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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2일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 주일오전예배
(마가복음 강해 73)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마가복음 15장 6-15절)
(↓) 예배에의 부름: 시편 67편
(↑) 영광송: 제네바 시편찬송가 67편
(↓↑) 신앙고백: 사도신경
(↑) 경배 찬송: 제네바 시편찬송가 45편
(↓) 언약의 10가지 말씀: 십계명
(↑) 죄의 공적인 고백
(↓) 사죄의 선언: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18:1)
(↑) 감사 찬송: 제네바 시편찬송가 118편
(↑) 목회 기도
(↓) 설교본문낭독: 마가복음 15장 6-15절
병행본문: 마 27:15-26; 눅 23:13-25; 요 18:39-19:16
(↓) 설교: (마가복음 강해 73)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 설교 후 찬송: 찬송가 152장 “귀하신 예수”
(↑) 헌상 기도
(↑) 헌상 찬송: 찬송가 317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 강복 선언: 로마서 15장 33절
서론
작정과 섭리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작정’이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영원 전부터 그 자신의 뜻하시는 바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에 따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WCF 3장 1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분이시며(엡 1:11),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계획하셨던 작정의 성취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이 직접하시지만, 인간의 의지와 환경을 주관하시사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섭리’입니다.
작정과 섭리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작정’(作定, decrees)이란,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것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작정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섭리’(攝理, providence)란, 이 세상에 일어난 일들이 우연하게 혹은 그냥 자유롭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주관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들입니다.
이 작정과 섭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장로교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1) 그래서 장로교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2장에서 “하나님과 삼위일체에 관하여”를 다룬 뒤에 바로 이어지는 제3장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를 다루고 있고, 제5장에서 “섭리에 관하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문답과 제8, 11문답에서도 작정과 섭리에 대해 잘 다루고 있습니다.
7문 : 하나님의 작정(作定)decrees이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작정은 그분의 뜻의 경륜the counsel of His will에 따라 정하신 영원한 목적eternal purpose인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날 모든 일을 예정foreordained하신 것입니다.1)
1) 엡 1:4,11; 롬 9:22-23
8문 : 하나님께서 자기의 작정을 어떻게 이루십니까execute?
답 : 하나님께서는 창조creation와 섭리providence의 사역으로 자기의 작정을 이루십니다.
11문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모든 피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그분의 지극히 거룩함most holy1)과 지혜wise2)와 능력으로써 보존preserving하시며,3) 통치governing하시는 일입니다.4)
1) 시 145:17 2) 시 104:24; 사 28:29 3) 히 1:3 4) 시 103:19; 마 10:29-31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할 때는 단지 하나님의 존재만을 믿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데, 그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를 믿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작정하시는 분이시오, 그 일어날 작정이 성취되도록 섭리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작정과 섭리는 당신의 구원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 사건’(눅 22:22; 행 2:23; 4:24-28; 히 13:20)2)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작정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때가 차매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셨고, 그 분이 예루살렘에 가게 하셨고, 그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당하게 하셨고, 산헤드린 공회와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에 의해 사형을 당하게 하셨고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이 세상의 역사를 활용하셨고, 사람들을 활용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대표적인 일입니다.
