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7년에 있었던 아랍인의 콘스탄티노플 정복 위협으로 비잔티움의 운명은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 위기는 한 세기 전 페르시아의 위협을 격파했던 헤라클리우스만큼이나 결단력을 갖고 있던 레오 3세(Leo III, 717-741)의 역습으로 극복되었다.
오늘날의 화염방사기와 비슷한 “그리스의 불(Greek Fire)”이란 이름의 비밀 병기와 강력한 군사력의 도움을 받아, 레오는 바다와 육지에서 아랍의 군대를 격퇴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불은 비잔틴의 비밀 병기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무기는 7세기에 시리아의 기술자 칼리니쿠스(Callinicus)가 발명했다고 한다. 마치 액체 같은 불길이 파이프를 통해 뿜어지는 순간 적의 배는 즉각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이 물에 닿아도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무기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무기의 도입이 당시에 미친 영향은, 현대전에 핵무기가 도입된 것에 견줄 수 있을 정도도 대단한 것이었다.
717년에 레오가 치른 콘스탄티노플 방어전은 유럽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다. 비잔티움 제국은 이 방어전 덕분에 향후 몇 세기 동안 더 목숨을 연장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는 더욱 큰 의의가 있다. 서유럽 전체가 이 전쟁 덕분에 구원을 얻었던 것이다. 만일 그때 이슬람 세력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더라면, 그들이 유럽의 나머지 지역을 정복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비잔티움은 그 후 수십 년 동안 소아시아의 대부분을 다시 정복할 수 있었다. 소아시아는 그리스 지역과 더불어 그 후 300년 동안 비잔틴 제국의 심장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비잔티움과 이슬람은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그 후 1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비잔틴은 취약해진 이슬람 세력에 대해 공세를 취하게 되었다. 비잔티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이기도 한 이 시기에 비잔티움 군대는 시리아의 대부분을 다시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11세기에 접어들어 비잔티움은 또 다른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투르크족에 의해 종전에 획득한 영토를 모두 잃고 말았다. 1071년에 셀주크족은 소아시아의 만치케르트(Manzikert)에서 비잔티움 군대를 전멸시켰다. 이 놀라운 승리로 말미암아 그들은 비잔티움 동부의 남은 지역을 정복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제 헤라클리우스 시대나 레오 3세 시대와 비슷한 처지로 돌아갔다.
만치케르트 전투 이후 비잔티움 제국은 살아 남기는 했으되, 처음의 활력을 되찾지는 못했다. 그 중요한 이유는, 1071년부터 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 비잔티움의 운명은 서유럽의 흥기로 말미암아 대단히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유럽은 너무나 세력이 취약하여 비잔티움에 대해 도전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11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서유럽에는 이 무렵 이른바 중세 전성기(1050-1300)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9세기와 10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내우외환이 종식되면서, 바야흐로 혼란스럽고 야만스러운 중세 초기(600-1050)가 끝나고 있었던 것이다.
셀주크족이 비잔티움에 대해 승리를 거두던 1071년 바로 그 해에, 서유럽인―노르만인―은 비잔티움인을 남이탈리아에 남은 그들의 마지막 점유지로부터 추방해 버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서유럽의 명백한 적의에도 불구하고,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우스 콤네누스(Alexius Comnenus)는 1095년에 투르크족에 대항하기 위해 서유럽에 원조를 요청했다.
그의 원조 요청은 그야말로 최악의 실수였다. 그의 원조 요청은 서유럽의 십자군 운동을 촉발시켰고, 이 십자군이야말로 비잔티움 제국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서유럽인들은 비잔티움에게 소아시아를 되찾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잔티움인들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간주하고 있던 시리아를 차지하고 말았다.
시일이 흐를수록 갈등은 커져만 갔고, 바야흐로 군사적으로 우월해진 서유럽은 콘스탄티노플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1204년에 그들은 마침내 야심을 달성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기로 했던 십자군은 엉뚱하게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무자비한 약탈을 감행했던 것이다.
극도로 위축된 비잔틴 정부는 시외곽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 후 1261년에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귀환했다. 그러나 그 후 비잔티움 제국은 옛 영화의 추억만을 간직한 이름만의 “제국”일 뿐이었다. 1261년 이후 비잔티움은 그리스의 몇몇 지역에서 1453년까지 근근히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1453년에 셀주크족의 뒤를 이은 오스만 투르크족은 제국의 마지막 흔적마저 정복하고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함으로써, 십자군이 미처 못 한 일을 완수했다. 투르크족은 오늘날도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을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