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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답사 자료집과 <역사와 책임> |
2012년의 <하얼빈·쌍성·취원창 답사 보고서>는 누가 쓰셨는지 세세하고 생생하게 사진을 곁들여 정리를 잘해 주셨습니다. 그 때는 10월 말이라 두꺼운 옷들을 입으시고 다녀오셨더군요.
<첫째 날> 10월 9일 한글날-“겨레의 글,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을 기억합니다.”
약속된 시간 9시 반,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반가운 분들이 많네요. 40명 중에 10여분은 아는 분이라 서먹하기만 하진 않네요. 그런데 모르는 분들을 알게 되는 것도 새로운 기쁨입니다.
여러 번 느꼈지만 우리나라 인천공항 참 크고 넓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공항 맞네요. 출국 수속도 참 빠릅니다. 물론 이용객도 많고요. 떠나는 여행객 모두가 즐거운 표정들입니다. 그들을 보는 제 마음일까요? 시간이 조금 여유로와 안양고 위지숙 선생님과 따듯한 커피 한 잔의 행복을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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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공항 |
우리는 단체비자이니 이름 순서대로 입국 수속을 받고 나가야합니다. 번거롭네요. 이젠 양국이 서로 비자 안받고 왕래하면 안될까요? 1년에 1,000만 명이나 서로 왕래하는데….
귀국하시는 중국인들의 손에는 짐이 가득합니다. 짐 겉포장을 보니 쿠쿠밥솥, 쿠첸밥솥이 꼭 있네요. 아, 20년 전에는 우리 어머니들도 일본 가서 코끼리 밥솥 엄청 사들고 들어왔었지요? 어쨌든 고마운 대한민국의 큰 손 고객님들입니다.
처음 만난 교포 가이드 최창호씨가 헤이룽장성과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합니다. 이곳에는 역사적으로 3명의 유명한 한국인이 있다고 하네요. 안중근 의사, 정율성 음악가, 청마 유치환 시인…. 유치환 시인은 이곳과 무슨 인연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중에 확인하니, 유치환 시인은 1940년대 초 5년간 중국 헤이룽장성 옌서우현에 거주하면서 농장과 정미소를 관리하였다고 합니다.)
쑹화강변으로 먼저 갔습니다. 엄청 큰 강이네요. 저는 작은 강일 줄 알았습니다. 한강 보다 더 큽니다. 자연이든 인공이든 모든 게 규모로는 비교가 안되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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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시다린(斯大林)은 ‘스탈린’ 광장 |
식당으로 이동하며 차안에서 간단한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우선 우리 1호차반 담임선생님은 서중석 교수님, 반장은 이준식 교수님 등 어르신들의 간단한 인사가 있었습니다. 1호차에는 조회환 외국어대 중국어과 명예교수님, 온생명평생교육원 김인술 원장님, 김원근 교장선생님, 김익록 장학사님, 양동석 울산대 의대 교수님, 정만순 변호사님 등 구성원 면면이 대단합니다.
저녁 식탁에서 처음 뵙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반가운 분들입니다. 단장이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님께서 인사말과 함께 3가지를 강조하시는데 우선 답사단 모두가 건강하고, 독립운동가 선열께 감사하고, 그리고 돌아가서 힘차게 싸우자는 건배사를 하십니다. 모두가 웃으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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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사하시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님 |
저녁 8시에 모두가 한 잔하러 나갔습니다. 벌써 며칠을 함께한 것처럼 금방 친해집니다. 30여명이서 양 꼬치구이를 수백 개, 맥주를 100병도 더 해치우고 들어왔습니다. 술값은 누가 냈는지, 두 분이 서로 내시겠다고하다가 오늘이 10주년 결혼기념일이신 정준호 대표님이 내셨고, 내일은 생일이신 광주대 김순흥 교수님이 내시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차로 끝나지는 않았지요? 같이 방을 쓰는 서천고 이경훈 선생님은 가지고온 술을 들고 방학진 사무국장 방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몇 시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둘째 날> 10월 10일 금요일
7시에 호텔 2층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8시 반에 드디어 출발합니다. 1호차는 이준식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1시간 동안 답사단 1호차는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모두가 말씀도 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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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안내해주신 이준식 교수님 |
일제시대 3대 대첩을 묻습니다. 누군가 눈치 빠르게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쌍성보 전투라고 대답합니다. 정답은 쌍성보 전투가 아니고 대전자령 전투이랍니다. 교과서에는 쌍성보 전투라고 하는데 와서 보니 그냥 쌍성 전투라고 해야겠습니다.
