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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세게 운 없는 사내들, 짧은 빨대를 뽑다
2009, El Capitan, The Shortest Straw A4+ 등반기
뻑! 윽!
훅(Hook)이 터지는 소리에 이은 외마디. 그것은 “으악”도 “꺄악”도, “추락”은 더더욱 아니었다.
씨~~~발~~~~~!!!!!!!!!!!!!!!!!!!!!!!!!!
뒤를 이어 자랑스런 코리언 육두문자가 이역만리 요세미티 계곡에 메아리친다.
엘 캐피탄에서 처음 추락을 경험한 순간이다.
X 뗐다!
지난 2월, 루트를 확정하려고 모인 종로 순두부 집에서 든 생각은 딱 이 한 마디였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쇼티스트 스트로(The Shortest Straw)란 이름에 최고난이도가 A4+란다.
A4는 독일차 이름인 줄만 알았던 나에겐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어려운 난이도였다. 사실 훈련하면서 A3도 별로 못해 봤으니까…
내가 정신 나간 놈이지. 왜 이 사람들을 따라 나선다 했을까?
그때부턴 어떻게든 A4 피치는 피하도록 해보잔 생각뿐이었다. 잔머리를 있는 대로 굴려보니 첫 피치를 내가 나가면 A4는 요리조리 피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무조건 셋이 번갈아 선등 서기로 했으니까 순서대로만 하면 피할 수 있다.
역할도 분담했다. 원정대장
나중에 알게 된 건데 The Shortest Straw란 말 그대로 가장 짧은 빨대(대롱)를 말한다. 서양사람들이 제비뽑기를 할 때 여러 개의 빨대를 손에 쥐고 하나씩 뽑아서 가장 짧은 것을 뽑은 사람이 술래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 억세게 운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조디악 바로 왼쪽에 있는 루트로 총 15피치에 등반거리는 약 500m. 최고 난이도는 A4+. 3피치와 5피치가 A4, 11피치가 A4+다. 엘 캐피탄에서 6번째로 어려운 루트인데,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청주 타기의
발등에 시뻘건 불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몇 달은 쉬는 날이면 주말이건 평일이건 무조건 훈련이었다.
삼성산 무당바위, 파주 웅담리 채석장, 홍제동 암장, 그리고 설악산 적벽 등 빅월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은 바위가 닳도록 찾았다.
사실 난 재작년에 익스트림 라이더를 졸업한 후로는 인공등반을 거의 손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살벌한 등반에 따라나선 이유는 내 친구 주영이와 원정을 떠나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어차피 언젠가는 와 볼 요세미티였으니까.
훈련을 계속할수록 점점 호흡이 맞아가고 등반에 속도도 붙는다.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드디어 출국날. 9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장도에 오른다. 우리 팀(일명 빨대팀) 세 명과 탠저린 트립 팀(일명 낑깡팀)의
LA에 도착한 우리는 미국 암벽화 메이커 이벌브(Evolv)의 사장 김유형 형님과
요세미티의 캠핑장은 호젓했다.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남을 배려해서인지 다들 조용해서… 말로만 듣던 Camp4. 난 요세미티엔 캠핑장이 Camp4 하나 뿐인 줄 알았다. 다들 Camp4밖엔 모르길래. 거참, 가보니까 Camp4는 요세미티의 여러 캠핑장 중에 가장 열악한 캠핑장이었다. 그 넓은 캠핑장에 화장실 수도 적고, 더럽고, 온수도 안나온다. 하긴 그런 것이 캠핑의 재미 아니겠나?
텐트 세 동을 치고, 시차 적응에 등반 준비로 바쁜 하루가 지나간다.
제 1 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주영이가 일어나 있다.
새벽밥을 먹고 엘 캐피탄에 도착하니
첫 피치를 주영이가 나가겠단다. 이런…. 이럼 내 계획이 틀어지는데…. 준비를 마치고
그 위로는 버드빅, 헤드, 리벳이 섞여있다.
40m 정도 되는 1피치를 끝내는데 4시간 10분이 걸렸다. 한 피치가 정말 오지게 길다. 회수할 때도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일 정도니까…
그런데 2피치는 더 길다.
우리 나라에선 25~30m면 피치가 끝나지만 여긴 40m씩은 된다. 긴 피치는 50m 가까이 되기도 한다.
