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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시즌 1 1-2강
마이너리티의 예술 선언 : 재즈 앤 록큰롤 레볼루션
20. 록큰롤 레볼루션의 전야
재즈가 갖고 있던 대중을 빼앗아 간 새로운 문화의 이름이 바로 록크롤이었다. 에릭 홉스봄은 40년대말에서 50년대초 사이에, 재즈에서 록크롤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과정을 학자답게 너무나도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뛰어난 천재는 분명히 있는 거 같다. 뛰어난 천재의 특징은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를 단 한 줄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록큰롤에게 존속 살해당한 재즈”
이 한 줄로 끝내버린다. 정말로 정확한 표현이다. 자기 자식한테 살해당한 것이다. 재즈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듯이 록큰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록크롤은 사실 재즈의 사촌 조카 사위쯤 된다.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록큰롤을 역사가들은 꼭 레볼류션을 붙여서 '록큰롤 레볼루션'이라고 한다. 왜 록큰롤 혁명이라고 하느냐 하면, 록큰롤의 내용에 혁명의 내용을 담아서가 아니다. 내용은 너절하다.
록크롤이 혁명인 이유는, 록큰롤은 인류의 문화사상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던 룰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명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봉기가 시작된 첫 해는 1955년이었다.
록크롤이 무너뜨린 것은 바로 어른들의 세계였다. 1955년이 될 때까지 인류의 문화사는 그것이 귀족의 문화건, 피지배계급의 문화건, 파푸아뉴기니의 문화건, 이집트 왕조 시대의 문화건, 부르봉 왕조 시대의 문화건, 인류에 존재했던 모든 문화는 어른들의 문화였다. 아이들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문화를 모방하고, 학습하면서 어른이 되어갔을 뿐이다.
이런 미묘한 시점의 상황을 잘 표현한 영화가 있는데,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의 수제자인 로버트 저메킨스의 데뷰작인 백투더퓨처 1편이다. 그 내용을 미친 과학자의 타임머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그 영화는 무시무시한 영화다. 혹시 관심이 있으면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그 영화를 다시 보기 바란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 이 영화는 굉장히 문화사적인 통찰력이 있는 영화다. 그걸 그렇게 오락적으로 표현한 걸 보면, 로버트 저메킨스는 정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로버트 저메킨스
16세기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강강수월래'라는 노래가 있었다. 그런데 강강수월래의 키즈 버전이 있었을까? 없었다. 강강수월래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그 노래를 부르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자기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런데 1950년대 또 미국에서, 또 하필이면 남부지역에서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갑자기 중, 고등학생들이 부모들에게 반항한다. 인류역사상 단 한번도 일어난 일이 없었던 일이 일어난다. 10대(틴에이저)들이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부모들에 대해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것이었다.
“당신과 우리는 달라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통할테니 대화하지 맙시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그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상징하는 문화가 바로 록큰롤이다.
1955년 여름방학에 어떤 영화가 하나 개봉되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블랙보드 정글(BLACKBOARD JUNGLE)’이었다. 블랙보드는 칠판이다. 칠판이 있는 정글, 바로 학교 교실을 말한다. 한국말로는 '폭력교실'로 번역되었다. 쉽게 말해서 문제아들과 선생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것이다.
이게 10대들에게 완전 대박이 났다. 무너지는 교실을 다룬 영화가 왜 대박이 났을까? 그건 현실 속에서 교실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고괴담’이 60만을 동원하면서 대박이 난 이유와 같다. 여고가 무너졌기 때문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스타도 없는 저예산 영화였다. 그 영화의 컨셉은, 반에서 공부도 못하고, 이쁘지도 않은 여학생 1명이 있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학생도, 선생님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그 아이는 매년 그 자리에 있다. 왜? 귀신이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위대한 알레고리인가? 그 아이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아무도 그 아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쁘지도 않고, 부모가 돈도 없고, 공부도 잘 못하는 아이들은 ‘노바디’라는 이야기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 그 함의가 이 호로무비 안에 숨어 있다.
‘블랙보드정글’의 맨 마지막 부분에 주제가가 나오는데, 이 주제가가 10대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타고,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게 된다. 무려 10주 가까이 1위를 하게 된다. 그 노래가 바로 ‘락 어라운드 더 클락’이라는 노래다.
정작 그 노래를 부른 아저씨인 빌 헬리는 대머리에 뚱뚱한 40대 중년 아저씨였다. 전혀 락커랑 이미지가 안 맞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이게 발표된지 1년이 지난 노래인데,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서 빌보드 차트 1위를 하면서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 같다는 것을 예고한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늦은 것이다. 스릴러 영화를 보면, 단역들이 위험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늦은 것이다. 그전에 알아서 빨리 도망갔어야 한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진 것은, 그게 바로 혁명의 전야였기 때문이었다.
21. 중산층의 형성
이 혁명을 이해하려면, 1950년대의 미국사를 잠깐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을 통해서 드디어 세계 최강대국이 된다. 전 세계 자본주의의 70%를 점유하게 된다. 명실상부한 단독 선두 국가가 된다. 그렇게 맞이한 1950년대였다. 그래서 이때를 미국인들은 골든에이지라고 한다. 풍요와 번영의 시대였다. 그때가 오기전까지 몇 번의 공항과 전쟁을 거쳤다. 이제 더이상 가난도 공포도 없이, 살아있는 최고의 천국을 건설한 것이었다. 아무런 고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뒷받침하는 위대한 사회적 개념이 발생한다. 바로 미드클래스(중산층)라는 새로운 사회적 개념이다.
이제는 비록 아버지한테 유산을 많이 받지 않아도,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그냥 사고 안 치고 묵묵히 일하는 블루컬러 노동자라도, 교외 주택가에 살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비록 그것이 평생를 통해서 벌어서 갚아야 하는 모기지론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런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중산층을 상징하는 세 가지는 교외주택, 자동차, 거실의 TV였다.