우선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지휘소였던 기념관을 들어갔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님이 쌍성 전투에 참가한 이규채 독립운동가의 회고록 내용을 설명하셨고, 방학진 사무국장님이 이준식 교수님과 이성우 대표님이 독립운동가 후손임을 밝히셨습니다. 모두가 박수로 환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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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이준식 교수님과 이성우 대표님 |
더불어 이성우 일빛출판사 대표님은 쌍성보 전투에 참여하셨던 이규채 독립운동가의 손자이셨습니다. 어쩐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기념관을 돌아보다가 한 인물 동상에서 김삼웅 관장님께서 린뱌오(林彪) 장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름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본명은 린위롱(林育蓉)이고 주더(朱德), 팽더후이(彭德懷) 만큼 유능한 야전사령관이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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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지휘부 기념관의 린뱌오(林彪) 동상 |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드디어 서중석 교수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 앞에 앉으신 광주대 김순흥 교수님 표현대로 ‘좔좔좔’ 거침없이 말씀을 쏟아내십니다. 상식없는 사회에 대한 안타깝다는 말씀부터 애국가 가사의 시대적인 의미, 안익태 선생에 대한 서훈 부결 과정, 신흥무관학교 교가 해설까지…. 내공이 너무너무 깊어 헤아릴 수 없는 역사학자의 말씀이니 한마디도 놓칠 수 없지요. 안양고 위지숙 선생님은 모든 말씀을 모두 녹음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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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교수님의 좔좔좔 역사특강 |
특별히 2호차 담임이셨던 김삼웅 관장님이 1호차로 오셔서 특강을 하셨습니다. 731부대 이야기, 동북3성의 독립군 이야기 등 열의에 찬 독립운동사 역사 특강을 들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점심이 늦었습니다. 다시 하얼빈시로 와서 2시 반에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긴 100년 전의 선열들은 ‘끼니’라는 게 있었겠습니까? 배고픔이 느껴져서인지 그 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해집니다.
독립군의 심정으로 식사를 마치고 하얼빈역으로 왔습니다. 다섯 시가 다 되었네요. 하얼빈역! 중요한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인 의거 현장이지요. 지난 봄에 중국 당국이 잘 만들어놨습니다. 고마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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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 안중근기념관의 의거 현장(기차도 마침 들어오네요) |
누군가 ‘운보(雲甫)’라고 쓰여있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의 그림을 발견했네요. 운보가 그린 그림 맞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화풍은 그럴듯한데, 친일 화가가 그린 그림이 안중근 기념관에 있다는 것이 영 불편합니다. 운보그림이 맞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녁 식사후 호텔로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달린 분들이(‘달린다’는 표현을 하네요.) 오늘 밤에도 달릴 예정인 것 같습니다. 술을 잘 드시는 분들은 참 좋겠습니다. 김순흥 교수님 팬들은 다 몰려가실듯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움을 누릴 것 같아 조금은 배가 아픕니다. 저도 예전에는 술을 잘 했지만 지금은 먹는 시늉만 합니다. 위장이 부실하여 응급실에 두 번 갔었거든요. 요즘 제 별명이 ‘요물’입니다. 술잔만 ‘들었다 놨다’한다고. 제 경험상 브레이크 없이 달리다가는 ‘짧은 기쁨 긴 고통’이 기다릴 겁니다.
<셋째 날> 10월 11일
아닌 게 아니라, 김원근 교장선생님 아무것도 못 드십니다. 어제 드신 맥주가 탈이 났다고 하시네요. 남을 배려하시는 건지, 교장 선생님 표정은 그렇게 나쁘시진 않습니다. 그래도 걱정입니다.