작정과 섭리에 대한 인간의 책임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일까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니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직접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사도행전 2:23을 찾아봅시다.3) 앞부분에 나오는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이라는 말씀을 보면 십자가 사건과 관련하여 일어난 모든 일들은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말에서 나와야 할 표현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책임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기를 “그러니까 하나님의 책임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도다”라고 하면서 “너희가 죽였다”라고 사람들을 향하여 죄를 지적합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십자가 사건이 아무리 하나님의 작정이 성취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는 분명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4) 다시 말하면,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도록 함에 있어서 비록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의지와 자유를 거슬러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누가 과연 예수를 죽였습니까?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Ⅰ. 예수를 죽인 1차 책임자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대제사장의 시기심
먼저, 대제사장들입니다. 마가복음 15:1을 보시면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소위 종교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날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었고, 1년에 한 차례씩 지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지난 몇 주 전에 보았듯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막 14:55). 그리고 결국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을까요? 15:10을 봅시다.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여기에 보면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넘겨준 이유가 ‘시기심’ 때문이었다 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들은 왜 예수님을 시기했을까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환호하는 군중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시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교 지도자인 자신들이 인기를 얻어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이 인기를 얻으니 시기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의 시기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1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충동하여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7절에 의하면 바라바는 민란을 꾸민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8:40에 보면 바라바를 단순히 ‘강도’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만, 그는 단순한 살인자라고 하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힘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을 선동해서 민란을 꾸며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시도하려고 했던 일종의 민족 투사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원래 대제사장들은 이런 바라바를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들은 당시 자신들의 대제사장 직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친로마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가 존재해야 자기의 직분이 유지될 수 있는데, 바라바와 같이 민란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대제사장에게 있어서 썩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대제사장의 입장에서 바라바는 죽었으면 하는 사람입니다.5)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대제사장들은 바라바가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라고 합니다(11절). 이것은 대제사장들의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자기들에게 아주 방해가 되는 바라바를 살려주더라도 예수님을 죽여야 된다고 생각할 정도의 시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죽인 중요한 동기는 대제사장들의 시기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 첫 번째는 대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의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빌라도의 무책임함
두 번째로, 예수님을 죽인 사람은 ‘빌라도’입니다. 15:1에서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겼습니다. 이제 모든 공은 빌라도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이제 빌라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이 사느냐 죽느냐 가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빌라도에게는 예수님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6절에 나와 있듯이 당시에는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 때는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리고 7절에 보면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마침 빌라도는 10절에 나온 것처럼 왜 예수님이 잡혀 왔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유월절이고, 바라바도 있으니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와 더불어 예수님을 세웁니다. 빌라도는 당연히 사람들이 바라바와 예수님 중에 예수님을 놓아주자고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9절에서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빌라도가 물으니 11절에 보면 사람들은 대제사장의 충동에 의해 예수님이 아닌 바라바를 놓아주자고 하였습니다. 빌라도가 추측하기로는 예수님을 풀어주자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라바를 풀어주자고 합니다. 이러한 예상 밖의 반응에 대해 혹시나 해서 14절에서 빌라도가 다시 묻습니다.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고. “도대체 예수라는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했기에 당연히 예수를 풀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바라바를 풀어주느냐?” 라고 다시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욱 소리를 지르며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4절).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15절에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라고 말합니다. 민중의 저항을 두려워한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15절).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살려주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결국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협박에 위축되는 비겁한 인물이었으며 정의로운 재판보다는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를 민란에 대한 책임문제가 그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빌라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무죄하냐 하는 것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것에 있었습니다.6)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동정하긴 했지만, 정치인의 생명인 민심을 잃으면서까지 정의를 추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당시의 최고재판관 로마 총독 빌라도는 백성의 여론에 몰려 이렇게 불의하고 비양심적인 판결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자신의 삶의 안전되는 보장을 위하여, 정의를 버리고 잘못된 판결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 두 번째는 빌라도입니다.
무리들의 군중심리
마지막 세 번째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든 중요한 장본인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입니다. 즉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11절에서 대제사장들의 충동에 동요되어 예수님보다는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빌라도가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 13절에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자들, 바라바는 놓아주고(막 15:11; 마 27:21) 예수님을 못 박으라(막 15:13; 마 27:22)고 한 군중들은 분명 불과 5일 전만 하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종려나무 잎사귀를 흔들던 자들이었습니다.7) 예수님을 향하여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외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변덕쟁이들이었습니다. 한때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또 다른 때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러한 변덕은 단순히 마음이 바뀌는 그러한 변덕이 아닙니다. 진리를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는 변덕쟁이들이었습니다.8)
그들 가운데는 다른 사람들이 외치니까 덩달아 외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를 못 박으라”는 옆 사람의 고함 소리에 그냥 무책임하게 덩달아 외친 자들도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외치는 그 고함 소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고 그저 옆 사람의 행동에 동조한 것입니다.9)
그들은 참으로 무지하고 무정한 군중이며 불의하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배신적이며 배은망덕하고, 당시 대제사장들의 권력 앞에 아부하는 기회주의적인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죽게 된 또 다른 책임은 무리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이 외에도 예수님을 죽이는데 관여한 사람들이 더 있습니다.