미국에는 인간이 많다 보니깐 별의 별놈들이 다 있다. 영화 학자중에 지난 30년동안의 헐리우드 영화를 스릴러, 홈드라마 등 장르에 관계없이 모든 장면의 공간을 분석했다. 말이 분석이지, 부엌 1 술집 1 등 하나하나를 기록하면서 통계를 내었다. 이걸 컨텐츠 어낼러시스라고 하는 데, 미국은 이런 것을 해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는다.
아무튼 장르를 불문하고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30년동안 헐리웃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공간 1위는 교외 주택이었다. 영화에서 너무 많이 보았다. 잔디밭 깔려 있고, 집마다 생긴 게 다르고, 그 사이에 아스팔트로 2차선 도로가 뚫려있고, 아침에 남편은 자가용 타고 출근하고, 엄마는 조금 있다가 아이 손을 잡고 나와서 통학버스 태워보낸다. 그리고 햇볕이 들어오는 부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 우리가 완전히 녹아나서, 전원 주택 붐이 일어났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고 있나? 단독주택에 살면 여자들은 정말 힘이 든다.
그런데 그 교외주택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컸냐 하면, 50년대 영국에서도 미국의 하얀 주택 목조 키트가 불티나게 팔린다. 영국은 해양성 기후다. 그래서 목조주택 키트는 1년이 못가서 다 썪는다. 그런데도 영화때문에 불티나게 팔린다.교외주택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미국 백인 중상층의 상징이었다. 중상층이라는 개념이 이때 등장한다.
22. 경쟁과 반항의 시대
그 50년대의 풍요와 번영의 백인 중산층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 중산층 가정의 10대들이 사고를 친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태어난 아이들이다. 이른바 전쟁 베이비붐 세대들이다. 전쟁의 끝자락에 태어난 아이들이라서 이 아이들의 상태가 비정상적이었다.
이 때 태어난 아이로 2명만 이야기해보겠다.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주니어다.둘 다 상태가 안 좋은 아이들이다. 당적은 다르지만 상태가 안 좋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비록 태어날 때는 조금 불안했지만, 걸음마를 시작할 때 이미 조국은 세계 최강이 되어 있었다. 그 앞의 세대만 해도,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죽었는데 이 아이들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카페트를 밟은 풍요의 첫 번째 세대였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대가 된다. 단 백인에 한해서 였다.
이 아이들은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모든 미국은 이 세대들을 축복했다. 바로 자신들이 수많은 난관을 뚫고 성취한 조국의 미래 주인공들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게 성장했다. 아무런 어려움도, 아무런 모자람도 없이 성장했다.
그런데 이들은 중학생이 되고, 1학년, 2학년, 3학년 올라가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불러 터진 소리가 아니었다. 이 아이들은 진짜로 지옥 속에 들어갔다. 이들은 세 겹의 억압 속에 갇힌 자기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첫 번째 억압은 바로 블랙보드정글, 교실의 억압이었다. 어느 순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선생도 개무시하고, 같은 친구끼리도 개무시했다. 왜냐? 다 중산층이 되니깐, 모두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좋은 대학은 언제나 들어가는 구멍이 작다. 그래서 그 경쟁이 너무 치열해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어느 순간 1등이 아닌 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교실의 억압이 너무나 천국 같았던 자신의 집, 가족으로 이어지게 된다.
저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가정은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런 공익광고를 믿을 수 없다. 어떤 엄마가 막 인터넷을 배운다. ‘엄마 왜 그래?’ 그러면 아들과 대화하려고 배운다고 한다. 그런 공익광고가 어디 있나? 아니 아들하고 왜 대화를 하나? 친구하고도 대화하지도 못하면서. 아들하고 대화하면 안된다. 그건 범법행위다.
1955년 이후부터는 그렇게 된다.
저는 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보냈다. 다 먹고 살기 힘들었다. 우리 부모도 아침일찍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했다. 대화? 얼굴을 봐야지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식이 어디 가서 살인이나 안저지르고 들어오면, 괜찮은 거였다. 물론 공부까지 잘해주면 고맙지만, 그거까지 기대하기에는 내가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해지고,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면, 처음에는 자기 자식이니깐 귀엽다. 그러다 슬슬 시간이 지나면 꼽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내가 네한테 못해준 게 뭐 있냐? 밥을 굶겼냐? 학교를 안 보내주었냐? 학원을 안 보내주었나? 운동화도 나이키에서 리복까지 메이커별로 다 사주었다. 그런데 왜 공부를 못해?!!!
이때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비극은 자본주의가 성숙할수록 모든 교육 시장은 '상대평가제'에 의한 무한자유경쟁체제에 돌입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문제다. 상대평가가 뭐냐 하면, 내가 모든 과목을 95점을 받아도 소용이 없다. 다른 아이들이 다 96점 이상 받으면 난 꼴찌다.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은 여태까지 절대평가를 받아본 적이 한번밖에 없다. 운전면허시험이다. 여러분은 상대평가 속에서 살아남았거나 좌절한 사람이다.
그럼 교실은 어떻게 바뀌냐 하면, 간단하게 바뀐다. 1명의 1등과 1등 아닌 자 39명으로 바뀐다. 다시 말해서, 스카이 대학, 아이비리그를 갈 수 있는 1명과 그런데를 못가는 다수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폼나게 말하면, 극소수의 엘리트와 대다수의 낙오자 아닌 낙오자, 드롭아웃으로 양극화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미덕이 있다.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 자연에 대한 친화력, 그런데 그런 것은 측정할 수가 없다. 그 많은 미덕 중에서 계량화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인 학업수행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왜 17살도 안되었는데, 낙오자가 되어야 하는가? 왜 이 사회가 내 이마에다가 드롭아웃이라고 문신을 새기려 드는가? 이런 불합리가 어디 있나?
갑자기 선생이고 부모고 모두 자신을 낙오자 취급한다. 급기야는 내놓고, 자식을 이 원수같은 놈이라고 한다. 그까짓 공부 좀 못한다고 애너미로 규정한다.
