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영도에는 태종대라는 경치 좋은 곳이 있는데, 깎아지른 절벽이 얼마나 높은지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까마득하다. 낭떠러지 아래는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면서 하얗게 물보라가 휘날리는 아름다운 장관이 연출되는 곳이다. 지금부터 한 40여 년 전에 필자가 16~7세쯤 되었을 때 친구들과 그곳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그 아찔한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그들이 한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하여 아들을 꼭 껴안은 인자한 어머니상을 세워 놓았었다. 그때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이고! 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저 밑바닥까지 닿으려면 한참동안 떨어져야 하겠는 걸!’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정확히 1978년 2월 24일 오후 이른 봄,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다. 부산시 동래구 명장동에 있는 세신실업(공구류 생산 공장) 앞길에서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그만 빗길에 미끄러졌다. 시속 7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가 세신실업 공장 시멘트 담벼락에 엇비슷하게 충돌하고 말았다. 그 충격의 순간 필자는 이런 의식에 사로 잡혔다.
“아! 내가 지금 태종대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구나. 정말 높네! 한참동안 떨어지고 있네! 좀 있으면 내 몸이 바위에 충돌하여 산산조각 나겠지!”
공장 담벼락에 부딪치는 충돌의 순간 태종대 절벽에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필자의 뇌리를 스치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강철심이 들어있던 자동차 핸들은 나의 가슴과 부딪쳐 초생 달처럼 굽어지고 갈비뼈는 골절되었다. 자동차가 얼마나 처참히 부서졌는지 필자의 형이 퇴근길에 그 광경을 보고 집에 가서는 가족들에게 “내가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처참한 교통사고를 목격했는데 그 운전자는 도저히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자동차가 완전히 박살이 났더구만!” 했다고 하니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운전자가 자기 동생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생생한 뉴스를 전했는데, 이내 동래에 있던 대동병원에서 댁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으니 응급실로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게 되고.
내가 태종대에 놀러 갔던 것이 3~4년 전의 일이다. 특히 그때 잠시 나의 뇌리를 스쳤던 그 잡념이 왜 교통 사고가 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의 의식 속에서 되살아 났을까? 나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어떤 특이한 것을 보거나 듣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서 가만히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가 생기면 다시 생각에 떠오르거나 변형된 잡념으로 언젠가 마음속에서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며 살아가려면 정신을 고도로 집중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다. 그 중에서 성도들의 믿음과 연관성이 있는 부분만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그 깊은 의미를 깨닫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신령한 의미는 둘째 치고라도 우선 문맥의 흐름이라도 제대로 파악해야 비로소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라도 제대로 알게 된다. 그리 하려면 우선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며 그것도 아주 집중하여 읽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한참 읽어 가다보면 눈은 성경책에 있는데 생각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을 때가 더러 있음을 성도들은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성도들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영적으로 주님과 교통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도 마음속은 어이없는 잡념의 등장으로 깊은 묵상은커녕 시간낭비만 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을 것이다. 그런 잡념들이 우연히 생긴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을 오락가락하는 잡념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보거나 들은 것들이며, 또한 그것들이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서 틈만 나면 우리의 마음속을 노략질하는 잡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때로는 보고 들은 것이 단지 잡념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으로까지 발전시키는(세속되고 죄스러운 방향으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결국 향후의 인격 형성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대는 여러 가지의 뉴스와 정보가 거대한 홍수처럼 우리의 눈과 귀를 향하여 무차별적으로 밀려오고 있다. 그 많은 정보들에 의하여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까지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우리의 마음속에 축적될 것이다. 우리의 눈빛은 물론 마음과 인격과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이 끼쳐지게 될 것은 불 보듯이 훤한 일이다.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까지 장악한 여러 잡다한 뉴스들과 정보들은 그대로 기억에 깊이 저장되면서 우리의 성격에 그 색채가 서서히 입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틈만 나면 잡념으로 둔갑하여 다시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잡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닫는 것과 묵상 가운데 주님과 교통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성도들의 영적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맞이할 임종의 그 순간이 오면 우리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질 것이다.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이 꺼져갈 무렵 우리의 마음이 평소에 조심 없이 보고 들은 좋지 않은 그런 잡념들이 되살아나 그것들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헛된 잡념들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마음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을 하겠는가?
얼마 전 자동차 경주 선수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 상태로 있었다. 그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의 배기음을 내고 손으로는 부지런히 기어를 넣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던 적도 있었다.
“평소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 그가 무의식중에 있을 때 부지중 나온 행동인 것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 그리고 유익한 정보들과 해로운 정보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어떤 정보와 뉴스들을 향하여 여러분의 눈과 귀를 내어주고 또 마음을 열어 주겠는가? 그 선택은 여러분이 자유로이 하실 수 있다. 하지만 그 얼이 여러분의 마음과 눈빛과 어쩌면 영혼 속 깊은 곳까지 미칠 수 있음을 반드시 감안을 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님은 인간을 지으신 분이시고 인간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이러시지 않으셨을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다윗은 고백한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 119:37)
많은 정보와 뉴스들이 홍수처럼 우리의 눈과 귀를 향해서 밀려오지만 선별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과 영혼에 해롭지 않을 좋은 소식에는 눈과 귀를 기울이되 해를 끼칠 뉴스와 정보들에 대해서는 되도록 경계하고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록 악한 세대에 살기는 하지만 악한 세대의 색채와 소음과 흉한 자국이 여러분의 마음과 눈빛과 영혼 속에 얼룩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빛나는 세마포로 단장한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존재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