16절에서부터 나오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17절에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자색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씌웠고, 19절에서는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쳤으며 예수님에게 침을 뱉기도 했고, 그 외에도 예수님의 허리에 창을 찌르기도 하는 잔인한 일을 했습니다.
또 한 사람, 이 모든 일의 발화점을 만든 ‘가룟유다’가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마가복음 14:10에서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는 일을 했습니다. 가룟유다는 특히 대제사장들로부터 돈을 받기로 약속받았습니다(막 14:11). 그래서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자신의 스승을 팔아넘겼습니다.
Ⅱ. 예수를 죽인 궁극적인 책임
우리의 책임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이루어진 십자가 사건이 어떠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2:23에서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라고 말씀하는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따라 일어난 일이지만 또한 동시에 그 책임은 대제사장들, 빌라도, 군중들, 그리고 군인들과 가룟유다에게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그들의 죄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대제사장의 시기심, 빌라도의 무책임함, 무리들의 군중심리와 변덕에 있습니까? 누가 예수를 죽였습니까? 로마 군인들? 가룟유다? 대제사장들? 빌라도?
물론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시기심, 빌라도의 무책임함, 무리들의 군중심리와 변덕, 그것은 곧 저와 여러분의 죄악입니다. 빌라도, 대제사장들, 무리들, 그들의 죄 가운데 우리가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빌라도의 사형선고도 아니요, 대제사장들의 넘겨줌도 아니요, 무리들의 고함소리도 아니요, 바로 우리의 시기,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어리석음이었으니 우리는 그들의 죄와 더불어 함께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동일한 우리의 죄악
대제사장들의 시기심,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대제사장들처럼 나보다 누군가가 더 인기를 끌고, 나보다 누군가가 더 잘 살고 잘 되면 겉으로는 좋은 척 하지만 실제로는 시기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빌라도의 무책임함. 그것은 우리의 무책임함입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던 빌라도,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잘 알면서도 개인의 유익과 안전을 위해서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떤 일을 당하였을 때에 분명하게 나에게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남에게 떠넘기는 나의 모습이 빌라도와 동일합니다.10) 불의한 일을 보고도 두 눈 딱 감고, 침묵은 금이라는 핑계로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빌라도와 우리의 공통점이 아닙니까? 빌라도의 연약하고 우유부단함11)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인간의 연약함 아닙니까?
군중들의 변덕은 바로 우리의 변덕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다가도 환경이 바뀌고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주님을 배반하는 변덕쟁이가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줏대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변덕 때문에 고난 당하셨습니다.12)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매달려 계시던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은 바로 우리와 똑같은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타락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 목소리는 바로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를 대표하는 것이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표하는 그들에 의해 달리신 것입니다.13)
가룟유다의 탐욕. 돈 몇 푼에 욕심을 내어서, 적은 돈 때문에 눈이 가려져서 자신의 스승, 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넘겼던 그 탐욕. 우리 역시 유다와 마찬가지로 물질과 탐욕에 찌들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지요(요12:6)?14) 단순히 돈이나 물질을 걱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돈이나 물질에 모든 관심을 갖는 것이요, 정말로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하는 인색함과 오히려 불필요한 사치에 돈을 쓰는 과욕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15) 유다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때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마저도 배신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가 아닙니까?(시41:9)16)
이 밖에도 로마 군인들, 빌라도, 대제사장들, 가룟유다, 무리들이 일생을 통해 범한 모든 죄들은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범하는 죄와 동일한 죄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그 죄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그래서 사도행전 2:36을 보면 뭐라고 말하는지를 봅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 베드로는 이스라엘 온 집을 향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말입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이, 빌라도가, 당시에 빌라도의 재판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죽였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 모두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베드로는 지금 우리에게 말합니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바로 너희들의 죄가 예수를 죽였다” 빌라도, 대제사장들, 군중들, 로마 군인들, 가룟 유다. 그들만이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저와 여러분이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 목소리는 바로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그들이 죄인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17)