이들은 이제 더이상 축복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10대라는 존재는 정치적으로는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없다. 이 아이들은 정치적으로 완벽한 노바디다.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자기 공동체의 미래에 아무런 결정권도 없다. 경제적으로는 기생충이다. 부모가 용돈을 끊는 순간 한마디로 끝이다. 사회적으로는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보호당하는 대상일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지막 남은 문화에서 자신의 출구 전략을 선택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 문화를 통해서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선생과 부모들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아이들이 부모한테 반항하는 것은 패턴이 똑같다. 뭐냐? 부모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백인 중산층 부모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았다.
백인 중상층은 화이트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이다. 모든 종교적 교리를 넘어서는 비백인적 행동, 다시 말해서 음탕한 흑인의 밑바닥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 이름이 바로 '리듬앤블루스'다.
23. 리듬앤블루스의 등장
가장 보수적인 백인 집단이 있는 미국 남부 지방의 테네시 주에 멤피스라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남 함평군 정도 되는 작은 지방 소도시다.
그런데 미국이 워낙 잘 살다 보니깐, 이런 작은 소도시에도 레코드 회사가 있었다. 그 레코드 회사 이름이 선 레코드였다. 촌스런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태양 음향’ 정도가 된다.
이 선 레코드의 사장이 '샘 필립스'라는 백인인데, 50년대 중반이 되면서 매출이 격감했다. 그래서 왜 이렇게 격감하는지 시장 조사를 해보았다. 그랬더니 여태까지 자기 판을 사주던 동네의 10대들이 더 이상 백인 판을 안 사고, 몰래 흑인 동네에 가서, 흑인 판을 사가지고 와서 놀기 시작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사는 판이 무엇인지 보니깐 바로 리듬앤블루스(R&B)였다.
리듬앤블루스라고 하면 여러분이 다 아는 거 같지만, 여러분들이 아는 리듬앤블루스는 리듬앤블르스가 아니다. 박정현이나 박효신이 부르는 건 리듬앤블루스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백인 음반 사업자들이 리듬앤블루스를 빙자해서 만들어낸 슈가 상품이다.
아이들은 백인 중산층 부모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았다. 백인 중상층은 화이트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적 교리를 넘어서는 비백인적 행동, 다시 말해서 음탕한 흑인의 밑바닥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 이름이 바로 ‘리듬앤부르스’다.
오리지널 리듬앤블루스는 쉽게 말해서 흑인 거주 지역 양아치들의 하위 문화였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물론 흑인 거주 지역 내에서도 흑인 엘리트는 재즈를 한다. 그런데 연주를 하려면 너무 어려웠다. 트럼펫 하나를 불려면 너무 어렵다. 클럽에 출근하는 형들은 너무나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불려면 너무 노력을 많이 해야 했기 때문에 하기 싫었다. 그런데 놀고는 싶었다.
그런데 1943년 2차세계대전 끝무렵에 드디어 엠프라는 증폭장치가 개발된다. 이게 너무 좋았다. 사다가 꽂으면 큰 소리가 났다. 본래 무식한 것들이 큰 소리를 좋아한다.
정교하게 연주는 못하는 대신에 잭을 꽂아서 큰 소리를 내었다. 사람들이 큰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악기 구성인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에다가, C7, F7, G7의 코드 3개만으로 연주를 했다. 그런데 아는 건 저속하고 음란 퇴폐적인 말밖에 없었다. 그래서 노래 가사도 온통 그런 것으로 채웠다. 이게 바로 ‘리듬앤블루스’다.
조지아 주 출신, 리듬앤블루스의 대가로 리틀 리처드가 있다. 나는 리듬앤블루스의 제왕은 앨비스 프레스리가 아니라 이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노래 롱 톨 셀리(Long Tall Sally)의 가사 내용을 보면, 설명이 된다. 롱 톨 셀리(Long Tall Sally)는 ‘우리 동네의 잘 빠진 키 큰 소녀 셀리’라는 노래이다.
리처드는 생김새부터 개 양아치다. 화면에 나온 리틀 리처드는 그나마 자료에 남은 것이니깐 많이 순화된 것이다. 이 노래 가사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원조교제’다. ‘그녀는 무척 야해. 우리 아저씨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어.(she's built for speed. She got everything that Uncle John need.)’ 이런 가사로 되어 있다.
이런 것은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는 백인 주류문화가 절대 될 수 없다. 리듬앤블루스는 흑인 거주 지역 내의 하위문화, 서브컬쳐였다. 하위문화는 절대 공식화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어려서 뒷자리에서 자던 아이들이 소풍가면 꼭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 ‘키스해 주세요. 앞이빨이 다 빠지도록..’ 이런 노래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고, TV에서도 나오지 않는 노래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노래다. 이런 게 바로 하위문화다.
리듬앤블루스는 흑인 거주 지역의 ‘키스해주세요. 앞이빨이 다 빠지도록..’과 같은 노래였다. 이건 철저히 흑인거주지역 안의 문화였다.
'리듬앤블루스(Rhythm and Blues)'라는 말도 없었다. 양아치들은 자기 문화의 이름을 붙이지도 못한다. 이 이름을 붙여준 건 빌보드 챠트다. 1949년에 이 이름을 붙여준다.
리듬앤블루스가 활황을 맞이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덕분이다. 흑인들이 전쟁에 많이 나가면서, 돈을 많이 가져왔다. 돈이라곤 100달러 지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던 흑인들에게 갑자기 돈이 많이 생겼다. 그런데 이들은 저축 보험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냥 막 쓰고 놀았다. 그런데 그들에게 의리는 있었다. 우리 것을 팔아주는 의리는 있었다.
그래서 흑인거주지역 내에 흑인들만을 상대로 하는 레이블, 즉 레코드 회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빌보드는 음반 판매 통계 잡지이기 때문에 누구를 상대로 팔든, 팔리는 숫자는 꽤 많아지니깐, 차트를 하나 만들어주자고 한다.
