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906년이후는 언급하기에는 가슴이 아프다. 120년전이나 살펴보자 정조10년 정조의 조모격인 정순왕후는 오라비인 김귀주가 유배 도중 사망한 뒤로 정조를 원수로 여겼다. 1786년(정조 10년) 김귀주가 사망한 이후 의빈 성씨에게서 얻은 문효세자가 죽고 뒤이어 임신중이던 의빈 성씨 역시 죽었다. 11월에는 상계군 마저 죽었는데 하나 같이 의심스러운 죽음이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 대비가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무슨 해괴망측함인가? 대비가 아니라 마귀인 셈이다. 조선은 대비전에서 망하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1786년 6월 28일 ~ 1856년 10월 10일)노론 북학파 실학자이면서 화가, 서예가였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가 있다. 그는 또한 난초를 잘 그렸다.1809년(순조 9) 생원이 되고, 1819년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 삼사의 언관을 거쳐 효명세자의 사부로써 보도하였으며, 1823년 규장각대교가 되었다가 충청우도암행어사로 나갔다. 1836년성균관대사성과 병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가 풀렸다가 다시 유배감.헌종의 묘를 옮기는 문제에 대한 영의정 권돈인의 예론(禮論)으로 예송 논쟁이 벌어지자 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1853년 풀려났다.실학자 박제가의 문인으로 연암 박지원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흥선대원군과 박규수, 효명세자는 그의 문인들이었다.
60년전엔 헌종12년이다.헌종은 효명태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른 나이에 왕이 되는 바람에 모든 실권이 안동김씨문중으로 넘어가게 된다. 비록 갑작스런 중궁의 죽음으로 풍양조씨가 일부 진출하였지만 그건 일종의 배려였다.대비 순원왕후는 조정사를 문중에 자문했다. 헌종때는 남응종,민진용 등이 은언군의 손자(철종)를 시시때때로 옹립하려했으니 왕권이 무너진 상태였다. 조선후기 조간,홍근,유근,흥근,철종때는 병학,병기,병주,병교,병국,병지,병덕,병윤,병직,병필,병집.병시..까지 이당시 안동김씨 왕국이다.병오년에 잠시 헌종이 반격코자 5영의 대장을 교체했지만 그것은 왕이 명을 재촉하였다. 신사생인 김대건은 병오년에 죽고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은 병자년생이다.이승훈은 신해박해때 죽으니 비명에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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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다면야(山多勉夜) 원문보기 글쓴이: 삼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