다. 삶은 이야기이다.
목사님은 아버지가 폐암선고를 받았을때 대학노트를 드리고 살아왔던 이야기를 써달라 했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보름전까지 이이야기를 썼다. 그것은 지금도 목사님에게 보물이다. 인생이 이야기이다.
사회학박사의 이야기 미치기까지는 3대가 걸린다. 즉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삶이자 살아갈 힘이다. 바벨론에서 사람들은 제사장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갈 소망을 가졌고, 복귀할 수 있었다.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듣는가에 따라 자아가 형성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줄때 무릎에 앉혀 뒤에서 들려주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상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폴샤르트르-사시이자, 왕따였던 그는, 할아버지 집에서 책을 읽는 척하다 칭찬받고, 결국 그는 그 방에 책을 다 읽었다.
책 먹는 여우
8.79 | 네티즌리뷰 597건 프란치스카 비어만 저 | 김경연 역 | 주니어김영사 | 2001.10.31 원제 Herr fuchs mag b‥ucher! 페이지 50| ISBN 8934908068 정가 8,500원
여우 아저씨는 책을 너무나 좋아했어요. 급기야는 책을 다 읽은 다음 소금 한 줌, 후추 조금을 뿌려 꿀꺽 먹었어요. 하지만 책값이 워낙 비싼 탓에 마음껏 책을 읽고 먹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여우 아저씨는 도서관을 털기로 결심하는데….
☞『책 먹는 여우』에서 여우 아저씨는 책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독자였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을 털려다 갇힌 감옥에서,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작가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의 책을 자기 것으로 온전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우 아저씨의 모습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글쓰기 위해서 체계적인 독서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공자는 오도는 일위관지다. 나의 도는 하나를 꿰는것이다. 라고 했지만, 사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널려있지만. 글쓰기를 위해서 관점을 가지고 꿰려고할 때, 그것은 체계와 질서를 잡아간다.
“모든 글 읽기는 글쓰기로 끝나야 한다.”
시를 서평할 때, 시를 쭉읽고, 그 사람이 자주는 쓰는 단어를 생각하고, 그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쓰여지고 압축되는지를 잘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상상력과 연상을 알게되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타난 의도를 연상할 수 있다.
작가들에게 어떤 의도로 쓰셨어요 라고 물으면, 작가들은 당황합니다. 의도가 없이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은 비평가의 글을 읽고 비로써 자기의 의도를 알기 시작한다.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말걸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세상과 나눌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글을 쓴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듣기도 좋아하지만 하기도 좋아한다. 듣는 이야기가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하는 이야기(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하는 이야기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하나로 꿰어진다.
이야기가 있어야 글을 쓸 수있다는 생각은 잘못된것이다. 글쓰기가 일상이고, 삶이다. 사소한 삶들이 우리의 삶의 풍경을 이룰뿐만아니라, 마음의 습속을 만들어낸다. 반복되는 일상은 삶이 되어 우리는 평안함을 느끼며, 낯선것에는 마음을 빼앗긴다. 그 낯섬은 우리로 일상의 지경을 넓히라는 신호이다...글쓰기는 참 아름다운 과정이다..
다음시간에는 자기발견을 위한 글쓰기와 글쓰기 공부를 위한 좋은 텍스트로써의 성서이야기 그리고 글쓰기의 팁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원주주교님이 사창가를 지나가자, 백발의 주교가 틈,새와 짬이 없다고 주고 받자, 지갑을 꺼내 옛다 사탕이나 사먹어라..김지하 시인, 공감해주고, 정죄하지 않는것 중요하다.
여성들은 공감해주기 때문에 대화를 오래하지만 남자들은 공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패킹오더(새가 먹이쪼아먹는 순서, 서열을 가려야 한다.)를 가린다. 고대에 남성들은 마음이 창자에 있다 생각했지만, 여성은 자궁(움)에 있다고 보았다. 즉 마음이 더 깊다. 성경에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말과 자궁이라는 말은 어원이 같다. 즉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은 같을 수 없다. 솔로몬의 지혜중 친모와 가모의 차이는 (태)자궁이 꿈틀했다. 즉 아이를 가르라는 말에 친모는 그럴 수 없었다.
