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초등학교
기성초등학교는 고려시대 이곳에 기성관이 있었답니다.
지금이야 대전에서 논산을 거쳐 부여나 강경 또는 익산 즉 전라도로 내려가는 길이 진잠 앞으로 해서 계룡(두마), 연산을 거쳐 지나가지만 고려시대에는 주도로가 대전에서 가수원 기성을 거쳐 벌곡을 지나 연산 논산을 거쳐 가거나 벌곡에서 운주로 해서 대둔산을 넘어 전주로 가는 길이 있었답니다.
그 길목에 자리 잡은 관이 기성관이랍니다. 그래서 기성관이 있던 동네에 학교를 만들면서 기성초등학교라고 했다네요.
그러다 고려말 조선초에 주도로가 기성에서 지금 다니는 진잠 앞으로 바뀌고 관청도 기성에서 지금의 진잠으로 옮겨오게 되었죠.
처음에 대전은 행정구역상 어떤 독립된 행정구역이 아니라 공주목에 속해있던 하급 행정 조직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방관이 파견된 직할 현이 아닌 유성현, 회덕현, 진잠현 등으로 나눠진 속현(지방관이 파견되지 않고 지방관이 있는 현에 딸린 현, 학교로 치면 분교장)이었습니다. 그러다 1905년 경부선이 부설되고 대전역이 개통되면서 유성일부와 회덕 그리고 진잠 일부를 합해 대덕군이 되면서 하나의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길헌분교장
길헌분교은 현재 기성초등학교에 딸린 분교장(分敎場)입니다.
길헌의 순수 우리말 이름은 길마루 또는 질마루입니다. 기성에서 벌곡을 가려면 조그만 고개를 넘어야 되는데 여기 고개가 찰흙이라 비만 오면 물이 잘 안 빠져서 질척거렸답니다. 그래서 이곳 고개가 질척한 고개라는 뜻의 우리말 질마루 또는 길마루라고 했는데 마루는 한자로 軒(마루헌, 추녀헌)이죠 그래서 길마루를 뜻하는 길헌이 되었어요.
또 이곳에는 이 찰흙으로 그릇을 구워 팔던 상점이 있는데 이곳을 사기점 골이라고 해요 길헌 분교 맞은편 길 건너 마을을 사기점 골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길헌에서 안쪽으로 더 쭉 들어가면 증촌 꽃마을이 있는데 여긴 무송 유씨(유금필 장군 후손) 집성촌이고요. 이 마을 이름이 증촌인 이유는 처음엔 길마루 근처에 마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꾸자꾸 더 들어와서 새로운 마을이 생겼어요. 그래서 더할 增 마을 村 해서 증촌 마을이고 꽃마을은 그 앞 비닐하우스에서 많은 꽃을 재배해서 파는 꽃 농장이 많아요. 그래서 꽃마을 ....
참고로 기성은 호남선이 생기면서 흑석리역이 생겼어요. 따라서 기성은 말 그대로 역세권, 이사람 저 사람이 모이죠. 그러니 마을 커질 수밖에, 그래서 후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많은 곳에 관공서(면사무소)가 생기고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죠. 그런데 길헌은 예부터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이 예요. 따라서 기성보다 길헌에 사는 사람들이 자부심이 더 강하고 학교에 대한 애착도 더 커요. 그래서 길헌분교장은 여러 번 폐교될 위기에서 마을사람들의 의지로 계속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