그 이전에는 레이스 뮤직(race music)이었다. 인종 음악이라는 뜻인데, 그건 좀 이름이 이상하니깐, 조금 폼나게 만들어줄려고 했다. 그런데 악기 편성을 보니깐 재즈였다. 그리고 곡은 좀 빨랐다. 그래서 재즈의 리듬을 가져왔고, 보컬은 블루스 보컬이니깐. 리듬앤블루스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 음악을 50년대 중산층 백인 10대들이 몰래몰래 사들고 와서, 친구 집 부모가 놀러가면, 모여서 틀어놓고, 술마시고 춤추고 담배피고 즐겼다.
24. 엘비스 프레스리
선 레코드의 샘 필립스(Sam Phillips)는 알앤비(R&B)가 마구 팔리는 걸 보면서도 그 음반을 만들 수는 없었다. 흑인을 데려다가 그런 판을 내면, 백인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면서 ‘백인 중에 저런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있으면 돈방석에 앉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런 가수는 없었다.
그러던 1954년 여름, 19살짜리 남루한 트럭 운전사 청년이 와서 오디션을 신청한다. 그래서 늘 오던 스타가 되고 싶어 미친 돈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4달러만 내면 누구나 오디션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스튜디오 부스에 들어가서 하우스 밴드랑 노래를 딱 부르는 순간, 샘 필립스는 ‘심봤다!!!’를 외친다. 생긴 것도 멀쩡한 키 185센치의 백인인데, 노래를 부르는 순간, 흑인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그의 이름이 바로 '엘비스 프레스리'였다.
그래서 트럭 운전을 그만두게 하고, 계약을 한다. 그리고 1년을 준비해서 56년 1월달에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이라는 데뷰곡을 발표한다. 이 곡은 무려 8주간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다.
그 곡을 발표하자마자 1달만에 지방 소도시의 트럭 운전사가 미국 전역 10대들의 영웅이 된 것이다. 10대들은 미친듯이 이 판을 산다.
그건 마치 1992년, 서울 북공고 야간 1학년 중퇴자인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뷰했을 때, 1달만에 전국의 10대들이 그를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몰아주었다. 서태지가 신해철처럼 서강대 중퇴만 했어도 절대로 그렇게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북공고 야간 1학년 중퇴자라는 게 중요하다. 거기에서 낙오자 아닌 낙오자들은 정말 자신의 한맺힘을 나는 능력이 없어서 못풀었지만, 서태지가 대신 풀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비스의 하운드 독(Hound Dog)은 1956년, 무려 11주간 차트 1위를 한다. 이노래는 음반에서는 모르는 데 라이브 공연으로 보면 처음에는 빨리 부르다가 나중에 굉장히 느리게 부르면서 블루지하게 간다. 이게 사실 오리지널이다. 음반으로는 그걸 들을 수가 없다.
엘비스가 하트브레이크 호텔로 1위에 올랐을 때, 빌보드 차트는 딱 1줄로 이렇게 논평했다.
‘White Elvis's the first R&B number 1 single’
화이트 엘비스스 더 퍼스트 알앤비 넘버 원 싱글
백인이 부른 첫 번째 넘버 원 알앤비(R&B) 히트곡이라는 뜻이다.
25. 엘비스의 정체
그런데 왜 엘비스 프레스리는 멀쩡한 백인인데, 흑인들의 R&B를 이렇게 잘할 수 있었을까? 이게 중요하다. 그는 본래 미시시피 주의 굉장히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테네시 주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엄마를 패는 주정꾼이었다. 엄마는 백인인데도 농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간신히 먹고 살았다.
결국 엘비스가 12살 때 둘이 이혼하고, 14살 때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들어서 테네시 주 멤피스로 옮긴다. 엄마는 계속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그러니 아들이 공부를 잘할 리가 없었다. 편모의 굉장히 힘든 가정에서 자랐다.
엘비스가 자란 집은 백인 거주 지역의 가장 외진 곳으로 바로 옆이 흑인 거주 지역이었다. 그러니깐 엘비스는 눈만 뜨면 보는 게 다 흑인이었다. 엘비스는 독실한 침례교 신자였는데, 교회도 백인 교회는 너무 멀어서 못갔다. 그런데 흑인 교회는 바로 집 앞에 있었다. 그래서 엘비스는 어려서부터 흑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았다. 거기에서 엘비스는 찬송가대신 가스펠을 불렀다.
동네에서 놀 때도 백인이 아닌, 흑인들과 놀았다. 그래서 엘비스의 발음은 명료하고 똑똑한 백인들의 발음이 아니라, 흑인처럼 뭉갠 느낌으로 말했다. 엘비스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놀았다. 맹모삼천지교의 역발상 버전이다.
실제로 다른 50년대의 필름을 보면, 엘비스가 라이브 공연에서 ‘하운드 독’을 부르면서 문워킹 춤을 춘다. 1983년도에 마이클 잭슨이 전 세계에 붐을 일으킨 바로 그 문워킹이었다. 사실 그 춤은 마이클 잭슨의 오리지널이 아니다. 물론 엘비스의 오리지널도 아니다. 그건 흑인 동네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고 길거리에 장판지 깔고 놀면서 추던 춤이었다. 그걸 멋도 모르고 엘비스가 보고 따라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중에 대박이 난 것이다. 그렇게 엘비스는 흑인 문화에 친근했다.
엘비스의 첫 번째 별명은 ‘엘비스 더 펠비스(Elvis the Pelvis)였다. 펠비스는 골반이라는 뜻이다. 사실 엘비스는 몸치였다. 엘비스는 리듬에 맞추어서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해서 뮤지컬 같은 것을 못했다. 오로지 엉덩이를 흔드는 거 뿐이었다. 몸치였지만 그건 정말 잘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그것만 하고 놀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불우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10대들에게 반항의 무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운드 독’을 뚱뚱한 흑인 아줌마가 부르는 버전이 있다. 그 아줌마는 빅마마선턴(Big Mama Thornton)이다.
엘비스가 ‘하운드 독’을 56년도에 발표해서 11주간 1위에 오르지만, 사실 그 노래는 엘비스의 오리지널이 아니다. 이미 3년전에 빅마마선턴이라는 흑인 여자 가수가 부른 흑인 알앤비 곡이었다. 물론 히트를 못했다. 그냥 동네에서만 히트했다. 흑인의 노래가 전국적인 히트는 할 수 없었다.
