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만분의 일의 기적
중부전선.
천하무적 1대대 장병들은 군사령부 통제관이 지정해준 고구마 고지를 탈취하기위해 중대별로 나누어 공격에 들어갔다. 하늘은 바람이 부러워 할 정도로 맑았다.
간간히 대항군(가상적군)들이 볶아대는 공포탄 소리와 1대대 장병들의 공포탄 응사음이 어우러져 새벽 산하는 이미 잠을 설치고 있었다.
어제 오후부터 1대대의 훈련과정을 지켜본 군사령부 통제관 최 대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얼굴에 시꺼먼 칠을 한 대대장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대대장! 20분 후면 군사령관님께서 이곳에 도착하실 텐데 큰일이요. 어제 주둔지에서 이곳까지 전술적 이동은 불합격이에요.
내가 군사령관님한테 무엇을 어떻게 보고해야한단 말이오. 아무리 평가라 해도 ‘불합격 수준입니다’ 라고 보고 드리자니 불안해하실 테고, 그렇다고 엄정한 전투력 평가 결과를 허위보고하기도 그렇고…. 지금 전개되는 주간 공격 상황을 멋지게 연출하기만 한다면 모든게 잘될 수도 있어요. 뭐 뾰족한 수 없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가 뭉툭한 대대장 이 중령은 별 말이 없었다. 그 옆의 작전장교인 강 소령 역시 그러했다. 강소령이 상황도에 꽂힌 민망한 시선을 하늘로 옮길 때였다. 순간, 강 소령의 시야에 가을 청연을 가르는 전투기 한 대가 포착되었다. 강 소령은 공군부대에서 파견 나온 김 대위한테 황급하게 물었다. “전술항공통제관! 저기 저 전투기를 잡을 수 있는가?” 그러자 공군장교는 주파수를 모르기 때문에 연결될 확률이 만분의 일이라고 한다. 강 소령은 답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걸 잡아서 고구마 고지 일대에 드라이(가상 폭격)을 시킨다면 모든 게 역전되는데 말이야.”
강소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군장교는 무전기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추기 시작했다. 이때 ‘작전’이라고 쓰여진 노란 완장을 찬 소령 하나가 숲속에서 뛰어나오며 최 대령을 부른다.
“참모님! 수행부관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5분 거리까지 오셨답니다.”
군사령부 감찰참모 최대령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대장에게 한 마디 한다.
“훈련경과는 내가 간단히 보고 드릴테니 현 주간공격 상황만 보고 드려요. 사령관님이 급하신 분이라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날지도 모르겠으니 작전장교도 옆에서 잘 거들고….”
마침내 별 네개가 번쩍이는 군사령관 찦이 대대 지휘소에 도착했다. 찦에서 내린 군사령관은 대대장에게 다가가 대뜸 공격목표를 물었다.
“대대장! 고생이 많군. 공격목표가 어딘가?”
“네! 전방 12시 방향에 고구마처럼 옆으로 늘어진 고지입니다.”
“상급부대로부터 지원받은 전력은 무엇인가?”
순간 대대장은 눈앞이 캄캄하기 시작했다. 취임 6개월 만에 사단 선봉대대장으로 인정받은 이 중령, 갑자기 사단장 얼굴이 떠올랐다. 사단 사령부에서 나온 교육보좌관 류소령도 예외일 순 없었다. 노발대발하는 사단장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육군대학 정규과정에 합격하여 입교를 앞둔 작전장교 강소령은 공군장교와 빈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기실 이번 군전투지휘검열은 4성장군(군사령관)이 2성 장군(사단장)의 전투력을 평가하는 관계로 잘못 될 경우 그 후휴증은 만만치 않다. 성적이 나쁘거나 대민 피해 등 사안에 따라 해 부대의 지휘관 및 관계 참모들이 보직해임이나 징계를 먹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군사령관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쎅쎅 공기 가르는 비행음과 ‘라져, 라져’ 외치는 공군장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확률 만분의 일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공군장교의 요청에 의해 지나가던 전투기 두대가 방향을 틀어 고구마 고지를 향해 가상 폭격을 하기 시작한다.
시원스레 목표지역으로 급강하 하다가는 하늘로 솟구치는 보라매 두 마리. 정말 대단한 위용이 아닐 수 없다. 군사령관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저거야. 대대장 아주 훌륭해. 어제 준비태세로부터 이곳까지 이동하는 과정은 어느 부대건 다 비슷할 거야. 6.25때도 마찬가지.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지원배속부대를 포함한 가용 전투력을 집중 운용하는 것이지. 최 대령도 통제하느라 수고 많았어. 그 부대의 전투력을 진단하기위해 가만히 관찰평가 하는
것도 좋지만, 대대장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경험 풍부한 통제관들이 그때그때 조언해주는 것도 뒷북치는 사후검토회의보다 더 나을 수 있어요. 단 최종결심은 대대장이 하는 게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얼굴에서 목으로 검정물이 흐르는 대대장의 복명이 끝나자, 군사령관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리고 어제 예고도 없이 불쑥 검열관들이 들이닥쳐 비상을 발령하는 바람에 병사들 행군할 때 무척 허기졌을 게야. 영내매점 다녀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야. 아마 대대장은 사단 지침으로 개인화기 사격하고 교육훈련 행정분야 수검준비에 치중했을 거야.”
“네, 그렇습니다.”
“그런 전투력 평가는 별 의미가 없잖은가. 내가 예하 사단의 정확한 전투력 수준을 알아야, 야전군 작전지도지침을 구체화 할 수 있는 게지. 해서 내가 직접, 자네 부대를 찍었다네. 30분전에 말이야. 허허.”
이렇듯 분위가 좋아지자 입을 앙다물고만 있던 대대장 이 중령이 입을 열었다.
“군사령관님 덕분에 실전 상황하에서의 전투 지휘감각을 개선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사후검토회의 결과 취약분야는 계속 보강하겠습니다.”
대대장의 말을 들은 군사령관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다. 대대장을 포함한 대대참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떠났다. 사라져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모두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해거름녘, 트럭 한대가 1대대의 지휘소에 도착했다. 그 안에는 소시지와 빵, 우유 등이 가득 차 있었다. 사단장이 보낸 격려 품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