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참!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현우석, 중학교 때 그래도 특기는 살려서 체고를 갔었나봐.”
“아... 그 얘긴 들었지. 근데 왜?”
“자퇴했다는 얘기가 있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말썽피운 거 아냐?! 그래서 짤린 거고.”
“그런 건 아닌 거 같던데…….”
중학교를 입학하고 초반에 몇 번 버스터미널 앞에서 마주쳤을 때 아는 체를 해온 이후로 언젠가부터 다른 아이들 대하는 거와 다를 바 없이 내게도 찬바람 쌩쌩 불게 굴었던 현우석. 하지만 오히려 그런 현우석의 태도가 편했었다. 몇 번 마주쳐도 모르는 사람 보듯 지나쳐 가기 일쑤였고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마주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미영을 통해 들은 현우석의 소식은 의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육상에 소질이 있어서 운동을 해왔던 현우석은 고등학교도 특기를 살려 체고를 갔었단 얘기를 우연히 전해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자퇴를 한 것은 확실한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들 추측하는 말들뿐이었다.
미영에게 현우석의 자퇴 소식을 듣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살이 잔뜩 찐 남자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데 인상만 보고도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래도록 나의 고질병처럼 들러붙어 있는 낯가림이 또 그 아일 보고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시선을 피하고, 여전히 모른 채 또 지나가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안녕?”
“......”
“안. 녕?”
“응…….”
그때와 하나도 다른 게 없었다. 어느덧 현우석과 난 남자,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고 현우석을 보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두려움 이었던 건지, 어색함 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색하게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대답만 하는 날 보며 씩 미소를 짓던 현우석은 그대로 제 갈 길을 갔다. 사실 고등학교를 그만두면 최종 학력은 중졸인 상태가 되고, 나이도 미성년자여서 어느 곳에 쉽게 취업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곳저곳 알바를 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단 얘기를 들은바 있다.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하게 현우석을 대면했던 날 집에서 동생이 해오던 말이 있었다.
“누나! 오늘 우석이 형 만났다 나?!”
“뭐?! 어디서?”
“내가 간 PC방에서 알바 하던데? 그 형은 학교 안다니나봐?”
“그런가 보지 뭐.”
“내가 친구들이랑 PC방에서 놀다가 계산하려고 갔는데 우석이 형이 계산해주면서 뭐라는 줄 알아?”
“왜, 협박해?”
“협박? 그런 것도 협박이라고 해야 되나? PC방에서 쓸 돈 아껴서 누나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사주래.”
생각지 못했던 이루성의 한마디. 한창 사춘기라면 사춘기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감성이 자극되는 나이라는 열여덟의 난 루성이 전한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울리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가 싶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감정을 나에게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막상 현우석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잘 못하면서 되러 동생한테 큰소리를 쳤다.
“웃기고 있어. 지나 좀 사주라 그래. 왜 남의 동생한테 오지랖이야?!”
“그치? 좀 이상하긴 했어.”
“신경 쓰지 마. 그리고 현우석 알바 하는데 말고 딴 데로 가.”
“싫어. 계속 그 형 있는 PC방으로 갈 거야. 아는 형이니까 서비스도 주고 하겠지?”
“그런 거 바라지마. 너도 남중 다니니까 알거 아냐. 걔 중학교 때 애들 패고 다녔단 거. 그러니까 괜히 까불다 불똥 튈지도 몰라. 가지마.”
“싫어. 그래도 난 그 형 알바 하는데로 갈 거야. 나한테 잘해준단 말이야.”
“현우석이?”
“어.”
* * * *
[루나 고등학교 3학년 무렵]
등교시간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로 뒤엉켜 각자의 교실로 가기 바쁘다. 루나도 버스를 타고 매일아침 높은 경사를 올라 학교 교문에 이르기를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학교 내에서는 가장 서열 높은 선배가 된 셈이다.
“어?!! 쟤!!”
“왜?”
익숙한 실루엣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루나의 팔을 흔들어 상대를 향해 가리키는 미영. 미영의 반응을 따라 시선을 옮긴 루나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잠시 멘붕상태가 된 듯 보이는 루나.
“뭐야? 쟤 학교 그만 뒀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왜 여기 있어?”
“나도 모르지. 뭐야? 전학 온 건가? 자퇴는 헛소문인건가?”
“루나야!”
노선화. 남자아이들에게 관심 많고, 짝사랑 전문가. 루나와 미영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분명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통통하고 귀여운 상이었던 선화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어느 순간 급격히 살이 쪄 오르기 시작해서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
“뭘 보고 그렇게 놀란 표정이야?”
“아, 있잖아... 저기.”
“어? 아, 현우석?”
“뭐야? 그 반응은? 뭔가 아는 눈치다?”