‘하운드 독’이라는 말은 ‘사냥개’라는 뜻이 아니다. 하우드 독을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면 ‘껄떡남’이다. 아무 여자나 보면, 껄떡거리는 남자를 흑인들은 하운드독이라고 했다. 그 노래의 가사를 자세히 보면, 남자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는 아무 여자나 보면 껄떡대는 남자일뿐이야.(You ain't nothin' but a hound dog.)’
그러니깐 이 노래는 전형적으로 여자가 불러야 하는 노래다. 이건 남자인 엘비스의 노래가 될 수 없는 노래다. 뚱뚱하고 못생긴 흑인 여자가 불렀을 때는 동네 히트밖에 못했지만, 잘생긴 백인 남자가 흑인 R&B 요소를 남겨두면서 산뜻하고 상큼한 백인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부르자 전국적인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26. 엘비스의 성공
R&B와 록큰롤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R&B는 색소폰을 연주하지만, 록큰롤은 일렉트릭 기타를 쓴다. 음악적인 문법은 똑같다. 이런 부분적인 개량, 백인화적 개량이 일어나면서 록큰롤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엘비스는 56년에 무려 4개의 넘버원 히트곡을 발표한다. 그냥 4개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1년을 52주라고 치면, 하운드 독 11주 1위 , 돈트 비 크루얼(Don't Be Cruel) 11주 1위, 핫브레이크 호텔 8주 1위, 러브미텐더(Love Me Tender) 4주 1위. 모두 합치면 34주간 엘비스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순식간에 휩쓸어버린 것이다.
어른들은 깜짝 놀랐다. 뭔가 앞에 휙 지나갔다. ‘이게 뭐지?’ 했는데, 세상이 바뀌어 있는 것이었다.
이 엘비스를 스타로 만든 건 역시 TV였다. 에드 설리반 쇼(Ed Sullivan Show)를 통해 전국적인 스타가 된다. 엘비스의 매니저는 대령(Colonel)이라는 별명을 가진 톰 파커(Tom Parker)였다. 가수는 매니저가 중요하다. 당시 제일 인기가 있었던 전국 방송인 에드 설리반 쇼에 나가게 되는데, 히프는 마구 흔들면서 노래를 부르니깐 녹화가 중단된다. PD가 심의에서 짤려서 못나간다고 한다.
신인가수가 로비를 해서 처음으로 전국 지상파에 나가게 되었는데 쫓겨날 판이었다. 이때 톰 파커가 굉장한 기지를 발휘한다.
“왜 그러냐? 히프를 너무 야하게 흔들어서 그러냐? 그러면 카메라를 가슴에 고정하자. 전체를 보여주지 말고..”
아래를 찍지말고, 바스트 샷만 찍자고 한 것이다. 늘 춤을 추면서 불러서, 가만히 서서 부르기는 힘드니깐 그렇게 하자고 한다. PD가 생각하니 말이 될 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난다.
본래 여자들도 모두 벗고 보여주면 매력이 없다. 보여줄듯 안보여줄듯 해야 훨씬 야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밑이 그렇게 흔들리니깐 위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시청자들은 대체 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보여줬다. 그러자 시청자들이 더 좋아했다. 이상하게 합의된 촬영이 대박이 난것이다.
그리고 이때가 TV의 시대였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미 미국에는 2,600만 가구에 TV가 깔려 있었다.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더욱 빨리 전국으로 퍼졌다.
라디오 시대때 스타이며, 미국전쟁의 스타였던 루이 암스트롱이 전국 스타가 되는 데 15년이 걸렸다. 그런데 TV 시대에 엘비스 프레스리가 미국 전역의 스타가 되는데는 1달 반이 걸렸다. 이게 라디오와 TV의 파워 차이였다.
27. 어른들의 반격
그런데 미국의 주인인 어른들이 이걸 그냥 보고 '우리 아이들이 많이 컸구나. 너희가 다 커서 이제 나한테 덤비는구나. 기특하다.' 뭐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어른들은 수중전, 공중전 다 거친 사람들이다. 너희들을 먹여주고 키워주었더니 이렇게 우리 등에 칼을 꽂아? 그러면서 50년대 말부터 반격을 시작한다.
그 반격의 선봉장은 바로 PTA였다. PTA는 현재까지 미국을 지배하는 시민단체이다. 어떤 대통령이건, 주지사건, 상원의원이건 PTA의 눈에 어긋나면 어떤 정책도 통과할 수 없다. PTA(parent-teacher association)는 학부모 교사 연합회로 어른이라면 학부모 아니면 교사였다. 즉 미국 백인 어른 전체였다. 이 PTA가 유명한 선언을 한다.
‘록큰롤은 사탄의 음악이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이때 바로 사탄이즘이 나온다.
‘이 사탄의 음악에 우리들 신의 자녀들이 병들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와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이 기생충을 박멸해야 한다.’
이들은 단지 이런 성명으로 끝내지 않고, 전국적인 록큰롤 보이코트 투쟁에 돌입한다. 전국에서 레코드 판을 태우고, 레코드 파는 가게 앞에서 영업 방해를 하는 거였다. 아침부터 가서 수십명이 막아버렸다. 경찰을 와도 소용이 없었다. PTA 회원에는 경찰 가족이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지구상에 아줌마를 이길 수 있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살을 냈다. 굉장히 단순 무식 과격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PTA 회원의 남편 중에는 신문기자도 있었다. ‘우리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이러고 있는데 너는 뭐하고 있는거야?’하면서 닥달을 했다. 신문기자는 기자대로 집에 가서 밥이라도 얻어먹을려고, 열심히 록큰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을 기획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 사건이 발생한다. 제리 리 루이스가 누구냐? 선 레코드가 엘비스 프레스리 말고 4명의 톱스타를 또 만든다.(자니 캐시(Johnny Cash),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 칼 퍼킨스(Carl Perkins), 비비 킹(B. B. King)에 이르기까지 록과 컨트리 음악계의 스타들을 배출.) 그중 한 명이 바로 제리 리 루이스였다.
