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반 촌놈들 서울에 가다
봄, 가을 두 차례의 주제별 체험학습은 분명 반가운 프로그램이지만 교사로서 부담도 된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대충 시간을 때우는 것도 부담스럽다. 절차와 규정들은 왜 이리 까다로운지 예닐곱 차례 결재를 올리다보면 짜증부터 난다. ‘소풍’이라는 좋은 말을 두고 ‘주제 별 체험학습’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뜩찮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교사들에게는 부담스런 행사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중3 시절에 단 한 번 뿐인 소풍이어서 소홀히 할 수도 없다.
학기 초 3학년에서는 1학기에 반 별 주제별체험학습을 하고 2학기에는 놀이동산으로 가지고 합의를 했다. 하지만 막상 2학기가 되자 봄 소풍처럼 밤 별로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어디로 갈까?’였다. 어디로 가야 아이들의 눈높이에도 맞고 학교당국을 기쁘게 할까 고심했다. 뇌의 회전속도를 빠르게 돌리다보니 몇 년 전 주체 별 체험학습 때 서울답사를 다녀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생각은 빠르게, 선택은 단순하게 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서울로 가자는 내 의견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다만 내 눈치를 슬그머니 보면서 ‘어떻게 갈 건데요?’라고 물었다. 순간 아이들의 생각을 읽었다. 서울 가는 것은 찬성하지만 내가 끌고 다니는 답사는 싫다는 거구나! 나에게는 상황을 예측을 하고 미리 준비한 카드가 있었다. ‘거 있잖아. 모둠을 만들어서 출발도 따로 하고 서울에서도 미션수행하며 따로 움직일 거야.’ 아이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얼른 교무실로 돌아와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교실 게시판에 붙였다. 모둠은 여섯 개로 하고 똘똘하고 활동적인 아이로 조장을 미리 뽑은 뒤 아이들은 원하는 모둠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동할 때도 모둠 별, 오전에 3곳 이상 미션을 수행할 때도 모둠 별, 점심 식사도 모둠 별, 오후 미션 수행도 모둠별, 모든 프로그램이 모둠별이고 내려올 때만 전체 모여서 오기로 했다. 기차표를 예매시키고 핸드폰을 꼭 소지하라고 이르고는 다음 날을 기다렸다.
모둠 별 체험학습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되는 것이 아이들의 안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1년 동안 매일이다시피 지각을 했던 윤군과 그의 친구 이군의 참여 여부였다. 하루 전날 마침 등교한 윤군과 이군에게 시간약속을 잘 지키고 모둠 별로 움직이라고 신신당부하고는 조장인 백군에게도 살뜰히 챙겨줄 것을 부탁했다.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평택역으로 나가 각 조장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만나 기차와 전철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백군의 모둠에서는 윤군과 이군이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구나 백군은 두 아이가 약속시간을 어겼다며 떼어 놓고 자기들끼리만 올라가고 있었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윤군은 평소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군은 윤군을 기다리느라 출발하지 않았다며 속 터지는 우정을 자랑했다. 아이들에게 어차피 늦었으니 집에서 푹 쉬라고 했다. 헌데 이군이 혼자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전에 한 번 올라 간 경험이 있는 거였다. 그래서 핸드폰도 없는 놈이 혼자 올라와서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어떻게 만날 거냐고 했더니 염려 말란다. 할 수없이 허락을 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우리가 활동한 공간은 오전에는 정동일대, 오후에는 인사동 일대로 정했다. 덕수궁에서 모둠 별 미션을 부여하고 출정식을 했다. 아이들이 수행할 미션은 덕수궁의 대조전을 답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을 관람할 것, 옛 육영공원 터인 서울시립미술관과 을사조약의 현장 중명전을 답사할 것, 최초의 기독교학교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답사할 것, 아관파천의 현장 옛 러시아공사관 터를 답사할 것 등이었다. 답사를 하며 인증샷을 찍어 보내는 것은 필수! 아이들은 희희낙락 하며 흩어졌다. 잘 하겠지, 잘 할 거야.
우리학급과 동행한 이선생도 백군 모둠과 함께 가버리고 나는 혼자서 서울시청 지하의 서울청 광장에 가서 책을 몇 권 산 뒤 전철을 타고 종로5가 광장시장으로 향했다. 광장시장에는 내가 그토록 먹고 싶었던 부촌육회가 있기 때문. 싱싱한 육회 한 접시에 밥을 비벼 맛있게 먹고 청계천 평화시장을 지나 동대문으로 추억여행을 시작했다. 평화시장의 상징은 1970년 청계천오거리에서 분신자살한 전태일 열사. 보도블럭에는 발길이 닫는 곳마다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명패가 새겨져 있다. 명패 중에는 내가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님도 계셨고 이름 모를 가족들, 각 사회단체, 노동단체의 이름들이 새겨 있었다. 기억한다는 것,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며, 한편으로는 저들이 이름을 새길 때 나는 무엇을 했을까 뒤돌아봤다. 서평화시장을 지날 때쯤 헌 책방이 보였다. 반가웠다. 19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해서 선배들과 교수님께 전수받은 수많은 책이름과 학자들, 가난한 처지에 그 책들을 모두 살 수가 없어 무수히 발품을 팔았던 공간이다. 반가운 마음에 불쑥 들어가서 책을 구경하며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 며 책을 몇 권 샀다. 어쩌면 책을 샀다기 보다 추억을 한 보따리 샀다고 말하는 것이 옳았다. 황학동 벼룩시장과 동묘 앞은 처음 형성될 때의 생동감과 재미가 없었다. 흡사 어리버리한 시골 놈들 홀려먹으려는 느낌!
아이들과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 만났다. 우려했던 이군은 혼자 전철을 타고 올라와 백군팀과 무사히 만나 점심도 먹고 이곳저곳 여행도 했다고 한다. 기특한 놈. 저마다 무용담을 늘어놓는 아이들을 데리고 탑골공원의 유적들을 안내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노는 것이 재밌는지 듣는 둥 마는 둥하다. 인사동은 수행할 미션이 적으니 거리를 오가며 재밌는 것들 많이 구경하라고 알렀더니 염려말라고 한다. 오후미션을 제시하고 다시 출정식. 아이들을 보내고 낙원악기상가에 올라갔다. 요즘 관심이 가는 우쿠렐레를 보는 것이 목적. 무릎이 꺾이도록 돌고 돌았지만 맘에 드는 것은 너무 비쌌고 싼 것은 너무 허접했다. 낙원상가를 내려가려니 힘도 들고 발바닥도 아파서 더 걷기가 싫다. 백군 팀과 동행했던 이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인사동에서 만나 근처 찻집에 들어갔다. 대충 감으로 선택한 2층 찻집은 예상 외로 차 맛도 훌륭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 시간쯤, 이제 용산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용산역에 도착해 있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물었더니 볼 게 없다는 거다. 인사동에 풀어놨는데 볼 것이 없다니, 어이가 없었다. 아이들 점고를 하는데 뭔가 빈 듯하다. 백군 모둠 어디갔니? 아이들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서둘러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안 된다. 몇 차례 시도해서 겨우 통화를 하는데 이놈들은 아직도 안국역 근처 노래방에서 놀고 있단다. 애고.... 빨리 오라고 했더니 택시타면 20분밖에 안 걸린다며 염려 마란다. 평택으로 내려가는 누리로를 타고 의자에 몸을 눕혔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수다 중이다. 건강하고 해맑은 모습에 마음이 맑아진다.(2017.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