당장읽지않더라도, 작가나 번역가가 애쓴책은 산다. 이것이 인문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디테일 (가까이에서 본 미술사를 위하여) 7.0 | 네티즌리뷰 1건다니엘 아라스 저 | 이윤영 역 | 숲 | 2007.05.15 원제 Le detail페이지 510| ISBN
목사님이 우연히 독자를 만났다. 번역하는데 3년이 걸렸지만 실제로 300권정도가 팔렸을 뿐이다. 책을 더 많이 사라.
글쓰기의 조건
①글쓰기의 첫 번째 조건은 공감의 능력이다.!!
공감을 위하여 책을 쓴다. 아담이 세상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관계가 형성되었음을 말한다. 우리는 영어단어를 모르면 부끄러워하지만, 꽃이름을 몰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별명을 짓는다. 별명, naming의 비밀은 좋든 싫든 관계를 갖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멋진 세계를 보면서 사람이 함께 놀라고 기뻐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해석하는 랍비가 있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마태춘의 들꽃이라는 시에 보면 자세히 보면 이쁘지 않은 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너도 예쁘다.
②공감의 능력은 자세히 보는데서 나온다.
그냥보는 것보다 말할 때 발견하는 것이 훨씬 많다. 서사적 능력을 가져라. 자세히보고 자기의 언어로 재구성할 때, 글쓰기의 좋은 훈련은 되어진다. 이문열은 “나는 이 컵 하나만 보면 원고지 만매를 채울 수 있습니다.” 무슨말인가? 컵의 역사 빛깔 용도 등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 즉 글쓰기 위해서는 자세히 보는 것, 말로표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③글쓰기 위해서는 새상을 새롭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밑의 글의 마지막 세 번째 단락에서는 전혀 새롭게 보는 눈이 있다. 즉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게 보던것을 낯설게 보는 눈이 필요다.
새롭게 보는 것은 힘이다. 그러나 새롭게 보는 것은 능력이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이 없다면 새롭게 보는것이 깊이 없다.
그리스의 비극이나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모르면 서양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고전들을 보면서 자양분을 삼아나가야 자세히 보는 눈도, 새롭게 보는 눈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텍스트를 생산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텍스트에게 영향을 받은 것을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즉 상호텍스트성
④끝없는 독서행위와 공부가 필요하다.
즉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⑤어휘를 확장하는 것도 글쓰는데 중요하다.
다음은 새롭게 본 것을 자기말로
말할때는 좋은데, 글로 쓰면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언어가 없이 인간은 사고 할 수 없다. 즉 어휘를 안다는 것은, 사고의 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라. 목사님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정보를 넣는다. 그래서 책읽기도 뭐하고 짬이날때는 수첩을 뒤적거린다.
예)잔포록하다...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없다. 는 단어를 알게되면, 그것을 말할 때 정말 기분이 달라진다.
예)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묻지말고,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우리는 답해야한다. 산을 타는 것이 어렵나, 공부하는 것이 어렵나? 산을 타는것이 더 어려워요? 왜요? 공부는 하는척 할 수 없지만, 산을 척할 수 없잖아요..
목사님은 모르는 우리말 만날때가 제일좋다. 왜냐하면 또다른 세상을 더 만난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출처] [219호] 풀꽃/ 나태주|작성자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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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등을 통한 지식축적과 어휘를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을 향한 말걸기로써의 글쓰기..
나폴리 가봐야 크게 놀라웁지 않지만 나폴 리가 노래되어졌을 때, 그걸 듣는 사람은 거기에 가야하는 사람이 된다. 문화라는 것은 중요하다. 돈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적극적인 말걸기가 되어야 한다.. 작가의 기능이랑 아무도 이세계를 모를 수 없게 하고 아무도 이세계를 향하여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못하게 해야한다.”