엘비스 프레스리는 록큰롤의 킹이다. 그런데 엘비스는 무늬만 락커지, 사실은 마마보이에다가, 독실한 신자였다. 엉덩이만 흔들었지, 그렇게 반항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제리 리 루이스는 태생부터 양아치다. 그리고 진짜 락커다. 그는 13살짜리 자기 사촌여동생을 강간해서 결혼했다. 그게 딱 걸렸다.
‘이 자는 사람도 아니다. 이 자는 희대의 폐륜아다. 그런데 이 자가 하는 음악은 록큰롤이다. 따라서 록큰롤은 희대의 폐륜아들의 음악이다.’ 기자들이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이 총공격을 퍼붓는다.
28. R&B 흑인 가수의 몰락
그리고 PTA의 남편 중에는 FBI도 있었다. FBI는 수사에 착수한다. 역시 수사 기관은 관점이 달랐다.
‘나쁜 놈들은 R&B를 했던 흑인들이다. 흑인들이 그런 음악을 안 했으면, 우리 아이들이 그런 것을 몰래 들었을 이유가 없다.’
돈도 못 번, 돈 구경도 못한 불쌍한 R&B 뮤지션들은 작살이 난다. FBI들이 잘 쓰는 방법이 있다. 차 안에 마약을 슬쩍 넣어놓고,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한다.
디트로이트의 위대한 알앤비 아티스트, 척 베리(Chuck Berry)라고 들어보셨나? 록큰롤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기타다. 그 록큰롤 기타의 교과서를 쓴 사람이다. 그리고 록큰롤 음악의 정신을 만든 사람이다.
바로 이때 50년대말 대서양 건너 리버풀 항구 도시의 뒷골목에서 학교를 땡땡이 친, 존, 폴, 조지, 링고 이런 아이들이 모여서 연습한 게 모두 척 베리의 음악이다. 그래서 이들이 나중에 성공해서 비틀즈 세상이 온 다음에, 그래도 제일 싸가지 있는 존 레논은 자신들의 오늘이 있게 한 척 베리의 곡만으로 리메이크 앨범을 만들어서 그 수익을 전부 척 베리에게 보낸다. 그런 정도로 위대한 역사적인 인물이 바로 척 베리다.
그런 척 베리를 체포한다. 죄명은 공연이 끝난 뒤에 자기의 팬인 미성년자 백인 창녀를 옆자리에 태우고, 드라이브하다가 실수로 주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이었다. 그걸로 기소를 해서 3년형을 선고한다. 말도 안되는 횡포였다.
그러자 아까 이야기한 조지아 주의 전설적인 양아치 리틀 리처드는 순회 공연 중에 갑자기 긴급 기자회견을 해서, 은퇴 선언을 한다.
‘저는 어젯밤 신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의 길로 나서겠습니다.’
피아노 위에 다리 올려놓고, 이상한 모습을 연상케 하면서 피아노를 치던 양아치가 목사가 된다. 물론 바로 1년 뒤에 돌아온다. 그때 당시의 많은 패러디 언론들이 이렇게 쓴다. ‘리틀 리처드가 어젯밤에 누굴 본 건 사실인 거 같다. 그런데 그가 본 게, 신은 아닐지도 모른다.’
29. 상원의회의 공격
급기야 상원의회가 등장한다. 상원은 진짜 나쁜 놈들이 또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사탄의 음악을 마구 틀어댄 방송국 PD들이라고 한다.
미국은 지역 스테이션 체제다. 그래서 미국 전역에 있는 600개의 방송사 중에서 록큰롤과 R&B를 중점적으로 편성한 PD 300여명을 상원 청문회에 소환해서 2년동안 청문회를 한다. 무지막지한 일이었다.
그런데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 1조가 무엇인가? 프리덤 오브 스피치(freedom of speech)다. ‘표현의 자유’가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 1조다.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은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21조에 있다. 그러니깐 21번째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나라에서 PD가 자신의 문화적 취향과 판단으로 이런 곡을 틀었다는 이유로 기소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상원의회에서 그런 이유로 기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PD들을 소환해서, 다른 것은 안 묻고, 돈을 받고 편성을 했는지만 묻는다.
이 때 PD들이 할 말이 없는 게, 그 당시 미국의 방송가는 관행적으로 촌지를 받았다. 매니저들이 판을 pd들한테 돌리면서 워낙 땅이 넓다보니, 판을 들어주는 대가로 2달러 정도의 소액을 주는 게 관행이었다. 우리처럼 룸싸롱 데려가고 성접대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PD들이 돈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자 이들 모두를 뇌물수수 혐의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해고시킨다. 이런 게 미국이다.
이렇게 제거된 인물 중에는 록큰롤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앨런 프리드(Alan Freed)라는 위대한 디스크 자키도 있었다. 그도 그냥 해고시켰다.
그런데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앨런 프리드는 해고시킬 만도 했다. 그는 록큰롤을 틀면서 ‘에브리 바디! 락! 락! 락!!!’ 큰소리로 추임새를 넣으면서 틀었다.
‘리듬앤블루스’라는 말의 리듬과 블루스는 모두 음악이다. 그런데 록앤롤은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여기서 락(Rock)은 바위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락은 동사다. ‘부딪치다, 흔들다’라는 뜻이다. 롤(Roll)은 ‘구른다, 휘감다.’라는 뜻이다.
락과 롤은 R&B에 제일 많이 나오는 음탕한 동사인 락(Rock), 롤(Roll), 세이크(shake), 레틀(rattle)이라는 4개 중에 2개다. 락앤롤은 흑인 은어로 성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교의 은어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지역에서 통용하는 말을 빠구리다. 제주도에서 빠구리는 성교가 아니라, ‘땡땡이 친다’는 뜻이다. 처음 제주도에 가서, 여고생들이 ‘아..오늘 빠구리 치니깐 너무 좋은데..’ 이런 말을 듣고, 나는 아침 11시에 충격을 받았다. 저녁 강연 후, 뒷풀이를 하면서 아무리 국제 관광도시라도 그렇지, 대낮에 여고생들이 길을 가면서 오늘 빠구리 치니깐 너무 좋다고 하던데,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하니깐, 사람들이 막 웃었다.