“검정고시 봐서 우리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했다던데?”
“진짜? 대박... 우리 후배 된 거야?”
“그런 셈이지 뭐. 들어가자. 학년부장이 또 지랄할라.”
“어, 그래…….”
선화의 이끌림에 가장 뒤 건물이자 학교 내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올린 신 건물로 향하는 셋. 기숙사 건물 바로 옆, 식당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 3학년 건물로 향하는 셋은 별 대수롭지 않은 대화들을 하면서도 마냥 즐거워 까르르 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내심 또 현우석이 주변상황 신경 쓰지 않고 대뜸 아는 체부터 해 와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이 앞서는 루나는 힐끔힐끔 우석이 지나간 동선을 따라 고개를 몇 번 돌려본다.
* * * *
“루나야, 엄마는 루나의 의견이 중요해. 우리 루나가 싫다고 하면 엄마는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잘 듣고 루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줘야 돼.”
“응…….”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것 땜에 우리 루나랑 루성이가 상처 많이 받았지?”
“......”
“이 모든 게 어린 루나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갈 수도 있지만 신 싸움 때문이었던 거래.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엄마가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운명이래.”
“무슨 말이야 그게?”
“음... 엄마가 신을 받아 보살의 길을 가야 하는데 루나 생각은 어때?”
어느 날 갑작스러운 엄마의 폭탄선언이었다. 나를 붙잡아 앉히고,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말은 이루 상상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이야기. 그와 엄마가 그토록 다투었던 것, 그의 외도, 미친 듯 마셔대는 폭주까지. 다신 싸움으로 벌어진 일었단 사실. 내 나이 그때 당시 고작 열여덟.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을만큼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고, 누구보다 자식을 아끼는 엄마로써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고 또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한다면 괜찮다는 마음이 컸다. 엄마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아빠가 한다면 싫어도 엄마가 한다면 믿어. 난 괜찮아.”
“앞으로 엄마가 이 직업을 갖고 있는 것 때문에 루나가 불편한 상황들이 생기거나 안 좋은 얘길 듣게 될 수도 있어. 아직까지 사람들의 편견이란 건 무시할 수 없으니까.”
“괜찮아. 난 엄마를 믿어. 그리고 사람들이 엄마를 욕해도 상관없어. 그들은 잘 모르고 떠드는 소리니까. 루성이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걱정하지 마 엄마.”
“고맙다 루나야. 우리 루나가 이렇게 말해주니까 엄마가 한결 마음 편하게 발을 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엄마가 정말 열심히 배우고 잘할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줄게 루나야.”
“응. 엄마는 잘할 거야. 난 믿어.”
“고마워 우리 딸.”
* * * *
호석은 젊은 시절부터 다녔던 절이 있었다. 그리고 호석과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레 옥경도 루나와 루성이도 그 절에 다니게 되었다. 최근 다툼이 잦아들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집에 찾아가 사주를 넣고 점을 봤던 호석과 옥경.
사실 옥경은 절에 가는 것도 상당히 내켜하지 않았다. 그저 일방적으로 이끌고 가는 호석 때문에 마지못해 갔던 것이었고, 점집마저도 호석의 이기심으로 갔었던 곳이었다. 다만, 그곳에서 나온 점괘에 옥경은 부정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신을 받아야 돼. 안 그러면 딸한테 가. 그 꼴을 볼 수 있겠어?”
“거짓말 하지 말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지금도 이렇게 잘 살아왔는데 무슨 소리 하시는 거 에요.”
“지금 잘 살고 있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지 않아? 그게 본인들의 의지로만 그런다고 생각해? 생각해보면 싸울 일도 아닌데 싸우게 되고 괜히 화가 나고 그러지 않았어?”
“......”
“받아야 돼. 너무 세게 내려왔어. 안 받으면 드러눕힐 거야. 옴짝달싹도 못하게.”
“지금 나한테 무당이 되라고 하는 거 에요? 나 참…….”
“그럼 오늘 일단 집에 가서 하루 보내봐. 그러면 몸소 느끼고 다시 날 찾아오게 될 테니까.”
옥경은 자신에게 다짜고짜 신을 받아야 한다는 둥,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둥 말하는 보살의 말을 콧방귀 끼고 호석과 집으로 돌아온다. 귀가 얇은 호석은 이미 옥경에게 신을 받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었고, 그 소리가 듣기 싫은 옥경이었다. 루성과 루나는 학교를 가고 없는 집 안에 들어오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가슴이 답답하고, 사지육신의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든다. 옥경은 베개를 들고 와 거실에 눕는다. 그리고 스스로가 느껴지도록 몸이 돌덩이가 되어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그냥 잠시 피곤해서 그러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루성과 루나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시간에도 옥경은 누운 그 자세로 옴짝달싹도 하질 못한다. 자신이 이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손을 뻗어 힘겹게 루나를 부른다.