엘 캐피탄에서 처음 선등을 나서는 순간,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겁은 거의 안났지만 약간의 흥분이 몸을 휘감는다. 이 느낌은 어떨까 늘 궁금했었다. 아마도 뇌에서 도파민이 세게 분비되고 있나 보다.
1m쯤 위에 있는 리벳에 키홀 행어(key-hole hanger)를 걸고 출발한다. 올라서 보니 된장, 다음 리벳이 너무 멀다. 미국 클라이머들 키가 커서 엘캡에 있는 리벳이나 볼트는 다 멀리 있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 사다리 1단에 서도 한참 멀다. 쇼티스트 스트로를 개척한 릭 러브리스(Rick Lovelace)는 키가 195Cm 쯤은 됐나 보다.
요세미티 장비점에서 자루가 한 30Cm 되는 와이어 행어를 사왔기에 망정이지, X뗄 뻔 했다.
이어지는 몇 번의 훅 동작. 이런! 훅이 모자란다. 우리가 장비를 너무 줄였나 보다. 들어맞는 훅이 안보인다. 약간 흐르는 턱에 안맞는 듯한 포인트 훅(point hook)을 걸고 불안하게 넘어서는데 뻑! 여기서 첫 추락을 맛본 것이다. 훅 교체! 피쉬 훅(fish hook)을 꺼내는데 묻어있는 빨간 페인트… 아… 돌아가신 홍수형님 유품이구나. 나도 모르게 홍수 형님을 부른다. “형님, 뵌 적은 없지만 까마득한 후배 한별이가 형님 장비로 엘 캡을 오릅니다. 도와 주십시요.”
막 추락을 경험한 터라 더 간절했을까…
훅 구간을 넘어가니 점입가경, 그 다음은 헤드다.
누군가 박아 놓은 헤드를 믿을 수 있나? 내가 다시 박자니 힘도 들고, 시간도 들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으로 매달렸다. “나보다 훨 잘하는 놈이 박은 거다!” 살짝 체중을 실어보니 끄덕없다. “휴~~~~~~~~” 어쨌든 빨리 벗어나자.
2피치도 4시간이 넘게 걸렸다.
등반을 종료하고 홀링해서 2피치 종료지점에 장비를 매달아 놓고 하강해 땅에 닿은 게
캠프4에 돌아와 정호 형님 솜씨의 부대찌개에 계란 후라이로 배가 터지게 기운을 채운다. 정호 형님 이러시면 취사대장 입지가 곤란해 집니다…
제 2 일
우렁 된장! 또 비다!
오늘은 바람까지 세차다. 이런 날씨에 다시 등반을 하려니 앞이 막막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가는 수 밖에.
2피치 종료지점까지는 80m가 넘는 주마링을 해야 한다. 훈련할 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높이다. 빡빡한 구름 속에 비까지 맞으며 80m를 올라가는데 등반은 해보지도 못하고 탈진하겠다. 몇 번을 쉬었는지… 거기다 식량이랑 물이 가득한 홀백까지 끌어 올려야지.
3피치는
왼쪽으로 심하게 트레버스하는 구간으로 시작하는데 리벳 몇 개를 통과하면 바로 훅 구간이다.
그런데 한 10m 전진하던
진짜 머리 아팠겠다. 오죽했으면 후퇴를 했을까. 그런데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벌써
4피치는 전 구간이 A2로 비교적 쉬워서 내가 선등을 나섰다. 캠이 들어가는 곳도 있어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종료 몇 미터를 앞두고 크랙 깊이가 얕아 하켄이 다 안 들어가는 바람에 제법 짜릿한 맛을 볼 수 있었다. 약 3시간만에 등반을 종료하니
그래도 비 안맞고 포타렛지 치니까 다행이다. 홀링(hauling)하고 포타렛지 치고 한참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따뜻한 알파미에 볶음고추장, 마늘에다
이제 잠자리를 꾸린다. 우리에겐 포타렛지(portaledge : 허공침대)가 하나밖에 없다. 셋이 자려면 2인용 포타렛지 하나에 1인용 하나가 필요한데, 학교에서 1인용인줄 알고 빌려온 게 캠프에서 펴보니 2인용이었던 것. 이런 낭패다! 결국 편한 잠을 포기하고 가볍게 가자 해서 2인용 하나만 가지고 올라오게 된 것이다. 1명씩 번갈아 가면서 편하게 자기로 해서 오늘은
제 3 일
너무나 간절했었나. 등반 사흘째 아침에 눈을 뜨니 기적처럼 하늘이 파랗다. 요세미티 와서 이런 날씨를 처음 본다. 제발 이렇게 원없이 햇빛을 하루 종일 쬐고 싶다. 그리고 바람도 안불었음 좋겠다. 땀이 삐질삐질 나고 혀가 나올 정도로 더워도 원이 없겠다.