생각을 해보자. 새로운 음악이 생겼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윤도현 밴드가 새로운 앨범을 들고 나왔다. ‘우리 윤밴의 새로운 빠구리 음악을 들어볼까요!’ 만약 그렇게 진행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바로 영구 방송 출연 금지다.
사실 록큰롤이라는 말 자체가 미국 기성세대의 주류 백인들에게 분노를 자아내게 할 수 밖에 없는 개념이다. 이건 자신들의 프로테스탄티즘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학살을 한 것이다.
30. 음모의 냄새
그러다가 스캔들로 작살이 난 이후인 1959년에서 60년 사이에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59년에서 60년 사이의 록큰롤 아이돌 스타 1, 2, 3, 4위가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앨비스 플레스리 이후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가장 지성적이면서 비틀즈 락의 원형을 제시한 사람인 버디 홀리 앤 더 크리케츠(Buddy Holly & The Crickets)과 17살의 나이에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라밤바'의 주인공 리치 밸런스(Ritchie Valens)가 죽는다.
이 2명은 순회 공연 중 경비행기가 폭발해서 모두 숨진다. 이게 사실 좀 희안하다. 버디 홀리는 늘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하필 그날 버스가 고장난다. 그래서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리치 밸런스도 하필 고장이 났다. 그래서 같이 탔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허공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비명도 못 질러보고, 한 명은 17살에, 한 명은 23살에 죽어버렸다.
록큰롤의 제임스 딘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다. 바로 록큰롤 최고의 명곡인 '비밥바룰라'를 부른 진 빈센트(Gene Vincent)다. 진 빈센트는 스타가 되기 전인 18세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인물이다. 부상을 당해서 불구자다. 잘 생겼다.
그 다음에 섬머타임 블루스(Summertime Blues)의 에디 코크런(Eddie Cochran)이 있다.
이 2사람은 영국 공연을 하고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가다가 트럭과 충돌해서 진 빈센트는 영구불구가 되고, 에디 코크런은 현장에서 즉사한다.
우리로 치면 시아준수, 지드래곤 이런 아이들이 한해에 4명이나 다 죽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사고이고 우연이라지만, 하필 딱 그때에 다 죽어버린다. 이건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까 등장하지 않았던 집단이 하나 있다. CIA다. 그들의 소행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진짜 사람이 죽은 문제라서, 어떤 비밀보고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알 수는 없다. 아무튼 이 때 다 죽어버렸다.
31. 엘비스의 전향
그러면 여러분은 의문이 들거다. 그 때 엘비스 프레스리는 어디 있었나? 엘비스 프레스리는 상황을 보니깐, 자기가 제일 먼저 죽을 거 같으니깐, 58년도에 미리 항복을 한다.
군에 입대해 버렸다. 유명한 사진이 있다. 군대 가는 엘비스. 그 군대 가는 엘비스의 흑백 사진을 보면서, 미국의 백인 어른들은 그래도 엘비스는 착하다고 인정해 준다. 그래서 이 학살이 이루어지는 동안, 엘비스는 문선대 활동을 하면서, 영화 찍고, 공연하면서 보낸다. 그리고 1960년 3월달에 제대한다. 제대하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학살이 다 끝나 있었다.
사실 엘비스가 10대의 반항을 대변했던 것은 한 1년 10개월정도밖에 안된다. 엘비스는 1935년 생이니깐, 제대하고 돌아온 1960년에는 고작해봐야 25살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엘비스는 더이상 10대의 반항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넉넉한 아줌마의 품으로 귀순한다. 그래서 복귀 첫 번째 넘버원 히트곡은 ‘아유론썸 투나잇(Are You Lonesome Tonight)’이라는 발라드 곡이었다.
‘오늘밤 아줌마는 외로우세요..’ 이런 가사의 노래였다. 이 노래로 엘비스는 고작 25살의 나이에 아줌마용 가수가 되는 것이다.
32. 케네디의 등장 그리고 낙담
이렇게 해서 록큰롤은 그냥 잠시 반짝하다가, 그 반항의 몸부림을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역사는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책갈피 뒤에 숨겨놓고 있었다.
앨비스가 아줌마용 가수가 되는 그 순간, 바로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40대, 그것도 헐리웃 스타들을 이단옆차기로 날려버릴 외모를 지닌, 게다가 놀랍게도 아일랜드계이자 카톨릭 신자인 존 에프 케네디가 당선된다.
미국 대통령 역대 선거 사상, 가장 극적인 최초 표차로 기적적인 역전승의 주인공이 된다. 이 표차는 고어와 부시가 나오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케네디는 지금도 역대 대통령 인기투표를 하면 언제나 3위 이내이다. 잘 생겨서가 아니다. 록큰롤 키드들은 60년대가 되면 드디어 투표권자가 된다. 청년이 되었다.
케네디는 정책적으로 굉장히 혁신적인 뉴프론티어 십이라는 굉장히 젊은 미국을 만들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살해당한다. 그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연합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된다. 그는 금융제도를 완전히 뒤엎으려고 했고,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을 지배해왔던 군산복합체로부터 제명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케네디의 당선은 록큰롤의 학살로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던 50년대 중반의 10대들에게는 마치 2002년에 노무현이 이긴 것의 한 100배쯤되는 희열이었다.