로마시대 철학자 롱기누스는 숭고론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보다 압도적인 크기앞에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즉 피라밋, 높은 산앞에서 인간은 느낀다. 한 선배는 안나푸르나에 압도당해 거기에 미쳤다. 다른 목사님과 같는데, 5분도 안있다가 추워요 들어가요라고 해서 분노했단다.. 숭고의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한다. 롱기누스는 인생의 가장큰 숭고함을 느끼는 것은 창세기 1장이라고 한다. 무에서 유에 대한 숭고함 느낌
성경은 혁명의 책이다. 성경은 해와달과 별이 없이도, 식물이 났음 보여준다. 즉 창조세계에는 주류문화(일월성신숭배)에 대한 뒤집기가 나온다. 해가 먹을 것을 주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고대세계 모든 창조의 이야기는 투쟁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성경의 창조는 폭력이 없는 창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최고의 인권선언서다.
즉 성경은 master narrative를 counter narrative로 반전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경이 구전되었다 기록되었던 주전8세기에 허머역시 일리야즈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단 몇 일간의 전쟁이야기가 담겨있다. 영웅들의 전쟁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적군과의 공감을 담고 있다. 오디세우스역시 집을 떠났던 이야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밀턴의 실낙원도 눅15장도 마찬가지 관점이다. 오디세우스는 굉장히 많은 시련들을 겪고, 돌아온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원근법(생략)이 없다. 모든 이야기가 배경이 없고, 앞으로만 나가있다. 즉 깊이감이 없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한다. 한 평면속에 원근법이 없는 그림은 비현실적이다. 문학도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나면 깊이 가 없다. 성경은 이에비해 파격적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 하신다. “사흘째 되는 날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그 산을 보았다.” 글을 읽는 독자들은 생략된 것을 통해서, 긴장감과 동감하고자 하는 마음을 준다. 과제:아브라함의 사흘길에 대해서 써오라.?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장군이야기처럼 성경의 문체는 굉장히 많이 생략되어있다. 우리로 생략의 문체에 멈춰서게한다.
성경은 매끈한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된이야기이다. 즉 상상력이 담긴 서사의 이야기다. 즉 늘리는데 명수이다. 이러한 성경의 현란한 문체는 글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원근법을 통해 긴장과 여백을 만들어낸다. 행27장의 유라굴로는 세계해양문학의 압도적인 것으로 본다. 이처럼 성경은 글쓰기에도 교과서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① 글감을 찾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을 쓸것인가? 사건, 풍경, 일상, 깨달음등등등
원고마감일까지 못쓰다고 추어탕집에가서 발견한 일...
[삶의 향기-김기석] 내 고향 가고 싶다 [2010.09.17 17:53]
그날따라 음식점에 손님이 많지 않았다. 어쩌다 길에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싹싹한 주인의 얼굴은 님이 있든 없든 늘 밝다.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식당 안을 아주 편안하게 활보한다. 주인의 나이로 보아 손자는 아닌 것 같았고, 아들이라기에는 너무 어렸다. 가만히 그 관계를 가늠해 보고 있는 데, 아이가 주인과 눈도 맞추지 않은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 “사이다 먹어도 돼요?” “아까도 먹었잖아.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안 돼.”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평했다. 아이는 잠시 후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주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넉넉한 품이 있어 좋은 사람들
주인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가게 앞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에 관심 있게 보았는데, 누구와 함께 노는 것을 못 봤다는 것이다. 어느 날 땀을 뻘뻘 흘리며 골목을 배회하는 녀석에게 “시원한 물 한 잔 마실래?” 하고 말을 건넸더니, 진작 그럴 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물을 받아 마시고는 휑하니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날 이후에 아이는 일부러 주인과 눈길을 마주치려고 애쓰더니, 슬그머니 식당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사이다도 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면서 그 아이가 할머니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왠지 딱한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잘 대해 주었더니 하루에도 십여 차례 이상 드나들었다. 그런데 누구를 봐도 인사를 하지 않기에 어느 날 자리에 앉혀놓고 예절교육을 좀 시켰더니 며칠째 발걸음을 뚝 끊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며칠을 못 견디고 돌아온 아이는 깍듯하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얼추 끝나갈 무렵 아이가 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찰을 도는 것처럼 식당 안을 한 바퀴 휙 돌던 녀석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무료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TV 화면을 바라보던 아이는 또 벌떡 일어나더니 “이제 갈게요. 또 봐요”하곤 밖으로 나갔다. 주인은 “그래, 또 와” 하더니, 우리 일행을 향해 “이제 조금 있으면 또 올 거예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 어린 친구의 외로움에 감염이 되고 말았다. 그런 한편 귀찮은 내색조차 없이 아이의 품이 되어주고 고향이 되어주는 주인이 고마웠다.