이런 소망을 안고 주영이가 가뿐한 몸놀림으로 5피치를 나선다. 그런데 출발은 가뿐했는데 좀체 전진이 안된다.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진다. 5피치의 난이도는 A4R. R은 위험하다(Risky)는 뜻으로 추락하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는 피치란 것이다.
가이드 북을 봐도 쇼티스트 스트로는 한 스무 차례밖에 등반이 안됐다고 하고, 인터넷을 뒤져도 등반기가 거의 없어 의아했는데, 여기까지 와서야 왜 로컬들도 이 길을 등반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바위가 주먹으로 쳐도 깨진다. 엘 캐피탄을 멀리서 보면 두 개의 커다란 검은 반점이 있는데 이 검은 바위가 푸석푸석 깨지는 바위다. 5피치부터 우리가 드디어 그 흑점에 접어든 것이다. 뭘 설치해도 믿고 나가기 어려운 바위… 자신이 설치한 장비를 신뢰해야 하는 등반가에겐 최악의 적이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주영이의 실루엣이 어느새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태양을 향해 날갯짓 하는 이카루스의 모습이다. 그래, 등반가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날갯짓하는 도전자 이카루스의 후예가 아닐까. 그 모습이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다.
갑자기 속이 좋질 않다. 부글부글 한다.
어제 오늘 먹은 우유가 갔나 보다. 나 혼자 이런 걸 보니 나 혼자 먹은 우유가 범인 맞다.
장이 꼬여오고 뒤가 싸~한게 설사다. 속도 아프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저 밑에서 망원경으로 보고 사진찍고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황급히 빌레이를
무슨 일이든 처음이 가장 어렵다. 그 뒤로는 하루에 몇 번씩 신호가 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매달려서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물줄기를 쏘면서 대장과 직장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옆에서 보고 듣고 있는
결국 사흘 동안 9번의 설사를 하고 난 탈진하고 말았다. 그 사흘 동안 여덟 피치 중 일곱 피치를 등반하면서 개고생을 한 주영이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우리의 등반 사흘째 날은 이렇게 내가 허공에 설사를 날리는 동안 주영이가 5, 6, 7피치를 혼자 뽑아 7피치 종료지점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숨을 돌리고 바로 오른쪽을 보니 조디악엔 볼트가 오바로크돼 있다(촘촘하다는 표현). 쇼티스트 스트로엔 볼트는 종료지점 말곤 찾아볼 수가 없는데. 그래서 저 친구들이 그렇게 빨랐구나. 우리가 등반을 시작할 때 조디악에 붙어있던 세 팀은 벌써 등반을 끝냈고 지금은 싹 물갈이가 돼 있었다. 우리가 등반하는 동안 조디악을 오르는 팀을 한 여섯 팀 본 것 같다. 심지어 하반신이 마비된 영국 상이군인까지 왔었다. 참 어이없게도 셋의 입에서 똑 같은 말이 터져나왔다. “씨X, 조디악이나 갈걸”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 웃었다. 그 후로도 어렵고, 힘들고, 추울 때면 우리 입에선 같은 말이 멤돌았다.
제 4 일
어제 하루 종일 설사를 했지만 아침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아 8피치 선등을 자처했다. 8피치는 A3+, 오른쪽의 제냐타 몬다타(Zenyatta Mondatta A4)를 스치며 오르는 42m 정도 되는 피치다. 주영인 발음이 어려운지 끝까지 젠다라 몬다라라고 불렀다. 아, 마지막엔 잘났다 몬났다까지 갔다.