십자가 아래에 있던 사람들 중에 우리의 모습이 있고, 우리 안에 그들의 모습이 있습니다.18) 우리의 손에도 대못이 있고, 우리의 손에도 그리스도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계획되어 있었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것은 가룟유다와 대제사장들과 본디오 빌라도, 그리고 무리들에 의해서 실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 당시에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대제사장에게 팔아 넘겼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겼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당시의 로마 총독으로 빌라도가 있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놓아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따라 진행되었으나 그 책임은 바로 가룟유다, 대제사장, 본디오 빌라도, 그 당시의 군중들,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을 다함께 읽어봅시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도다” 예수님은 왜 죽으셨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습니다(행 2:23).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사건은 분명 역사의 큰 물줄기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아주 멀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이미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영원 전에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정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아담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아담의 타락, 아브라함의 부름, 모세의 탄생, 이스라엘의 출애굽, 다윗왕국의 건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로마 제국의 융성과 같은 큰 역사를 미리 이루어 오셨고, 마침내 때가 되어 여자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작정하시고 섭리하신 하나님은 그 작정하신 구원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인간의 욕망과 죄악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살기 위해 달아나도록 부추기지 않으셨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그분을 처형하려는 욕망을 강제로 불어넣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빌라도가 사형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도록 신성한 힘을 사용하신 것도 아닙니다. 무리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도록 부추기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각각 자기의 죄악을 따라 행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욕망을 막지 않으셨고, 자신의 뜻대로 조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의 시기와 미움, 빌라도의 불의하고 불법한, 비양심적 판결, 무리들의 무지, 불의, 군중 심리, 배신, 배은망덕, 아부, 기회주의 때문에 죽임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 악인들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로 인하여 죽임 당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들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와 구별하여 인간의 책임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멘.
설교 질문
1. 작정(作定, decrees)과 섭리(攝理, providence)에 대해 정리해 봅시다.
2.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 우리의 책임은 어떠합니까?
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4. 3번의 질문에 대한 답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함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5.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그리고 인간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십자가 사건을 정리해 봅시다.
어린이 질문
1. 하나님의 작정(作定, decrees)이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어디에 나옵니까?
2. 하나님의 섭리(攝理, providence)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어디에 나옵니까?
3.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일은 우리에게 책임이 전혀 없습니까?
4.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숙제
1. 마가복음 15장 16-32절을 읽어옵시다.
1)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41), 권수경, 이상원 역, 『조직신학 (상)』(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301, 307.
2) 이승구, “로버트 레이몬드의 정통파 장로교 신학,” 『전환기의 개혁신학』(서울: 이레서원, 2008), 96.
3) Berkhof, 『조직신학(상)』, 308.
4) Berkhof, 『조직신학(상)』, 308.
5) 이광호, 『예수님 생애 마지막 7일』(서울: 깔뱅, 2006), 224.
6) 이광호, 『예수님 생애 마지막 7일』, 226.
7) John R. W. Stott, The Cross of Christ (Leicester: IVP, 1986), 황영철, 정옥배 옮김, 『그리스도의 십자가』(서울: IVP, 1988, 19982), 72.
8) Tom Houston, Characters around the Cross (Tain: Christian Focus Publications, 2001), 안보헌 옮김,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서울: 말씀사, 2005), 23, 108-109.
9) Houston,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113-114.
10) Houston,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94.
11) Tidball, 『십자가』, 175.
12) Houston,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23.
13) Octavius Winslow, At the Foot of the Cross, 이태복 옮김, 『십자가 아래서』(서울: 지평서원, 2008), 171.
14) Stott, 『그리스도의 십자가』, 78-79.
15) Houston,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31.
16) Stott, 『그리스도의 십자가』, 77.
17) Winslow, 『십자가 아래서』, 171.
18) Houston,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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