버스는 8시반에 취원창, 우의촌, 천리향으로 향합니다. 취원창(娶源昶) 가는 고속도로가 시원합니다. 주위 옥수수 밭이 끝도 없습니다. 이동 시간이 좀 길어지니 서중석 교수님의 역사특강이 있었습니다. 2년 전 취원창 찾게 된 이야기, 김동삼 선생 역사 이야기(며느리 기억), 석주 이상룡 선생 집안 서훈 등급 이야기 등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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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페셜 정율성 비디오 시청 |
취원창, ‘고려령(高麗嶺)’을 찾아 두 시간쯤 갔는데, 가이드와 기념사업회 안내하는 분들도 확실하게 어디라고 단정하지 못하고 만나는 중국인들에게 물어물어 갑니다. 가다보니 갑자기 논이 많이 나옵니다. 여기 어디가 아닐까 하는데 대충 여기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마을로 들어가니 갑자기 어느 술 취한 할아버지 한 분이 오십니다. 그리고 서중석 교수님과 김재운 기획팀장님이 2년 전에 만났던 그분이라고 반가워합니다. 우리도 자료집 사진속의 그 분임을 알겠습니다. 외대 중국어과 조회환 교수님이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시고 그 분이 자기 이름을 씁니다. ‘于景學’이라고 하고 조 교수님과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나누시네요.
자료집에 있는 사진과 또 같은 동원학교 터, 한인 사회의 지도자 이광민 선생의 집터를 확인했습니다.
취원창은 지금 이름이 아니니, 2년 전에 찾는 고생을 안했다면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 뻔 했습니다. 자료집에서는 지금 이름이 빈현(賓縣) 당방진(唐坊鎭)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신흥무관학교 관련 우리 선열들은 논농사를 보급하고 200여 호 모여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국공 내전 때 천리향으로 안전을 위해 옮겼다고 하고, 지금은 우리 조선인이 한 집도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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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환·서중석 교수님과 중국인 于景學 어르신 |
취원창을 확인하고 우의촌으로 이동합니다. 눈에 반가운 한글 간판을 봅니다. ‘할빈시도외구민주향우의촌’. 이곳에 조선인들이 꽤 사나봅니다. ‘시골집’(식당 같음)이라는 한글 간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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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촌 건물로 가는 답사단 |
하얼빈시로 다시 돌아와서 점심을 먹어야하니 어제보다 더 점심이 늦었습니다. 3시 반에 곡기를 채울 수 있었는데, 어른들은 참을만 하지만 2호차의 초중고 학생들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게 먹은 점심이 맛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탈이 난 김원근 교장 선생님은 아무것도 못 드십니다. 얼굴은 밝게 웃으시지만 우리 모두 마음이 안좋습니다.
점심을 마치고 자오린 공원(兆麟公園)으로 갔습니다. 원래는 정율성 기념관을 들를 예정이었는데, 문 닫을 시간이라 내일 가기로 했습니다.
자오린 공원은 리자오린(李兆麟)이라는 1910년에서 1946년까지 36년간 짧은 삶을 산 중국의 항일투쟁 영웅을 기리는 공원인데,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안중근 의사의 친필이 돌에 새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원 뒷쪽에서 ‘靑草塘’과 ‘淵池’라는 글씨를 새긴 비석을 보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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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린 공원 청초당 비석 |
어둑어둑 해지는 시간에 소피아 성당엘 갔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고 100년된 건물입니다. 각자 20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습니다. 성당 내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얼빈시의 옛 사진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20위안의 값어치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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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시내의 성 소피아 성당 |
점심식사 후 자오린 공원, 소피아 성당을 구경하느라 2시간 정도 걸었는데도 배가 안꺼졌습니다. 그래도 6시 반에 예약해 놓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엘 갑니다. 메뉴는 샤브샤브입니다. 배갈을 좀 마시니 샤브샤브 식사가 맛있습니다. 함께 자리하신 이준식 교수님께 역사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식사 후 호텔로 왔는데 오늘은 조회환 교수님, 권순기 세무사님이 술을 사신다고 하십니다. 교수님과 세무사님이 아예 현금을 주십니다. 술꾼들은 환호성을 칩니다.
그러나 우선, 모두가 발 맛사지를 받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문화체험입니다. 한 시간의 문화체험을 하니 시원도하지만 노곤합니다. 잠이 쏟아집니다. 술 좋아하시는 분들은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러 나갑니다.
<넷째 날> 10월 12일
넷째 날이 밝았습니다. 간밤에 비도 살짝 내리고 바람도 붑니다. 그러나 날씨는 참 청명해서 상쾌합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원근 교장 선생님이 직접 지으신 시를 읊으셨습니다. 제목은 “길은 숨결이다.” 독립군을 따라 역사를 보면서 느낀 소감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구, ‘뜨겁게 한 시대를 살다간 큰 별들을 보라.’가 확 와 닿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후손에 부끄럽지 않기를….