산에 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거대한 기계의 작은 부품 같이 톱니바퀴의 삶을 살다가 대자연의 품에 안기니 그 해방감이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봇물 터지듯 머리 속을 휘젓는다.
그런데 등반을 시작하면 생각은 없어진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어떻게 추락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한덩어리로 돌아갈 것인가? 오직 이 생각과 동물적인 감각만이 등반가를 움직인다.
출발하고 한 7m 정도 좋은 크랙이 이틀만의 등반으로 떨어진 감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저 위쪽에 다시 좋은 크랙이 있는데 거기까지 한 15m 정도가 지랄이다. A3+에 리벳과 헤드로 연결된 밋밋한 오버행. 여기도 하나 하나 거리가 멀어서 사람 스트레칭을 많이 시킨다. 스틱 끝에 와이어 행어를 묶어 손이 닿지 않는 리벳에 거는 치터스틱(cheater stick)이 위력을 발휘한다.
여기도 가도가도 끝이 없긴 마찬가지다. 떠나오기 전 세준형이 암모니아 냄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을 거라고 했는데, 정말로 그랬다. 지칠 대로 지칠 즈음 어디선가 슬몃 코를 자극하는 암모니아 냄새에 올려다 보면 피치 종료지점이 보였다.
피치 종료를 하고 일단 홀링 준비를 해놓고는 역시나 다시 엉덩이를 깐다.
9피치는 주영이가 가볍게 끝내고 포타렛지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니
이제 자고 일어나서 등반하고, 회수하고, 홀링하고, 먹고, 싸고, 포타렛지 치고 또 자고, 이런 것들이 일상이 되었다. 인간의 적응력 참 대단하지. 마치 태어날 때부터 벽 생활을 한듯.
두 가지만, 딱 두 가지만 바랄 뿐. 춥지 않았으면, 그리고 제발 설사가 멎었으면.
오늘도 하루 종일 설사를 뿌려 힘이 하나도 없다.
무전기를 통해 탠저린 트립 팀과도 인사를 나누고 아래에 계신 인철 형님께도 저녁 인사를 드린다. 등반하면서도 서로 소리지르면 대화가 되고 무전기로 얘기도 많이 하다 보니까 영 미국 같지가 않다. 주영이가 큰 적벽 같다고 해서 한번 웃는다.
그 말에 문득 우리 세 사람이 처음 조우했던 어느 가을날이 떠올랐다. 몇 해 전이었던가… 비선대였지.
갑자기 무전기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강산에의 ‘할 수 있을 거야’. 인철형님이 틀어주신 거다. 설사에 추위에 진이 빠져 누워있는데 눈물이 핑 돈다.
인철 형님 쎈스쟁이~~~~~~ 고맙습니다.
제 5 일
오늘은 우리 등반의 분수령이 되는 날이다. 10, 11, 12 세 피치를 마쳐야 하는데 그 중 11피치가 쇼티스트 스트로에서 제일 센 A4+, 이름도 유명한 Sun and Steel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가장 걱정이 됐던, 우리를 제일 긴장하게 했던 피치를 오늘 돌파해야 한다.
그런데 10피치 선등을 나가려는 주영이가 무릎보호대 한 쪽이 보이질 않는단다. 이런… 자다가 떨어졌나 보다. 인공등반을 할 때 무릎보호대가 없는 건 치명적이다. 몇 시간이고 바위에 무릎을 대고 있어야 하는데. 일단 내 보호대 한 쪽을 빌려준다. 힘내라! 귀한 거다!
이런… 아침부터 또 속이 부글부글한다. 아마 오늘도 한 피치도 도와주지 못할 것 같다. 주영이를 내보내는 마음이 편칠 않다. 어느 유명등반가가 콧물을 훌쩍이며 남긴 명언처럼 “집 나오면 개고생이다”. 그는 텐트 안에서 밥을 먹으며 그랬지만, 난 벽에 매달려 설사를 하면서 개고생을 하고 있다.