고향은 지리적 공간에 국한시킬 수 없다. 마음의 고향도 있으니 말이다. 외로움이 우리 마음에 깃들 때 문득 찾아가고픈 이들이 있다. 그냥 그 곁에 머물면 상처가 치유되고, 슬픔이 녹아내리고, 거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사람들 말이다. “웬일이야?”라는 물음에 “그냥”하고 대답해도 전혀 어색해지지 않는 사람, 그가 고향이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는 때이다. 김준태 시인의 ‘강강술래’를 찾아 읽었다. ‘추석날 천릿길 고향에 내려가/너무 늙어 앞도 잘 보지 못하는/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린다./어느덧 산국화 냄새 나는 팔순 할머니/팔십 평생 행여 풀여치 하나 밟을세라/안절부절 허리 굽혀 살아오신 할머니’. 할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리며 논이 되고 싶던 시인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그 곳에서 아이처럼 웃어라
고향, 그곳은 살아남기 위해 악지 부리지 않아도 되고 바사기라는 비난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웃어도 좋은 곳이다. 이미 논이 되고 밭이 되어 고요해진, 그래서 산국화 냄새 나는 분들의 손등을 가만히 쓸어 보다 와도 좋은 곳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교우 한 분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손을 붙잡고 “이제 가고 싶어요. 아무 미련이 없어요. 다만 고향 의주 땅을 못 밟고 가는 게 조금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그 마음의 쓸쓸함을 헤아리면서도 “그래도 더 나은 고향으로 가시니 좋으시겠어요”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고향을 찾는 모든 이들이 부디 보름달처럼 원만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빈다.
김기석 청파교회목사
우리주변의 일들을 자세히 보고 애정을 가지고 보기시작하면 쓸일이 참 많이 있다.
②조사하고 연구하고 비평을 들어라.
③스스로 brain storming을 하라.
고향에 대한 글을 쓰면, 고향하면 떠오르는 것을 모두 써라. 그리고 고향하니까 왜 이게 떠올랐지? 하는 것을 생각하라. 역으로 그 것이 왜 떠올랐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좋다.
④그래도 안되면 현장으로 가고 산책을 하라
그리고 산책이나, 주변을 다니다보면, 많은 것이 떠오른다.
어떤이는 시인이란 걷는자라 말한다. 시의 리듬은 걷는자에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누울때 수염이 오른쪽으로 흐르는지 왼쪽으로 흐르는지는 누워보면 안다.
⑤책을 통해 맨토를 만들고 맨토의 도움을 받아라.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⑥의식을 가지고 생각했던것 보다 더 큰것이 나올 수 도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가 주는 아름다움은 치유이다.
⑦글머리를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을 첫글을 읽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나온다. 첫문장이 힘들다. 또한 글을 쓴후 첫문장을 바꿀때도 있다. 또한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다가 의도가 바뀔때도 있다.
⑧반복적 문장은 짧게 써야 한다.
공상목락 우수수-텅빈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가부슬부슬내리는데” 번역하자 스승은 생략해 “빈산 잎지고, 비는 부슬부슬” 간결하게 쓴것이 더 깊이가 있다. 너무 자세하게 쓰려하지 말라. 시도 마찬가지다. 지워야 글이된다.
결론은 전체를 감싸안는 문장을 써야하고 글을 다듬어야 한다.
오바마의 아리조나 스피치(대단한 문장이다. 한번 꼭 살펴보라)
입으로 이야기할 때 나오는 제나라 말도 글로쓸때는 외국어가 된다. “싸르트르” 즉 글쓰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글쓰기가 어렵다면 말하는것 처럼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