아침에 일직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신 군포에서 오신 권순기 세무사님이 순무, 대추, 사과 등의 온갖 과일을 돌립니다. 별명이 시장통이십니다.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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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시장 거리 |
안중근 의사가 갖혀 계시던 일본대사관이던 화원소학교는 차창으로 봅니다. 어차피 학교라서 지하실까지 볼 수는 없답니다.
우리는 마지막 탐방지로 큰 마음을 갖고 정율성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중국에서는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지요. 기념관은 2009년에 열었습니다. 참 잘 만들었습니다. 찬찬히 세세히 둘러보았습니다. 그의 모든 행적을 공부합니다. 기념관의 입구에는 그 분이 작곡하신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이 힘차게 울려 나옵니다. 정말 힘찹니다. 그분의 삶을 기리는 추모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정율성 음악가의 고향 광주에서 오신 김순흥 교수님은 더 감흥이 크신 것 같습니다. 중국어로 되어 있는 책도 30위안 주고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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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기념관 내부 |
이제 하얼빈 공항으로 갑니다. 그리고 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식 시간입니다. 사회는 방학진 국장이고요. 식순에 따라 모든 분들이 감사의 인사를 하십니다. 배운 점, 좋은 점이 많습니다. 낭만적인 사랑 노래도 한 곡 하시고, 독립군가도 함께 부릅니다. 그리고 공항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을 기념으로 찍고 면세점에서 북한산 술도 샀습니다.
비행기는 서해로 반바퀴 돌아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덥네요. 25도입니다. 하얼빈에서는 바람도 불고 쌀쌀했는데. 정말 뿌듯한 여행이었습니다.
해설을 해 주신 서중석 교수님, 김삼웅 관장님, 이준식 교수님 그리고 여행을 안내해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여러분, 여행사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제안을 해봅니다.
첫째,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이젠 중국어로 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흑룡강성 보다는 헤이룽장성, 조린 공원은 자오린 공원, 송화강은 쑹화강으로, 임표는 린뱌오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측에서도 서울을 이제는 한성이라 안하고 ‘首你’이라 하는 것처럼.
둘째, 청소년을 무조건 참가자의 반으로 해주세요. 이번엔 좀 적었어요. 어른은 그냥 관광이지만, 학생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청소년들에게는 비용도 많이 줄여주고요. 청소년들이 앞으로 이런 역사에 관심 안가지면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봐요.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설명은 따로 누군가 아주 쉽게 해야겠죠?
마지막으로 다양한 체험을 끼워 넣어 주세요. 역사 뿐 아니라 문화 체험, 청소년 교류, 조선족 인사의 특강(초대) 등등. 조선족 학교 방문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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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하얼빈 비행기 항로 화면 |
감사합니다.
<추기>
“아, 제2의 안중근이 다시 나와야하는 세상이라니….”
돌아와서 감응에 젖어 다시 책을 폈습니다. 2009년 김삼웅 관장님께서 쓰신 <안중근 평전>(시대의창)입니다. 더불어 2012년 김삼웅 관장님의 안중근의사 103주년 추모사를 동영상으로 보고 또 봤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추도사 중에 목이 메어 차마 읽어 내려가지 못하시는 관장님의 ‘귀태 세상’이 귀에 울립니다.
“… 이토를 비롯한 제국주의 괴물을 낳은 귀태는 나날이 광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토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모제를 지내고 그들에게 충성했던 우리들의 모태와 혈통도 번창하기만 합니다. 그 귀태와 모태가 권력과 재력과 타락한 정보기관과 타락한 언론을 낳고 오늘 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누군가 또 나서야 하나요?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忍耐(참고 견딘다.)….” (끝)
첫댓글 한글로 만들었는데 복사해서 붙이니 사진이 안보이네요. 왜죠?
사진이 안보이죠? 한글 파일에 있는 사진을 글과 함께 copy & paste 하면 사진이 안보이는 가 봅니다. 호환성 문제겠지요. 좀 성가싫더래도, 매 사진을 본 게시판에서 다시 업로드해야 합니다.
역시 답사전문가인 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 좋네요!
3박4일의 여정이 눈에 선하네요!!
발길 닿았던 곳곳의 감흥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해요!!!
찬수샘 감사합니다~~
글구 참...
남은 우표는 31장이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