10피치는 포타렛지 바로 위로 출발해 오른쪽으로 나가는 오버행 크랙을 따라 가야 한다. 난이도는 A2+. 그런데 퍽!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영이가 추락을 먹었다. 한 4m를 떨어져 포타렛지에 충돌했다. 추락거리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캐머롯 C3가 터졌단다. 어떻게 캠이 터지지? 바위가 그만큼 부실한 거다. 다시 기어올라가 터진 곳에 이번엔 소드 앵글(sawed angle : 앵글 하켄 끝을 잘라 뭉툭하게 만든 앵글)을 박고 넘어간다. 주영이 입에서 구수한 육두문자가 터져나온다. 지난 3월이던가, 원주 신림에 새로 찾은 채석장에서 훈련하다 주영이가 추락했던 것이… 한 10m를 떨어져 의식이 없는 주영이를 차에 태워 시속 200km로 병원으로 옮겼지. CT, MRI 다 찍어 봤는데 멀쩡해서 이렇게 같이 요세미티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잠시 지난 일을 떠올리고 있는데
엘 캡 정상에서 떨어지는 수 만개의 물방울들이 햇빛을 품고 다이아몬드 조각들처럼 흩어진다. 낙수(落水)에 불과한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 사이 주영이는 10피치를 종료하고 홀링을 준비한다. 쉬지도 못하고 또 11피치를 나가는 우리의 국가대표 주영이. 드디어 말로만 듣던 A4+의 11피치다.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에서 봤던. 리벳 25개를 올라가면 연속으로 훅이 6개. 사실 난 상상이 안된다. 연속 훅 6개라… 밑에선 보이지도 않아서 나중에 주영이한테 들은 거지만 훅을 건 바위가 깨져 크게 추락을 먹었단다. 얼마나 치열하게 등반했을까. 주영이와 등반을 해본 이는 알 거다. 아직 흑인이던 옛날의 마이클 잭슨처럼 늘 익살스럽게 보이는 그의 머리(100% 자연산)가, 등반할 땐 포효하는 사자의 갈기가 되고, 그 사이로 빛나는 눈빛은 형형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등반을 종료하고 확보지점에 닿아 헤~ 하고 웃으면 또 예의 그 모습으로 돌아간다. 참 좋은 등반가, 좋은 친구다.
홀백을 띄우고 올라가니 주영이는 또 등반을 준비한다. 12피치는 A2에 거리도 상당히 짧아서 금방 끝낼 수 있겠다. 역시나 한 40분만에 도착했단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요세미티 계곡에 신비롭게 드리운다. 참 예쁘다. 우리 등반에 서광이 비친다는 식으로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그냥 참 예쁜 무지개다.
생각보다 일찍 세 피치 등반을 마치고
포타렛지에서 보내는, 아니 엘 캐피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기에 난 쉬이 잠이 들지 못한다. 요세미티의 밤은 참 어둡다. 검다. 그만큼 별은 영롱하게, 보석처럼 밝게 맑게 반짝인다. 헤드랜턴을 껐을 때 수 백 개의 다이아몬드가 검은 벨벳 위에서 빛나고 있었는데,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수 만 개로 늘어났다. 하늘은 세모꼴이다. 신기하다. 엘 캡의 두 벽과 맞은 편 산등허리가 세 변으로 붙었다.
그 안에 이제는 수 백만 개가 된, 각자 나름의 신화를 간직하고 있을 그 많은 별자리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셰헤라자데의 이야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 임금님처럼 나도 별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것은 순도 100%의 자연이다. 순도 100%의 자연에 인간인 내가 안겨있다. 너무나 행복하다. 순간 한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내린다.
잘 산다는 것이 도대체 뭘까?
강둑에 콘크리트를 쳐바르면 우리는 잘 살게 될까? 강에다 화물선을 띄우면 잘 살게 될까?산에 케이블카를 깔면 잘 살게 될까? 삽질을 절대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를 가진 우리가 서글퍼진다.
사람과 자연의 공존… 대자연 시민권(Wilderness Citizenship)…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래도 이젠 자야지. 내일도 등반을 해야 하니까.
정말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추위. 벽에 X칠 한 것까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될 테다. 그리고 그 추억을 되새김하는 것이 지겨울 즈음 또 다시 모험을 찾아 나서겠지.
참, 그리고 내일은 제발 설사가 멎었음 좋겠다.
제 6 일
언. 젠. 가.
그래. 난 이 ‘언젠가’ 라는 말이 참 좋다.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이 짧은 한 마디는 ‘희망’이고 ‘꿈’이다.