그때 케네디가 보여주었던 여러가지 혁신적인 이미지 메이킹들이 있다. 외국여행에 갔다 와서, 에어포스 1에서 내릴 때, 제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자기 가방을 들고 트랩을 내려오는 거였다. 마치 회사 연수갔다오는 사람처럼. 물론 그 가방 안에는 중요한 게 없었겠지만 더이상 군림하는 권위로서의 대통령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무회의를 하는데, 자켓을 다 벗어버리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뭔가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연출했다. 뭐 그때 나눈 이야기는 너절한 이야기였겠지만, 뉴스에 나오는 화면은 마치 각료들이 기업의 이사회처럼 뭔가 활기차게 일하는 그런 느낌을 보여주었다. 젊은 미국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가 64년 11월 댈러스에서 드디어 제거당한다. 록큰롤 세대에게는 커다란 낙담의 순간이었다. ‘이제 진짜 끝났다..우리에겐 이제 아무것도 안 남았다...’
33. 비틀즈의 등장과 반격의 성공
그런데 그로부터 바로 3개월 뒤에, 앨비스를 스타로 만들었던 에드 설리반 쇼에, 영국 리버풀 출신의 양아치 4명이 슬그머니 등장한다. 그들은 바로 '비틀즈'였다.
이 순간 록큰롤 세대는 새로운 반격의 기회를 잡게 된다. 그 반응은 정말로 뜨거웠다. 사실 영국 가수가 미국에서 스타가 된다는 것은, 일본 가수가 한국의 스타가 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세대에게 국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애드 설리반 측은 처음 출연 후, 바로 그 다음 주에 이 아이들만을 위한 1시간짜리 스페셜 아워를 구성했다.
그 때 시청률은 그때까지의 모든 TV 방송의 시청률 기록을 다 깨버렸다. 그리고 그 스페셜 아워가 방송되던 1시간동안, 뉴욕시가 생긴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범죄율 0였다. 전부 TV를 보느라고, 아무도 범죄를 저지를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4월 2째주 빌보드 차트 역사상 그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있을 수 없는 영원히 위대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바로 1위에서 5위까지가 전부 비틀즈 곡이었다. 그 해에 팔린 모든 음반의 58%가 비틀즈 음반이었다. 이 정도는 해야 싹쓸이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1위를 차지한 곡은 Can't Buy Me Love 이며 이어서 Twist and Shout,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Please Please Me가 그 5곡이다.)
34. 비틀즈의 본색과 혁명의 성공
비틀즈가 미국에 등장할 때의 모습은 착하고 예쁜 모범생의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본래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다. 원래는 양아치들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여자들과 지내는 문란한 락커족이었다. 당시 영국에는 2종류의 신세대가 있었다. 락커족과 모드(mods)족이었다. 락커족은 쉽게 말해서 제임스 딘처럼 마초적이고, 잠바 입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등장할 때, 입고 있는 옷은 모드족 패션이었다. 세련된 양복에 폭이 좁은 넥타이, 끝이 날카롭지 않고 둥그렇게 마감된 드레스셔츠. 이게 전부 모드족 패션이었다.
대서양을 건너면서 비행기 안에서 패션이 바뀐 것이다. 이건 그들의 매니저인 유대인 브라이언 엡스터인의 공로다.
이 아이들이 왜 가증스러운 변신을 하냐 하면, 미국은 영국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사회이기 때문이었다. 영국 리버풀에서 놀듯이 했다가는 데뷔도 하기도 전에폭탄 맞아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착하게 미소를 짓고, 순수한 얼굴로 ‘어머니들, 우리는 위험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다. 이게 비틀즈가 폭발하는데도, 기성세대가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같은 해에 상륙했던 양아치의 원조 '롤링스톤즈'는 양아치 차림으로 등장해서, 같은 음악을 해도 욕을 먹었다.
사실 롤링 스톤즈의 멤버들은 다 대학 나왔고, 잘 사는 집 아이들이었다. 반면에 비틀즈는 다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비틀즈가 대학생처럼 나와서, 진짜 맨처스터의 대학을 나온 롤링스톤즈는 악평을 받았다.
그래서 공익광고에 뭐가 나오냐 하면, ‘혹시 당신의 아들이 롤링스톤즈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광고가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는 역풍을 맞으면서 전진해야 했다. 그래서 전 롤링스톤즈를 좋아한다.
한편 비틀즈는 아주 야비하게 시장을 싹 휩쓸었다. 결국 이들른 기성세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래서 역사는 이 때를 '록큰롤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록큰롤이 거의 묘지에 파묻혔다가 극적으로 부활했다고 해서, 아니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더 이상 파괴할 수 없는 문화의 본질로 만들었다고 해서, 10대의 문화가 주도할 수 밖에 없는 규칙을 만들었다고 해서, '록큰롤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다.
이걸 성공시키고 65년을 끝으로 비틀즈는 마각을 들어낸다. ‘사실, 우리 그런 사람 아니예요.’라고 밝힌다. 양아치처럼 하고 나와서 헛소리를 해댄다. ‘아..우리는 예수보다 더 유명해.’ 이런 말을 하자, 미국이 뒤집어진다. 그런데 더 악의적으로 어떤 언론들은 ‘우리는 예수보다 더 위대해.’로 발언을 바꾼다.
미국의 교회단체들이 비틀즈 마녀사냥에 나섰는데, 이미 그들은 그 정도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더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히피즘을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니깐 비틀즈는 어떤 의미론 똑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10대는 최종적으로 어른들이 수 천년동안 지배했던 문화의 권력을 드디어 빼앗았고, 이후로 비틀즈를 통해서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결국 재즈는 뭐냐? 바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는 인종적으로, 계층적으로, 최하위인 계급의 문화가 처음으로 문화의 주류로 등장한 사건이다. 그리고 록큰롤은, 틴에이저라고 하는 그 이전까지 아무런 문화적 권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또 하나의 마이너리티들이 문화의 주인이 되는 사건을 말한다.
결국 이 재즈와 록큰롤을 통해서, 드디어 20세기는 새로운 문화의 룰을 만든다. 비록 마이너리티들의 정치적 혁명은 1789년 이후로 성공하지 못하고 끝없이 실패를 해왔지만, 드디어 문화 영역에서, 기득권들이 지배해왔던 모두들을 깨뜨린 첫 번째 연대기가 기록된다.
재즈와 록큰롤의 문화사 뒷면엔 이런 맥락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인류의 문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늦게까지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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