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시인 박인환처럼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즐기고 싶다. 주머니엔 무일푼이었지만 향기 나는 비누와 고급 만년필을 사용했던 박인환. 댄디 코트의 깃을 세운 그가 명동 거리를 지나가면 주변에 빛이 났다. 박인환에게 사치는 외부와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미국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전문점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의 한국 지점인 서울 청당동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 코리아, (이하 울프강)>는 댄디보이 박인환과 함께 작은 사치를 누려보고 싶은 스테이크 전문점이다.
프라임 등급 ‘블랙 앵거스’를 드라이에이징한 원육
안으로 들어서면 장식을 절제한 바로크 시대의 귀족 거실 같은 2층 구조의 홀이 나온다. 가운데 중앙 홀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와 2층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됐다. 백작쯤 되는 집주인이 2층 난간에서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건배를 제의할 것 같은 분위기다. 아니면 백작의 부인이 젊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을 초청해 흥을 돋우면서 시 낭송을 해도 어울릴 살롱 느낌도 난다.
이 집의 상호는 창업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독일에서 외식업에 종사했던 울프강 즈위너(Wolfgang Zwiener)는 2차 대전 발발로 가업이었던 식당 문을 닫았다. 스무 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피터 루거 스테이크하우스>에서 40여 년간 헤드 웨이터로 일했다. 은퇴 후 휴양지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했지만 그의 노하우와 재능을 아깝게 생각한 주변사람들 권유로 창업의 길에 나섰다.
2004년 뉴욕 맨해튼에 1호점을 낸 이래 그가 재직했던 <피터 루거 스테이크하우스>와 함께 뉴욕의 대표적인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발돋움했다. 지금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필리핀 등에 11개 점포를 개점했다. 세계의 모든 울프강 점포는 메뉴와 조리법, 그리고 서비스를 동일하게 공유한다.
특히 스테이크의 핵심인 원육을 엄격하게 고르는 모습은 눈길을 끈다. 전 세계 울프강은 미국 내 상위 3%에 해당하는 최고급 소고기인 연방농무부(USDA) 프라임 등급을 받은 검은 소인 블랙 앵거스 품종을 사용한다. 이 고기를 숙성실에서 약 1~4℃의 저온과 70%의 습도를 유지하며 28일 이상 드라이에이징 방식으로 숙성한다. 숙성된 원육은 이내 근육조직이 느슨해지고 부드러움과 감칠맛은 늘어난다. 드라이에이징 원육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거죽 부분의 고기를 제거하고 쓰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고급 스테이크에 사용한다.
안심 부위 큰 ‘포터하우스 스테이크’ 시즐감 작렬!
먼저 애피타이저로 식전 빵과 버터를 내온다. 바삭한 바게트, 그리고 올리브와 양파가 각각 들어간 세 종류의 빵이다.
역시 애피타이저인 비버리힐즈 찹 샐러드(2만원)는 아보카도, 오이, 파프리카, 양상추 등에 양젖으로 발효시킨 페타치즈로 마무리 했다. 연두 녹색 주황 노랑 등 색색깔의 총총 썬 과일과 채소에 하얀 치즈 가루를 올려 시각적 즐거움이 쏠쏠하다. 비버리힐즈 찹 샐러드와 함께 시즐링 베이컨(1조각 9400원)도 주문했다. 잘 익혀 기름기가 쫙 빠진 베이컨은 퍽 두툼하다. 과하게 짜지 않으면서 훈향이 풍긴다.
드디어 메인 메뉴인 스테이크 차례. 울프강의 대표적인 스테이크는 포터하우스 스테이크(100g 2만3000원)다. 위에서 하향식으로 굽는 브로일러(Broiler)에서 870℃로 구워낸다. 이 과정에서 버터를 가미해 풍미를 늘리고 육즙을 보존한다. 미디엄 레어로 그릴링을 막 끝내고 식탁에 놓인 포터하우스는 그야말로 ‘시즐(sizzle)감’ 100%였다. 한동안 지속된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의 음파가 위장과 혀까지 진동시켰다.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는 일종의 T본 스테이크다. T본 스테이크보다 안심 부위가 더 많은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심과 등심을 따로 구분해 발골하지만 포터하우스는 안심과 등심의 경계 부위여서 두 부위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이것 또한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으깬 감지인 매쉬드 포테이토(1만1000원)와 시금치로 만든 크림 스피나치(1만1000원)를 곁들어 먹었다.
토마토를 기본 베이스로 이 집에서 직접 만든 울프강 스테이크 전용 소스도 있다. 방금 만든 고급스런 케첩 같은 느낌이 난다. 고기가 느끼하다고 느낄 때 요긴한 도우미 구실을 해준다. 뉴욕 점포들에서는 원하는 고객에게 팔기도 하는데 여기서 개별 판매는 하지 않는다.
와인은 역시 스테이크와 잘 어울리는 술이다. 마침 행사기간이어서 시그니처 와인도 한 병 주문했다. 이 집에는 무려 270종의 와인을 구비해 와인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와인 애호가라면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와인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
디저트는 울프강 치즈케이크(1만5000원)로 마무리했다. 치즈케이크는 그다지 단맛이 강하지 않다. 미국 스타일의 생크림을 곁들여 내온다. 치즈케이크를 비롯해 디저트 메뉴는 대부분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음식들이다.
1층에 두 곳, 2층에는 일곱 곳의 개별 방이 있다. 전체적으로는 무려 180석이나 된다. 뉴욕에서 ‘울프강 스테이크’를 경험했던 손님들이 가끔 이 집을 발견하고 반갑게 찾아오곤 한단다. 박인환과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낯익은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개츠비와 데이지였다. “지난 번 파티에 참석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려다가 박인환이 내 소매를 끄는 바람에 그냥 나왔다.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 서울 강남구 선릉로152길 21, 02-556-8700