바위를 모르던 시절, 수없이 백운대를 오르며 인수봉을 바라볼 때마다 ‘언젠가 꼭 오르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그리고 올랐다.
알렉스 후버(Alex Huber)의 동영상에서 엘 캐피탄을 보면서 ‘언젠가 꼭 가겠다’ 마음먹었고, 이렇게 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눈을 뜨니
같은 폭의 크랙이 한 20m 넘게 이어져 있다. 고정 확보물은 15m쯤 위에 리벳 하나뿐. 들어가는 장비는 캐머롯 4호뿐인데 우리한텐 4호가 2개밖에 없다. 이런, 아래 캠 빼서 위에 박는 식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리벳까지 한 15m 가는 동안 확보물은 하나도 없고 포타렛지까지 로프만 출렁거린다. 결코 어렵진 않은 길인데 한번 내려다 보니 짜릿짜릿하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캠을 뽑지 않고 밀어 올리면서 전진할 수 있었다.
13피치를 마치니까
정오쯤 구름이 몰려오면서 날씨는 또 흐려진다. 탠저린 트립 팀, 일명 낑깡 팀은
쇼티스트 스트로를 초등한
사진을 찍고 장비를 챙기고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도 경사가 심하고 하강을 세 번 해야 해서 쉽진 않단다. 체력도 바닥나고 그 장비를 다 짊어지고 내려오려니 또 혀가 나온다. 인철형님이 기다리는 주차장에 닿은 것이
캠프로 돌아오니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샤워와 세상에서 가장 맛 좋은 피자와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맥주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엘 캐피탄이 가장 잘 보이는 다리에 가면 늘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사진을 찍는 반백의 아저씨가 있다. 그 유명한 탐 에반스(Tom Evans). 젊은 시절 그도 요세미티를 주름잡던 클라이머였다. 이제는 엘 캐피탄의 너른 자락에서 엘 캡을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의 오름짓을 800mm 초망원렌즈로 담아내는 사진가다. 우리가 등반하는 6일 내내 지켜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어려운 루트를 훌륭하게 등반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특히 머리가 이따만한 애(주영이)가 등반실력이 막강하다고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단다. 이미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 elcapreport.com에는 우리의 사진과 등반평이 올라가 있었다.
그는 사진을 CD에 구워서 50달러에 팔기도 하는데, 우리 코리안 팀은 등반을 멋지게 해냈다고 CD를 두 장이나 공짜로 선물하는 것이었다. 뭐 사실은 우리가 등반할 동안 인철형님이 선물한 우리 학교 티셔츠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달려가자마자 물었다. “나 설사하는 거 찍었어요?” 씨익 웃으며 찍진 않았단다. 왜 씨익 웃었을까? 보기만 했다는 걸까? 몰래 찍어놓은 게 있다는 걸까? 그거 인터넷이 뜨면 안되는데…
갑자기 탐이 우리에게 누군가를 소개한다. 이 친구 엘 캡을 70번 넘게 올랐다고… 헉! 70번? 엘 캡의 신인가? 이름이 에릭 슬론(Erik Sloan)이란다. 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맞다! 이번 등반에 우리가 교과서로 썼던 Yosemite Big Walls를 쓴 이다. 유명인사를 만나니까 흥분이 된다.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면서 꿀맛 같은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몇 해 전, 미국에서 90대 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단다.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부를 좀더 할걸….? 돈을 더 열심히 벌었어야 했는데….? 그때 그녀를 잡았어야 했는데….?
이런 것이 아니었다. 정말 의외의 답이 나왔다. 90대의 90%가 “좀더 모험을 해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단다.
죽기 전에 후회하지 말자. 해 볼 수 있는 모험은 다 해보자.
사흘 동안이나 9번이나 설사를 하고 엿새를 등반하면서 녹초가 된 몸으로 하산하는 길에, 우리 마음 속엔 벌써 다음 모험의 그림이 그려진다.
주영아! 우리 내년엔 아이거나 갈까?
그랑조라스 가자!
그라자!
쇼티스트 스트로를 한국 초등하고 우리의 이번 등반에 엄청난 자료와 조언을 보내주신
많은 지원을 해 주신 마운틴기어
등반기를 쓰던 중
첫댓글 대단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