“루나야, 엄마 좀 잡아줘 봐.”
“어? 엄마 어디 아파?”
“아니야, 몸이 좀 무거워서.”
“응.”
옥경은 루나의 힘을 빌려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리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동공이 풀린 채로 있다. 루나는 옥경의 행동이 이상함을 느끼고 가만히 관찰한다.
“핸드폰 좀.”
“여기.”
“여보세요? 나 어제 갔던데 좀 다시 가봐야 될 것 같으니까 집으로 좀 와요.”
다시 찾은 보살 집. 힘겨워 보이는 모습으로 들어서는 옥경을 바라보는 보살의 눈빛은 ‘내가 뭐라 했냐’는 표정으로 응시한다. 보살 앞에 마주하고 앉은 옥경은 힘겹게 딱 한마디를 뱉는다.
“진짜, 내가 안가면 딸이 영향을 받아요?”
“그렇지. 아마 물어보면 그럴 거야. 이미 꿈도 꾸고, 몸도 이유 없이 아플 거야. 병원가면 아무이상 없다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만 아픈 거지. 예상한 게 딱딱 맞아 들어가고,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이겠다 대충 견적이 나오고 할 거야. 반 무당이나 다를 바 없지. 그러니까 엄마가 신을 안 받으면 그 기운이 다 어디 가겠어? 받아야 돼 엄마는. 안 받으면 안 돼.”
“알았어요. 딸한테 안 가는 거죠 확실히?”
“엄마가 받으면 안가지.”
“받을게요. 신 내림.”
“신 앞에서 거짓 고하면 큰일 나.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네 진심입니다. 할게요. 신 내림 받는 거 할게요.”
그렇게 처음 시작은 딸을 살리기 위해, 딸에게 물려지는 일이 없도록, 딸만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려고 옥경은 그렇게 신제자의 길에 발을 들이게 된다.
* * * *
고3임에도 불구하고 미영과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았다. 집이 위치한 동네로 들어가는 버스의 마지막 출발 시간이 저녁 7시 40분. 야간자율학습은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밤 11시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체계. 미영의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집에 계시지 않아서 데리러 올수가 없었고, 난 있다 해도 별로 도움 안 되는 존재였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잠깐 틈을 내서 날 집에 데려다 주고 영업을 이어가면 될 것을 분명 그는 나로 인해 하루 수입에 차질이 크다는 둥 투덜댈 것이 분명했고, 하루는 해줄지 몰라도 매일을 해주진 않을 그였다. 그래서 통학할 차편이 마땅치 않다는 핑계로 야간자율학습을 뺐다.
“선생님이 제 차편 해결해 주실 거 아니잖아요. 못해요 저.”
“휴... 그래, 하지 마. 대신 집에 가서 공부해야 된다?!”
“알았어요.”
무조건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려던 담임과의 대화. 교무실 문을 열고 나오자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친해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같이 가려고 기다린 듯한데, 딱 한명이 뾰로통하게 서 있다. 점심시간이 좀 늦어졌다는 불만을 그렇게 표하고 있는 듯 했다.
“가자.”
“루나 너 땜에 점심시간 줄어들었잖아.”
“그럼 어떡하라고? 담임이랑 상담하는데. 먼저 가든가 그럼. 왜 기다려놓고 그런 말 해?”
입을 삐죽거리며 앞서 걷는 아이. 나머지 아이들과 난 늘 있는 일이란 듯 대수롭지 않게 행동한다. 급식소를 향해 방향을 틀면서 1, 2학년 건물이 다 보이는 위치 즈음 섰을 때 였다.
“안녕?”
“......”
“밥 맛있게 먹어.”
“......”
나도 모르게 표정은 굳어버렸고, 정말 하찮은 사람을 보듯 마주친 현우석을 무시하는 태도로 굴었다. 애써 웃으며 지나가는 현우석과 나를 번갈아 보던 친구가 물었다.
“쟤랑 아는 사이야?”
“초등학교 동창. 근데 쟤 알아?”
“유명했잖아. 중학교 때. 근데 왜 저쪽으로 가?”
“들은 바에 의하면 검정고시 쳐서 1학년으로 들어왔다는 거 같아.”
“대박…….”
이상하게 현우석이 창피했다. 나에게 아무런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그냥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같은 학년도 아니고 1학년으로 들어온 현우석이 날 아는 체 하는 것이 싫었다. 괜스레 내가 하찮아 지는 기분이 들었다. 현우석과 내가 동급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표정이 굳어버렸던 것 같다. 쓸데없는 자존심이 이럴 때 발동하고 난리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