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인문학’ 활동으로 안양교도소를 드나든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평화인문학 활동을 통해서 재소자들과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간식을 준비하며 강의를 들으며 함께 공부하고 있다. 처음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 낯선 곳도 낯선 곳 나름인지라 시작 전부터 약간 긴장했다.
‘어떤 분들이 함께 할지, 어떤 질문들이 던져질지, 또 나에겐 어떤 사건들이 들이닥칠지.’ 기존의 내 머릿속에 있는 교도소의 이미지를 지우고 교도소 문 앞에 서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막상 교도소 문 안으로 들어갈 때는 그 이미지를 갖은 채 교도소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교도소 인문학 강의가 시작한 첫날,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보통의 파란 색 옷을 입은 재소자들과 달리 갈색 재소자복을 입은 한 재소자의 민첩한 행동이었다. 나와 병권쌤, 인권연대 분들이 교육장으로 들어갔을 때 그 분은 우리가 응접실의 쇼파에 앉자마자 차를 내오셨고, 우리가 차를 마시는 잠시 동안에 내가 준비하려고 했던 서른다섯 분량의 간식을 삽시간에 준비해놓으셨다. 정확히 35개의 약과가 가지런히 줄에 맞춰 놓여있었다. 다른 재소자들이 교육장으로 들어오자, 그 갈색 옷을 입은 재소자는 나머지 파란 옷을 입은 재소자들에게 자리를 지정해주며 차례차례 자리에 앉혔다. 병권쌤의 강의 중 교도관은 교육장에 들어와서 그 갈색 재소자복을 입은 분에게 종이를 보여주었고, 그 분은 한 재소자를 불러내었다. 표정은 우리를 맞이할 때와는 달리 굳어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에 간식분배 역시 그 갈색옷의 재소자가 하였다. 강의가 끝나고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가져온 간식그릇은 반듯이 정돈되어 가져온 봉투에 도로 넣어져 있었다. ‘도무지 언제 정리가 이뤄졌을까?’라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간 안에 빠르게 정리가 이루어졌다. 나는 교육담당 교도관에게 파란 옷과 갈색 옷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교도관은 갈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장기수들 가운데 모범수에 해당한다고 했다. 군대로 따지자면 ‘병장’이라고 하였다. 알고 보니 그 분은 재소자들이 함께 사는 방의 장이었다. 이곳의 법과 질서, 규율 자체가 몸에 베인 그 분의 행동에서 문득 나는 나의 군대생활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곳 역시 하나의 공동체이며 이 교도소 공동체 생활은 재소자들에게 어떤 생각과 몸을 만들게 할까?’ 라는 의문이 들게 했다. 장기수이자 모범수인 그 갈색 옷을 입은 재소자의 민첩하지만 굳어있는 그의 표정을 통해서 교도소는 ‘규율에 적응하는 법’을 몸에 베이게 하는 곳임은 분명해보였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교육 받는 몇 분들의 손에 들려 있는 성경책이었다.
인문학 강의가 진행되는 중에 성경책을 들고 있던 몇 분은 강의보다는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 몰두해있었다. 강의와는 상관없이 공책에 열심히 성경의 구절들을 옮기는 분도 있었고, 또 어떤 분들은 나눠드린 자료집과 성경책을 번갈아가며 보기도 했다. 교육담당교도관에게 듣기로 재소자들 중에는 종교행사가 교도소 생활을 하는 데 그 개인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분들이 많다고 하였다. 따라서 아침마다 하는 종교행사가 취소되는 경우나 특별한 작업으로 종교행사를 하지 못할 경우 심한 반발을 하는 재소자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교도소 안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재소자라는 신분이 이 곳 재소자들이 보다 ‘신에 대한 믿음’ 절실하게 만들지는 않을 까 생각하였다.
인문학 강의가 시작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교육담당교도관은 재소자들 중에는 공부하는 습관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첫 일주일은 아무래도 강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하였다. 그의 예상처럼 지난 일주일간은 듣는 재소자들이 강의듣는 것을 많이 버거워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강의가 시작하고 30분도 안 되서 책상에 엎드리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강의를 시작한지 다섯째 날인 양명학 강의에서는 반응이나 관심이 전보다 많아졌다. 양명학 강의가 끝나고 뒷자리에 앉았던 몇 분은 ‘치기시심’,'차심광명 역부 뭐지?’ 하고 묻기도 하고 노트에 양명의 말들을 옮기는 분들도 있었다. 물론 하루하루 지날 때 마다 강의 중 질문을 하는 분도 생겼다. 그 가운데 몇몇 분은 매번 강의 때 마다 ‘이런 공부가 내 삶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입니까?’ 하고 묻곤 하였다.
‘이런 공부가 도대체 내 삶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입니까?’ 이 말이 강의가 끝나고 교도소에서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내 귀에 맴돌았다. ‘교도소 인문학 강의는 나와 나와 함께 공부하는 이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인문학 강의는 단순히 재소자들이 그동안 접하지 못한 ‘교양’ 혹은 ‘지식 쌓기’를 하는 시간일까?’ 아니면 ‘듣기 좋은 문구들을 통해 삶의 위안 혹은 순간의 희망을 갖게 하고자 하는 것일까?’ 물론 인문학 공부가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이 더 나은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문학 공부가 교육담당교도관이 강의가 끝난 후에 우리에게 내뱉었던 고민에 하나의 답을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났다.
교도소 교육담당교도관은 다음 같은 고민을 말했다.
“성범죄자 김길태가 이곳 출신입니다. 그런데 이곳 성범죄자들은 도통 교육을 안 받으려고 해서 문젭니다. 물론 자존심 문제죠. 아무튼 몇몇 재소자들은 교육을 받느니 형기를 늘려달라고 하는 경우까지 더러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교도소 밖으로 나가서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오면 정말 어쩌자는 건지. 저희들도 답답합니다.”
그의 고민에서 나는 ‘교도소의 어떤 활동이 그들의 새로운 삶을 생성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주어진 정의를 실현하는 법을 몸소 익히게 하는 것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일까?’ 하지만 이는 법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습관’을 곧이곧대로 반복하게 하는 법을 따르게 하는 데 더 유용하게 작동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신앙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이는 물론 새로이 신을 섬기는 또 다른 하나의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맹목적인 신앙에 대한 믿음은 오로지 성경책을 베끼는 삶으로 그들을 이끌지나 않을까?’ 그렇다면 이는 또 다른 ‘법’안에 그들을 가두어놓는 것일 것이다. 한편, ‘인문학 강의 역시 듣는 순간의 흥분과 아주 잠시의 희망의 감정에 취하게 하는 말뿐인 인문학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에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문학공부란 ‘구원’이라는 이름이기 이전에 ‘물음을 찾는 공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왜 그 공부를 해야합니까?’에서 ‘나를 위해 그 공부를 한다.’ 로의 전환을 통해 늘 함께 하고 있었던 자연, 예술, 그리고 생각들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것. 그리고 그것들과의 새로운 관계맺음을 갖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관계 맺음들을 통해서 매 순간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 이는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규율로의 배움’이 아닌 서로 간의 물음과 물음이 오가는 우정의 대화를 통해 배움을 나눠가는 것. 나는 이러한 우정의 대화를 통한 ‘나’라는 생각의 감옥에 균열을 내는 것에서 비로소 ‘교도소 인문학에 희망 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박카스(수유너머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